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Episode 39 (39/84)
  • 1663194697484.jpg

    Episode 39

    네 번째로 저택에 끌려간 여자가 처참한 상태로 돌아왔다는 소식을 들은 날이었다. 커튼을 친 창문 틈새에서 새어 나오는 주황색 빛만이 어두운 거실을 밝히고 있었다.

    라일라가 유리아의 얼굴을 바라보며 말했다.

    “더 이상 여기서 못 살아. 당장 떠나야 해.”

    목소리는 침착하기 그지없었으나 마주하는 갈색의 눈동자에는 온갖 축축하고 부정적인 감정이 가득 차 있었다. 라일라는 유리아의 아름다움을 불안해하고 있었다.

    언제 백작에게 그녀가 끌려갈지 몰라 무서워하고 있었다. 처음이었다.

    라일라가 유리아를 그런 눈으로 쳐다본 것은.

    아름다운 언니는 언제나 라일라의 자랑이었다. 크게 드러낸 적은 없었지만 유리아의 얼굴을 바라볼 때마다 흡족해하는 미소를 지어 보이곤 했으니까.

    마을 사람들이 이 영지에서 가장 아름다운 건 유리아라고 말할 땐 당연하다는 듯 코웃음 치기도 했다. 또 예쁘니까 꾸미는 재미가 있다며 유리아에게 어울릴 만한 옷을 골라주거나 머리카락을 만지작거리며 다양한 헤어스타일을 만들어주고는 일도 종종 있었다.

    그래서 유리아는 자신의 얼굴이 좋았다. 날마다 머리를 정성껏 빗어 내린 것은, 혹시나 얼굴에 뭐가 나지 않았나 조금이나마 신경 쓰고 있는 것은 자신을 볼 때마다 얼굴 만면에 짓는 동생의 흡족한 미소를, 별처럼 반짝반짝 빛나는 눈동자를 보고 싶었기 때문이다. 누군가의 자랑이 되는 것은 기쁜 일이다. 특히나 그 누군가가 사랑하는 사람일 때, 기쁨은 배가된다. 하지만 이제는 그 아름다움이 라일라에게 부정적인 감정만 이끌어내고 있다.

    그래, 그렇구나.

    ‘내가 이 아이의 불안이 되어버렸구나.’

    그게 너무나 슬프다. 유리아는 라일라를 품에 안고 속삭였다.

    “응, 떠나자.”

    자매와 마찬가지로 사람들 역시 사태의 심각성을 깨달았다.

    많은 이들은 영지에서 떠나려고 했다.

    백작의 명령으로 병사들이 영지에서 나가려는 사람들을 잡아 폭력을 휘둘렀지만, 뒷돈을 많이 찔러주면 몰래 문을 열어주었다.

    그 돈은 일반 영지민들에겐 부담스러울 정도였고 병사들이 돈만 빼앗고 끝나는 경우도 있었기 때문에 대다수의 사람들이 영지를 떠나지 못했다.

    운이 좋으면 영지에 들리는 상단의 마차에 타 빠져나갈 수도 있었지만 소수에 불과했다. 그 소수에 자매는 없었다.

    사람들은 감금당한 것처럼 영지에 갇히고 여자들이 저택으로 잡혀간다.

    라일라의 걱정은 날이 갈수록 심해졌다. 티를 내지 않으려고 하지만 밤늦게까지 잠들지 못하는 것이나 유리아를 과보호하는 태도를 보면 아무래도 눈치챌 수밖에 없다.

    유리아 역시 걱정이 됐다. 영지에 갇힌 것도, 자신이나 사랑스러운 동생이 백작에게 잡혀갈지도 모른다는 것도 걱정되었지만, 무엇보다 가장 걱정되는 것은 라일라였다. 어느 날부터인가 그녀가 밤늦게 집에 돌아오는 일이 잦아졌기 때문이다.

    시간은 벌써 열두 시가 훌쩍 넘어가고 창밖은 새까만 어둠으로 물들어 있다. 침대에 누운 유리아는 고개를 돌려 동생이 누워있어야 할 자리를 바라보았다. 손으로 비어 있는 자리를 조심스레 쓸어보다 상체를 일으켰다.

    유리아는 그대로 방을 나와 1층으로 내려갔다. 거실에 놓여 있는 소파에 앉아 현관문을 바라보았다. 문은 열릴 기색을 보이지 않는다.

    그녀는 두 사람 몫의 차를 만들어 소파 옆 자그마한 식탁 위에 내려놓고는 한참 동안 그렇게 있었다.

    컵에서 흘러나오던 몽글몽글한 김이 허공에 흩어지고 차가 차갑게 식어 갈 무렵, 문이 열렸다.

    조금 피곤해 보이는 얼굴을 하고 있는 라일라가 집 안으로 들어오다가 유리아를 발견하고 눈을 동그랗게 떴다.

    “안 잤어?”

    “응, 그냥 잠이 안 와서…….”

    “푹 자야지. 그러다 키 안 큰다?”

    유리아는 푸스스 웃었다. 자신보다 훨씬 작은 동생이 그리 말해오니 웃음이 나올 수밖에 없을 것이다. 그녀는 한참을 그렇게 미소 짓다가 이내 제가 쥐고 있는 컵을 내려다보았다. 어느새 미소는 사라져 있다.

    “농담은 그만하자. 요새 왜 이렇게 늦게 들어오는 거야? 도대체 밖에서 뭘 하는 건데? 걱정돼서 잠을 잘 수가 없었어.”

    저번에도 이 문제로 이야기를 나눈 적이 있었다.

    이야기를 나눴다기보다는 일방적으로 유리아만 말했다고 하는 편이 옳을 것이다.

    라일라라면 다 그렇게 행동하는 이유가 있을 거라고 생각하면서도 걱정이 돼서 참을 수가 없었다. 그래서 유리아는 밤늦게 들어온 라일라에게 밖에서 뭘 그렇게 하냐고 물었고 라일라는 말해주지 않았다. 늦었으니 이만 자자며 유리아의 등을 떠밀어 침실로 보냈을 뿐이다.

    이번에도 그냥 넘어가려는 생각일까?

    유리아는 고개를 들었다. 라일라는 무언가 생각하는 듯한 얼굴로 그녀를 바라보았다. 그러다가 웃으며 유리아의 머리를 쓰다듬어주었다.

    “걱정하게 해서 미안해. 하지만 정말, 별일 아니었어.”

    “별일이 아니면 말해줘.”

    “백작의 병사에게 돈을 주고 왔어. 조만간 우리를 영지에서 빠져나갈 수 있도록 도와주겠다고 하더라. 잘됐지?”

    “……뭐? 언제 그런……?”

    유리아가 깜짝 놀라 입을 벌렸다.

    “병사한테 돈을 줬다고? 우리한테 그 정도 돈이 있었어? 어디서 돈이 난 거야? 아니, 얼마나 준거야?”

    돈은 전적으로 라일라가 관리하고 있었다. 그렇기에 유리아는 돈이 어느 정도 있는지 알 수 없었다.

    라일라가 물건을 아껴 써야 한다고 말버릇처럼 외치기에 자신들이 많이 가난하다고 생각할 뿐이었다. 라일라는 돈에 대해 언급할 생각이 없어 보였다.

    ‘……또 말해주지 않는구나.’ 

    유리아는 한숨이 절로 나오는 것을 참으며 다른 것을 묻기로 했다.

    “……괜찮은 거야? 그 병사가 돈만 가지고 모른 척하면 어떡해……? 저번에 톰 아저씨도 사기를 당했다고 했잖아.”

    “괜찮아. 믿을 수 있을 사람이거든.”

    “……라라 네가 그렇게 말한다면야…….”

    “이제 이런 머리 아파지는 이야기는 그만하고 자자. 나 피곤해. 너도 졸리잖아.”

    “나는…….”

    나는 더 듣고 싶어. 더 알고 싶어. 하지만 이 이상 말해줄 거라는 생각이 들지 않았다. 유리아는 입을 다물고 동생이 이끄는 대로 발을 옮겼다. 라일라는 유리아를 침실로 인도하고 이불을 덮어준 뒤 억지로 재우려 했다.

    라일라가 이불 덮인 유리아의 몸을 토닥이며 작게 속삭였다.

    “잘 자.”

    그렇게 말하는 목소리가 어쩐지 원망스럽게 느껴진다.

    다음 날, 유리아는 평소와 같이 일을 하러 나가는 라일라를 마중했다.

    라일라는 신발을 신고 발로 바닥에 탁탁, 두어 번 정도 두드렸다. 그녀는 현관문 문고리를 돌리려다가 뒤를 돌아 유리아를 바라보았다. 그리고 평소와 같은 충고를 한다.

    “유리아, 집에서 절대 나오지 마.”

    “……응.”

    “누가 문을 두드려도 없는 척하고 알았지?”

    “응, 알았어.”

    백작의 만행이 밝혀지고 라일라는 유리아를 집에 가둬놓기 시작했다.

    혹여나 백작의 눈에 띌까, 집 안에 있는 창문에는 커튼을 쳤고 문이 단단히 잠겼다.

    잘 다니던 직장에도 못 나가게 되었고, 상쾌한 바깥공기를 맡으며 산책을 하는 것도 어렵게 되었다. 라일라는 이웃에게 유리아가 밖에 나갔다는 이야기를 전해 듣기라도 하면 무섭게 돌변하며 그녀를 몰아붙이고는 했다.

    그것이 무척이나 답답하기는 했지만 자신을 걱정하는 것을 알기에, 유리아는 순순히 따를 수밖에 없었다.

    유리아는 나가려는 라일라의 뒷모습을 바라보다가 옷자락을 잡아챘다.

    “……라라, 너도 나랑 같이 집에 있으면 안 될까? 넌 백작이 나만 노릴 거라고 생각하는 거 같지만, 너도…… 그 목표가 될지도 모르잖아. 혹시나 그 사람이 널 저택으로 데려가버리면 어떡해? 너무 무서워.”

    라일라는 유리아의 손을 감싸 쥐고는 떼어냈다.

    “괜찮아. 걱정할 필요 없어. 혹시나 마주치기라도 하면 도망가버리면 되지. 나 잽싼 거 알잖아. 게다가 너도 쉬고 있는데 내가 없으면 누가 돈을 벌어?”

    "……하지만…….”

    “나는 괜찮아.”

    “……응.”

    유리아는 떨어진 손을 만지작거리며 웅얼거렸다.

    “……그러면 혹시 내가 뭔가 도울 일이 없을까? 우리 곧 이 영지를 나가는 거 맞지? 영지를 빠져나가기 위해서는 준비가 필요하잖아. 미리 짐 같은 거라도 챙겨놓을까? 아니면…….”

    “유리아.”

    라일라가 부드럽 게 미소지었다.

    “너는 아무것도 할 필요 없어. 내가 알아서 다 할 테니까.”

    오래된 문이 작은 소음을 일으키며 현관문이 열었다. 라일라는 문을 빠져나갔고, 문은 다시 서서히 닫히기 시작한다. 열린 틈새 사이로 새어 들어오는 빛이 점점 사라지고 그림자가 유리아를 삼켰다.

    “……. 알아……. 내 도움이 필요 없다는 거…….”

    유리아는 알고 있다. 라일라라면 혼자서 뭐든 해낼 수 있다는 것을. 유리아가 집 안에 박혀 있는 사이, 영지를 탈출할 방법을 찾지 않았는가?

    ‘나는 라라에게 걱정을 끼치는 존재나 챙겨줘야 하는 짐에 불과하겠지.’

    그 사실을 알면서도 쓸쓸하게 느껴지는 건 왜일까. 조금이라도 자신을 의지 해줬으면 좋겠다고, 도움을 청했으면 좋겠다고 생각하는 건 왜일까.

    이렇게 믿음직하고 자신을 위해 행동해주는 동생한테 답답하다는 감정을 느끼는 것은 옳은 일이 아닌데, 어째서 답답하다는 생각을 해버리는 걸까?

    "……하아……."

    한참 동안 문을 바라보던 유리아는 한숨을 내쉬고는 방으로 올라갔다. 도움이 필요하지 않다고 했지만 혹시 모른다는 생각에 유리아는 가방을 가지고 와 옷장에 있는 옷을 차곡차곡 집어넣었다.

    그때 누군가가 거칠게 문을 두드리는 소리가 들려왔다. 유리아는 깜짝 놀라 옷을 접어 개던 손을 멈췄다.

    “……누구지?”

    그녀는 접은 옷을 침대 위에 내려놓고는 1층으로 내려갔다. 요란한 노크소리와 함께 문이 미친 듯이 떨렸다.

    문을 열어 반갑게 맞이해주기는 어려운 태도였다.

    ‘도대체 누구야? 누가 저렇게 문을 거칠게 두드리는 거지? 설마…….’ 

    불안한 느낌이 들었다. 유리아는 커튼을 슬쩍 걷어 바깥의 풍경을 살펴보았다. 그곳에는 보좌관에 이어 병사 두세 명을 대동하고 있는 니고르 백작이 있었다.

    “여기가 유리아 핸슨의 집 맞지?”

    “네, 그렇습니다.”

    “얼른 얼굴을 보고 싶군.”

    그동안 백작은 한 번도 유리아를 찾지 않았다. 그렇기에 계속 찾지 않을 수도 있다고 멋대로 생각하고 안심하고 있었다.

    아니, 적어도 라일라와 함께 영지를 떠나기 전까지는 찾아오지 않으리라고 생각했다.

    오늘 유리아는 자신의 생각이 틀렸다는 것을 깨달았다. 몸이 공포로 떨려온다.

    ‘숨어, 숨어야 해……. 어디에 숨지?’ 

    유리아는 재빨리 커튼을 내리곤 허둥지둥 숨을 곳을 찾았다.

    “당장 문 열어라.”

    “백작님, 지금은 집에 아무도 없는 것 같습니다.”

    “그래도 상관없어. 열어. 집 안에서 기다리고 있으면 되돌아오겠지.”

    쾅.

    그녀가 거실을 지나 2층으로 가는 계단으로 향하려고 할 때, 커다란 소리를 내며 문이 부서졌다. 고개를 돌린 유리아는 병사의 발에 걷어차여 강제로 열린 문을 볼 수 있었다.

    “아…….”

    ‘도망쳐야 하는데…… 왜 몸이 움직이지 않지?’

    그녀는 그대로 굳어서 니고르 백작이 병사를 밀쳐버리고 집 안으로 들어설 때까지 움직일 수 없었다.

    “뭐야? 있었잖아? 예의 없는 계집이로군. 문을 두드리는데 열지도 않고.”

    백작은 코앞까지 다가와 유리아의 얼굴을 잡아챘다. 그는 물건을 품평하듯 그녀의 얼굴을 샅샅이 훑었다. 두툼한 손가락이 턱을 쓸어내리자 유리아는 온몸에 소름이 돋는 것을 느꼈다. 피부에 와닿는 축축한 느낌과 미지근한 온도가 기분 나쁘게 느껴진다.

    그런 기분이 드는 것이 손에서 배어 나오는 땀 때문인지, 혹은 별 것 아닌 행위에서 느껴지는 기분 나쁜 감정 때문인지 알 수 없다.

    히죽, 백작이 입꼬리를 비틀어 올렸다.

    “그래, 꽤 반반하구나. 소문이 사실이었어.”

    "……."

    “유리아 핸슨이라는 계집이, 이 영지에서 가장 아름답다는 소문이 말이야."

    유리아는 아름다웠다. 니고르 영지에서 가장 아름다운 여자를 하나만 꼽으라고 하면 누구나 그녀를 택할 것이다. 매끄러운 도자기처럼 흠집 한 점 없는 피부는 태양을 맞아본 적 없는 듯 하얬다. 옅은 갈색 머리는 비단처럼 나풀거렸고 파란 눈은 하늘을 담아놓은 듯이 청명하게 빛났다. 따라서 니고르 백작이 그녀를 노리지 않을 리가 없다. 지금까지 그가 유리아를 만나러 오지 않은 것이 이상할 정도였다.

    그렇다면 그는 어째서 유리아를 보러 오지 않은 걸까? 여자를 좋아한다면, 아름다운 걸 좋아한다면, 가장 먼저 보러 와야 하는 것이 아닌가? 그녀는 백작의 새파란 눈동자와 마주한 순간 그 이유를 깨닫고 말았다.

    그건 아마, 가장 맛있는 부분을 가장 나중에 먹는 것과 같다. 케이크를 먹을 때 그 위에 올라간 하나뿐인 딸기를 먹기 위해 긴 시간을 기다리는 것과 같은 그런 일이다.

    백작이 명령조로 말했다.

    “오늘 밤 내 저택에 오도록.”

    그의 뒤에 서 있던 백작의 보좌관이 눈앞의 풍경을 애써 외면하듯 고개를 옆으로 돌렸다.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