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Episode 32 (32/8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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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pisode 32

유리아는 소리가 들리자마자 제 동생이 어떤 짓을 저지르고 있는지를 알아챘다. 

어떻게, 어떻게 그 소리를 모를 수 있을까? 갇힌 방에게서 나가게 해 달라며 몸부림쳐본 적 있던 그녀가 어떻게 그 소리를 모를 수가 있겠냔 말이다. 

이 끔찍한 현실을 믿고 싶지 않았기 때문에 그녀는 몇 년 만에 처음으로 신에게 기도했다. 

신이시여, 제발 제가 들은 것이 거짓이라고 해주세요. 라일라가 자기 자신을 해친 게 아니라고 해주세요. 제발…….

“상태가 꽤 심각합니다. 보시다시피 이마가…….”

“이런, 갑자기 왜 벽에 머리를 박고 그러는 건지. 미친 건가? 아니면 동정심이라도 사보려고 저러는 거야?”

“……글쎄요. 일단 의사를 부르는 게 어떻습니까?”

“그러도록 하지. 잘 대해 달라는 공작님의 말씀도 있었으니까.”

하지만 그 기도를 비웃듯 이런 대화가 들려왔다. 

"……하하…… 역시……."

유리아는 고개를 떨구곤 눈물을 흘렸다. 

언제나 신은 유리아의 소원을 들어주지 않는다. 

부모님은 독실한 신자였고 그런 집안에서 태어난 유리아 역시 신을 믿었다. 하지만 언제부터였을까? 식전에 기도를 하지 않게 된 것은. 

성당에 발을 들이지 않게 되고 심심할 때마다 성가를 흥얼거리지 않게 된 것은? 

더 이상 신의 존재를 믿게 되지 않게 된 것은 도대체 언제부터였을까? 그녀는 아무 의미도 없이 멍청하게 또 기도를 했다는 것에 자조적인 웃음을 지었다. 

‘……왜? 왜 라라가 그런 짓을 한 거지? 도대체 왜…….’ 

저런 행동을 한 이유 정도는 대강 예상할 수 있다. 사람이 저런 모습을 보여주는 이유는 대개 비슷하지 않던가? 우울할 때, 괴로울 때, 부정적인 마음으로 가득 찼을 때 그런 행위를 저지른다. 

누명을 쓴 것부터 공작에게 들은 갑작스러운 소식까지 모든 것이 라일라에게는 커다란 스트레스로 다가왔을 것이다. 

라일라가 옆에 있어 강한 척을 했을 뿐이지 유리아도 지금의 상황을 버티기가 너무나 힘들었다. 

그녀의 의문은 라일라가 ‘왜 저런 행동을 했는가?’가 아니라 ‘왜 그렇게도 강했던 소녀가 저런 행동을 할 정도로 무너져버렸냐’는 것이었다. 

유리아에게 라일라는 동경하는 우상의 존재였다. 

비록 그녀보다 나이는 어렸지만 누구보다도 자애롭고 어른스러웠으며 강인함까지 가지고 있었다. 유리아는 그녀를 언니처럼, 엄마처럼 생각하며 의지했었다. 

지금은 다들 코웃음 칠 이야기겠지만 처음 보는 사람이 두 사람을 보고 있으면 라일라를 언니로, 유리아를 동생으로 생각할 정도였다. 

기억을 잃은 후엔 본래의 성숙함을 잃기는 했으나 여전히 강했다. 가끔 저도 모르게 기대고 싶을 정도로. 

그렇기에 라일라의 추락은 유리아에게 큰 충격으로 다가왔다. 한편으로 이는 유리아에게 묘한 희열감을 안겨주었다. 

세상에, ‘그’ 라일라도 약해지는 때가 오는구나. 

저런 행동을 할 정도로 망가지다니…….

이제야 온전히 나한테 기댈 수 있겠네? 

드디어 완벽하게 나를 의지할 수 있겠구나. 

드디어 누군가에게 기대기만 하는 어린아이가 아니라는 걸 증명할 수 있겠구나. 드디어! 

그렇게도 강하고 아름답던 소녀가 엉망으로 무너져 내리고, 지금 이 순간 의지할 수 있는 사람이 자신밖에 없다니? 나의 우상이자 빛이자 태양의 손을 내가 잡아 일으켜줄 수 있다니! 이 얼마나 매력적인 일인가? 이 얼마나…….

"욱……!”

역겨운 일인가? 

동생의 불행에서 행복감을 느끼고 있었다. 참을 수 없을 정도로 끔찍한 감정! 치밀어 오르는 토기에 유리아는 제 입을 틀어막았다. 

전에도 비슷한 일을 겪은 적이 있었다. 라일라의 기억상실을 알아차렸을 때였다. 

“언니”, “언니”하고 어린아이 같이 저를 따르는 라일라를 품에 안은 유리아는 더없는 행복을 느꼈었다. 후에 자신에게 혐오감을 느끼긴 했으나 자신의 솔직한 감정은 그러했다. 

속을 가다듬은 유리아는 천천히 고개를 들었다. 눈에 맺혀 있던 눈물 한 방울이 얼굴선을 타고 흘러내렸다. 

그것이 감옥의 바닥에 떨어져 사방으로 흩어짐과 동시에 그녀의 입에서 힘없는 목소리가 흘러나왔다. 

“……이럴 때가 아니야.”

멍한 눈을 한 유리아가 허공을 바라보았다. 

“상태를, 확인을, 확인, 확인해봐야 해…….”

유리아는 무릎을 바닥에 붙인 채로 질질 기며 철창 쪽으로 다가갔다. 부스럭, 부스럭, 치마가 돌바닥에 끌리는 소리가 기사들의 대화 소리와 뒤섞인다. 

철창을 잡아챈 하얀 손이 덜덜 떨렸다. 유리아는 얼굴을 철장에 바싹 붙이고는 제 앞에서 이야기를 나누고 있는 기사들에게 물었다. 

“라일라는, 제 동생은 지금 어떻죠? 괜찮은 건가요? 많이 다쳤나요?”

두 쌍의 시선이 소녀에게 향했다. 

“좀 심하게 다치긴 했지만 뭐, 걱정 말아라. 곧 의사를 불러올 테니.”

“이거, 이거 좀 열어주시면 안 될까요?”

“……허?”

“잠시만 어떤지 볼게요. 진짜 잠시만이에요! 몇 분 걸리지도 않을 거예요. 확인만 하고 바로 돌아갈게요. 네?”

“그건 곤란합니다.”

유리아가 입술을 깨물었다. 얼마나 심하게 다친 걸까? 

라일라의 찢어진 이마에서 피가 흘러내리는 상상을 하기만 해도 목 안쪽이 뜨거워졌다. 지금 이 순간 저를 가로막는 쇳덩이가 끔찍하게 원망스러웠다. 

아까부터 옆에서 아무런 목소리도 들려오지 않는 것이 유리아를 불안하게 만들었다. 동생의 상태를 보기 전까지 절대 물러날 수 없을 정도로. 

“열어달라고요…….”

그 웅얼거림을 들은 기사가 다시 한번 단호하게 거절했다. 그러자 유리아는 자신을 가두고 있는 철창을 미친 듯이 흔들기 시작했다. 

철컹! 철컹! 철컹! 철컹! 철컹! 철컹! 철컹! 철컹! 철컹! 철컹! 철컹! 철컹! 철컹! 철컹! 철컹! 철컹! 철컹! 철컹! 철컹! 

“열어달란 말이야!”

지금의 유리아에게 질린 것 같은 기사들의 표정은 눈에 들어오지 않았다. 

억지라는 것을 알아도 문을 열어줄 때까지 그녀는 절대 이 행위를 멈추지 않을 것이다. 일어서 철창으로 몸을 던지려는 그때 날카로운 목소리가 들려왔다. 

“……그만해.”

날이 잔뜩 서려 있는 동생의 목소리였다. 그러나 금방이라도 죽어버릴 것 같은 사람처럼 기운이 없었다. 유리아는 철창에서 손을 떼고 그 목소리에 귀를 기울였다. 

“라라…….”

괜찮니? 말은 할 수 있는 거야? 얼마나 다쳤어? 많이 아파? 목구멍 끝까지 차오른 말들은 뒤이어진 말에 도로 삼켜진다. 

“……나는 괜찮아. 그러니까 제발, 좀, 얌전히 있어. 시끄러워서 머리가 울리잖아…….”

“……어떻게 가만히 있을 수 있겠어……! 네가 다쳤다잖아. 심장이 찢어지는 것 같이 괴롭단 말이야. 아니, 아니야……. 내가 미안해……. 조용히 할게…… 아프지 마…….”

기사 중 한 사람이 의사를 부르기 위해 지하를 나섰다. 

유리아는 터져 나오려는 눈물을 참기 위해 손바닥으로 두 눈을 꾸욱 눌렀다. 

“라라, 왜, 그런 거야? 어째서 벽에 머리를…….”

“모르겠어…….”

“모르겠다니……. 제발, 제발, 제발 다시는 그러지 마…….”

"……응……."

이윽고 기사가 의사와 함께 돌아왔다. 의사는 감옥 안으로 들어가서 라일라의 상태를 살펴보았다. 그는 혀를 차며 상처를 치료했다. 

유리아는 벽에 기대어 웅크려 앉아 그 모든 과정을 소리로 들었다. 

피를 닦고, 상처에 약을 바르고, 붕대로 머리를 감는 소리를 들으며 유리아는 살며시 눈을 감았다. 

바닥을 짚고 있던 손이 단단히 쥐어졌다. 

‘뭘 도련님이 구해줘? 뭘 안심하고 있던 거지! 라라의 상태가 저렇게 안 좋은데, 이렇게 가만히 기다리고 있을 수는 없어. 내가, 내가 도와줘야 해. 나만이 라라를 도와줄 수 있어.’

오직 나만이……. 

유리아의 얼굴이 무어라 말할 수 없는 감정으로 젖었다. 미소의 형태를 띠고 있으나 이를 미소라고 할 사람 어디에도 없으리라. 거의 동시에 그녀가 주먹으로 제 머리를 퍽, 하고 내려쳤다. 

“……기억해내.”

저택에서의 일을 생각해. 니고르 백작의 얼굴이 떠올려. 무언가 쓸모 있는 내용을, 노예와 관련된 내용을. 

퍽! 다시 한번 주먹이 머리를 후려쳤다. 

기억해. 

기억해. 

기억해. 

기억해. 기억해. 기억해. 기억해. 7]억해. 기억해. 기억해. 기억해. 기억해. 

기억해. 기억해. 기억해. 기억해. 기억해. 기억해. 기억해. 기억해. 기억해. 

기억해. 기억해. 기억해. 기억해. 기억해. 기억해. 기억해. 기억해. 기억해. 

기억해. 기억해. 기억해. 기억해. 기억해. 기억해. 기억해. 기억해. 기억해. 

기억해. 기억해. 기억해. 기억해. 기억해. 기억해. 떠올려. 떠올려. 떠올려. 

떠올려. 떠올려. 떠올려. 떠올려. 떠올려. 떠올려. 떠올려. 떠올려. 떠올려. 

떠올려. 떠올려. 떠올려. 떠올려. 떠올려. 떠올려. 떠올려. 떠올려. 떠올려. 

떠올려.떠올려. 떠올려. 떠올려. 떠올려. 떠올려. 떠올려. 떠올려. 떠올려. 

떠올려. 떠올려. 떠올려. 떠올려. 떠올려. 떠올려. 떠올려. 떠올려. 떠올려. 

아무리 끔찍한 기억이라도 상관없어. 무서워하지 마. 이겨내. 겁쟁이처럼 굴지 마. 울지 마. 짜증 나게 굴지 마. 어린애처럼 굴지 마. 너는 이제 어른이잖아? 나는 라라를 구할 거야. 내가 구할 거야. 그 아이가 그날 저택에서 내 손을 잡아줬던 것처럼 구해줄 거야. 나는. 나는! 

퍽! 

“아.”

유리아가 울면서 웃었다. 

생각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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