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다섯명은 너무 많잖아요 (5)화 (5/156)
  • 4화. 튜토리얼 퀘스트(1)

    다음날, 메이드들 사이에서 이상한 소문이 돌기 시작했다.

    소문의 속도는 빨랐다.

    막내 따님이 드디어 미친 거라는 둥, 공작님을 등에 업고 가문을 집어삼키려고 작정했다는 둥, 외출했을 당시 집안 좋은 남자 하나 건져서 못된 꿍꿍이를 꾸미고 있다는 둥, 소문의 내용은 다양했다.

    “뭐, 그렇게 틀린 말도 아니지.”

    원래 같았으면 메이드가 갖다 주는 소박한 빵 쪼가리를 받으며 아침을 때웠겠지만, 나는 그럴 생각 따윈 없었다.

    복도를 지나 옆문을 통해 밖으로 나갔다.

    밖은 정원으로, 정갈하게 다듬어진 푸른 나무들과 작은 묘목들, 곳곳에는 색색의 아름다운 꽃들이 정성스러운 손길을 탄 듯 예쁘게 꾸며져 있었다.

    숨을 크게 들이쉬자 향긋한 꽃향기와 자연의 냄새가 폐를 타고 들어왔다.

    미세 먼지로 가득했던 한국과 엉망진창이었던 내 방, 인스턴트식품들로 가득했던 컴퓨터 앞을 떠올렸다.

    기억하고 싶지 않은 과거다.

    직업 군인이셨던 아버지는 어머니를 가정부로 취급할 만큼 가부장적이셨다.

    몸을 다쳐 강제로 전역할 수밖에 없었던 아버지는 세상에 대한 분노를 나와 어머니에게 푸는 것이 일상이 되었다.

    매일같이 술을 드셨고, 사소한 것으로도 매질을 하기 일쑤였다.

    나와 어머니의 얼굴엔 멍이 남아나질 않았다.

    결국 견디지 못한 어머니는 집을 나가 버리셨고, 나는 꼼짝없이 아버지의 화풀이 대상으로 전락해야만 했다.

    잔인한 학대의 기억은 나를 성인이 되어도 아버지에게 대들지 못하는 아이로 만들었다. 바보 같아 보일지 몰라도, 나는 그랬다.

    …차마 아버지라고 부를 수도 없는 인간이었지.

    나에게 현실은 지옥 같은 공간이었다.

    그렇게 세상을 거부하고자 시작한 온라인 게임.

    게임은 자유를 느낄 수 있는 몇 안 되는 공간이자 도피처였다.

    그리고 아버지에게 같잖은 예쁨을 받아 보겠다고 시작한 운동 또한 결국에는 스트레스를 풀 수 있는 수단이 되었다.

    처참한 현실을 벗어나고 싶은 마음으로 시작한 두 개의 취미.

    그것이 이 세계에서 얼마나 도움이 될지는 모르겠지만 적어도 이런 나뭇가지 같은 몸과 멍청하게 갇혀 있었던 여자 주인공의 삶대로 살지는 않을 것이다.

    규칙과 통제가 가득했던 전생의 아버지에 대한 기억.

    이곳의 가족은 어떨까.

    아직 밀리센트 공작을 만나지 못했기에 아버지는 파악할 수 없었지만, 찬찬히 남매들부터 만나 볼 생각이었다.

    물론 지금도 엄청난 통제를 받고 있긴 하지만…… 머지않아 벗어날 것이다.

    이런 취급 따위 받으면서 살 순 없지.

    어떻게 환생한 인생인데.

    일단 남매들에 대해 파악한 뒤, 남자 주인공들을 차례차례 만나 볼 생각이다.

    그러기 위해서는 이 집을 나가야 하는 것이 첫 번째 목표고.

    골똘히 생각에 잠겨 있던 참이었다.

    “으응…….”

    어디선가 남사스러운 소리가 들렸다.

    분명 정원 안에서 들리는 소리다. 나는 소리를 향해 살금살금 발걸음을 옮겼다.

    그리고 분수대 뒤쪽 숨겨진 벤치에서 보이는 한 남녀의 거침없는 애정 행각.

    사락.

    ‘실수다!’

    드레스가 긴 탓에 풀에 스치는 소리를 생각하지 못했다.

    여자를 거의 눕힐 듯이 적극적으로 애정 행각을 부리던 남자가 귀신같이 고개를 들어 휙 시야를 살폈다.

    그리고,

    “아…….”

    호랑이와 같은 눈빛이 나와 마주쳤다.

    “네 이년…….”

    첫째 오빠, 카를로스 밀리센트였다.

    * * *

    카를로스 밀리센트.

    비중이 없는 다른 형제자매들과는 달리 약간은 스토리가 있던 캐릭터였다.

    성격이 더럽고 다혈질인 탓에 여주인공이 남주인공이랑 이어지려는 타이밍에 몇 번이나 훼방을 놓곤 했었지.

    기억으로는 집안의 수치라며 내 연애나 약혼 자체를 막는 게 가문 가장의 노릇이라고 했던 것 같다.

    “헬리오네에게 들은 말이 진짜였구나. 요새 집 안을 네 집처럼 쏘다닌다는 것이.”

    ‘내 집 맞는데.’

    하긴, 다락방을 준 것만 봐도 날 가족의 일원이라고 생각하지 않는 모양이다.

    “헤이즐, 미안해. 이런 녀석의 모습 따위 너에게 보여 주고 싶지 않았는데, 잊어 줘. 그만 방으로 들어갈까?”

    카를로스는 연인으로 보이는 헤이즐을 먼저 방으로 보낸 뒤 나에게 다가왔다.

    그는 근엄한 표정으로 입을 열었다.

    “머지않아 공작님이 돌아오실 거다. 타국에서 오시는 간만의 발걸음이시지. 그래서 이렇게 허리를 꼿꼿이 펴고 다니나 본데. 공작님이 계실 때는 네가 그나마 사람 취급을 받는다는 것도 알아. 하지만 이번엔 다를 거다. 나와 다른 가족들 모두 동의했어. 너를 팔아넘기는 것에 말이야.”

    팔아넘겨?

    어디에?

    “어린 여자애들을 원하는 곳은 많으니 어디 가서 노리개 역할 정도는 하며 살 수 있겠지. 얼굴 하나는 반반하니까 말이야. 네가 열여섯이 된 이상 막내딸의 정체를 숨길 수도 없으니 그냥 묻어 버릴 작정이다.”

    당황스러웠다.

    팔아넘긴다니. 그것도 노예로?

    “파, 팔아넘긴다니, 그게 무슨……. 어제 어머니도 아무 말씀 없으셨어요!”

    너무나도 당황한 나머지 나는 카를로스의 말을 되풀이할 수밖에 없었다.

    머릿속이 얼어 버리는 느낌이었다.

    본 게임의 스토리와는 너무나도 달랐다. 분명 여주인공은 왕립 아카데미에 들어가게 된다.

    ‘설마 저택에 갇히면 팔려 나가는 운명이라는 건가?’

    충분히 가능성이 있었다.

    퀘스트를 성공하지 못하면 페널티로 저택에 감금된다고 하였으니 그 이후의 삶은 게임을 플레이했던 나조차도 모르는 미래였다.

    “어차피 팔려 나갈 건데, 말을 하나 마나 같은 거 아닌가? 막내딸은 죽어 버렸다고 할 생각이야.”

    카를로스는 비틀린 웃음을 지었다.

    “어렸을 적부터 병약해서 바깥 한 번 나가 보지 못했다가 시름시름 앓았고, 그렇게 죽어 버렸다고 하면 아마 사람들은 우릴 안타깝게 생각하겠지.”

    “그런 말도 안 되는!”

    “그리고 조문을 오겠지. 그렇게 되면 최근 들어 왕실 관련 비리 의혹을 품었던 우리 가문에 대한 이미지를 바꿀 수 있어.”

    “어…어떻게 딸을 그런 용도로 이용할 수 있는 거죠……?”

    카를로스는 듣는 체도 하지 않았다.

    “너의 희생으로 말이지. 감사하게 생각해. 가문의 수치가 아닌 작은 도움이라도 된다는 것이. 영광이지 않니?”

    마치 이런 처우를 고맙게 생각하라는 듯한 표정의 그는 미친 사람처럼 보일 지경이었다.

    나는 아무 말도 할 수 없었다.

    이렇게 나약한 존재였다니.

    어떻게 이 집의 돈을 빼내고 남주인공들을 피할지 고민하던 내가 너무 안일한 인간으로 느껴졌다.

    날 대체 언제 팔아넘긴다는 거지? 공작이란 사람은 그래도 자기 피가 섞인 자식인데, 이걸 허락했단 말야?

    “순혈을 깬 건 바로 너잖아, 루이아나.”

    그랬다.

    카를로스는 혈통 깊은 가문을 대대로 순혈주의로 이끌어 갈 셈이었다. 그러기에 나 같은 다른 피 섞인 자식이 밀리센트의 성을 가진 채 뿌리를 내리는 것을 허용하지 않는 것이었다.

    “…….”

    내 입은 꿀 먹은 벙어리처럼 다물렸고, 말을 끝내고 미련 없이 떠나는 카를로스를 붙잡을 수 없었다.

    게다가 이 상황에서 감정적으로 호소하는 건 너무나도 무의미했다.

    …그래, 퀘스트에 실패 시 저택에 감금이라는 말은 반대로 생각하면 퀘스트를 성공했을 시 이곳에서 빠져나갈 방편이 생긴다는 말이기도 했다.

    하지만 실패한다면……

    저택 감금은 고사하고, 노예로 팔려 나가 노리개 역할을 하며 살아야 해?

    수긍할 수 없었다.

    어떻게든 이 거지 같은 집에서 벗어나 나만의 삶을 살고야 말 것이다.

    그때 스쳐 간 생각은,

    “세이먼…….”

    이곳을 탈출할 수 있는 단 하나의 방편이었다.

    * * *

    그리고 그날 저녁.

    내 마음을 어떻게 알았는지, 금발의 남자는 발코니로 찾아왔다.

    두 번째이자 마지막 기회다.

    호감도를 올릴 기회.

    이틀이 지났으니 남은 시간은 단 하루.

    오늘 저녁 안에 승부를 내야 한다.

    저번처럼 세이먼은 창문을 두드리며 내 창문 앞으로 모습을 내보였다.

    “또 어쩐 일로 이곳에…….”

    세이먼은 여전히 의심을 품은 얼굴이었다. 저번의 설명만으로는 그에게 충분한 대답이 되지 않은 듯했다.

    “이 저택에서 엄청난 마력량이 느껴집니다. 당신의 존재를 알게 된 이후부터요. 분명 무슨 일이 생긴 것이라 의심이 되어 찾아온 것입니다.”

    그의 말이 이해가 되지 않았지만 일단 티를 내진 않았다.

    “그 부분에 있어서는 아는 바가 없습니다. 말해 드릴 수 없어 아쉽군요.”

    엄청난 마력이라니… 혹시 내가 환생한 것과 관련이 있는 걸까?

    그는 무언가를 캐내기 위해 이곳에 온 것 같지만 내가 알 바는 아니었다.

    나는 퀘스트만 깨면 되는 거니까!

    “며칠 새에 몰골이 말이 아니시군요.”

    그가 나를 빤히 쳐다보며 말했다.

    그제야 생각이 났다.

    첫날 이후로도 몇 번이나 맞은 뺨 싸대기. 그리고 유리잔으로 긁힌 상처까지.

    지금 내 모습은 처참하기 그지없었다.

    하지만 지금은 집중해야 하는 것이 있었다.

    ‘10%까지는 괜찮겠지.’

    호감도를 올리면 죽음에 가까워진다는 건 사실이지만 애초에 튜토리얼 퀘스트를 깨지 못하면 게임을 시작할 수도 없었다.

    나는 딱딱한 태도를 버리고 부드러운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별거 아닙니다. 그나저나 유리츠 님은 매번 예고 없이 나타나 저를 놀라게 하시는군요.”

    “사실은…….”

    그는 무어라 말을 하려다 망설였고, 나는 그것이 중요하지 않다는 듯 말을 이었다.

    “저번에는 저도 죄송했습니다. 간만의 외출을 마치고 돌아온 터라 정신이 없었습니다. 부디 용서를.”

    나는 치맛자락을 잡고 사과의 의미로 고개를 숙였다.

    그리고 고개를 들어 세이먼의 눈동자를 바라보았다.

    +

    이름: 세이먼 유리츠

    나이: 18

    직위: 유리츠 가문의 기사

    호감도: 1%

    +

    호감도는 여전했다. 아슬아슬한 1%. 9%를 어떻게 올리지?

    나는 주의 깊게 세이먼의 표정을 살폈다.

    세이먼은 내 방의 이곳저곳을 두리번거리며 이상한 점을 찾고 있었다.

    그 정도로 밀리센트 가문에 관심이 많은가? 아니면 내 정체에 대해 알고 싶은 것일 수도.

    ‘나를 궁금해하고 있다, 이거지.’

    나는 눈꼬리를 늘어뜨리며 처연한 표정을 지었다.

    “유리츠 님. 저번처럼 저를 도와주실 수 있으실까요. 저는 지금 도움이 필요한 상황에 처해 있습니다.”

    “…그때의 말처럼 가문이 당신을 숨기기라도 하고 있다는 말씀을 하시려는 건가요?”

    “네. 어머니와 다른 언니 오빠들의 강력한 반대로 저의 존재는 밖으로 드러나지 못하고 있고, 곧 있으면 타국으로 팔려 나가 버릴 겁니다.”

    제1 남자 주인공.

    세이먼 유리츠.

    기사라는 직위를 가진 자답게 정의로운 타입으로, 세간의 비리와 음모에도 관심이 많은 사람이다.

    호기심을 자극해야겠지.

    “…숨기는 것도 모자라 팔려 나가다니요. 공작 가문에서 일어날 수 없는 일입니다. 레이디께서 잘못 들으신 게 아닐지.”

    “그랬다면 정말 다행이었겠지요.”

    그렇기에 다른 사람들에게 신뢰를 받는, 전형적인 정의로운 리더형. 그리고……

    “저를 아카데미에 입학시켜 주실 수 있으신지요.”

    이 사람은 비젠티아 왕립 아카데미 학장의 아들이다.

    그는 놀란 듯 눈을 동그랗게 떴다.

    푸른 눈동자가 작게 파르르 떨렸다.

    “갑자기 무슨 말씀이시죠?”

    세이먼 유리츠가 라인하르트 수도의 유명한 기사임은 모두가 알고 있는 사실.

    하지만 비젠티아 왕립 아카데미 학장의 영식이라는 것은 소수를 제외하고는 아는 사람이 없었다.

    ‘물론 게임 스토리를 아는 나는 제외하고 말이지.’

    “유리츠 님의 도움이라면 저는 노예로 팔려 나가지 않고 배움을 받을 수 있을 겁니다. 저는 아직 한 번도 제대로 된 교육이란 걸 받아 본 적이 없고, 기껏해야 이 몇 권 안 되는 책을 읽어 본 게 다입니다.”

    옅게 빛나는 분홍색 눈동자.

    그림자를 드리울 정도로 긴 속눈썹.

    나는 그를 처연한 표정으로 응시했다.

    그러자,

    [호감도가 2% 상승했습니다.]

    역시 예쁜 게 다인가.

    “물론, 아무런 대가 없이 바라는 것은 아닙니다. 아무 능력이 없는 저를 아카데미에 입학시키는 것은 유리츠 님이라도 힘드시겠지요.”

    “…생각해 보아야 할 문제입니다.”

    신중한 대답.

    이 남자는 한마디도 헛된 말을 하는 법이 없었다.

    항상 자신의 능력과 상황을 판단하여 옳은 선택을 찾는 타입이었다.

    “보아하니 유리츠 님은 밀리센트 가문에 관심이 많으신 것 같습니다.”

    그러니 많은 마력량이 느껴진다는 이유만으로 집에 침입한 것이겠지.

    “하지만 보안이 철저한 저희 가문답게 새어 나가는 정보 또한 얕은 수준일 뿐이었겠죠.”

    “…….”

    나는 목소리를 낮추며 말했다.

    “비젠티아 전하와 공작님 간에 떠도는 소문에 대해 알고 싶지 않으십니까?”

    “……그런 정보를 넘겨주시겠다는 말씀이십니까.”

    “가십지나 민중의 소문엔 오류가 참 많지요. 그만큼 부풀려진 것도, 없는 사실도 많습니다. 동시에 저희 집안이 비리가 많은 것도 사실이고요.”

    “그런…….”

    “최근에 헤일리 상회와의 대담으로 율리우스 제국과의 해상 무역이 무효화될 거라는 안건이 나온 것은 아십니까?”

    나름의 승부수였다.

    이건 나도 어젯밤에 둘째 오빠인 월에이트 오빠의 방에서 엿들은 사실이다.

    편지를 쓸 때 입으로 중얼거리는 바보 같은 사람이었지.

    하마터면 메이드에게 걸려 몰매를 맞을 뻔했지만 그만큼 가치 있는 정보였다.

    세이먼의 눈이 흥미로운 모양새를 그렸다.

    [호감도가 3% 상승했습니다.]

    “보기보다 영특한 레이디시군요.”

    게다가 야망이 있는 이 남자.

    해상 무역이 이루어지지 않는다면 현재 왕세자의 입지가 좁아진다. 그렇게 된다면 무역업은 더욱 쇠퇴할 것이고, 귀족들의 지지 또한 흔들리겠지.

    그는 왕세자와 친분이 있었다. 그를 지지하기도 하고.

    “좋습니다. 당신은 정보통 역할을 해 주시고, 저는 이곳에서 당신을 빼내 주면 되는 것인가요?”

    거의 다 넘어왔다.

    그런데, 아직 6%다.

    4%를 어떻게 하면 더 올릴 수 있지?

    “하지만 당신이 집에서 말없이 사라진다면 그 후폭풍은 면치 못할 겁니다. 관련된 자들에게 신변을 위협당할 수도 있고요. 이것에 대한 대책은.”

    그의 표정이 잠시 어두워졌다.

    그만큼 신중하고 싶다는 거겠지.

    그리고, 내 머릿속엔 한 가지 생각이 스치고 지나갔다.

    “저는 힘을 키울 겁니다.”

    나는 눈동자를 빛내며 그를 똑바로 쳐다보았다.

    “지금은 이 작은 다락방에 갇혀 사는 수치스러운 딸일 뿐이지요. 하지만 제가 아카데미에서 힘을 길러 강해진다면 말은 달라집니다.”

    “……호오.”

    “누구도 무시할 수 없는 강한 자가 되는 겁니다. 지금으로선 아무 힘도 없는 나약한 여자아이지만, 저는 공부하고, 또 힘을 키워 살아남을 겁니다. 그 어떤 밀리센트 가문과 관련된 자들이 위협을 할지라도 제 몸 하나는 지킬 수 있을 정도로요. 그렇다면 가문은 더 이상 저를 숨길 수도 없을뿐더러 손을 쓸 수도 없겠지요. 오히려 저를 공작가의 영애라고 더 크게 알리려 할지도 몰라요. 도망다니느니, 영원히 싹을 잘라 버리는 겁니다.”

    아직까지는 확신할 수 없었다.

    내가 이 세계에서 살아갈 수 있는 방법이 강해지는 것인지는.

    하지만 어렸을 적부터 보았던 군인 아버지의 모습도, 헬스를 하며 힘을 키웠던 나 자신도, 레벨을 올리며 게임 캐릭터를 키웠던 경험도 무의식적으로 나에게 말해 주고 있었다.

    일단 강해지면 길이 보인다는 것을 말이다.

    미연시 게임에서 강해지는 것이 무슨 소용이겠나 싶겠지만…….

    엿 같은 퀘스트든, 결국 죽는다는 결말이든 내가 바꿀 수 있는 건 현재로선 없었다.

    그러니 내 스스로 능력치라도 올리는 수밖에.

    “그렇지 않나요?”

    만족스러운 표정를 지으며 설명하는 내 모습.

    그리고 그걸 본 내 앞의 남자.

    그러자,

    [호감도가 4% 상승하였습니다.]

    나는 떠오르는 알림창을 보며 작게 웃음을 지었다.

    ‘이 남자, 당찬 여자를 좋아했었지.’

    누가 봐도 반할 법한 아름다운 미소를 그리며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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