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Episode 37 (37/8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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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Episode 37

    장례식 날에는 비가 아주 많이 왔다. 땅이 질척질척해졌고 한 걸음 나아갈 때마다 진흙이 신발에 들러붙었다.

    유리아는 부모의 관이 공동묘지로 갈 때까지 기도를 했다. 기도를 하고, 기도를 하고, 기도를 하고, 또 기도를 하고, 계속해서 기도를 했다. 그리 고기도를 하고, 기도를 했고, 기도를 했으며, 기도를 했었다. 하지만 그 수많은 기도들 중 아무것도 이루어진 것은 없다.

    “이제 묻겠습니다. 다들 마지막으로 할 말은 없으십니까?”

    관을 묻는 인부들이 이별 인사를 하라는 말을 듣고 나서야 소녀는 다시는 과거로 돌아갈 수 없다는 것을 깨닫게 된다. 집으로 돌아가도 부모의 방은 텅 비어 있을 것이고, 등교 전에 뺨에 키스를 해줄 사람은 없어졌고, 식사시간에는 두 명분의 음식만 나올 것이며, 돌아오는 길에 그녀를 위해 선물을 사 올 사람은 없다는 그 비참하고도 끔찍한 현실을 받아들일 수밖에 없게 된 것이다.

    “엄마……. 아빠……!”

    유리아는 부모의 관 위에 엎어져서 울었다. 쓰고 있던 검은 우산은 바닥에 내팽개쳤다. 가늘게 내리는 비는 모든 것을 축축이 적셔 무엇이 눈물이고, 무엇이 비인지 알 수 없게 만들었다. 모두가 울었다. 하늘도, 건물도, 돌도, 사람들도……. 하지만 라일라는 울지 않았다.

    “……다 젖잖아. 감기 걸릴라.”

    검은 우산을 쓴 그녀의 얼굴은 물기 하나 없이 건조했다.

    “왜, 왜 너는 울지를 않아? 엄마랑 아빠가 죽었는데……. 슬프지도 않은 거야?”

    “슬퍼.”

    라일라는 유리아 쪽으로 우산을 기울이곤 담담히 말했다.

    “슬프지만 울고 있을 수가 없어. 그리고 난, 울 자격도 없으니까…….”

    “그게 무슨 말이야……?”

    가끔 유리아는 라일라의 말을 이해하지 못했다. 먼 곳을 바라보는 것 같은 시선이 정확히 어디를 바라보고 있는지도 알 수 없다. 유리아에게 라일라는 가장 사랑하고 가까운 사람이면서 동시에 가장 알 수 없는 사람이었다.

    “……미안해, 유리아.”

    그냥 유리아는 울지 않는…… 그저 무덤덤하게 의미 모를 사과를 건네는 라일라의 모습이 이상하게 슬프게 느껴져서, 그녀의 몫만큼 더 울었다. 라일라는 자리에 주저앉아 유리아를 안아주었다.

    그 후 두 사람은 서로의 손을 꼭 잡은 상태로 관이 땅에 묻히고, 그 위에 흙이 덮여가는 과정을 가만히 바라보았다. 유리아는 훌쩍이며 눈물을 닦았다. 눈을 퉁퉁 붓고, 코와 뺨은 새빨개져서 꼴이 말이 아니었다. 에밀리는 조금 떨어진 곳에서 그 모습을 지켜보다가 자매를 성당으로 인도했다.

    당연한 일이지만 장례식에는 엄마, 레이샤의 오랜 친구인 에밀리도 참석했다. 그녀는 공작가의 하녀였고 항상 바빴다. 그러나 가끔 휴가를 내서 니고르 백작의 영지로 내려오곤 했다.

    오로지 레이샤를 보기 위해서. 레이샤와 에밀리는 만나면 최근의 근황, 육아, 떨어져 있을 때 교환한 편지에 관한 이야기를 했다. 그 뒤에는 자매와 함께 놀아주었다. 오늘도 그녀는 레이샤를 추모하고 자매들을 돌보기 위해 일주일의 휴가를 내고 내려왔다. 그뿐만이 아니라 장례식 비용도 전부 내주었다.

    이렇듯 에밀리는 좋은 사람이었다.

    좋은 사람이라고 생각하면서도 유리아는 그녀가 꺼림칙했다. 아버지는 일 때문에 새벽까지 돌아오지 않고 어머니는 친구와 이야기하다 지쳐 거실의 소파에서 잠이 들었던 밤의 기억 때문이었다. 그날, 유리아는 에밀리가 자고 있는 레이샤에게 몰래 입 맞추던 모습을 보고 말았다. 어쩌면 잘못 본 걸 지도 모르지만.

    - ……유리아……. 너 봤니……?

    하지만 눈을 마주쳤을 때의 어색함을, 그 묘한 공기를 유리아는 아직까지도 기억하고 있었다.

    유리아는 라일라의 손을 세게 잡곤 조금은 어색하게 제 옆에 앉아 있는 에밀리를 올려다보았다. 그녀의 눈은 붉게 물들어 있었다. 쥐고 있는 손수건은 축축하게 젖어 손아귀에서 흐물거렸다.

    장례식이 끝나고 사람들은 떠났다.

    세 사람만이 남은 성당은 창문을 때리는 빗소리가 잘 들릴 정도로 고요했다. 비는 시간이 지날수록 더욱 거세졌다. 그래서 다닥, 다닥, 다닥하는 소리가 계속해서 들려왔다. 성당 안을 삼킨 검은 그림자는 스테인드글라스를 통해 들어오는 옅은 빛을 맞고 몸을 웅크렸다. 에밀리는 멍하니 성당에 세워진 천사의 상을 바라보고 있었고, 유리아는 에밀리를, 라일라는 유리아를 바라보았다.

    정적이 흘렸다. 에밀리는 그 정적 속에서 살짝 눈을 감았다가 떴다.

    “라일라, 유리아……. 나와 같이 살지 않을래?”

    에밀리의 눈에 눈물이 고였다.

    “내가 온전히 너희들의 엄마가 되어줄 수는 없지만…… 떠나가버린 레이샤와 마틴의 몫만큼 너희들을 아껴주고 사랑해주고 싶구나.”

    눈물이 턱선을 타고 흘러 내렸다.

    “같이 공작령으로 올라가자. 그리고 나랑 가족이 되자.”

    “……아.”

    에밀리의 커다란 손이 유리아의 작은 손을 덮었다. 마주친 눈은 축축하게 젖어 있었다. 슬픔, 허무함, 분노……. 그리고 차마 눈치채고 싶지 않았던 엄마에 대한 사랑까지 합쳐진 눈. 순간 유리아는 혐오스러움을 느꼈다.

    이 사람이 너무나도…….

    “싫어요.”

    싫다.

    그때 라일라가 에밀리가 잡고 있던 유리아의 손을 홱 빼냈다. 마치 제 언니의 마음을 읽은 것처럼 말이다. 에밀리는 깜짝 놀라 눈을 커다랗게 떴다. 그녀는 천천히 손을 회수하고는 손수건으로 눈물을 닦았다. 그리고 민망한 듯 웃었다.

    “……미안하구나. 가족이 되자는 건 너무 간 거지……? 내가 하고 싶은 말은, 내가 너희들의 보호자가 되고 싶다는 얘기야. 공작령에 가서…….”

    “말씀은 감사하지만 공작령으로 가고 싶지는 않아요. 저흰 니고르 백작령에서 사는 게 더 좋아요.”

    “그럼 둘이서만 지내겠다는 거야?”

    “네. 그럴 생각이에요.”

    “그건……. 무모하구나. 어린아이들끼리만 지내는 건 너무 힘들지 않겠니? 게다가 너희는 친척도 없잖아. 돌봐줄 사람이 없으면 고아원으로 가야 할 거야.”

    그 말이 옳았다. 자매의 아버지인 마틴은 고아였고, 어머니인 레이샤는 외동딸에 부모를 일찍 여의었다.

    “괜찮아요. 저희 둘이 지낼 수 있는 방법을 이미 생각해놨으니까요.”

    “라일라, 네가 제 아무리 어른스럽다 하더라도 너는 겨우 열다섯 살 먹은 어린아이…… 아니, 아니…… 내가 너무 일렀나 보구나. 시간도 늦었고 하니 우선 집으로 돌아가자.”

    에밀리는 손수건을 꽉 쥐고는 자리에서 일어났다. 몇 발자국 앞으로 걸어간 그녀는 자리에 멈춰 서서 자매를 기다렸다. 그녀에게 다가가던 유리아는 뒤를 돌아, 자리에서 일어난 채 움직이지 않는 라일라를 쳐다보았다.

    ‘왜 거절한 거지? 에밀리 아주머니 말씀대로 우리는 돌봐줄 친척도 없고, 할아버지랑 할머니도 없어. 평소의 라일라였다면 분명히 받아들였을 것 같은데. 무슨 생각인 걸까……?’

    어린아이들끼리 지내는 것보단 보호자가 있는 편이 훨씬 좋다는 것을 어린 유리아도 알고 있었다. 라일라의 얼굴은 그림자에 삼켜졌기 때문에 표정이 보이지 않았다. 표정을 볼 수 있다 해도 그 속내를 파악할 수 있을까? 모르겠다. 알 수 없다. 이해할 수 없다.

    ‘……하지만 라일라니까. 에밀리 아주머니의 제안을 거절한 이유가 있을 거야.’

    그 뒤로 에밀리는 휴가가 끝날 때까지 자매를 정성스레 돌봐주었다. 마지막 날, 다시 한번 에밀리가 함께 살자는 제안을 했을 때에도 라일라는 단호히 거절했다. 그때 라일라는 유리아의 의견을 묻지 않았다. 너도 공작령으로 올라가고 싶은지, 에밀리 아주머니와 지내는 걸 어떻게 생각하는지 한 번도 묻지 않았다. 단지 딱 한마디, 제 말대로 해달라는 강요 같은 부탁을 건넸을 뿐이다. 하지만 그것이 무슨 문제일까? 라일라의 의견이 곧 유리아의 의견이었고 유리아는 언제나 제 동생의 생각이 옳다고, 저 거절에도 어떠한 이유가 있을 게 분명하다고 생각했으니 딱히 문제 될 것은 없었다.

    “그래도 역시 걱정이구나. 어린아이 둘만 지낸다니……. 힘들면 언제라도 내게 편지를 써주렴. 그럼 언제라도 데리러 올 테니까.”

    에밀리는 그렇게 떠났다.

    그녀의 걱정이 무색하게도 두 사람은 정말 잘 지냈다. 라일라는 집안일을 아주 잘했고, 시장에서 상인들과 가격 흥정을 할 수 있을 정도로 노련했으며, 때때로 부모를 생각하며 울음을 터뜨리는 유리아를 달래줄 수 있을 정도로 어른스러웠기 때문이다. 그래, 얼마나 어른스럽던지……. 유리아는 우는 모습을 한 번도 본 적이 없었다. 마치 어른들이 어린아이 앞에서 눈물을 흘리지 않는 것처럼 말이다.

    또 어린 나이에 부모를 잃은 자매를 불쌍하게 여긴 이웃들이 친절을 베풀어주었고, 부모가 남기고 간 많지도 적지도 않은 유산이 있었다. 때때로 에밀리가 돈과 옷, 음식을 보내주곤 했으니 사는 데 큰 지장은 없었다. 물론 이웃들의 친절은 한시적이고 유산은 시간이 지날수록 점점 떨어져 갔지만 말이다. 그래도 변하지 않는 것이 하나 있다면, 그것은 에밀리의 마음과 정성이었다.

    그녀는 몇 번이나 거절당했음에도 불구하고 계속해서 공작령으로 오지 않겠냐는 편지를 보내왔다. 끝없는 거절에 더 이상 그러한 제안을 하지는 않게 된 뒤에도 가끔씩 안부 편지와 선물을 보내왔다. 또 아주, 아주 가끔은 휴가를 내서 니고르 영지로 내려오기도 했다. 점점 유리아의 마음속에 있던 꺼림칙함이 사라져 갔다. 그 빈자리에는 고마운 마음이 자라났다. 어쩌면 그날의 입맞춤은 정말 잘못 본 걸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 정도로 커다랗게.

    나이가 차자 자매는 제대로 된 일자리를 구해 돈을 벌었다. 그리하여 유리아는 의상 가게의 점원으로 일했고 라일라는 낮에는 학교에서 선생님의 보조로 아이들을 돌보고, 저녁에는 서점에 가서 일을 했다. 그런 하루들이 하나하나 더해지고 일상이 되었다.

    어느새 두 명분의 식사를 차리는 것이 당연해지고, 부모의 묘지에 가서 꽃을 바치는 일이 자연스러워지고, 시끌벅적함보단 고요함이 집의 분위기로 자리 잡고, 에밀리의 편지에 답변을 해주는 일이 즐거워진다.

    그러던 어느 날 영지의 주인, 니고르 백작이 갑작스러운 심장마비로 죽어 버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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