12화. 정령술과(1)
정령술과에 들어가야 하는 것에는 이유가 있었다.
일단 검법과는 세이먼과 에르셈프를 피해야 하니 가장 먼저 제외했다. 들어간다면 파멸을 피할 수 없을 것이다.
그리고 두 번째로 인기가 많다는 마법과.
저번에 반장인 이블린에게 설명을 들었을 당시, 마법과는 90%의 학생들이 마법사 가문의 자제들이라고 했다. 핏줄 대대로 내려오는 가문의 전통을 지키기 위해 아카데미에 들어오는 것이라고.
그래서 밀리센트가가 마법사 가문인지 아닌지를 알아야만 했다.
머리를 싸매고 기억을 더듬은 결과,
“격 떨어지는 마술쟁이들은 부르지 말게.”
“귀족이라면 귀족의 의무만을 다하기에도 벅차네.”
그들은 검사, 마법사 등을 오히려 하찮게 여기며 귀족이라는 체통을 중시하는 집안이었다.
둘째 날에 집 안을 돌아다니며 카를로스와 월에이트 오빠의 말을 엿들은 것이 이렇게 도움이 될 줄은 몰랐다.
그리고 암술과.
암술은 타고난 신체 조건이 필요했다.
책자에 나와 있는 대로 단순한 힘을 말하는 것이 아니었다.
암술과 부스를 지나가며 다른 학생들의 테스트를 슬쩍 보았을 때였다.
대기하는 학생들 모두 한눈에 봐도 체조 선수들과 같은 늘씬함과 유연성을 자랑하고 있었다. 그들에게는 족히 삼 미터는 되는 거리를 훌쩍훌쩍 뛰어다니는 근육의 탄력성, 밤에 은밀하게 활동하기 쉽게 타고난 동체 시력이 필요하다고 했다.
그만큼 테스트 통과 조건이 까다롭고, 또 오랜 시간 동안의 준비를 요구했다.
하지만 정령술과는 아니었다.
자연과의 친화력만 있으면 가능한 곳으로, 대부분의 사람들은 자연과의 친화력을 가지고 있었다.
따라서 진입 장벽도 낮았고, 또한 정령을 소환해서 싸움을 시키기 때문에 본인이 다칠 일도 적었다.
나처럼 고유 신체 능력이 낮은 경우에는 정령술과가 적격인 셈이었다.
“뜻대로 돼 줄 생각은 없지.”
그래서, 나는 퀘스트의 지시를 거부하고 정령술과의 부스에 들어갔다.
* * *
“안녕하세요.”
인사를 하며 들어간 부스 안에서는 이런저런 대거리가 들려왔다.
“아. 이런 행사는 대체 왜 하라고 하는 거야. 소외감 느껴지게.”
“하는 것도 없는데 뭘. 수업도 안 하고 좋지.”
나는 아무도 내 인사를 듣지 못한 것 같아 다시 크게 소리쳤다.
“안녕하세요!”
그러자 부스 안에 있던 고학년들이 슬쩍 나를 한번 쳐다보더니 다시금 자기들이 하던 일에 집중하는 것이 아닌가.
‘지금 무시하는 건가!’
나는 개의치 않고 다시 입을 열었다.
“테스트를 보고 싶어서 왔는데요.”
그러자 나와 가장 가까이 있던 흑발의 단발머리 여자가 아주 놀란 표정으로 나를 빤히 바라보고 있었다.
“일, 일 학년이 들어왔어.”
그러곤 조용하게 읊조렸다.
그 말을 아무도 듣지 못했는지 다들 시큰둥한 반응이었다. 그러자 단발머리의 선배는,
“일 학년이 들어왔다고!!”
부스 안이 울릴 정도로 쩌렁쩌렁하게 소리를 쳤다. 그제야 나를 쳐다보는 고학년들.
“엥? 진짜로? 뻥치지 마.”
“일 학년이 안 들어온 지가 삼 년째다. 아미카. 언제 적 농담을 들먹여.”
그러자 아미카라 불리는 선배는 벌떡! 자리에서 일어나 나에게로 다가왔다.
“테스트를 보러 왔다고? 정말로? 너 일 학년이야?”
“네, 네.”
“이럴 수가…….”
정령술과가 마이너라고 하긴 했는데 이 정도일 줄은 몰랐다. 신입생이 안 들어온 지 삼 년째라고? 어쩐지 A부터 F까지 수준도 나누어져 있지 않고 하나만 덩그러니 있더라니.
아미카 선배는 내 말을 듣자마자 부스 한가운데로 가더니 어떤 남자가 앉아 있는 책상을 팡! 내려쳤다.
“클라우드!!! 테스트를 보러 왔다잖아!? 안 들려!!”
턱선까지 오는 똑 단발의 아미카는 평범해 보이는 생김새와 다르게 거친 성격의 소유자인 것 같았다.
“뭐? 뭐? 진짜로?”
그러고는 책상에서 졸고 있던 남자가 화들짝, 놀라더니 금세 나에게로 다가와 시선을 맞추고,
“테스트를 보러 왔구나……. 기특해라. 이리 오렴.”
감동에 젖은 목소리로 말하는 것이 아닌가.
나는 순간적으로 ‘잘못 들어온 건 아니겠지.’라는 의심이 들었지만 접기로 했다.
한번 결정한 건 결정한 거다. 후회는 하지 않기로 했다.
클라우드라 불리는 남자는 나를 부스 안쪽으로 데려가더니 물었다.
“테스트 어디 어디 보고 왔니?”
“…여기가 처음인데요.”
그러자 그는 눈물이 고일 것 같은 얼굴을 했다.
“다, 다른 곳이 떨어져서 여기에 온 게 아니라는 거니……?”
“네.”
내가 고개를 끄덕거리자 부스 안에 있는 다른 선배들도 일제히 나를 쳐다보았다. 이런 일 학년은 없었다는 듯, 말도 안 되는 일이 일어났다는 듯 감격에 젖은 눈빛이었다.
“올해를 마지막으로 정령술 반은 폐지가 될 예정이었어. 일 학년이 삼 년째 안 들어오다 보니…….”
그렇다면 내가 올해의 유일한 일 학년이란 말인가.
나는 눈을 굴리며 부스 안에 있는 사람들을 대충 훑어보았다. 아직은 알 수 없었지만 이전의 F반과 달리 인상이 다 좋아 보이는 사람들이었다.
“얘 그냥 넣어 주면 안 되나?”
“그러자. 괜찮잖아?”
“테스트가 뭐가 중요해.”
“하면서 배우는 거지.”
그들은 자기들끼리 마구 대화를 하더니 부스 구석에서 책상에 발을 올린 채 잠을 자고 있던 남자를 향해 소리쳤다.
“반장! 얘 그냥 바로 넣어 주면 안 돼?”
그러자 눈을 감고 있던 남자가 슬쩍 눈을 뜨고는 잠시 침묵을 하더니,
“안 돼. 절차상 서류 제출해야 돼.”
라고 중얼거렸다.
나를 둘러싼 선배들은 다들 아쉽다는 표정을 지었고, 테스트는 그리 어렵지 않으니 괜찮다며 격려를 해 주었다.
“정령술과 테스트는 다른 과들과 좀 다르긴 하지만…… 괜찮을 거야. 우리가 점수 후하게 줄게!”
아미카는 적성 테스트를 담당하는 요직이었는지 나에게 다가와 테스트의 절차에 대해 설명하기 시작했다.
일단 처음으로는 특성 측정이 필요하다고 했다.
“이건 모든 과들이 하는 공통적인 시험이야. 너의 체력, 근력, 민첩성을 측정해야 해.”
“……어떻게 측정하나요?”
벌써부터 불안한 기운이 몰려왔다.
나에게 체력이나 근력, 민첩성이 있을 리는 만무할 것 같았다. 여자 평균 키긴 했지만 근육이 평균보다 적어 보였고 그렇다고 몸이 잽싼 것도 아니었다.
“여기로 와.”
안내에 따라 부스 안으로 깊이 들어가자 겉으로 보았을 때는 절대 상상할 수 없는 공간이 나타났다.
정사각형 모양의 잔디밭으로 된 필드가 나온 것이다. 마치 공간 확장 마법을 쓴 것 같았다.
“우리가 정령을 하나 불러 줄게. 3분만 싸워 봐도 체‧근‧민을 측정할 수 있으니까. 무기는 뭘로 할래?”
어제 검을 산 것이 아주 다행이었다. 아니면 맨손으로 싸울 뻔했으니 말이다.
“자, 그럼 3분 시작한다!”
나는 잔디밭 위로 올라가 필드의 정중앙에 섰다. 이런 종류의 테스트를 할 거라고는 생각도 못 했던지라 당황하긴 했지만 이내 마음을 다잡았다.
‘전생에 헬스 했잖아. 게임도 했잖아. 별거 아니야.’
그리고 선배들은 모두 하나같이 나를 지켜보고 있었다. 응원한다는 듯이 다들 주먹을 불끈 쥔 채였다.
‘부담스러워…….’
곧이어 물방울 모양을 한 정령이 눈앞에 나타났다. 눈과 입이 달려 있어 아주 귀여워 보이는 형상이었다.
‘뭐야, 완전 귀엽게 생겼잖아.’
그래도 나는 검을 뽑아 오른손에 쥐고는 힘을 꽉 주었다.
3분을 채우기만 하면 되니 정령이 먼저 다가오기를 기다렸다. 그러자 정령이 기다렸다는 듯이 나에게 돌진하기 시작했다.
팡!
정령은 귀여운 외모와는 다르게 아주 빠른 속도로 나에게 쏘아졌고, 내 몸을 공격하려는 그것을 칼로 튕겨 냈다.
“오! 오오!”
선배들의 반응이 즉각적으로 들려왔다. 하지만 신경 쓸 여유가 없었다.
정령은 자신의 공격이 먹히지 않았다고 느꼈는지 화난 표정을 지었다. 눈꼬리가 위로 쭉 찢어지며 이번엔 형상을 바꾸었다.
두꺼운 바늘 같은 수십 개의 형상으로 모양을 바꾸더니 하늘에서 쏟아지기 시작한 것이다.
나는 바늘을 피하기 위해 최대한 몸을 움직였지만 수가 너무나도 많았다.
어떤 것들은 내 몸을 맞고 튕겨 나갔고, 내가 피한 것들은 바닥을 맞고 사라졌다.
몇 개는 칼로 쳐 냈지만 짧은 시간에 내가 쳐 낼 수 있는 바늘은 두어 개밖에 되지 않았다.
‘아오, 아파.’
다행히 치명상은 아니었지만 정령이 또 바늘 모양으로 변하기 전에 내가 공격을 해야겠다는 생각을 했다.
손에 단단히 검을 쥐고는 정령을 향해 뛰어갔다.
그러자 물방울 모양의 정령은 내 칼을 맞으며 튕겨 나갔다가 다시 나에게로 돌진하는 것을 반복했다.
팡! 팡! 팡! 팡!
나와 정령은 계속해서 근접전으로 싸움을 펼쳤고, 이내 3분이 경과했는지 정령이 움직임을 멈추었다. 그러고는 불만족스러운 표정을 짓더니 모습을 감추었다.
‘화가 난 건가…….’
정령에 대한 지식이 아무것도 없어 어째서 저런 반응을 보이는 건지 알 수가 없었다.
“루이아나! 네 특성이 나왔어.”
남자 선배가 이리로 오라며 손짓을 했다. 내가 필드를 벗어나 다가가자 책상 위에 있던 네모난 화면이 빛을 뿜기 시작했다.
그 빛은 곧 빔 프로젝터처럼 직사각형의 틀을 쏘더니 안에 글자들을 나열하기 시작했고, 내 측정치를 보여 주었다.
“체력 5, 근력 3, 민첩 8…….”
참담한 숫자인 것 같았다. 나도 게임을 많이 해 봐서 알았다. 체‧근‧민이 한 자릿수라는 것은 최약체를 의미하는 것이나 다름없었다.
“아, 괜찮아! 괜찮아! 이런 것쯤은 수련하면 팍팍 올라. 걱정하지 말어.”
내가 의기소침해할까 봐 걱정을 했는지 선배들이 격려를 해 주었다.
“맞아! 도합 10이 넘는 게 어디야! 일 학년인데!”
“…….”
한 선배의 말에 갑작스럽게 정적이 찾아왔지만 아미카 선배가 친절하게 설명해 주었다.
“체‧근‧민 합이 15를 넘는 게 자격 요건이야. 그러니 합격했다는 뜻이야. 축하해.”
도합 16이니 아슬아슬하게 통과한 건가…….
말은 하지 않아도 내 특성이 말도 안 되게 허접한 것만은 알 수 있었다.
만약 통과하지 못했으면 어떻게 되었을지…는 상상하지 않기로 했다. 특성 측정은 모든 과에서 공통적으로 시험하는 것이라고 하니 통과하지 못했을 경우 바로 학교 퇴출…이나 다름없었다.
‘다른 아이들은 다 시험을 보고 입학했다고 하니 이런 경우가 없겠지…….’
뒷거래로 입학한 대가라는 생각을 하며 나는 두 번째 테스트를 기다렸다. 그러자 이내 아까 아미카 선배에게 한마디 들었던 갈색 머리 남자 선배가 종이 두 장과 펜 하나를 가져왔다.
이번에도 불안한 기운이 엄습했다.
종이와 펜……. 그것도 종이에는 빈 공간이 많아 보였다.
딱 봐도 저건…….
“자. 두 번째는 필기시험. 완전 쉬우니까 걱정하지 마!”
그렇게 말하시면… 제가 바보가 되는 것 같잖아요…….
나는 종이를 받아 들고는 문제를 빠르게 훑었다.
불안한 느낌은 괜한 것이 아니었다.
[정령과 계약하는 방법에 대해 서술하시오.]
“…….”
간단한 문제와 운동장같이 드넓은 여백.
아는 것을 모조리 갖다 쓰라는 대학교의 서술형 문제와 다를 게 없었다.
“아…하하하…….”
엊그제 전학 온 내가 정령과 계약하는 방법에 대해 알고 있을 리는 만무했다.
어이없는 상황에 나 스스로 헛웃음을 터뜨리자 선배들이 오해를 해 버렸다.
“너무 쉽지! 너를 위해 특별히 준비했어. 난이도 최하!”
아까부터 저 선배, 나를 농락하는 것 같은 건 기분 탓이겠지…….
나는 책상에 앉아 펜을 들고는 내 머리를 쥐어짜기 시작했다.
뭐라도 아는 게 있을 거다. 게임 경력 10년 차다. 정령에 관해 뭐라도…뭐라도…….
‘원하는 정령을 부른 뒤 손을 내밀어 계약을 원한다고 말한다. 계약자와 정령은 그 순간부터 하나의 끈이 형성되며, 정령은 계약자가 원할 때마다 모습을 드러내야만 한다…….’
대학교 교양 수업을 들어 본 사람이라면 알 것이다. 서술형 문제의 답을 모를 경우에는 문제와 관련된 아주 작은 것이라도 머리를 쥐어짜 내어 그럴듯하게 설명해야 한다는 것을.
나는 그럴싸한 계약 방법을 생각해 낸 뒤 그럴싸하게 적어 내려갔다. 아마 교수님이 이 답지를 본다면 찢어발길지도 모른다…….
두 번째 문제 또한 마찬가지였다.
[세상에 드러난 첫 정령왕에 대해 서술하시오.]
“……하.”
나는 머리를 부여잡았다. 아까 한 특성 측정을 열 번 하는 게 나을 것 같았다. 정령왕이 뭔데, 먹는 거냐고.
결국 나는 ‘창작’을 하고 말았다. 아까 등장했던 물방울 모양의 정령을 기반 삼아 온갖 상상력을 동원하여 개소리를 써 놓았다.
“여기요…….”
나는 망했다는 얼굴로 시험지를 선배에게 건넸고, 그걸 받은 선배는 당황한 표정을 감추지 못했다.
하지만,
“완벽해! 틀에 갇히지 않은 생각이 발전을 이루어 내는 법!”
엄청난 실드를 쳐 주었다.
‘이 시험을 끝까지 통과할 수 있을까…….’
자신감에 금이 가기 시작했다. 전학을 왔기에 선생님이 편의를 봐준다는 세이먼의 말은 이 테스트를 통과하고 나서 반에 들어갔을 때를 말하는 것 같았다.
이런 시험쯤이야 세이먼에겐 손 안 대고 코 푸는 격이었겠지…….
나도 모르게 심각한 표정을 지었는지 선배들은 오히려 자기들이 안달복달 난리가 났다. 기껏 들어온 일 학년을 절대 보낼 수 없다는 의지 같았다.
“야, 이대로 정령술과 폐지당할래?”
“내가 나온 과가 폐지된다는 건 용납할 수 없어.”
“마이너 과라고 무시당한 건 둘째치고 없어져 봐, 온갖 비웃음은 다 받을걸.”
선배들이 모여서 속삭이는 소리가 들려왔다.
하지만,
나는 최대한 마음을 가다듬었다.
‘끝까지 최선을 다하자. 여기가 아니면 다른 곳은 가망이 없어.’
사실이었다.
마법과와 암술과는 애초에 불가능한 것이나 다름없었다. 세이먼 또한 나에게 특별히 다른 능력은 없다고 했고. 그러면 여기에서 떨어질 시 꼼짝없이 검법과에 가야 하는데…….
‘세이먼과 에르셈프를 맨날 마주하며 살아가는 것은 매일매일이 벼랑 끝으로 내몰리는 삶과 다름이 없어.’
“자, 자! 세 번째 시험. 이제 이것만 보고 면접만 남았어.”
“이번 거만 통과해도 합격 줄게!!”
“사실 이번 테스트가 가장 메인이긴 하지.”
나는 작게 고개를 끄덕거렸다.
선배들은 참 좋은 사람들인 것 같았다. 어떻게든 나에게 잘해 주려고 하고, 사기를 북돋아 주려고 했다.
‘이런 사람들이랑 지낸다면 참 좋을 텐데…….’
그때 아미카 선배가 부스 구석에서 무언가를 조심스럽게 들어 올리더니 이쪽으로 가져오는 것이 보였다.
“이걸 드디어 쓰는구만.”
빛이 나는 구슬 형태의 마도구였다. 비단으로 밑부분을 감싼 채 들고 오는 그녀는 후, 후, 바람을 불어 먼지를 날렸다.
“세 번째 테스트는, 선천적 자질 검사다.”
그러고는 빛이 나는 그것을 내 앞에 내려놓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