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pisode 60
이틀 뒤, 사형이 집행되었다.
사형은 수도의 광장에서 진행되었다. 수많은 사람이 광장 중심부에 위치한 무대 주변을 둘러싸고 있었다.
그 위에는 니고르 백작과 오베론을 비롯한 사형수들이 밧줄에 묶인 채 앉아 있었다. 남녀노소, 신분 고하없이 모든 이들이 그들을 향해 분노하고 있었다. 욕설을 퍼부으며 손가락질을 했고, 끔찍하다는 듯 고함을 내 질렀다. 개중에는 돌을 던지는 이도 있었다.
“죽어버려! 쓰레기 자식!”
날아간 돌이 니고르 백작의 이마에 부딪혀 바닥으로 떨어졌다. 백작은 비명을 지른 것 같았지만, 그의 목소리는 사람들의 고함 소리에 묻히고 말았다. 돌을 쥔 사람들의 눈에는 분노와 함께 옅은 광기가 엿보였다.
나와 유리아도 그곳에 있었다.
비록 돌을 들지는 않았지만 그들의 몰락을, 한시도 눈을 떼지 않고 지켜보고 있었다. 원수의 마지막 모습이었다. 이것을 놓칠 수는 없었다.
‘마지막’이라는 단어에 심장이 미친 듯이 뛰었다. 지금 심장을 뛰게 만드는 감정이 기대감인지, 기쁨인지, 혹은 긴장감에서 비롯된 다른 어떠한 감정인지 알 수 없다. 하지만 한 가지 확실한 사실은 내가 그들이 벌을 받는 모습을 그 누구보다도 고대하고 있다는 것이다.
유리아도 마찬가지로 고개를 번쩍 들고 단두대 쪽으로 시선을 고정하고 있었다.
사형 집행인이 단두대를 세워 둔 무대 위에 올라서자 사람들은 입을 다물었다. 순식간에 광장은 고요해진다. 사람들이 집행인의 행동 하나하나에 집중하고 있는 것이 느껴졌다.집행인의 손이 움직이자 무언가가 바닥으로 떨어지는 소리가 들렸다. 쿵! 데구루루…….
뚝.
그때 손가락 사이를 파고드는 부드러운 살결이 느껴졌다. 유리아가 내 손을 잡은 것이다.
“라라.”
“왜 그래, 무서워? 괜찮아. 내가 옆에 있잖아. 정 보기 힘들면 돌아가자.”
그녀는 답을 하는 대신 손에 힘을 주었다.
“……유리아?”
“미안해.”
“뭐가……?”
얼른 유리아 쪽을 돌아보았다. 그녀는 고개를 숙이곤 속삭이듯 말을 내뱉었다.
“……그날, 나만 아니었으면 네가 저택에 끌려가서 그런, 고통스러운 일을 당할 일이 없었잖아. 널 끌어들여서 미안해. 지금에 와서야 사과할 용기가 생겼어. 너무 늦었을까?”
순간 멍해졌다. 뭐지? 유리아가, 무슨 소리를 하는 걸까? 자기 잘못이라고? 왜? 갑작스러운 상황에 머리가 어질어질했다.
“아니야…….”
죄책감에 속이 울렁거리기 시작했다.
“네 잘못이 아니야. 그건…… 그건, 내 잘못이야.”
목구멍이 턱 하고 막혀버린 것처럼 말을 제대로 할 수가 없다.
왜 유리아가 사과를 하는지 이해가 되지 않는다.
오히려 사과해야 할 사람은 나이지 않은가?
유리아를 괴롭게 만든 것은 나였다. 예정된 불행에서 벗어나게 하겠다는 이유로 함부로 이야기를 뒤튼 주제에 아무것도 바꾸지 못했다.
그것도 모자라서 그녀를 원작보다도 불행하게 만들었다.
본래라면 그녀는 동생과 함께 에밀리에게 입양됐을 것이다. 그 뒤로는 무엇 하나 부족하지도, 분란을 겪을 일도 없이 셋이서 행복하고 단란한 생활을 했을 것이다.
공작가에 하녀로 들어가기 전까지는 아무 걱정 없이 웃고 떠들고 행복하게 지냈을 것이다.
“에밀리를 따라갔으면 그런 일을 겪을 필요가 없었잖아. 내가 억지를 부려서 여기 남자고 하지만 않았어도 니고르 백작과 만날 일은 일어나지 않았을 거야. 내가 그에게 붙잡히지만 않았어도 네가 저택에 오지 않았겠지. 왜 널 탓하는 거야? 내 잘못이잖아……. 전부 나 때문이야.”
그러니까 너는 나를 원망해야지.
사과 같은 건 하지 말아야지. 목구멍이 턱 막혀오는 것 같다. 내가 저지른 일을 상기하면 상기할수록, 다시 한번 깨닫게 되고 마는 것이다.
“나 때문에 네가 불행해졌어.”
내가 유리아 핸슨이라는 소녀를 불행하게 만들었다는 것을…….
나는 자기 자신에게 물어본다. 어디서부터 잘못된 걸까? 하고. 그러자 억지를 부려댄 것부터 잘못이었을지도 모른다는 답이 돌아왔다. 그래, 그런 걸지도 모른다. 에밀리를 따라가서 공작가에 들어가는 것만 막을 수 있었더라면 일이 이렇게까지 꼬이지는 않았을 것이다.
어쩌면 부모님의 죽음을 막지 못한 것부터 잘못이었을지도 모른다.
두 분이 살아 계셨더라면 지금 보다 더 좋은 상황이 되었을 것이다. 사업이 성공해서 일찍이 다른 지역으로 떠났을 수도 있고, 제임스 니고르가 영지의 출입을 막았을 때 나보다 더 좋은 답을 냈을 수도 있다. 그러나 모두 본질적인 문제는 아니었다. 정말로 잘못된 것은, 나였다. 내가 억지를 부리지 않았더라면 부모님의 죽음을 막을 수 있었더라면…… 모든 것은 완벽했을 것이다.
그러니까, 어쩌면……. 내가 네 동생으로 태어난 것부터가 잘못이었을지도 몰라.
“미안해.”
네 동생으로 태어나서.
수많은 사람 중에 하필이면 나 같은 게 네 동생으로 환생해서 모든 것을 망쳐버렸잖아. 굳이 변명해보자면 나는 널 그 소설의 주인공으로 만들고 싶지 않았어. 그냥 평범한 유리아 핸슨이 되기를 원했어. 어딘가에 갇혀 있을 필요 없이 자유롭고, 웃고 싶으면 웃고 울고 싶으면 우는, 사소한 것으로 고민하고 머리를 싸매는 그런 소녀가 되기를 바랐어. 그게 그렇게 큰 욕심이 아니잖아.
“……미안해.”
내가 아니라 다른 사람이었다면 네가 조금이나마 행복해질 수 있었을까? 매일 밤마다 악몽을 꾸지 않아도 됐었을까? 매일같이 불안해하지도 무서워하지도 않고, 그저 마음 편안히 웃을 수 있었을까? 부모님도 살리고, 니고르 백작과 마주치지 않게 하고, 에머스 공자들과도 엮이지 않게 만들 수 있었을까?
적어도 내가 아니라면 가능했을 것이다. 고개를 숙이고 입술을 세게 깨물었다.
왜 현실은 소설과 이렇게나 다른 걸까? 소설 속 주인공들은 모두 완벽하게 해내곤 하잖아. 왜 나는그러지 못했던 걸까? 어째서 모두 실패하는 걸까? 차라리 아무것도 해내지 못할 거라면 전생의 기억도 없었으면 좋았을 텐데. 전생의 기억이나 소설의 내용 같은 건 잊어버리고 평범하게 태어났으면 얼마나 좋았을까? 그랬으면 그냥 너의 평범하고 보잘것없는 동생으로 살아갈 수 있었을 텐데.
그냥 그렇게…….
“아니야.”
그때 유리아가 입을 열었다.
“불행해지지 않았어.”
광장은 아주 시끄러웠다. 바로 옆에 있는 사람의 목소리도 듣기 힘들 정도였다. 그런데도 그녀의 목소리는 내게 똑똑히 들려왔다. 마치, 이 장소에 유리아와 나밖에 없는 것처럼.
“왜 그런 식으로 말하는 거야?”
유리아의 눈에 눈물이 맺혔다. 그녀는, 그 어느 때보다 상처 받은 얼굴을 하고 있었다.
“나는 한 번도 너 때문에 불행하다고 생각한 적 없어. 너와 함께 있는 매일매일이 나한테는 행복이었어. 부모님이 돌아가시고 무너지려던 나를 붙잡아준 건 너였어, 라라. 언제나 그랬어. 나를 괴롭히던 아이들을 혼내준 것도, 모르는 문제를 알려준 것도, 내가 해내지 못한 수많은 일을 도와준 것도, 그날 저택에서 나를 구해준 것도 너였어. 너란 말이야…….”
"……."
“라일라. 네가 있어서 불행해진 게 아니야. 네가 있어서 나는 불행해지지 않은 거야.”
“난…….”
“언제나 내 곁에 있어줘서 고마워. 항상 나를 위해 노력해줘서 고마워. 그날…… 목숨을 걸고 나를 구해줘서 고마워.”
유리아의 눈에서 눈물이 흘러내렸다.
“네가, 다른 사람도 아닌 네가 내 동생으로 태어나서 다행이야.”
투명한 선이 얼굴을 타고 뚝뚝 떨어진다.
“그러니까 제발…… 그런 말을 하지 마! 내 동생으로 태어나서 미안하다고 사과하지 말란 말이야……!”
그 순간, 사람들의 환호 소리가 세상을 뒤덮었다. 단두대에서 또 한 사람의 목이 잘려나간 것이다. 환호 소리가…… 그 환호 소리가 너무나 커서, 아무 소리도 들리지 않는다. 내 울음소리도, 유리아의 울음소리도. 얼굴을 축축하게 젖어가는 것을 느끼며 고개를 들었다.
유리아에게 도움이 되고 싶었다.
그녀를 구해주고 싶었다. 그런데 지금 도리어, 그녀에게 구원받고 만다.
기억을 되찾은 이후 계속해서 죄책감에 시달렸다. 일이 이렇게 되어버린 것이 나 때문이라고 생각하면서, 누군가 내 잘못이 아니라고 말해주길 바라고 있었을지도 모른다. 이를 증명하듯 지금 이 순간, 그 어느 때보다도 마음이 편안해졌다.
“나도 그래……. 네가 있어서 나는 불행해지지 않은 거야. 죽고 싶던 순간에도, 비참한 순간에도 네가 있어서 살아갈 수 있었어. 네 동생으로 태어나서 다행이야. 네가 내 언니로 태어나서 다행이야. 서로가 가족이 되어 이렇게 만날 수 있었던 모든 우연이 기적 같아. 너도…… 나한테 미안하다고 하지 마. 넌 잘못한 거 하나도 없어.”
나는 고개를 들어 단두대가 서 있는 곳을 바라보았다. 사형수들의 목이 하나하나 떨어져 나가, 이제 니고르 백작의 차례가 되었다. 그는 두려움 가득한 표정으로 집행인의 하인에 의해 단두대 아래에 눕혀졌다. 햇빛을 받은 칼날이 번쩍인다.
“우리 둘 다 잘못한 게 없어.”
벌벌 떨고 있는 니고르 백작에게 시선을 고정했다.
“진짜로 잘못한 사람은 저 사람이잖아……. 사과하고 용서를 빌어야 할 사람도, 죄책감을 느껴야 할 사람도 저 놈이야.”
나는 깊게 숨을 내쉬고 말했다.
“그러니까 이제부터 자기 잘못이라고 생각하지 말자. 자신을 탓하지 말자.”
사형 집행인이 다시 손을 움직이자 질긴 악연이 끊어져나간다. 나뭇가지를 힘겹게 붙들고 있던 나뭇잎이 결국에는 뚝, 떨어지듯이 한 생명이 사라진다. 덧없고, 허무하게.
“난…… 앞으로 그렇게 생각할 거야. 너도 그렇게 하겠다고 약속해줘.”
조그맣게 동의의 말을 내뱉는 유리아의 목소리를 끝으로 눈을 감았다.
누군가는 그의 죽음으로 모든 것이 끝났다고 생각할 것이다. 하지만 끝이 아니다. 가해자가 사라져도 우리에게는 그가 남긴 악몽 같은 기억이 있었다. 때때로 그들이 남긴 흉터는 우리를 고통스럽게 만들고 잠을 재우지 않을 것이다. 죄책감을 느끼게 하고 자신을 탓하게 만들 것이다.
하지만 괜찮다.
나는 이겨낼 것이다.
아니, 우리는 이겨낼 것이다.
유리아의 손을 세게그러쥐었다.
서로가 함께라면 이 세상에 이겨내지 못할 건 없으니까.
모든 불행이 자신의 잘못이라고 생각될 때는 탓하지 말자고 서로의 등을 토닥여주자. 불행한 기억만큼 행복한 기억을 채워나가자. 그날 우리에게 퍼부어진 욕설과 폭력이 신경 쓰이지 않을 정도 서로를 사랑하고, 아껴주자. 스스로가 이 세상에서 소중한 사람이라는 생각이 항상 들 정도로…….
앞으로 그렇게 살아가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