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Episode 13 (82/8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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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Episode 13

    아침 일찍 나는 유리아와 함께 옷가게로 향했다. 그녀가 보여줄 것이 있다고 손을 잡아끌었기 때문이다. 최근에 옷을 만들겠다고 밤늦게까지 돌아오지 않는 일이 잦아지더니, 무언가 굉장한 것을 만든 모양이겠다. 아직 목적지에 도착하지도 않았는데 잔뜩 흥분한 듯그녀의 얼굴이 분홍빛으로 상기되어있었다.

    가는 길 내내 유리아는 내 다리를 걱정했다. 나는 괜한 걱정이라고 몇 번이나 그녀를 안심시켜주어야 했다. 이미 다리는 거의 다 나은 상태였다. 내가 생각했던 대로 약간 삔 것뿐이라서, 약간의 관리로 상태가 많이 호전되었다.

    이제 살짝 절뚝이는 것만 제외하면 모두 괜찮았다.

    우리는 곧 옷가게 앞에 도착했다. 나는 기대되는 마음으로 유리아의 손을 잡고 가게 안으로 들어갔다. 막 발을 들여놓기 전에 문에 걸려 있는 피켓은 CLOSE에서 OPEN으로 돌려놓으려고 했다. 유리아는 내 손을 잡고 말했다.

    “일단 보고 돌려놓자. 응?”

    다른 사람한테 방해받고 싶지 않은 모양이다. 나는 고개를 끄덕이곤 피켓을 놓았다. 가게에 들어가자 엠마와 미카엘라가 나를 맞아주었다. 유리아는 2층으로 올라갔다. 미카엘라는 도와주겠다며 그녀를 따라 올라갔다.

    “참…… 뭘 보여주려고 이러는 건지.”

    나는 두 사람이 내려오기 전까지 가게를 둘러보았다. 행거에는 기성품과 함께 색다른 디자인을 가진 옷들이 걸려 있었다. 바로 유리아가 직접 디자인해서 만든 옷들이었다. 이제 그녀는 자신이 원하는 대로 옷을 만들 정도로 실력이 늘었다.

    많이 노력했구나, 유리아.

    나는 옷을 쓸어내리며 웃었다. 나는 노력하는 사람이 좋았다. 그런 사람을 차마 미워할 수가 없다. 손에 생기는 상처도 신경 쓰지 않고, 잠도 자지 않고 열중하는 사람을 걱정하면서도 사랑하지 않을 수 없다. 심지어 그게 내 가족이라면 더더욱 그렇다.

    그때 쿵쿵거리는 소리가 들려왔다.

    유리아가 미카엘라와 함께 마네킹을 가지고 내려왔다. 마네킹 위에는 거대한 천이 쓰여 있어서 그것이 어떤 옷을 입고 있는지 보이지 않았다. 유리아가 천을 확 벗기자 아름다운 드레스가 나타났다. 미니 드레스였다. 길이는 무릎보다 살짝 위였고, 색은 흰색이었다.

    어깨가 훤히 드러나서 시원해 보였다.

    꽃과 잎 문양이 섬세하게 자수로 새겨져 있었다. 치마 부분은 하늘하늘하게 내려앉아 있다. 아름다웠다. 디자인에 일가견이 없는 내가 봐도 훌륭한 솜씨라는 것을 알 수 있었다.

    유리아는 환하게 웃으며 마네킹의 어깨를 잡았다.

    “내가 처음으로 만든 드레스야, 라라.”

    “이걸 보여주려고 부른 거였어? 정말, 너무 예쁘다. 정말 잘 만들었어.”

    “내가 만든 거라고 하기에는 뭐한가? 사실 미카엘라의 도움을 많이 받았거든.”

    유리아는 민망한 듯이 웃자 미카엘라가 단호하게 말했다.

    “난 작은 도움을 줬을 뿐이야. 거의 다 둘째 사장님이 만들었어.”

    “너를 생각하면서 만든 거야.”

    “나를?”

    “응, 라라 네가 입어주기를 바라면서……. 입어줄 거지?”

    그래서 오늘 날 데리고 온 거였구나.

    가게도 열지 않고…….

    가슴이 벅차오르는것 같았다. 유리아가 나를 위해 만든 드레스라니. 기뻤다. 네 살 밖에 안 되는 동생이 날 위해 조그만 손으로 구슬을 하나하나 꿰서 팔찌를 만들어준 것 같은 기분이다. 평소 잘 우는 성격은 아니었지만, 오늘만큼은 눈물이 날 것 같았다. 하지만 이런 좋은 날에 울 수는 없지.

    “얼른 입어봐요!”

    엠마가 가게 한편에 마련되어 있는 탈의실로 나를 밀어 넣었다. 나는 입고 있던 옷을 벗고 드레스를 입었다. 사이즈가 놀라울 정도로 딱 맞았다. 저번에 유리아가 줄자를 가지고 와서 내 사이즈를 재본 일을 떠올렸다.

    내가 탈의실 밖으로 나가자 유리아가 박수를 쳤다. 그녀는 세상 누구보다 행복해 보이는 얼굴로 웃고 있었다.

    “정말 잘 어울려! 정말, 정말로…….”

    유리아의 얼굴을 보고 있으면 나까지 기뻐졌다. 미카엘라도, 엠마도 한 마디씩 칭찬을 해주었다. 두 사람에게 짧게 감사 인사를 하고 전신 거울을 들여다보았다. 유리아가 입었다면 더 예뻤을 것 같은데…….

    그때 가게 문이 열리고, 누군가 빼꼼 얼굴을 내밀었다. 이즐리였다.

    나는 이즐리가 집에 찾아올 것을 생각해 문 앞에 쪽지를 하나 남겨두었다.

    오늘은 옷가게에 갈 예정이니 나를 기다리지 말라는 내용이었다. 그는 집으로 되돌아가는 대신 옷가게로 찾아온 것 같았다. 우리는 그에게 인사를 했다. 엠마는 마침 잘됐다며 얼른 들어오라고 말했다. 가게가 닫혀 있는 데도 들어온 그에게 불편함을 느끼는 사람은 없었다. 이즐리는 나를 따라 자주 옷가게에 왔다. 직원들이나 우리 자매에게 그의 방문은 익숙한 일이었다.

    엠마가 히죽히죽 웃으며 말했다.

    “사장님이, 그러니까 첫째 사장님이 드레스를 만들었어요. 이즐리 씨도 얼른 와서 보세요.”

    의아한 얼굴로 가게 안으로 들어온 이즐리를 본 나는 후회할 행동을 하게 된다. 변명을 해보자면, 나는 유리아에게 드레스를 받고 너무 신이 나 있었다. 그 아이만의 뮤즈가 된 것 같은 기분이 들었기 때문이다. 그래서 나는 이즐리를 향해 활짝 웃으며 한 바퀴를 돌고 말았다.

    “유리아가 만든 드레스예요. 예쁘죠?”

    드레스가 동그랗게 원을 그렸다가 내려앉았다. 이즐리의 멍한 얼굴을 본 나는 뒤늦게 과한 행동을 했다는 것을 깨달았다. 그는 한참 동안 아무 말도 하지 않고 나를 바라보기만 했다. 무언가에 홀린 사람처럼…….

    내가 그 시선에 민망함을 느끼고 어색하게 미소 지을 때에서야 이즐리는 천천히 입을 열었다.

    “응, 예뻐…….”

    엠마가 장난스레 웃으며 말했다.

    “드레스가요, 아니면 사장님이요?”

    오늘 처음으로 엠마의 입을 막고 싶어졌다. 나는 이즐리의 입에서 어떤 말이 나올지 알고 있다. 그 말을 들으면 정말 부끄러워서 이 자리를 뛰쳐나갈지도 모른다. 혼자 있으면 괜찮았다. 조용히 하라고 말하면 되니까. 그런데 이곳은 미카엘라나 엠마뿐만 아니라 유리아도 있었다. 그래서 나는 이즐리가 입을 열려고 할 때 재빨리 이렇게 말했다.

    “당연히 드레스죠. 유리아가 이렇게 정성스럽게 만들어줬잖아요. ”

    유리아가 내 손을 붙잡았다.

    “무슨 소리야, 라라. 네가 더 예뻐.”

    “네 드레스 때문에 그렇게 보이는 거야. 이제 갈아입고 나올게.”

    유리아는 아쉬운 표정으로 고개를 끄덕였다. 나는 그녀의 머리를 쓰다듬어준 뒤, 탈의실로 들어갔다. 내가 옷을 갈아입고 나오자, 가게 문을 두드리는 소리가 들려왔다.

    똑, 똑, 똑, 똑똑똑.

    노크 소리에서 다급함이 느껴졌다.

    밖으로 나가자 익숙한 얼굴의 여성이 보였다. 나이는 30대 중후반쯤으로 보였고 곱슬기가 심한 적발을 하고 있었다. 셸리의 어머니인 올리비아였다. 아이들과 어울리다 보니 함께 친해진 사람이었다.

    올리비아는 평소에 몸가짐을 중요시했다. 항상 자신의 머리카락을 커다란 핀으로 고정시켰고 차림새를 정갈하게 매만졌다. 그러나 오늘은 달랐다. 머리는 제대로 빗지 않은 것처럼 산발이었고 옷은 너저분하게 구겨져 있었으며, 신고 있는 신발은 짝짝이였다. 신경 쓰이는 것은 그뿐만이 아니었다. 어두운 얼굴을 한 그녀는 불안한 사람처럼 몸을 벌벌 떨고 있었다.

    “저기…….”

    올리비아가 금방이라도 울 것 같은 얼굴로 입을 열었다.

    “라일라, 혹시 셸리를 보지 못했니? 아니면 셸리가 너희 집에 찾아오지는 않았어?”

    “네? 무슨 일이세요?”

    “셸리가 사라졌어. 어젯밤부터 보이지 않아……!”

    우리는 올리비아를 의자에 앉히고 이야기를 들었다. 그녀는 내가 건네는 커피를 받아 들고 울먹거렸다.

    “어제 셸리가 친구네 집에서 자고 오겠다고 하고 나갔어. 그때까지는 별 걱정을 하지 않았지. 그 친구가 사는 곳도, 부모님도 전부 다 알고 있었거든. 그런데 다음 날, 윌리네 집으로 가니까 셸리가 자기네 집에 온 적이 없다는 거야. 그 집에서 자고 가기로 한 약속 자체를 한 적이 없대.”

    올리비아는 울기 시작했다.

    “그럼 어째서 그런 소리를 한 걸까? 도대체 어디로 간 걸까? 나는, 나는 정말 모르겠어.”

    눈물방울이 커피에 떨어지며 옅은 파동을 일으켰다. 그녀는 고개를 숙이고 흐느꼈다.

    “그때 나는 셸리가 행방불명이 됐다는 걸 깨달았어. 남편한테도, 경비병한테도 말하고 주변 사람들한테도 도움을 요청했어. 그런데 아직도, 찾지 못했어. 아무도 그 아이를 본 사람이 없다는 거야. 혹시 아이에게 잘못된 일이 일어난 건 아닐까? 누가…… 납치라도 한 건 아닐까? 너무 걱정이 돼……!”

    “울지 마세요.”

    나는 유리아에게 손수건을 빌려 그녀의 얼굴을 닦아주었다. 셸리, 언제나 즐거운 소식을 전해주던 작은 꼬마 아이. 내게 사탕을 받아 들고 해맑게 웃는 모습이 떠오른다. 나도 셸리가 걱정이 됐다.

    갑자기 사라지다니…… 도대체 셸리에겐 무슨 일이 일어난 걸까? 왜 친구네 집에 놀러 간다는 거짓말을 하고 나가버린 걸까? 가출일까? 아니면 어떤 사건에 연루된 것일까? 그 이유를 알 수가 없으니 답답하고, 안 좋은 생각이 들기 시작한다.

    아니야. 셸리는 괜찮을 거야. 그렇게 생각하자.

    나는 머릿속에 떠오르는 상상들을 지워버리고 올리비아의 손을 잡아주었다.

    “저도 찾는 걸 도와드릴게요.”

    “정말이니?”

    그녀가 내 손을 마주 잡았다. 올리비아의 손이 벌벌 떨려왔다.

    “셸리를 찾으면 바로 말하러 갈게요. 너무 걱정하지 마세요. 금방 찾을 수 있을 거예요.”

    “……고마워. 라일라.”

    올리비아는 꾸벅 인사를 하고 가게를 떠났다.함께 셸리의 소식을 들은 사람들의 얼굴이 어두웠다. 그들도 걱정되는 것이다. 셸리는 겨우 다섯 살 난 꼬마 아이였다. 그런 아이가 실종이 됐다고 하면 누구나 저런 반응을 보일 것이다. 마음이 좋지 않다.

    “전 셸리를 찾으러 가볼게요.”

    내가 그렇게 말하자 유리아가 머뭇거리며 입을 열었다.

    “……오늘 하루 가게를 쉬어도 괜찮을까요? 저도 셸리가 걱정이 되어서 이대로 가만히 있을 수 없을 것 같아요.”

    미카엘라와 엠마도 동의하는 듯 보였다. 엠마가 슬픈 얼굴로 두 손을 붙잡았다.

    “저도 같이 찾고 싶어요. 셸리를 얼른 찾으면 좋을 텐데…….”

    “그런 이야기를 들으면 찝찝해서 가만히 있을 수가 없지……. 나도 합류할래.”

    미카엘라는 머리를 긁적이며 한숨을 내쉬었다. 이즐리 역시 걱정되는 얼굴로 함께 찾으러 가겠다고 말했다.

    우리는 가게의 피켓은 CLOSE로 놔둔 채 밖으로 나갔다.

    하늘은 구름 한 점 없이 맑았다.

    이렇게 좋은 날에, 어째서 이런 안 좋은 소식을 들어버린 걸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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