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화. 튜토리얼 퀘스트(2)
[튜토리얼 퀘스트 ‘나만의 기사님’에 성공하였습니다!]
[보상이 제공됩니다…….]
호감도가 10%에 달하자마자 눈앞에 하얀 빛무리가 떠올랐고, 보상을 주는 데 시간이 걸리는지 조금 지체가 되었다.
[보상이 제공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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튜토리얼 퀘스트 보상
:탈출 힌트
내용: 마나에 감응하는 자의 일시적 에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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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상을 채 확인하기도 전이었다.
갑작스럽게 큰 소리가 밖에서 들려오기 시작했다.
쿵 쿵 쿵 쿵!
멀리서부터 들려오는 거센 발소리.
어머니다!
갑자기 무슨 일이지!?
“루나! 감히 문을 잠가? 당장 열지 못해!?”
덜컥 덜컥 덜컥!
닫힌 문고리가 살벌하게 돌아갔다.
어머니가 이 시간에 절대 내 방에 들어올 리는 없었다. 마주치는 것만으로도 질색을 하는데, 이 밤에 나를 사적으로 찾아오는 건 있을 수가 없는 일이었다.
게다가 지금쯤이면 어제처럼 술을 먹고 뻗어 있어야 할 텐데, 왜 내 방을 부수고 들어오려 하는 거지!?
“젠장, 미치겠군.”
달칵달칵!
밖에선 쇳소리가 달그락거렸다. 어머니가 그새 열쇠를 가져왔는지 열쇠 구멍에 맞는 열쇠를 찾고 있는 모양이었다.
나무 문 하나를 사이에 둔 채 나는 순간적으로 고민에 빠질 수밖에 없었다.
그리고,
판단은 빨라야 했다.
“저는 이만 돌아가 보겠습니다. 제가 있는 걸 들키면 무슨 일이 생길지 모르겠군요.”
“아니요.”
“네?”
“탈출해야 합니다. 그것 말고는 답이 없어요.”
“탈출이라뇨. 갑자기 말입니까?”
“네. 오늘. 지금 당장요.”
나는 곧은 눈빛으로 세이먼을 향했고, 세이먼은 작게 인상을 구겼다. 무슨 말인지 모르겠다는 표정 같았다.
“짐을 챙겨 올게요! 발코니를 통해 나갈 겁니다.”
나는 세이먼의 팔뚝을 잡고 끌었다.
그때였다.
벌컥!
“이 망할 년이! 어딜 도망가려고?!”
문이 열렸다.
와인색 드레스를 입은 채 머리를 곧게 세운 부인은 체통을 지킬 생각 따윈 없어 보였다.
나는 급하게 몇 안 되는 물건을 챙겨 창문 쪽으로 향했고, 나를 향해 다가온 부인은 바로 손부터 휘둘렀다.
쿵! 아찔한 타이밍으로 내 머리카락을 붙잡지 못한 채 부인은 넘어지고 말았다.
“이년이…… 공작님이 아시면 무슨 파장을 일으키려고?! 네 추잡한 계획이 설마 숨겨질 거라 생각한 거냐?!”
멈칫.
난간을 향해 달려가던 내가 잠시 발걸음을 멈췄다.
숨겨질 거라 생각했냐고?
그렇다면 내가 세이먼과 한 대화가 어떻게든 새어 나갔다는 것인데.
그때, 공작 부인 뒤에 여유롭게 서서 내 상황을 지켜보는 카를로스가 눈에 들어왔다.
벽에 비스듬히 기댄 채 한쪽 입꼬리를 올리고 있는 그의 모습은 마치 악마 같았다.
‘젠장, 카를로스였어……!’
나와 세이먼이 대화하는 걸 듣고 공작 부인에게 고한 것이 분명하다. 내가 저택에서 빠져나간다는 소리를 듣고 괘씸해서 참을 수가 없었겠지.
급작스러운 탈출부터 저 사람들의 난입까지 모두 당황스러웠지만 일단은 움직이는 수밖에 없었다.
나는 난간을 붙잡고 올라가 바깥쪽으로 다리를 하나하나 빼냈다.
무릎을 딛고 일어나 천천히 다가오는 어머니.
“당장 내려와. 어차피 내려가 봤자 네가 도망갈 수 있을 거라 생각하니?”
휘잉.
바깥에서 불어오는 바람에 내 치맛자락이 흩날렸다.
“레이디! 어서! 제가 밑에서 받쳐 주겠습니다!”
밑을 내려다보니 세이먼은 이미 뛰어내려 잔디밭에서 나를 올려다보고 있었다.
‘지금일까? 지금 탈출하는 게 맞는 걸까?’
알 수 없었다. 탈출 힌트가 주어지긴 했지만 전혀 감이 오질 않았다.
하지만……
‘지금 잡히면 탈출은 꿈도 못 꾸게 갇혀 버릴 거야.’
나는 입술을 꼭 깨물며 결심했다.
그러곤 나지막이 입을 열었다.
“어머니.”
“…….”
“영원히 보지 말아요, 우리.”
“에잇!”
내 말과 동시에 부인은 몸을 날려 나를 붙잡으려 했고, 나는 그 순간 난간을 잡았던 손을 놓았다.
쿵!
* * *
“괜찮으십니까? 어디 다치신 곳은 없으십니까?”
“문제없습니다.”
종아리까지 오는 긴 잔디밭이 아니었다면 아마 머리통이 작살났을 거다. 이곳의 2층은 한국 아파트의 2층이 아니니까.
사실 지금도 다리와 등이 너무 아파 왔다.
하지만 게임은 지금부터였다.
“옆문으로 나가죠! 마차를 잡을 수 있을 겁니다!”
세이먼이 나를 이끌었다.
“그곳은 너무 멀어요. 거기까지 가다간 분명 어머니와 마주치고 말 거예요.”
나는 눈을 감고 머리를 골똘히 굴렸다.
생각할 수 있다. 분명. 답이 있다.
덥석.
나는 다시 한번 세이먼의 굵은 팔뚝을 부여잡았다.
“묻고 싶은 게 있어요.”
이 저택은 높고 두꺼운 벽뿐만 아니라 밖에는 상시로 경비병들이 지키고 있다.
그만큼 내부에 들켜서는 안 될 정보가 많아서 함부로 누군가를 들이지도, 내보내지도 않는 곳이다.
“어떻게 유리츠 님은 이곳을 자신의 집을 드나들 듯 들어올 수 있었죠?”
내 목소리에 이리저리 주위를 살피던 세이먼의 고개가 우뚝 멈추었다.
예상하지 못했던 타이밍이겠지.
하지만 마차를 잡자는 그의 반응으로 보아 집을 드나들 수 있는 그만의 능력을 내가 사용할 수는 없는 것 같았다. 한 번 허를 찌른 것으로 만족해야겠다.
세이먼은 미동도 하지 않았다. 굳은 입술은 움직일 생각을 하지 않았고, 날카로운 눈매는 말해 줄 생각이 없다는 걸 표현하는 것 같았다.
“지금 말해 주실 필요 없습니다. 가시죠. 확실한 곳이 하나 있어요.”
경비가 뚫리는 단 한 곳.
그것은 바로 내 눈앞에 보이는 작은 뒷문이었다.
뒷문은 말이 문이지 사실상 몇십 년도 넘게 쓰이지 않은 듯 벽처럼 이끼에 파묻혀 있었다.
아마 지금 형제자매들도 이곳을 모를 정도로 존재감이 없는 문.
그 문을 향해 세이먼을 이끌고 높은 잔디밭을 뛰었다.
축축했던 흙이 밟혀 튀어 오르고, 종아리는 엉망이 되었다.
그리고, 얼마 뛰지 않아 뒷문에 다다랐다.
현재 내 위치에서 가장 가까우며, 나만 아는 공간. 동시에 바깥으로 통할 수 있는 통로.
‘확실하다.’
내가 들어온 이 게임 시스템이 진짜라면, 나를 이 게임에 진정으로 참여시키고 싶은 거라면!
문은 열릴 것이다.
“문을 열어요! 어서!”
나는 세이먼의 등을 떠밀었다.
눈치 빠른 세이먼은 나의 손길을 타고 거세게 달려가 몸을 던져 문에 부딪쳤다.
그러자,
덜컥.
문은 입을 벌려 주었다.
“진짜였어. 단 하나의 열쇠였다고.”
믿을 수가 없었다.
게임 시스템은 진짜였다.
세이먼은 갑작스럽게 밀리센트의 막내딸과 아무도 모르는 뒷문으로 탈출하게 된 것에 어안이 벙벙했는지 한쪽 눈썹을 찡그린 채 아무 말을 하지 않고 있었다.
내가 열린 문밖으로 나가자 더욱 놀라운 광경이 펼쳐졌다.
밖엔 상시로 대기하던 경비조차 없었으며, 고급스러운 마차 한 대가 우리를 위해 대기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어머니는 집에서 못 나갔을 거라 생각할 거예요. 아마 모든 문을 봉쇄시켜 놓았겠죠.”
“마치 신의 선물 같군요…….”
그렇게 중얼거린 세이먼은 나를 부축해 마차에 올려 태웠다. 자리를 잡고 문을 닫은 나는 드디어 안도의 숨을 내쉬었다.
덜컹 덜컹 덜컹.
마차는 천천히 움직이기 시작했고, 울퉁불퉁한 도로에 맞춰 가볍게 흔들렸다.
턱을 괴고 무거운 눈빛을 한 채 바깥을 응시하고 있는 세이먼은 아무 말이 없었다.
나 또한 입을 다물고, 조용하게 밀리센트가의 저택을 지나가길 기다렸다.
* * *
“이곳입니다. 여기서 묵으시면 됩니다.”
수많은 기숙사의 방 중에서 가장 본관과 먼 남쪽 탑이었다.
“수업을 들을 수 있도록 말을 해 놓았습니다. 입학 허가와 기숙사 사용 모두 허락을 맡았으니까요, 이제 거처에 관해서는 걱정하지 않으셔도 됩니다.”
친절하게 설명해 주는 세이먼은 아까의 무거운 눈빛을 제치고는 상냥한 모습을 보였다.
호감도가 오른 탓이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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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름: 세이먼 유리츠
나이: 18
직위: 유리츠 가문의 기사
호감도: 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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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태창을 보며 생각했다. 10% 정도면 어느 정도까지 친한 건지 감이 잘 오지 않았다.
하지만 아직까지 정중하게 예의를 차리는 모습을 보니 그리 친한 단계는 아닌 것 같았다.
“감사합니다, 유리츠 님. 유리츠 님이 아니었다면 탈출할 수 없었을 거예요.”
“세이먼이라 부르시면 됩니다. 앞으로 학생회장으로서 도울 수 있는 일은 돕겠습니다.”
그의 말투는 친절하지만 왠지 모르게 사무적인 느낌이 강했다.
“땀이… 많이 나셨네요.”
정신없는 상황에 그를 제대로 보지 못했지만, 지금 보니 땀에 젖은 그의 모습은 말도 안 되게 매력적이었다.
촉촉한 머리칼을 아무렇지 않게 뒤로 쓸어 넘긴 채 나를 바라보는 나른한 시선.
‘여자 여럿 울리게 생겼네.’
나는 그를 힐끗 쳐다보았다.
세이먼은 게임 설정과 똑같이 상냥하고 온화한 이미지의 소유자였다.
하지만 호감도가 낮아서 그런지 나에게는 딱딱하고 사무적인 태도로 대했다. 동시에 정중하고 예의가 있어서, 기분이 나쁘거나 그러진 않았지만.
얼굴이 잘생겼으니 저런 모습도 매력적으로 보이는구나…….
“늦었는데 이만 들어가시지요.”
기숙사 앞까지 데려다준 그는 끝까지 젠틀한 모습을 유지하며 나를 들여보냈다.
그리고, 그가 닫히려는 문을 잡고는 나지막이 입을 열었다.
“좋은 밤 되시길 바랍니다.”
나는 그의 말을 마지막으로 문을 닫았다.
별것 아닌 말이지만 괜스레 다정하게 들렸다.
남주인공이라는 것은 저렇게 강력한 존재구나.
벌써부터 매력을 느끼다니.
조심해야 해.
쉽사리 넘어가지 않기 위해서는 무정하게 살아야겠어.
“하지만 고마운 건 사실이야.”
그가 아니었으면 나는 빠져나오지 못했을 거다.
나는 기숙사 침대에 앉아 아까의 탈출 힌트를 떠올렸다.
탈출 힌트:
마나에 감응하는 자의 일시적 에너지.
보상으로 받은 탈출 힌트가 이렇게 퀴즈처럼 모호하게 주어질 줄은 몰랐다.
적어도 직관적으로 이해는 가게 만들어야 하는 것이 아닌가?!
하지만 게임 경력 무려 10년 차.
나는 이런 추리류의 게임에도 강한 편이었다.
일단 게임의 시스템부터 정확히 이해하는 것이 중요했다.
‘아무리 난이도가 극악인 게임일지라도, 절대 어겨서는 안 될 룰이 있다.’
그건 바로, 플레이어가 문제를 해결할 수 있도록 힌트가 되는 퍼즐 조각을 제대로 맞춰 놓아야 한다는 것.
그렇지 않은 게임은 더러 욕을 먹기 마련이고, 잘 만든 게임일수록 그 퍼즐 조각은 견고하다.
물론 고난도 게임 중 가끔가다 예외가 있기도 하다.
하지만, 이 퀘스트가 ‘튜토리얼’이라면 말이 다르다.
‘절대 배배 꼬아 놓지 않았을 테니까.’
그것을 알지 못하면 코앞에 있는 열쇠를 찾지 못하고 빙빙 돌아가게 되어 버린다.
‘마나에 감응하는 자의 일시적인 에너지’라니.
마나에 감응하는 자가 있다면 바로 세이먼 밖에 없을 거다. 내 주변엔 그밖에 없었으니까.
물론 다른 형제자매들이 있을 수 있지만 그건 활용이 불가능하니 쓸 수 없는 패다.
그리고 내가 저택 구석구석을 돌아다닐 당시 알아챘던 뒷문의 존재.
하지만 당시에 그 문은 열리기는커녕 작은 틈도 허용하지 않았었다.
그걸 알면서도 그곳으로 향한 이유는,
“나한테 주어진 단서는 그거 하나뿐이었으니까.”
시원스레 내뱉은 혼잣말과 함께 기지개를 켜며 침대에 누웠다.
정말로 그 순간만큼은 게임 시스템을 굳게 믿었다.
이것이 아니라면 시스템의 톱니바퀴가 돌아갈 수 없을 것이라는 걸 알았기 때문에.
그리고 앞에서 마나에 감응하는 자라고 해 놓고, 뒤에 ‘일시적 에너지’라고 굳이 표현한 이유는 마나가 아니라 다른 에너지라는 거였겠지.
‘물리적 에너지였던 거야.’
문을 열 수 있는 물리적 에너지라 함은, 그냥 밀어젖히면 되는 거였다.
괜히 마나 이야기를 꺼내서 헷갈리게 만든 말장난이었던 것.
그리고 남은 퍼즐을 맞춰 여기까지 달성한 나에게 주어지는 빛나는 마차.
“보상이 거지 같다고 생각했는데 좋은 것 같기도…….”
게임 시스템의 보상은, 그만큼 확실했다.
* * *
알람 시계가 없이도 제시간에 일어난 나는 아침부터 분주하게 준비했다.
넓은 침대와 책상, 거울과 탁자까지 겸비되어 있는 이 기숙사는 내가 살던 저택의 다락방보다 열 배는 더 좋았다.
게다가 화장실까지 딸려 있어 생활하기에 불편함이 하나도 없었다.
옷장을 열자 교복처럼 보이는 초록빛 로브가 걸려 있었다.
나는 집에서 가져온 수수한 하얀색 원피스 위에 교복을 두르고는 문을 나섰다.
기숙사를 나오자마자 보이는 많은 학생들.
유명한 가문의 자제들만이 다니는 곳답게 다들 화려한 모습들이었다. 학교임에도 불구하고 고급스럽게 차려입은 드레스부터, 남자들의 개성 있는 다양한 스카프까지.
그런 아이들 속에서, 나는 아무런 신분이 없는 여자다.
내가 아무리 밀리센트 가문의 딸이라고 주장할지라도, 그 누구도 믿어 줄 사람이 없다는 거다.
갑자기 초라한 여자애가 나타나서 공작 가문의 숨겨진 딸이라고 한다면 다들 코웃음만 치겠지.
귀족들만 가득한 이 학교는 물론이고 이 빌어먹을 세계에서도 난 혼자였다.
“그래, 루나.”
주먹을 꽉 쥐었다.
“벤치 프레스 하다가 죽은 운명. 이렇게 살아 보는 것도 나쁘지 않지.”
나는 은근하게 믿고 있었다.
내 전략적인 두뇌와 누구에게도 지지 않을 잔머리를.
“그럼 어디 한번, 학장님부터 만나 볼까.”
내가 처음으로 향할 곳은, 본관의 가장 높은 꼭대기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