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pisode 14
나는 이곳저곳을 돌아다니며 셸리를 찾았다. 처음은 셸리의 집 주변을 둘러보았고 점점 수색 범위를 넓혀갔다. 같은 동네 아이들에게 셸리의 행방과 전날 있었던 일에 대해 묻기도 했다.
“어디 갔는지는 글쎄, 잘 모르겠어요…….”
“그러고 보니 어제부터 표정이 안 좋았어요. 우리랑 같이 놀지도 않고, 멀리 떨어진 곳에 앉아 있더라고요.”
“난 어젯밤에 셸리를 봤었어. 아빠가 환기 좀 하자고 해서 창문을 열었거든? 그때 셸리가 뭔가 조그만 짐을 들고 어디론가 가는 걸 봤어. 근데…… 정확히 어디로 간 지는 모르겠어.”
나는 아이들의 대답을 들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그들의 말을 들어도 셸리가 어디 갔는지는 알 수가 없었다. 아마 올리비아도 이것과 똑같은 답변을 들었겠지.
아이들은 어두운 표정으로 물었다.
“셸리한테 뭔가 나쁜 일이 생긴거죠?”
“응? 아니야. 나쁜 일이 생기긴.”
“……거짓말쟁이.”
아이들은 눈치가 빠르다. 같잖은 거짓말 같은 건 통하지 않는다. 그렇기 때문에 나는 아이들을 마주할 때면 가끔 심장이 철렁 내려앉을 때가 있다. 나는 작은 손에 사탕을 쥐여주고 자리를 벗어났다.
그 뒤로도 셸리를 찾는 일은 크게 진척되지 않았다. 전혀 아이의 행방을 알 수가 없다. 소득은 전혀 없는데 하늘은 점점 어두워지기 시작했다. 언제 파랬냐는 마냥 붉어지고, 언제 붉었냐는 마냥 검은색으로 칠해진다. 저녁과 밤 사이에 시간, 나는 바닷가에 도착했다.
셸리가 이곳에 있을 거라는 생각은 들지 않았다. 단지, 다른 곳으로 가기 전에 한번 들러본 것이었다. 나는 집에서 들고 온 전등으로 어두운 모래사장을 비춰보았다. 조개껍데기가 바닥을 굴러다닌다.
그때 저 멀리서 내 이름을 부르는 소리가 들려왔다.
“라일라!”
고개를 들자 손을 뻔쩍 들어 올리며 자신의 위치를 알리는 남자가 보였다.
“이즐리?”
“셸리를 찾았어. 여기 있었어.”
“네? 정말요?”
그는 셸리가 바닷가 근처에 있는 해안 동굴 안에 있다고 말했다. 우리는 함께 셸리가 있는 곳으로 향했다. 동굴로 향하는 길목은 발목을 다친 환자가 걷기엔 좋은 곳이 아니었다. 바위가 들쑥날쑥 나 있는 험악한 지형이라서, 걸을 때마다 다친 부위에 충격이 느껴졌다. 나는 이를 악물고 통증을 참아냈다. 그때 이즐리가 내 쪽을 향해 손을 뻗었다.
“라일라, 잡고 내려올래?”
지금은 도움을 받는 게 좋을 것 같았다. 그에게 손을 뻗는 순간 다리에 힘이 풀렸다. 내 몸은 순식간에 앞으로 쏠렸다. 넘어진다! 나는 버둥거리며 주위에 있는 바위를 잡으려고 했다. 하지만 잡히는 것은 없고 내 몸은 아래로 추락했다. 나는 앞으로 다가올 고통을 상상하며 무의식적으로 눈을 감았다.
그러나 한참 지나도 고통이 느껴지지 않았다. 단지 단단한 무언가가 내 앞을 막고 있는 것이 느껴질 뿐이다. 나는 눈을 떴다. 코앞에 이즐리의 얼굴이 보였다. 그제야 이즐리가 넘어지려는 나를 안아 들었다는 것을 깨달았다. 그는 나와 눈을 마주치자마자 고개를 돌렸다.
“……그, 그냥 이 상태로 내려갈게. 괜찮지?”
“네. 괜찮아요.”
그게 나을지도 모른다. 비슷한 상황이 발생하면 위험한 일이 발생할지도 모르니까. 저번처럼 다쳐서 유리아를 걱정시키고 싶지 않았다. 그 아이의 울 것 같은 얼굴에 나는 당해낼 수가 없다.
나는 이즐리에게 안긴 상태로 아래로 내려갔다. 그에게 붙어 있는 내내 커다란 심장 소리가 들려왔다. 얼마나 커다랗던지 시끄럽다는 생각이 들 정도였다. 우리는 곧 해안 동굴 입구에 도착했다. 동굴 속은 무척이나 어두웠다. 내가 들고 있는 전등이 없었더라면 아무것도 볼 수 없었을 것이다. 동굴 안으로 깊숙이 들어가자 훌쩍이는 소리가 들려왔다. 나는 소리가 들려오는 쪽으로 전등을 들이밀었다. 그곳에는 셸리가 웅크린 자세로 앉아 있었다. 그녀의 발치에는 깨진 도자기 조각들이 늘어져 있었다. 그리고 그 아래, 조각들을 감쌌던 것으로 추정되는 노란 보자기가 있다.
다행이다. 납치 같은 걸 당한 건 아니었구나. 그래도 안도의 한숨을 내쉴 수는 없었다. 셸리의 상태가 좋아 보이지 않았기 때문이다.
“셸리.”
"……!"
“여기서 뭐 하고 있었어? 다들 네가 사라져서 얼마나 걱정했는지 알아?”
답변은 돌아오지 않았다. 셸리는 계속해서 훌쩍이면서 조각을 내려다 보고 있었다. 이야기를 나눠볼 필요가 있겠네. 나는 아이에게 다가가 그 옆에 앉았다. 내 뒤를 따라온 이즐리는 반대쪽에 자리를 잡았다.
“셸리, 계속 여기 있던 거니?”
셸리는 고개를 끄덕였다.
“……왜?”
“이거…….”
아이의 자그마한 손가락이 도자기 조각을 가리킨다.
“돌아가신 할머니가 만든 찻잔이야.”
나는 조각을 내려다보았다. 조각 하나하나마다 그림 같은 것이 그려져 있었다.
“엄마가 결혼할 때 할머니가 선물한 거랬어. 엄마가 엄청, 엄청 아끼는 물건이야. 찬장에 보관해뒀다가 매일 꺼내서 닦아둬. 어제가 엄마 생일이라서, 이걸 깨끗이 닦아서 엄마를 기쁘게 해주고 싶었어. 근데…… 찬장에서 꺼내다가 깨뜨려버렸어.”
“……그렇구나. 많이 놀랐겠네.”
“이걸로 붙이려고 했는데……. 제대로 붙지도 않고…….”
셸리의 한쪽 손에 풀이 들려 있었다.
조그마한 종이를 붙일 만한 점성 밖에 없는 풀이었다. 저것으로 도자기를 붙이기에는 역부족이었을것이다.
“그래서 친구네 집에 간다고 거짓말을 하고 여기 숨어 있던 거야?”
“……응.”
셸리는 무릎에 얼굴을 파묻었다.
“여기 계속 있어서 무서웠지?”
“……깜깜하고 무서웠어.”
“그럼 우선 여기서 나가자, 응?”
“못 나가. 나 이제 평생 여기서 살아야 해. 이걸 보면 엄마가 날 싫어할 거야. 다신 사랑한다고 말해주지 않을 거야. 잘 때마다 굿 나이트 키스해주지도 않을 거란 말이야!”
나는 무슨 말로 셸리를 위로해줘야 할까 고민했다. 그때 이즐리가 한숨을 내쉬며 말했다.
“너 진짜 바보구나.”
“뭐?”
셸리가 고개를 들고 이즐리를 바라보았다. 커다란 눈망울에 눈물이 어려있었다.
“내가 왜 바보야……!”
“바보지. 너희 어머니가 그런 일로 널 싫어하게 될 리가 없잖아.”
“엄마가 소중히 여기는 걸 깨뜨려버렸는데도……?”
“그래, 소중히 여기는 걸 깨뜨려버려도. 그런 것보다 널 몇 배는 더 소중히 여기시거든. 지금 네가 사라져서. 너희 어머니가 얼마나 슬퍼하시는지 알아? 그 찻잔이 없어진 것도 모르고 계속 널 찾고 계셔.”
셸리는 두 손으로 눈물을 닦았다.
“너무 걱정하지 마. ‘깨뜨려서 죄송해요’라고 말하면 바로 용서해주실 거야.”
“……정말 용서해줄까?”
“물론이지. 왜냐면…….”
이즐리가 셸리의 머리를 쓰다듬었다.
“모든 부모는 자식을 이 세상, 그 무엇보다도 사랑하는 법이니까.”
그의 말을 들은 나는 오늘 또 「장미 저택의 비밀」 외전을 읽지 말았어야 했다는 생각을 한다. 한 번도 사랑받지 못한 그가 어떤 심정으로 그런 말을 하며 셸리를 위로해주고 있는지 생각하게 되기 때문이다. 심장이 욱신거리는 것 같았다. 나는 처음 그가 아리아에 찾아왔을 때와 마찬가지로 이즐리 에머스라는 인간을 동정하게 된다.
내가 나서지 않아도 이즐리는 셸리를 잘 위로해주었다. 그의 말을 듣고 있던 아이는 밖으로 나갈 용기가 생긴 것인지, 도자기 조각이 든 보자기를 들고 자리에서 벌떡 일어났다. 우리는 셸리를 데리고 밖으로 나갔다. 이즐리와 나는 셸리의 부모님이 올 때까지 그 집 앞에서 기다리고 있었다. 세상이 완전히 어둠으로 뒤덮이자, 터덜터덜 집으로 걸어오는 올리비아와 그녀의 남편을 볼 수 있었다. 두 사람은 집 앞에 앉아 있는 셸리를 보자 눈을 커다랗게 떴다.
“엄마……. 아빠…….”
“셸리!”
그들은 셸리를 껴안고는 엉엉 울었다. 셸리를 찾아줘서 고맙다고 우리에게 감사 인사를 한 뒤, 아이를 붙들고 여러 가지 질문을 하기 시작했다. 그동안 어디에 가 있었는지, 왜 거짓말을 하고 사라졌는지, 몸은 괜찮은지. 셸리는 울먹거리면서 그들의 질문에 하나하나 답을 해주었다. 아이의 이야기를 들은 올리비아가 화를 냈다.
“찻잔이 깨져서 그랬다고? 엄마가 그런 걸로 셸리 널 싫어하게 될 줄 알았어? 아니야……. 네가 어떤 잘못을 하던 엄마는, 셸리를 싫어하지 않을 거야. 절대. 셸리가 한 일에 잠깐 화는 낼 수 있겠지. 그렇지만, 싫어하게 되는 일은 없어. 엄마는 셸리를 사랑하니까. 그러니까 다시는 사라지지 말렴. 알았지?”
셸리는 울면서 고개를 끄덕였다.
그렇게 그들은 가족의 화목함을 보여주었다.
나는 힐끔 이즐리의 얼굴을 바라보았다. 그는 어쩐지 슬퍼 보이는 미소를 띤 채 그들을 바라보고 있었다.
지금 이즐리는 어떤 생각을 하고 있을까? 어떤 기분으로 셸리의 가족들을 보고 있는 걸까? 셸리가 무사히 용서받은 것을 기뻐하고 있을까? 자신이 가지지 못했던 행복을 보며 부러워하고 있을까? 혹은 어머니에게 사랑받는 셸리를 질투하고 있을까? 지금 그가 셸리의 가족들을 보며 어떤 생각을 하고 있는지도, 동굴 안에서 어떤 심정으로 부모의 사랑에 대해 이야기하며 셸리를 위로해줬는지도, 나는 도저히 알 수 없다. 이즐리의 심정을 이해할 수는 있어도 그가 느낀 감정에 온전히 공감할 수 없다.
어째서 사람은 자신이 겪지 못한 타인의 일을 공감할 수 없는 걸까? 가족이 있는 사람은 가족이 없는 사람의 아픔에 공감할 수 없다. 다정한 부모를 가진 사람은 부모에게 학대당하는 사람의 아픔에 공감할 수 없다. 부유한 사람은 가난한 사람의 아픔에 공감할 수 없다. 배부른 자는 굶주린 자의 아픔에 공감하지 못한다. 때리는 사람은 맞는 사람의 아픔에 공감하지 못한다.
사람은 결코, 자신이 겪어보지 못할 일에 공감하지 못한다. 아무리 노력하고 노력해도, 그 마음을 들여다보려고 해도 알지 못한다. 그게 진실이다. 그것은 변하지 않는 진리다.
왜 나는 그런 잔인한 현실에 이렇게 가슴이 아플까? 그것은 지금 이 순간, 내가 이즐리의 마음에 공감하고 싶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그의 마음을 알고 싶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나는 왜 그런 생각을 하게 된 것일까? 그가 안쓰러워 보였기 때문일까? 그의 미소가 연민이라는 감정을 불러일으켰기 때문일까?
글쎄 잘 모르겠다. 그저 지금, 화목한 가족의 모습을 바라보며 슬픈 미소를 짓는 이즐리의 손을 잡아주고 싶을 뿐이다. 그는 바로 내 옆에 있었다. 손만 뻗으면 닿을 수 있는 위치에 있었다.
그래, 그저 손만 뻗으면 저 거대하고 못생긴 손을 잡아줄 수 있는 것이다.
그러니 잡지 않을 수가 없었다.
나는 손을 뻗어 살며시 이즐리의 손을 잡았다. 손바닥에 박인 굳은살이 선명하게 느껴졌다. 이즐리의 손은 너무 커서 손아귀에 전부 들어오지 않았다.
손이 잡힌 이즐리는 놀란 듯 몸을 흠칫 떨었다. 그는 자유로운 반대쪽 손으로 얼굴을 가렸다. 제 붉어진 뺨을 보이고 싶지 않은 사람처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