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pisode 13
확실히 언니는 손재주가 좋다. 청소도 잘하고, 요리도 잘하고, 바느질도 잘하고, 심지어는 뜨개질도 잘한다.
보라! 그녀의 손에서 빠른 속도로 태어나는 목도리를! 내가 건드렸으면 아마 목도리가 아니라 털실 뭉치 같은 게 태어났을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점심을 먹은 뒤의 짧은 쉬는 시간, 정원 벤치에 앉은 채 그녀의 뜨개질 묘기를 더욱 즐겁게 볼 수 있는 것이다.
가을 햇살이 언니가 앉아 있는 곳에 내리쬐자, 뭐라고 해야 할까 그녀에게서 후광이 쏟아져 나오는 것 같기도 하고 어느 종교에서 숭배하는 여신이 강림한 것 같은 느낌이 들기도 했다.
어쩐지 목도리가 아니라 성스러운 무언가를 뜨는 느낌이 드는걸.
“털실이랑 뜨개질바늘 가져다줘서 고마워 라라. 완성되면 올겨울에는 멋진 목도리를 선물해줄게.”
“응! 기대할게. 언니가 만들어주는 거면 뭐든 좋을 거야~”
언니가 배시시 웃는다. 윽……. 심장에 크리티컬! 절대 도련놈들 앞에서는 이렇게 웃어주면 안 돼! 알았지?
“정말? 나도 라라가 주는 거면 뭐든 좋아. 저번에는 쿠키 정말 맛있었어.”
내가 액세서리 가게에서 훔쳐 왔던 그 쿠키를 말하는 것이었다.
그래, 끝내주게 맛있었지. 언니가 주머니에서 꺼낸 거냐면서 어색하게 웃기는 했지만.
가지고 오는 내내 먹고 싶어서 혼났다. 물론 내게는 초인적인 인내심이 있어서 무사히 언니에게 건네줄 수 있었다. 내가 침까지 뚝뚝 흘리며 쿠키를 보는 통에 언니가 반이나 양보해줘 버렸다.
으. 그날 언니한테 엄청 혼났었는데. 오세스에게 비싼 옷을 한가득 받았다는 게 그 이유였다.
언니가 대신 돌려주고 오겠다고 내가 붙잡는 것도 뿌리치고 멋지게 오세스에게 찾아갔지만, 실패하고 다시 가지고 오고 말았다. 언니가 돌려주려고 하면 자꾸 이 핑계 저 핑계 대면서 피했다나 뭐라나.
그때를 생각하면 한숨만 나올 따름이다. 나는 눈을 게슴츠레 뜨고 생일파티를 위해 한껏 꾸며진 정원을 둘러보았다.
이제 이틀만 지나면 공작의 생일이 다가온다. 그날, 언니를 다른 사람 눈에 띄지 않도록 방에 가둬야만 했다.
어떻게 해야 가둘 수 있을까? 제발 그날만큼은 방 안에만 있어달라고 부탁을 해야 할까?
그런 부탁을 해도 “아픈 것도 아닌데 쉴 수는 없지. 우린 돈을 받고 일하는 거잖아. 그 값은 해야지”라며 거절할 사람이었다. 그래서 나는 계획을 세웠다.
아프지 않은 이상 쉴 수 없다고요? 그럼 정말로 아프게 만들어서 못 나오게만 만들지 뭐.
언니를 아프게 만들어야 한다는 사실에 마음이 아팠다. 하지만 못 걷게 되거나 감기에 걸리면 가만히 있어줄 테니까 이 정도 고통은 넘길 수 있다.
솔직히 발목을 삐게 만들어서 걷기 힘들게 만드는 건 너무하고 감기에 걸리게 하는 건 어떨까?
같이 일하는 에이미가 요새 감기에 걸려 기침을 잦게 하는 걸 발견해서 언니 얼굴에 대고 기침을 해달라고 부탁했지!
- 왜 유리아 언니한테 그런 짓을 해야 하는 건데……?!
- 해줘! 해달란 말이야!
- 그, 그만해…… 해줄게…… 해준다니까……?
에이미도 처음에는 싫다고 했지만 다리에 매달려서 떼를 쓰자 도와준다고 했다. 나는 한쪽 풀숲에 숨어 있던 에이미에게 눈짓을 주었다.
에이미 지금이야. 얼른 와서 언니한테 기침해!
에이미는 한숨을 푹 쉬더니 우리에게 다가왔다. 언니는 깜짝 놀라서 인사할 생각도 하지 못하고, 왜 풀숲에 숨어 있냐고 물었다.
“누구누구 때문에요.”
“뭐? 혹시……. 괴롭힘 당하는 건 아니지? 내가 도와줄 테니까 말해봐, 응?”
“……그건 아니에요. 뭐…… 괴롭힘일지도 모르겠네요. 콜록…….”
에이미가 나를 째려보는 것을 애써 외면했다. 에이미는 한숨을 푹푹 쉬다가 바로 언니 옆에 앉았다. 그녀는 계속 기침을 했지만 그때마다 제 손으로 막아 버렸다.
누가 막으랬어? 언니한테 직접 기침을 하라니까? 내가 재촉의 눈빛을 보내자 시선을 피한다.
언니와 이야기를 하며 그녀의 환한 미소를 맞닥뜨리게 된 에이미는 결국 못 하겠다며 도망가버렸다.
“에이미 가지 마!”
“라라 넌 정말 못된 애야! 어떻게 저리 환하게 웃는 언니에게……!”
“야! 가지 말라고!”
좋아. 너랑은 오늘부터 절교야.
언니가 갑자기 도망가버린 에이미를 언급하며 걱정을 하길래 저런 배신자는 신경 쓰지 말고 계속 뜨개질이나 하라고 말했다.
멀거니 사라지던 에이미가 바로 제 옆에 다가오던 누군가에게 꾸벅 인사를 하고 다시 걸음을 옮겼다. 그녀가 저렇게 인사한다는 건 자기보다 직위가 높은 사람이라는 소린데……. 혹시 하녀장님? 집사님?
빠밤~ 둘 다 틀렸습니 다! 오세스 도련님이었습니다! 게다가 어쩐지…… 점점 우리한테 가까워지는 것 같았다.
언니도 마침 오세스를 발견한 건지 그쪽을 쳐다보았다.
“오세스 도련님이시네. 정원을 산책하고 계시는가 봐.”
“……언니. 숨자…….”
평소에도 싫었지만, 저번에 부엌에서 만난 이후로 더 마주치기 싫었다.
되게 묘한 분위기를 풍기면서 이상한 말을 했단 말이야. 무슨 말인지 이해는 안 됐는데 좀 싸했다.
언니가 고개를 갸웃거렸다.
“응?”
“아니, 그게 아니라 나 갑자기 숨바꼭질이 하고 싶어 졌어. 우리 숨바꼭질하자. 내가 숨을 테니까 언니도 숨어.”
“……그럼 그거 숨바꼭질이 아니지 않을까……?”
“아! 무! 튼! 하고 싶다고! 지금! 당장!”
“으응……. 알았어……. 그전에 도련님께 인사드리고 하자. 이쪽으로 오시는 것 같은데…….”
왜에……. 왜 인사를 해야 하는 건데……. 우리가 하녀라서 그런 거야? 하녀는 주인댁 아들한테는 꼭 인사해야 하는 법이라도 있는 거냐고. 그놈의 예의가 밥 먹여주는 건 아니잖아! 제발 좀 숨자고 언니의 팔을 잡아당겨도 소용이 없었다. 결국 우리는 숨지 못했고, 오세스는 우리 앞까지 다가와서 인사를 했다.
“안녕하세요.”
“네, 안녕하세요, 도련님.”
“안녕하세요……. 도련니임…….”
나는 이를 악문 채 언니한테 찰싹 달라붙었다. 오세스가 나를 내려다보며 빙그레 웃었다. 언제 봐도 기분 나쁜 웃음이다.
“두 사람은 오늘도 사이좋아 보이네요. 라일라는 언니를 참 좋아하는 것 같아요.”
“……네……. 엄청 좋아하죠…….”
“자매끼리 정다운 모습, 정말 부러워요.”
무슨 의미로 하는 말이지. 진짜로 그냥 좋아하는구나~ 싶어서 하는 말일까? 아니면 언니를 좋아하는 내가 니 놈의 연애 사정에 방해가 돼서 쓱싹 하겠다는 얘기인가? 후자 같아. 후자 같아서 무서워! 언니는 저 짐승의 속내를 눈치채지 못하고 감사하다며 고개를 숙였다.
“도련님도 형제분들과 사이 좋으시잖아요. 세 분이 함께 있는 모습을 볼 때마다 웃음이 나오는걸요.”
“그렇게 보이나요? 감사해요.”
사실 오세스랑 형제들은 그리 사이가 좋지 않았다. 오세스가 일방적으로 미워하는 것에 가까웠지만. 나한테 시비를 걸던 그는 이번에는 언니가 뜨고 있던 목도리로 시선을 돌렸다.
“유리아, 뭘 뜨고 있는 건가요?”
“아…… 목도리를 뜨고 있었어요. 라라가 절 위해서 어디서 털실이랑 뜨개질바늘을 가져왔더라고요.”
“정말 잘 뜨네요. 목도리의 주인은 누군가요?”
“라라예요. 이 예쁜 분홍색, 제 동생이랑 정말 잘 어울릴 것 같지 않나요?”
“네, 잘 어울릴 것 같아요. 올겨울에는 라일라가 이렇게 예쁜 목도리를 하고 다니는 걸 볼 수 있는 거네요. 기대되는걸요.”
“저도요……!”
그 말을 들은 언니가 활짝 웃었다.
언니의 웃음을 너무 치명적이었다. 그래서 나는 재빨리 일어나 언니의 얼굴을 와락 껴안았다. 오세스가 이걸 봤을까? 제발 안 봤으면…….
“……라라……? 왜 그래……?”
“어, 그게…… 갑자기 언니가 너무 좋아서 껴안아버렸어.”
“나도 라라가 좋아. 좋은데…….”
도련님도 있는데 이건 좀…… 이라는 말투였다. 잔소리는 나중에 해줘! 오세스는 놀란 것처럼 눈을 동그랗게 뜨고 우리를 쳐다보다가 웃음을 터뜨렸다.
“실례가 안 된다면 저도 목도리 하나만 떠주면 안 될까요? 저도 라일라처럼 유리아가 떠주는 목도리를 받고 싶거든요.”
“목도리요……?”
나는 재빨리 언니의 입을 막았다.
저 강요 같은 부탁에 허락의 말을 내뱉으면 나는 쓰러져버릴지도 모른다.
미안해 언니 잠깐만 참아줘.
“죄송해요. 도련님, 저희 언니도 무척 만들어주고 싶다고 생각하겠지만 털실이 이제 더 이상 없어서……”
“그럼 제 몫의 털실을 가져다 드리면 어떨까요?”
끈질기네, 진짜…….
“저희 언니 손가락을 좀 다쳐서 제 것 말고는 못 만들 것 같아요.”
“아, 손가락을 다쳤다고요? 저택의 의사에게는 가본 건가요?”
“네 근데 당분간 낫기는 어려울 것 같다고…… 1년 후쯤에 나을 수 있다고 하더라고요. 아아, 불쌍한 언니…….”
이쯤에서 언니가 읍읍 거리며 내게서 벗어나려고 했다. 어림도 없지. 그녀의 머리를 더 세게 안았다.
“세상에, 어쩌다가 그런 거래요……. 포션이라도 드릴까요?”
“포, 포포, 포션이요……?”
포션? 지금 포션이라고 말한 건가? 평민들은 감히 꿈도 꿔보지 못하고 귀족들이나 졸부들만 살 수 있을 정도로 비싼 물약이었다. 바르기만 하면 한 번에 상처가 낫는다는…….
농담으로 말한 거지? 그게 아니라면 언니한테 그 정도쯤은 대뜸 줄 수 있을 정도로 좋아하게 돼버렸다는 걸까? 진짜로……? 원작에서도 언니가 다쳤을 때 포션으로 치료해주고 그랬던 것 같아.
언제…… 그렇게 된 거야……?
갑자기 기분이 울적해졌다. 그래서 나도 모르게 손에 힘을 풀게 된 것이다. 내게서 벗어난 언니는 무서운 얼굴을 하고 있었다.
언니는 더 이상 자기 얼굴을 감싸지 말라는 마냥 내 두 손을 꽉 쥐어 제압하고는 아래로 내렸다.
“……도련님 앞에서 예의 없는 모습 보여드려서 죄송합니다. 전 손가락 같은 걸 다친 적도 없고 그러니 포션도 필요 없어요. 제 동생이 도련님을 너무 친근하게 느낀 나머지 장난을 쳤나 봐요.”
“아뇨, 괜찮아요. 귀여웠는걸요.”
오세스가 뭐라 형용할 수 없는 눈으로 나를 바라보았다.
“아니다……. 그럼 사과의 의미로 목도리 선물해주실래요?”
싸한 기운이 덮쳐와서 고개를 푹 숙이고 그 시선을 피하고 말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