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pisode 59
도착이다.
다시 등의 상처가 따끔거리기 시작했다. 가만히 서 있는 시간이 길어질수록 고통은 점점 커졌지만 아직까지는 참을 만했다. 괜찮아. 할 수 있어. 마주 보는 거야. 나는 침을 삼키고 안을 들여다보았다.
이게 무슨 일일까?
안에는 시체인지, 살아 있는 사람인지 분간이 되지 않는 남자가 감옥의 중심에 앉아 있었다. 머리는 며칠 동안 안 감은 것처럼 더럽게 헝클어져 있었고, 옷에는 지푸라기와 먼지가 잔뜩 묻어 있었다.
사라진 왼쪽 팔을 감싼 검붉은 붕대 위로 파리가 날아다녔다. 살짝 벌어진 입에서는 침이 뚝뚝 떨어지고 눈에는 초점이 없었다.
헤벌쭉 웃으면서 몸을 앞뒤로 흔드는 모습은 한눈에 봐도 제정신이 아닌 것 같았다. 긴장을 한 채 이곳까지 온 것이 우스워질 정도로, 오베론은 초라한 모습을 하고 있었다.
전혀 믿기지 않았다. 저게 오베론이라고? 웃으면서 나를 괴롭히던 그 남자란 말이야?
거짓말.
나는 주먹을 꽉 쥐고 간수에게 물었다.
“……왜 저러는 거죠?”
“그게, 어디서 머리를 크게 다친 모양이에요. 들어올 때부터 저 상태였어요. 제대로 알아보는 사람도 없고 말을 알아듣지도 못해요. 뭐가 그렇게 즐거운지 매일같이 웃고만 있더라고요.”
“잠깐 철창 안으로 들어가 볼 수 있을까요?”
“네? 죄송하지만 그건 들어드리기 어려워요. 위험한 상황이 생길 수도 있고…… 또…….”
간수는 곤란한 듯 말을 흐렸다. 하지만 그것도 한순간이었다.
“들여보내 주세요.”
손이 묵직해지자 언제 그랬냐는 양 태도를 바꿔 철창의 문을 열어주는 것이다.
그녀의 주머니에서 나온 열쇠가 구멍에서 빠지고 철창의 문이 요란한 소리를 내며 열렸다. 뒤에서 들려오는 조심하라는 말을 한 귀로 흘리며 감옥 안으로 들어섰다. 발밑에서 지푸라기들이 바스러지는 소리가 들려왔다.
오베론은 내게 눈길도 주지 않고 멍청한 표정으로 허공을 응시하고 있었다. 자세히 보니 그는 허공을 응시하는 게 아니 었다. 파리를 보고 있는 거였다. 두 눈이 파리를 따라 바쁘게 움직였다.
“오베론.”
답은 돌아오지 않았다. 자신의 이름도 못 알아듣는 것인가? 아니면 못 들은 척하는 것뿐일까? 다시 한번 그의 이름을 입에 담았지만 시선이 내게 꽂히는 일은 없었다.
나는 오베론에게 가까이 다가갔다. 본래라면 그와 마주하기만 해도 몸이 떨려왔을 것이다. 하지만 지금은…… 이상하게도 괜찮았다. 나 자신도 놀랄 정도로 차분할 수 있었다.
그의 정면에 쪼그려 앉자 고약한 냄새가 풍겨왔다. 오베론에게서 나는 냄새였다. 니고르 저택의 지하에 갇혀 있었을 때 가끔 맡았던 냄새이기도 했다. 얼굴을 살짝 찡그리고 입을 열었다.
“날 기억해? 당신이 그렇게도 죽어라 괴롭혀대던 사람이야.”
“해?”
그제야 내 말이 귀에 들어왔는지 이쪽으로 고개를 돌린다. 아무것도 모르는 사람처럼 실실 웃는 얼굴에 심사가 뒤틀렸다.
“웃지 마.”
짜증 나니까. 그대로 손을 들어 오베론의 뺨을 후려쳤다. 짝! 살끼리 세게 맞부딪히는 소리가 감옥 안에 울려 퍼졌다. 그는 옆으로 쓰러져서 몸을 부들부들 떨었다.
“아흐…… 아아……! 아?”
고통에 찬 신음을 흘리던 오베론은 뺨을 쥐고 나를 올려다보았다. 하나 남은 눈에 눈물이 그렁그렁 맺혀있었다. 얼굴에는 분노나 짜증 대신 억울함과 슬픔만이 잔뜩 묻어 있었다. 왜 자신이 맞았는지 이해할 수 없는 사람의 태도였다.불쌍한 모습이었지만 동정심은 전혀 들지 않았다.
“아파?”
이 정도로 아파하면 안 되지. 넌 나한테 어떻게 했는데.
내가 발을 거세게 움직이자 비명이 터져 나왔다. 뒤이어 흐느끼는 소리가 들려온다. 나는 오베론의 물기 어린 목소리를 들어도 아무런 감정을 느낄 수 없었다. 그러니 자신의 행동을 멈춰야 한다는 생각도 들지 않았다.
“전에는 네가 날 이렇게 대했었지. 심심할 때 가지고 노는 인형 취급을 했잖아. 나를 괴롭히면서 웃는 당신의 얼굴이 아직도 눈에 선해. 반대 입장이 되니까 기분이 어때?”
“흐아아……! 흐으……!”
“왜 말을 못 해? 응? 전에는 잘했으면서.”
그의 몸을 마구 짓밟았다. 비명소리가 커지면 커질수록 웃음을 참을 수가 없었다. 우습다.
나를 무서워하며 울고 있는 오베론의 모습도, 이 상황 자체도. 어째서일까? 그다지 통쾌한 기분은 들지 않았다.
되레 찝찝하다. 오베론은 반항을 하는 대신 울면서 도망가는 길을 택했다. 엉거주춤 몸을 일으킨 그는 헐레벌떡 감옥의 구석으로 기어갔다.
그리고 두 팔로 머리를 감싸고 소리를 질러 댔다.
“으아……! 아아! 아아아!”
나는 제자리에 선 채 그를 내려다보았다.
완전히 망가졌구나.
원수의 망가진 모습은 불유쾌한 쾌락을 가져오는 동시에 허탈한 감정을 안겨주었다. 차라리 니고르 백작처럼 발악하고, 자신의 잘못을 인정하지 않고 소리를 쳤으면 좋았을 텐데.
그랬다면 그의 한심한 처지를 비웃어줄 수라도 있었을 것이다. 하지만 지금 상태로는 얻어낼 수 있는 게없었다. 기껏해야 얻어낼 수 있는 것은 오베론의 비명과 울음소리뿐이다.
바닥까지 떨어져 그의 심정도, 처절한 후회도, 거짓된 사과의 말도 들을 수 없다. 아무것도 기억하지 못하는 이에게 나 혼자만 분노하고 있다.
벽에 대고 말하는 것 같다. 맥이, 빠진다.
나는 오베론을 향해 한 발자국, 한 발자국 나아갔다. 내가 가까이 다가갈수록 그의 눈에 깃든 두려움이 짙어졌다. 어느 순간부터는 이를 딱딱 부딪치며 몸을 떨기 시작한다. 더 이상 들어갈 곳이 없는 데도 감옥의 구석을 파고들며 가쁜 숨소리를 내고 있다.
“으으……!”
코앞에 멈춰 서자 더 이상 가까이 오지 말라는 듯이 손을 마구 휘두른다. 그의 작은 반항은 너무나 하찮아서, 내가 있는 곳까지 닿지 않았다.
곧 자신의 행동이 내게 통하지 않는다는 것을 깨달았는지 오베론은 손을 내리고 눈물을 흘렸다. 침과 눈물이 뒤섞여 바닥으로 뚝뚝 흘렀다.
잠시 뒤, 오베론의 바지가 축축이 젖어가기 시작했다. 그에게서 흘러나온 노란 액체가 바닥을 더 럽혔다.
“하하……. 지금 뭘 한 거야?”
그 모습을 본 나는 허탈한 웃음을 터뜨렸다. 더럽다. 역겹고 끔찍하다.
지금 내가 보고 있는 게 진짜인지 믿기지가 않는다. 그 정도로 한심하고 멍청한 모습이었다. 무섭다고 실례를 한다고? 밑바닥도 이런 밑바닥이 없다. 짐승인지 사람인지 분간이 되지 않는다. 이젠 웃음조차 나오지 않는다. 무표정하게 오베론을 내려다보았다.
알겠다.
이제 당신은 내가 무서워할 이유도, 가치도 없는 사람이구나.
그것을 깨닫자 등에서 느껴지던 고통이 사라졌다. 오랫동안 나를 괴롭혀왔던 괴물의 그림자가 사라지고 눈앞이 선명해졌다. 더 이상 오베론이 무섭지 않았다. 두려움은커녕 가소롭다는 생각이 들 지경이었다. 그와 마주 보고 있는 것이 전과는 다른 의미로 끔찍하게 느껴졌다.
나는 그대로 뒤돌아 감옥에서 나갔다. 바깥에 서 있던 간수는 헐레벌떡 다가와 나를 1층으로 안내했다.
셀프레스 감옥의 문이 열리고 붉은 하늘이 나를 맞이해주었다.
상쾌한 공기가 맡아지고 가을바람에 휘날린 나뭇잎들이 서로 스치는 소리가 들려온다. 마차 앞에 유리아가 서 있었다. 끔찍한 사람들을 연달아 만난 탓일까, 유리아의 모습을 보자 마음이 벅차올랐다.
태양의 빛을 모두 흡수한 것처럼 유리아는 붉은색으로 반짝이고 있었다. 어깨선을 타고 흘러내리는 연갈색 머리카락이 주홍빛으로 젖어들어간다. 고개를 숙인 얼굴이 하얗게 번지고, 기다란 속눈썹이 가느다랗게 떨렸다. 아름답다. 꽃처럼 가련한 외모도, 강인한 마음도, 부드러운 분위기도 그 이유가 되지 않는다.
그녀가 아름다운 이유는 단지 유리아이기 때문이다. 내가 사랑하는 소녀이기 때문이다.
감옥에 드리운 어둠을 뒤로하고 그녀에게 다가갔다.
“유리아.”
이름을 부르고 나서야 나를 눈치챈 듯 유리아는 퍼뜩 고개를 들었다.
“기다렸어?”
“어디 갔었어, 라라? 먼저 나가서 기다리고 있다고 들어서 감옥을 나오자마자 여기 왔는데…….”
“그냥. 잠깐 어디 좀 갔다 왔어.”
말을 흘리자 유리아의 표정이 매서워졌다.
“다시는 내게 숨기지 않겠다고 했잖아.”
“숨기려던 게 아니야. 별로 말할 거리가 안 된다고 생각했던 것뿐이지.”
“그럼 말해줘. 어디 갔었는지.”
“……오베론을 만났어.”
“뭐……? 오베론이, 여기에?”
그녀가 눈을 휘둥그레 떴다. 오베론이 여기 갇혀 있다고 생각하지 못한 기색이 역력했다.
그건 나도 마찬가지였다. 니고르 백작에게만 정신이 팔려 다른 사람 생각을 하지 못했다. 유리아는 한걸음에 달려와 어디 다친 곳이 없는지 내 몸 구석구석을 확인했다. 내 얼굴을 두 손으로 감싸 안고는 걱정스러운 얼굴로 나를 내려다 보았다.
“괜찮아? 왜 너 혼자만 그 사람을 만나러 간 거야? 나한테 말을 안 했어……. 그랬으면 같이 갔을 텐데……!”
그녀의 손 위로 내 손을 올렸다.
“걱정하지 않아도 돼. 아무렇지도 않았어. 오히려 내가 걱정인 건 너야, 유리아. 너는 어땠어? 괜찮았니? 그 사람이 너한테 더 심한 말을 하지는 않았어?”
“……나도, 나도 괜찮았어.”
유리아의 눈이 나를 똑바로 쳐다보지 못하고 아래로 향했다. 눈에 띄게 어두운 표정을 보자 거짓말을 하고 있다는 것이 느껴졌다.
괜찮기는 무엇이 괜찮단 말인가? 또 그놈이 헛소리를 한 모양이었다.
끓어오르는 분노를 삼키며 애써 침착한 태도를 취했다. 아까처럼 감정에 휩싸여 버럭 소리를 지르면 내가 하는 말에 진정성이 느껴지지 않을 테니까.
그녀의 손을 세게 그러쥐고는 이름을 불렀다. 유리아, 라는 단어에 유리구슬처럼 푸르고 투명한 시선이 다시 내게 돌아왔다.
“뭐라고 하든 신경 쓰지 마. 무시해버려. 그가 하는 말은 모조리 헛소리야. 쓸모도, 가치도 없는 말들이야. 널 상처 주려고 발악하고 있는 거야.”
"응."
유리아가 부드러운 미소를 띤 채나를 내려다보았다. 그녀가 자신을 더럽다고 했던 그때의 상황이 오버랩되며 얼굴이 저절로 찡그려졌다.
“……넌 더럽지 않아.”
“……응.”
유리아가 자신을 그렇게 생각하고 있어도 상관없다. 그녀가 그런 생각을 할 때마다 말해줄 것이다. 넌 절대 더럽지 않다고, 더러운 건 니고르 백작이라고……. 다시는 그런 생각을 하지 못할 때까지 몇 번이나 말할 것이다. 수백 번, 수천 번을…….
그런 생각을 하며 유리아를 끌어안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