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Episode 57 (57/8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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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Episode 57

    집무실을 벗어난 우리는 곧장 방으로 향했다. 저택의 고용인들은 복도를 열심히 쓸고 닦고 있었다. 그들은 나와 눈이 마주치자마자 고개를 돌리고 자신의 일을 하거나 재빨리 자리를 피했다. 보아하니 우리를 어떻게 대해야 할지 알 수 없는 모양이었다. 저택 내의 지위가 하녀에서 갑자기 손님으로 상승했으니 어색할 만도 했다.

    지난 2주 간 우리는 밖에 나가기보다는 손님용 방에서 지냈다. 책이나 식사를 가져오는 하녀를 제외하면 만난 사람도 거의 없었다.

    방을 찾아오는 하녀는 그때마다 바뀌었는데, 그중 우리를 어색하지 않게 대하는 것은 마리나 에이미처럼 평소에 친했던 사람들이나 에밀리 아주머니뿐이었다. 유리아와 나의 누명이 벗겨졌다고 하자 에밀리가 손뼉을 치며 기뻐하던 것이 기억난다.

    마침 복도에서 바닥을 쓸고 있던 에이미가 나를 향해 미소 지었고 나도 그에 화답하며 입꼬리를 추켜올렸다.

    이윽고 우리는 목적지에 도착했다. 나는 의자에 앉아 깊게 숨을 내쉬었다.

    공작을 마주한 것만으로도 이상하게 지쳤다. 몸이 아니라 정신이. 턱을 괴고 옆으로 시선을 돌렸다. 그러자 방구석에 놓인 선물 상자들이 눈에 띄었다. 모두 오세스가 감옥에 있을 때 도움을 주지 못했다는 사과의 의미로 조금씩 건네준 물건들이었다. 그는 때때로 고용인들을 시켜 우리에게 선물을 건넸다.

    부담스럽다고 말하고, 되돌려주려고 해도 받을 기색이 없었다. 그래서 저 상자들은 한 번도 열리지 않은 채 방 한쪽에 놓이게되었다.

    그때 어디선가 바스락 거리는 소리가 들려왔다. 소리가 나는 곳으로 고개를 돌리자 유리아가 옷장 문을 뒤지고 있는 것이 아닌가.

    무엇 때문에 저곳을 뒤지는 걸까? 옷장 안에는 미리 싸놓은 짐이 들어 있었다. 목적이 있다면 가방 속에 있다고 볼 수 있었다. 예상대로 유리아는 자신의 몫의 짐을 풀어 돈이 담겨 있는 주머니를 꺼냈다. 하녀 일을 하면서 받은 봉급이었다. 주머니를 두 손으로 살짝 그러 쥔 그녀는 내가 있는 곳으로 고개를 돌렸다.

    “라라.”

    “응?”

    “우리…… 니고르 백작을 보러 가지 않을래?”

    “뭐? 그 사람을 보러 가자고?”

    유리아가 천천히 고개를 끄덕였다.

    “……그 사람이 어떻게 지내고 있을지 궁금해. 지금의 우리를 보면 어떤 말을 할지도. 사과를 할까, 아니면 여전히 죄가 없다고 생각할까.”

    나는 한 손으로 입을 막곤 그녀를 쳐다보았다.

    “진심이야?”

    “응."

    바뀌어버린 유리아는 예상치 못한 행동을 한다. 감옥에서 빠져나오기 위해 악몽 같은 기억을 되새긴 일도, 니고르 백작을 보러 가자는 일도, 모두 상상조차 하지 못했던 일이다.

    무섭지 않니? 너한테 그런 짓을 한 사람이잖아? 꼭 봐야겠어? 밖으로 나가도 괜찮은 거야? 그동안 혹시라도 그놈을 마주칠까 봐 두려워서 대문 밖으로 한 발자국도 못 내디뎠잖아. 이젠 괜찮으려나? 알아, 네가 변했다는 거. 그래도 아직은…….

    그런 말들이 목구멍까지 올라왔지만 내뱉지는 못했다. 그녀가 온몸으로 괜찮다고 말해주고 있었기 때문이다. 두 눈에 조그만 두려움이 어려있었지만 그뿐이었다. 얼굴에는 굳건한 의지가 엿보이고 전처럼 몸을 떨 지도 않았다. 그녀는 이미, 자신을 장난감 취급한 남자를 만날 모든 준비를 마친 것이다. 또다시 용기를 낸 아이의 제안을 어떻게 거절할 수 있을까?

    나는 똑같이 가방을 뒤져 주머니를 꺼내서 문가로 다가갔다.

    “……가자.”

    내 말에 유리아는 안도의 한숨을 내쉬고 미소를 머금었다.

    우리는 저택의 대문을 지키는 기사에게 입구를 열어달라고 부탁했다. 기사는 말을 듣자마자 공작에게 달려갔다. 아무대로 공작이 우리가 밖으로 나가려고 하면 말을 해달라고 언질을 한 모양이었다. 그녀는 흔쾌히 외출을 허락했고 셀프 레스 감옥에 편히 들어갈 수 있도록 직인이 찍힌 편지를 써주었다.

    그것도 모자라 마차까지 빌려주는 자비를 베풀어주었다. 그리하여 우리는 운 좋게 마차를 구할 돈도, 번화가까지 갈 시간도 들이지 않고 셀프레스 감옥까지 갈 수 있던 것이다.

    유리아는 내 맞은편 자리에 앉아 창밖을 내다보았다. 창밖에는 구름이 떠다니는 푸른 하늘이 그림처럼 펼쳐져 있었다. 잘 닦아놓은 길 주변에는 수수한 들꽃들이 피어 있어 눈을 즐겁게 만들어주었다.

    “날씨 좋다.”

    창밖의 풍경을 눈에 담은 유리아가 슬며시 미소 지었다.

    “이럴 줄 알았으면, 더 빨리 나와볼 거 그랬어. 뭐가…… 그렇게 무서워서 못 나왔을까?”

    “괜찮아. 이제부터는 많이 나와 보면 되잖아.”

    “라라, 네 말이 맞아.”

    마차는 느리지도, 빠르지도 않은 속도로 길을 달렸다. 번화가를 지나고 공작령의 대문을 넘어 수도로 향했다. 울창한 숲 속의 풍경이 순식간에 지나쳐간다. 공작령과 수도의 거리는 그리 멀지 않았다. 앞으로 한두 시간만 더 있으면 도착할 수 있을 것이다. 커튼 틈새로 새어 들어오는 햇살을 맞으며 의자에 나른하게 늘어졌다. 유리아는 풍경을 보는 것이 질리지도 않는지 여전히 창문에 시선을 고정한 상태였다.

    시간이 지날수록 그녀의 고개가 서서히 아래로 향했다. 유리아는 고개를 꾸벅이며 졸고 있었다. 깨고 다시 잠들고를 반복하다가 깊은 잠에 빠졌다. 저렇게 자면 불편할 텐데.

    나는 유리아의 옆자리로 옮겨가 그녀의 머리를 내 무릎에 눕혔다.

    유리아의 제안을 허락하기는 했지만 여러모로 걱정이 많았다.

    과연 니고르 백작이 반성을 할까? 만나면 괜히 심한 말을 하는 게 아닐까? 그의 말들이 유리아를 상처 입히지 않을까?

    그런 걸 고려하면, 그녀를 말렸어야 했던 걸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렇다고 못 가게 막아서는 건…….

    유리아의 의견을 묵살해버리는 것과 똑같은 행동이 아닐까?

    그런 고민을 하다 보니 금세 셀프레스 감옥 앞에 도착했다.절로 나오려는 한숨을 삼키고 유리아를 흔들어 깨웠다.

    “잔줄 몰랐어…….”

    유리아는 깜짝 놀라 얼른 몸을 일으켰다. 머리카락이 부스스하게 일어난 모습이 귀여웠다. 머리카락을 정리해주곤 마차에서 내리자, 10층은 훌쩍 넘어 보이는 높은 건물이 눈앞에 나타났다.

    칙칙한 회색의 벽돌로 만들어진 감옥은 어두침침한 분위기가 흘렀다. 그 앞에는 감옥을 지키고 있는 기사가 있었는데, 처음에는 우리를 막아서다가 공작이 전해준 편지를 보자 안으로 들여보내주었다.

    그때부터는 간수가 나타났다. 그는 니고르 백작이 어디에 있는지 기억이 나지 않는다, 손이 무거워지면 기억이 날 것 같다고 말하며 은근히 돈을 요구했다. 가지고 온 주머니에서 동전 몇 닢을 꺼내 손아귀에 쥐여주자 만족한 듯 발을 옮겼다.

    “1층부터 5층은 일반 죄수들, 6층부터 10층은 주로 귀족 신분의 귀족들을 가두지요. 귀한 분께서 찾으시는 놈은 9층에 수감돼 있을 겁니다.”

    귀한 분이라……. 공작의 편지를 가져와서 그런지, 간수는 우리가 귀족이라고 생각하는 것 같았다. 귀족이 갇힌 감옥답게 9층은 각각 하나의 커다란 방으로 나뉘어 있었다. 방 안에 들어가야 갇혀 있는 철창을 볼 수 있는 구조였다.

    “난폭한 녀석입니다. 조심하셔야 해요.”

    간수는 우리를 맨 끝에 있는 방에 들여보내고 밖에서 대기했다. 안으로 들어가자 빗자루처럼 뻣뻣한 금발 머리를 가진 남자가 보였다.

    제임스 니고르는 벽에 기댄 채 병든 닭처럼 골골대고 있었다. 육중했던 몸은 살이 빠져 홀쭉해지고, 눈에는 생기가 없다.

    사지에는 붕대가 감겨 있고 입고 있는 옷은 걸레나 다름없는 거적때기였다. 지금의 모습을 본다면 그 누구도 저 남자가 귀족이라는 것을 알지 못할 것이다. 미친 사람 마냥 혼잣말을 웅얼거리던 그는 문이 열리자마자 가지고 있던 그릇을 입으로 물어 철창에 던져버렸다.

    쾅!

    철창이 미친 듯이 요동치고 음식물이 허공에 튀었다.

    황급히 유리아를 보호하려고 했지만, 오히려 그녀가 나를 꽉 껴안았다.

    “개 같은 새끼들! 버러지 같은 놈들! 이딴 곳에 날 가두고 너희가 안전할 줄 알아?! 내게는 그분이 있어! 그분이, 그분이라면 날 여기서 꺼내 주실 거야!”

    고래고래 소리를 지르던 백작은 우리를 보고 입을 다물었다. 그의 눈이 성난 파도처럼 마구 흔들렸다.

    “뭐, 뭐야…… 너희가, 유리아가 왜 여기 있지……?”

    그가 벽에 기대서 자리에서 일어났다.

    “분명히, 보좌관 놈이 멀리 외국으로 도망쳤다고 했는데……? 타고 가던 배도 좌초돼서 생사도 알 수 없다고……. 그래, 그놈은 에머스 공작의 부하라고 했지. 그럼 그때 했던 말도 모두 거짓말이 었다는 건가?”

    믿을 수 없다는 얼굴로 철창을 부여잡고 유리아의 얼굴을 바라보았다. 놀란 얼굴부터 앞으로 살짝 기울어진 몸, 그의 모습부터 행동까지 모든 것이 밉고, 역겨웠다. 백작을 보자 오랫동안 눌러왔던 분노가 치밀어 올랐다. 손이 덜덜 떨려오고 금방이라도 욕이 튀어나올 것 같았다.

    유리아는 그런 나를 더 세게 안았다. 딱딱하게 굳어버린 그녀의 얼굴을 올려다본 나는 그녀 역시 분노하고 있음을 깨달았다. 유리아는 거칠게 숨을 몰아쉬더니 백작을 향해 입을 열었다.

    “……도망치지 않았어요. 저희는 계속 이 제국에 있었고, 당신을 피해 에머스 공작령에서 숨어 살았죠.”

    “무슨…….”

    껴안은 상태라서 몸의 떨림이 그대로 느껴졌다. 유리아는 그를 두려워하고 있다. 무서워할 이유 같은 건 없었다. 나쁜 것도, 피해를 준 것도 모두 저 사람이었다. 나는 살며시 그녀의 손을 잡았다. 그러자 떨림이 멈추고 가쁘게 몰아쉬던 숨이 제 속도를 되찾았다.

    “왜 당신이 거기 갇혀 있는지 궁금하지 않나요? 완벽하게 숨겼다고 생각했던 사업이 들통나고, 이루어낸 모든 것이 한순간에 무너져 내린 이유가 궁금하죠?”

    유리아는 침을 삼키고 말을 이었다.

    “저예요. 제가 에머스 공작에게 모든 것을 말했어요. 당신의 사업이 무엇인지, 어디에서 벌어지고 있고 어떻게 진행되고 있는지, 제가 전부 말했다고요.”

    니고르 백작은 더듬거리며 말했다. 그는 지금 이 상황을 이해할 수 없는지 멍한 표정을 짓고 있었다.

    “네가, 그, 그걸 어떻게 안다는 거야? 난 너한테도 내 사업에 대해 말한 적이 없었다고……!”

    “기억나지 않나요? 당신이 술에 취한 날 밤에 당신의 사업에 대한 걸 모두 말해줬잖아요. 그렇게 따지면…… 당신은 자신의 실수 때문에 무너진 게 되겠네요.”

    쾅쾅쾅 쾅쾅쾅!

    “어떻게…….”

    유리아의 말이 끝나자마자 백작이 머리로 미친 듯이 철창을 후려치는 소리가 들려왔다.

    “어떻게 네가 나한테 이럴 수 있단 말이야! 망할 것, 더러운 것! 내가 그렇게 예뻐해 줬는데! 선물도 돈도 넘칠 만큼 줬잖아! 저택의 좋은 방에서 풍족한 생활을 하게 해 줬어! 그런데 감히…… 네가 내 뒤통수를 쳐?! 지금처럼 그 순진한 얼굴로 다른 사람들을 속이고 다녔나? 에머스 공작령에서도 그렇게-!”

    “저딴 말 듣지 마, 유리아.”

    유리아의 말을 듣는 게 아니었다.

    니고르 백작을 보러 가겠다고 하는 그녀를 말렸어야 했다.

    나는 얼른 그녀의 귀를 틀어막았다. 어떻게 유리아한테 저런 말을 지껄일 수 있단 말인가? 자기가 저지른 짓을 생각하지도 않고, 그저 억울하다는 듯 소리만 지른다. 저게 정녕 사람 새끼란 말인가? 백작은 멈추지 않고 계속해서 철창을 후려치고 침을 뱉는 등의 폭력적인 행동을 하며 고래고래 소리를 질렀다. 그가 하는 말의 반은 욕지거리였고, 나머지 반은 유리아를 모욕하는 말이었다.

    “더러운 것! 너 같은 건 죽어버려야 해!”

    “시끄러워! 헛소리 하지 마!”

    그의 말을 듣자 화가 나서 미쳐버릴 것만 같았다. 할 수만 있다면 그 입을 다시는 열지 못하게 만들어버리고 싶다.

    “라라…….”

    유리아가 왜 더럽단 말인가? 더럽지 않다. 더럽지 않았다. 절대, 더럽지 않다. 우리 중에 더러운 사람을 골라 보라고 하면 그건 당연히 나였다. 나는 사람을 죽이고, 미래를 알고 있으면서 유리아를 불행에서 구해내지 못했다. 살릴 수 있는 부모님을 죽이고 유리아가 제 발로 놈의 저택에 들어가게 만들었다. 에머스 공자들에게 잡혔을 때보다, 더, 더 괴롭게 만들었다. 이렇게 유리아와 손을 맞잡을 자격도 없다.

    하지만 진정으로 더러운 건…….

    “더러운 건 너잖아……!”

    저놈이었다. 나는 그가 니고르 영지에 있던 수많은 주민들을 괴롭혔던 것을 기억하고 있다. 그것도 모자라 사람들을 노예로 만들어 판매했다. 윤리를 저버리고, 인륜을 무시했다. 사람으로서 해서는 안 될 짓을 저질렀다. 그러니 저것은 사람이 아니다. 짐승이다. 재활용도 되지 않는 더러운 쓰레기다. 쓰레기라고 하기도 뭣할 정도로 끔찍한 놈이었다.

    “네 놈이 아까 말한 ‘그분’이라는 거, 혹시 니케르먼 공작을 말하는 건가?”

    표정을 보아하니 정답인 모양이다.

    “너…… 진짜 멍청하구나? 누가 누굴 구해? 공작도 벌써 갇혔어. 너흰 끝이야. 아무도, 너 같은 인간은 안 구해줘. 여기서 계속 그딴 꼴로 갇혀있다가 사형당하겠지. 표정을 보니까 믿기지 않나 봐? 근데 어쩌지? 이게 진실이야. 에머스 공작이 직접 내게 말해줬어. 법을 어기고 폐하의 심기를 거스른 네 놈은 바로 사형이라고. 하하…… 단두대에서 네 목이 떨어질 그날이 벌써부터 기대되는데!”

    “닥쳐!”

    니고르 백작이 내게 침을 뱉었다.

    소용없는 짓이었다. 내게 닿지도 않았고, 위협도 되지 않았다. 다친 그가 할 수 있는 것은 겨우 그런 행동뿐이었다. 그때 따뜻한 온기가 내 손을 감싸 안았다. 유리아가 내 손을 붙잡은 것이다.

    “……유리아?”

    그녀의 행동에 의문을 갖는 순간, 내 손이 유리아의 귀에서 떨어져 나갔다.

    “라라, 난 괜찮아.”

    “거짓말.”

    “정말이야.”

    유리아는 부드러운 미소를 띠고 나를 내려다보고 있었다. 니고르 백작의 말에 어떤 타격도 받지 않은 것 같았다.

    “네가 그날 말해줬잖아. 내가 어떻게 생각하든, 무슨 말을 하든 상관없이 날 구할 거라고……. 내게 손을 내밀어줬어. 그 제멋대로인 말에 난 구원받았어. 네 말을 듣고 니고르 백작에게 더러워진 나라도 너와 함께 있어도 괜찮을 수 있다는 생각을 하게 된 거야. 라라는 이런 나여도 구해주는구나. 이렇게 더러운 나여도 상관없구나. 그래서 나는, 난…… 이렇게 더럽고 끔찍한 자신을 받아들일 수 있게 된 거야. 그러니까 저 사람의 말에 화가 나지도, 상처 받지않아. 아무렇지도 않아.”

    유리아의 말이 내 심장에 비수처럼 박혔다. 더럽다고? 왜, 자신을 더럽다고 말하는 거지? 계속 그런 생각을 하고 있던 건가?

    계속?

    ……계속?

    갑자기 눈물이 터져 나올 것 같았다.

    “왜……그런 소리를 하는 거야? 넌, 더럽지 않아…….”

    유리아는 답하지 않는다. 그저 나의 뺨을 감싸고 가볍게 이마를 맞붙였을 뿐이다. 그녀의 푸른 눈동자가 보석처럼 찬란하게 빛났다.

    “잠깐만…… 아주 잠깐만 나랑 저 사람, 둘이서만 있게 해 주면 안 될까?”

    “……그건…….”

    “부탁해, 라라.”

    교활하다.

    그런 간절한 얼굴이면, 나는 그녀의 말을 따를 수밖에 없게 되어버린다. 분명히 유리아는 내가 자신에게 약하다는 사실을 알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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