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Episode 24 (24/84)

16631946398443.jpg

Episode 24

"……울지마……."

나는 항상 언니의 우는 얼굴에 약했다. 어린 시절부터 줄곧 그래 왔다. 다들 그렇지 않은가. 자기보다 훨씬 어린아이가 눈물을 터뜨리면 어쩔 줄 몰라하면서 그 울음을 가라앉히기 위해 장난감을 갖다 바치든, 내 몫의 간식을 손에 쥐여주든 하잖아. 

하지만 정말 그 얼굴에 당해내지 못하게 됐을 때는 비가 내렸던 그날 이후부터였다. 

그날 유리아는 얼굴에 흘러내리는 그것이 비인지 눈물인지 알 수 없을 정도로 오래, 많이, 서럽게 울었다. 바닥에 굴러다니는 검은색 우산을, 비에 젖은 머리카락을, 싸늘하게 식어 버린 몸뚱이가 들어 있던 관을 부여잡고 “엄마”, “아빠”하고 외치던 목소리를 아직까지도 잊지 못한다. 보라, 부분적으로 빠진 기억들 속에서 이 기억만이 선명하게 형태를 드러내지 않는가. 

그날 나는, 나보다 몇 배는 어린 이 여리고 약한 아이를 지켜줘야겠다고 생각했다. 

네가 우는 얼굴을 보면 그날이 떠오르고 뒤이어 저택에서 벌어졌던 일들이 지긋지긋하게도 따라온다. 

“……알았어. 말해줄게.”

그러니까 제발 내 앞에서 울지 마. 

그러면 나는…….

“그러니까 제발 그만 울어. 내가 잘못했으니까.”

나는 그 눈물을 멈추기 위해서라도 사과를 할 수밖에 없으니까. 

“……제멋대로 행동해서 미안해. 하지만 정말로…… 정말로 다 언니를 생각해서 한 행동이었어.”

절대 하고 싶지 않던 말을 하고 허둥지둥 바보 같은 행동을 하면서 광대처럼. 

언니가 무언가 말하고 싶은 듯 입을 벌렸다가 다시 닫았다. 그녀는 손으로 눈물을 닦아내며 대꾸했다. 

“정말 말해주겠다고? 거짓말이 아니라?”

“그래, 정말로…….”

이제 정말로 말하는 수밖에 없겠지. 

그것 말고는 방법이 없었다. 대답을 피하려고 하면 화를 낼 테고, 같잖은 이유를 갖다 붙여봤자 믿어주지도 않을 테니까. 내가 행동에 대한 이유를 말하지 않는 이상 무조건 싸움이 일어날 것이다. 한시가 바쁜 이때에 싸울 여유 같은 건 없다. 

그러니까 라일라, 이제는 말해주자. 

말하는 수밖에 없다는 걸 알잖아. 그리고 언니가 제발 말해달라고 이렇게 부탁하는데……. 

아, 정말 괜찮은 걸까? 이게 최선인가? 

나는 언니의 손을 잡고 침대로 잡아끄는 내내 이를 확신할 수 없었다. 그곳에 그녀를 앉힌 후에 그 옆에 앉아 말해줘야 할 이야기를 머릿속으로 정리했다. 정리하는 내내 끊임없는 상념들이 나를 덮쳐오는 통에, 입을 열기까지는 한참이 걸렸다. 깊게 숨을 들이마시고 내쉬었다. 그리고 언니의 푸른색 눈동자를 바라보았다. 그곳에 비치는 내 얼굴은 잔뜩 일그러져 있었다. 누가 보면 칼에 찔린 사람처럼 보일 정도로 괴로워 보였다. 

“……언니, 나 말이야. 공작님의 생일파티 때 알렉산더를 만났어.”

“……알렉산더라고?”

언니의 표정이 삽시간에 어두워졌다. 

“……그 사람이 너한테 무슨 짓이라도 한 건 아니지……?”

일전의 다툼으로 그녀가 알렉산더를 전혀 믿지 않는다는 걸 알게 되었다. 하긴 그럴 수밖에 없을 것이다. 언니의 입장에서는 백작에게 꼬리를 흔들어대던 충견 같은 놈이 갑자기 태도를 바꿔 자신을 탈출시켜주고 외국으로 떠나라며 돈까지 쥐여준 걸 테니까. 전혀 신뢰할 수 없겠지. 

“아무 짓도 하지 않았어. 너무 걱정하지 마. 그래도 알렉산더는 믿을 만한 사람이니까……. 우리를 도와주기도 했잖아.”

하지만 나는 언니와 달랐다. 탈출전 그에게 들은 이야기가 있었기에 알렉산더를 조금이나마 믿을 수 있었다. 

그 이야기가 자세히 기억나지는 않아 언니에게 말해주기는 어렵지만. 

“그 사람이 말해줬어. 무슨 일 때문인지는 모르겠지만 공작이 니고르 백작과 친해지고 싶어 한다고 했어. 앞으로 이 저택에 많이 초대할 생각이래.”

니고르 백작의 이름이 나온 것만으로도 언니의 몸이 덜덜 떨리고 있었다. 고개를 푹 숙이고 이불을 꽉 쥔다. 

나는 그 모습을 보고 마음속 깊이 후회했다. 저것 좀 봐. 겁을 먹었잖아. 

괜히 말해준다고 해서. 이거 봐, 이래서 내가 혼자 해결하려고 한 거라고……. 

“언니, 괜찮아?”

이제 그만 말해야겠다고 하려던 찰나 언니가 고개를 들었다. 

“……걱정하지 마. 난 괜찮으니까.”

얼굴선을 타고 식은땀이 뚝뚝 떨어지고 있었다. 애써 느껴지는 공포를 꾹 참아내는 것 같은 표정으로 나를 직시했다. 그 푸른색 눈만은 선명하게 빛을 발하고 있었다. 

“응, 알아들었어. 그리고?”

나에게 무언가를 외치고 있는 것만 같은 그 눈을 가만히 바라보고 있자니 기분이 이상해졌다. 뭐야? 뭐라고 하는 거야? 뭐라는지 하나도 모르겠어. 

더 이상 바라볼 자신이 없어, 나는 시선을 아래로 떨궜다. 

“아직 그놈이 언니를 잊지 못하고 있는 것 같다고 했어……. 백작이 언니를 마주치게 되면 어떻게 행동할지 모른대.”

"……."

“우리 더 이상 여기 있으면 안 돼.  도망쳐야 해.”

“그래서 네가 그렇게……. 왜 진작 말하지 않은 거야? 그랬으면 이딴 사직서 정도는 얼마든지 써줄 수 있었을 거야. 네가 말만 했다면…… 나는…….”

언니가 한숨을 내쉬었다. 

“……그래, 나가자. 네 말이 맞아. 백작이 온다면 더 이상 여기 있을 수는 없어.”

언니가 자리에서 벌떡 일어났다. 서랍으로 다가가 맨 위에 있는 칸을 열어 저택에 들어오자마자 받았던 깃펜과 잉크를 꺼냈다. 

“솔직히…… 난……. 백작의 보좌관 말은 믿기 힘들어. 하지만 네가 믿는다니까 나도 믿을 뿐이야.”

그리고 들고 있던 서류 안에서 사직서를 꺼냈다. 나는 그녀가 사직서를 책상 위에 올려두고, 펜촉에 잉크를 찍는 것을 가만히 바라보았다. 

“이것만 쓰면 되는 거야?”

“아, 응. 그것만 쓰고 하녀장님께 드리면 될 것 같아. 사직서를 제출하고 사흘 후에 나가면 된다고 했어. 그럼 언니…… 우리, 저택에서 나가는 것 맞지……?”

“그럼. 나가야지. 나가고 나서는 니고르 백작을 싫어하는 다른 귀족들한테 갈 생각이지? 어디로 갈 생각이니? 생각해둔 곳은 있니?”

“아직…….”

“그럼 같이 생각해보자. 원래 이런 일은…… 같이 생각하고 고민하는 거잖아.”

곧 언니의 사직서가 내 손에 쥐어졌다. 나는 그것을 물끄러미 내려다보다가 웃음을 터뜨렸다. 웃지 않을 수가 없었다. 언니를 설득하는 일이 이렇게나 쉬웠다니. 겨우, 겨우 내가 나가려고 하는 이유를 말한 것 뿐이었는데. 

이유를 말해주자 언니는 너무나 쉽게 상황을 받아들이고 사직서를 써주었다. 게다가 생각보다 그렇게 충격을 받은 것 같지 않았다. 

나는 니고르 백작의 이야기를 하면 언니가 울 거라고 생각했어. 겁을 집어먹고 파들파들 떨면서 나를 붙잡을 거라고 생각했어. 귀를 틀어막고 제발 그만 이야기하라고 소리 지를 줄 알았어. 

하지만 아니었다. 

그럼 그동안 내가 멍청한 짓을 한 걸까? 멍청하게 속사정을 숨기고 바보처럼 행동한 거야? 아니야. 아니야, 아니야, 아니야, 아니야! 언니는 내가 보고 있어서 애써 괜찮은 척을 하는 것뿐이고, 속으로 많이 충격을 받았을 거야. 겉으로 드러나지 않는 것뿐이라고. 그러니 나는 그런 언니를 지켜줘야만 해. 그렇지? 

어릴 적 남자아이들이 심하게 장난을 칠 때면 별 반항 하나 할 줄 모르고 울기만 했고, 부모님의 장례식 때도 그렇게 울었고, 저택에서 탈출할 때도 울었잖아. 언니는 약한 사람이잖아. 

언제나 그랬잖아. 그러니까 강한 내가 지켜줘야 하는 거잖아. 

내가 어리석었다는 걸 인정하게 만들려는 것처럼 언니가 뒤이어 입을 열었다. 

“라일라. 나 괜찮아 보이지?”

나는 고개를 들어 언니를 올려다보았다. 어? 도대체 무슨 일이 일어난 걸까? 눈앞에 안개가 낀 것처럼 언니의 얼굴이 잘 보이지 않았다. 도수가 맞지 않는 안경을 낀 것처럼 시야가 흐릿했다. 그래서 언니가 어떤 표정을 짓고 있는지, 정말로 괜찮은지 아닌지 알 수가 없었다. 

“나 네가 생각하는 것만큼 약한 사람이 아니야. 이런 얘기를 해도 울거나 도망치지 않아.”

"……."

“그러니까 앞으로 나한테 아무것도 숨기지 마.”

"……."

“너도…… 혼자만 이런 일을 알고 있으면 힘들 거 아니야. 응?”

나는 대답을 하지 못했다. 아니 그렇게 못해. 지금은 어쩔 수 없이 말해준 것뿐이지, 될 수 있으면 나는 언니에게 백작과 관련된 말을 하지 않을 것이다. 그게 내가 언니를 지키는 방법이었으니까. 나를 물끄러미 내려다보던 언니는 제 손을 주무르더니 이내 내게서 몸을 돌렸다. 

그날 밤에는 언니와 함께 잤다. 

화가 풀린 모양인지 언니는 다른 방으로 가지 않고 옷을 갈아입은 뒤 자신의 침대에 누웠다. 그리고 내게 침대로 들어오라고 손짓을 하는 것이다. 

나는 잠옷으로 갈아입고 언니의 침대로 들어갔다. 한 침대에서 같이 자는 것은 어릴 때 이후로 오랜만이었다. 

그것도 서로 껴안고 자는 것은. 

따뜻한 온기 속에서 파묻힌 채 눈을 감고 있자 마음이 편안해졌다. 이대로 언니랑 평생 행복하게 살 수 있으면 좋을 텐데. 그저 그뿐인데, 사소한 소망일 뿐인데, 아주 별것 아닌 일인데, 왜, 그렇게 사는 게 왜 이렇게 힘든 걸까? 그렇게 큰 걸 바란 건 아니잖아. 

누가 세계라도 정복하고 싶대? 아니면 제국 제일가는 부자라도 되고 싶다고 했냐고. 그런 생각을 하자 눈물이 찔끔 흘러나왔다. 혹여나 언니에게 들킬까 슬쩍 품에서 떨어져 눈물을 닦아냈다. 

우울한 생각에 빠져 있을 필요는 없었다. 어차피 이제 우리는 이 저택에서 탈출할 테니까. 니고르 백작을 만날 일도 없고, 도련님들의 얼굴을 볼일도 없다. 드디어 자유다. 꿈에 그리던 자유……. 나는 언니의 손을 잡고 스르르 잠에 들었다. 

그리고 꿈을 꿨다. 꿈속의 나는 창살 속에 갇혀 있었다. 창살 앞에 의자를 가져다 대고 앉은 누군가가 나를 멀뚱멀뚱 바라보고 있었다. 나는 그를 향해 제발 좀 내보내 달라고 소리를 질렀다. 그 누군가는 손을 뻗어 내 뺨을 쓸었다. 남자였다. 빨간 눈을 가진. 무척이나 기분 더러운 꿈이라서, 깨고 나서도 한참 동안 정신을 차릴 수가 없었다. 

하지만 꿈을 그다지 신경 쓰지 않던 이유는 오늘 하루가 완벽했기 때문이다. 아침에 일어났을 때 언니는 평소 같은 미소를 띠고 있었고, 아침으로 나온 치킨 샌드위치는 무척이나 맛있었다. 게다가 마주치기 꺼림칙했던 이즐리와는 한 번도 만나지 않았다. 

그 방을 청소하러 가도 텅 비어 있고 평소에 아무렇게나 벗어두던 옷가지들은 정성스레 정돈된 상태로 침대 위에 놓여 있었다. 아서가 고양이를 보겠답시고 나를 부르지도 않았고, 오세스가 언니에게 찝쩍대는 장면을 보지도 못했다. 

친구들은 내가 나가는 걸 아쉬워하면서도 송별 파티에서 먹을 음식을 말하며 즐겁게 떠들었다. 항상 내게 시비를 걸던 레몬과는 어느새 퍼진 사직서에 관한 이야기나, 별것 아닌 일상의 이야기를 나눴다. 

하녀장님은 언니와 내가 내는 사직서를 받아 들고는 나가기 전에 해야 할 일을 자세히 안내하고는 나가보라고 손짓했다. 

그러나 나는 모든 일이 순조롭게 풀림에도 불구하고 어쩐지 불안한 기분이 들었다.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