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Episode 10 (10/8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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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pisode 10

다음 날 아침, 내가 제일 먼저 한 일은 하녀장에게 달려간 것이다. 그녀는 아침을 먹지 않을 셈인지 식당 앞을 쌩하니 지나갔다. 나는 후다닥 하녀장에게 다가가서 손에 쥔 것을 내밀었다. 

“하녀장님 이거 받아주세요!”

하녀장의 눈이 동그래졌다. 

“이건…… 사과 파이구나?”

“네, 심부름하는 길에 베이커리를 지나치는데 하녀장님이 이걸 좋아한다고 하신 게 떠오르지 뭐예요. 정신을 차려보니까 사과 파이가 딱! 손에 들려 있더라고요.”

“호호, 귀엽기도 해라.”

“받아주시는 거죠……? 하녀장님이 받아주지 않으면 제가 다 먹어버릴 거예요!”

“그래그래…… 받아줄 테니 이리 줘보렴.”

하녀장이 잘 포장되어 있는 사과 파이를 집어 들었다. 야호 성공이다! 다른 사람과 친해지기 두 번째, 선물 공세를 해라. 

선물을 싫어하는 사람이 있을까? 내가 알기로 그런 사람은 세상에 존재하지 않는다. 새 학기에 친구에게 달콤한 간식을 건네면서 말을 거는 것처럼, 요 선물로 관심을 끌어볼 수 있단 말씀. 

나는 그녀에게 파이를 건네곤 일터로 돌아가려고 했다. 그때 누군가의 발에 걸려 넘어질 뻔했다. 

“라라!”

뒤따라오던 언니가 허둥지둥 나를 안았다. 겨우 균형을 잡자 레몬과 그 일행이 눈에 띄었다. 

레몬이 이죽거렸다. 

“여우 같은 게 네 언닌 줄 알았는데 너였구나? 다 들었어. 감히 너 같은 게 오세스 도련님 마차를 타고 돌아왔다며? 하녀장님한테도 꼬리 흔드는 꼴이라니…….”

얘는 또 왜 이런담. 언니의 얼굴이 이상하게 변했다. 마치 못 들을 거라도 들은 사람 말이다. 

“……너 뭐라고 한 거니?”

아, 화났다. 그런 사람들이 있다. 평소에 잘 화를 내지 않지만 한 번 화가 나면 어마어마하게 무서운 사람들이. 

바로 언니 같은 사람들 말이다. 

묘한 포스가 느껴져서인지 레몬 일행이 흠칫거리며 뒤로 물러섰다. 

“내 동생에게 뭐라고 했냔 말이야.”

“……허어, 모, 못 알아들은 것 같으니까 다시 한번 말해줄게. 여우 같은 년이랬다!”

말하는 것 좀 봐라. 레몬을 흘겨보았다. 레몬은 오세스를 좋아했다. 딱히 누군가 내게 말해준 것은 아니지만 티가 났다. 그래서 자꾸 언니한테 시비를 걸어댔던 것이다. 나한테 얻어맞은 뒤로는 내 앞에서 더 자주 깐족대는 것 같기는 하지만. 

마음 같으면 양쪽 눈을 밤탱이로 만들어주고 싶었지만 이곳은 보는 눈이 너무 많았다. 

보라, 지금도 레몬의 외침에 사람들이 우리를 보고 있지 않은가. 나중에 뒷골목으로 따라오라고 말해야겠구먼. 

언니는 레몬 쪽을 돌아보며 톡 쏘아댔다. 

“너희 정말 못된 아이들이구나? 그런 식으로 말하면 아무도 너흴 좋아하지 않을 거야. 사과해줬으면 좋겠어.”

“언니 그만, 그만! 저딴 헛소리는 듣는 거 아니야.”

언니가 진짜 화를 내기 전에 얼른 식당으로 몸을 끌어당겼다. 언니는 가지 않으려고 버텼다. 

그래도 뭐 어떻게 하겠는가. 내가 애교를 부리며 애원하면 언니는 안 들어줄 수가 없는데. 

나는 식사를 하는 동안, 계속해서 언니를 달래줘야만 했다. 

사실 괜찮은 척 했지만 레몬에게 한소리 들은 게 너무 화가 났다. 그래서 복도에서 꽃병을 닦으면서 같은 구역 담당인 에이미에게 툴툴댔던 것이다. 

“레몬 걔를 진짜 어쩌지?”

“그냥 무시해. 그런 애들은 무시가 상책인 거 몰라?”

“무시할 수가 없어…… 내 주먹이 걔 볼 때마다 때리고 싶다고 울부짖는다고.”

“그, 그렇구나.”

뭐냐 그 눈은. 깡패 보듯이 보고 있잖아. 에이미가 고개를 저었다. 

“그래도 레몬도 참 신기하다. 저번에 싸웠을 때 엄청 얻어맞았을 텐데……. 나였다면 절대 너한테 못 덤볐을걸. 세 명이 같이 덤벼들어도 소용없었잖아.”

“난 5대 1도 가능해.”

“괴물이야……? 넌 하녀가 아니라 기사가 됐어야 했어.”

“근데 기사 되면 굴러야 하잖아. 매일매일 훈련받아야 하고 전쟁 나면 전쟁터도 나가야 하고…… 힘든 거 싫어…… 꿀 빨고 싶어……”

“꿀…… 빨아? 그게 무슨 소리야?”

“그런 게 있어.”

“그럼 예전에 뺨에 난 상처는 그 싸움에서 생긴 건가?”

“어어, 그때 났지. 아니면 언제 나겠어?”

“뭐…… 알고 있긴 했지만. 싸운 건 레몬이라는 애?”

“내가 레몬 말고 누구랑 싸워?”

“……라라, 너 누구랑 대화하는 거야?”

“어?”

나 너랑 대화하고 있던 거 아니었니? 

에이미가 꽃병을 닦다가 내 쪽으로 고개를 돌렸다. 그리고 당황한 얼굴로 어버버 거리기 시작했다. 

뭐야, 왜 저러지? 내 얼굴에 뭐가 묻었나? 아니면 벌레라도 붙은 건가? 자세히 보자 내 얼굴이 아닌 좀 더 위쪽을 보고 있었다. 에이미가 고개를 숙여 인사하는 것을 보자 불안한 기운이 엄습해왔다. 뒤돌아 보자 보이는 것은 이즐리 에머스였다. 

“힉…….”

그가 나를 보며 히죽 웃었다. 온몸에 소름이 오소소 돋을 정도로 아름다운 미소였다. 

“안녕 거짓말쟁이.”

거짓말쟁이? 왜 그런 식으로 부르는지 알 수 없다. 그에게 거짓말한 기억은 없었기 때문이다. 아닌가…… 있던가? 이즐리가 멀뚱히 나를 지켜보다가 고개를 갸웃거렸다. 

“인사 안 해?”

아, 인사. 깜빡했네. 여기서 놈을 만날 줄은 몰라서 당황해 버렸다. 휴게실에서 회사 동료랑 이야기하는데 사장님이 들어온 기분이랄까. 

“안녕하세요, 도련님…….”

재빨리 고개를 숙이고 다시 들려고 했지만, 무언가에 막혀서 움직이지 않았다. 이즐리 놈이 무지막지한 힘으로 내 머리를 누르고 있는 탓이었다. 

오 세상에, 공작가가 고릴라를 키우고 있는 줄 미처 몰랐네요. 

“……도련님……? 왜, 왜 이러세요……?”

“글쎄? 나도 모르겠는데. 괘씸해서 그런가.”

뭔 헛소리를 하는 거야? 재수 없는 놈, 제멋대로인 사이코 자식이라고 입모양으로 마구 욕을 했다. 그의 머리카락 하나하나까지 저주하는 정도에 이르자 그제야 이즐리가 손을 놓았다. 

지금 눈치챈 건데 이즐리 옆에는 하인이 하나 있었다. 어깨동무로 잡혀있는 그는 누가 봐도 어색하고 부담스럽다는 미소를 띠고 있었다. 

나와 에이미가 하인을 향해 꾸벅 인사하자 그도 똑같이 고개를 숙였다. 

이즐리가 하인을 손가락으로 가리키며 말했다. 

“얘가 말해줬는데 아서가 널 찾는다더라.”

“아서 도련님이요?”

걔가 날 왜 찾지? 그 역시 똑같은 생각을 했던 것인지 고개를 갸웃거린다. 

“둘이 친해? 그런 것 같지는 않던데.”

“……친하기는요.”

완전히 데면데면한 사이인데. 곰곰이 생각해보니 아서가 나를 찾을 이유가 있기는 했다. 바로 오렌지 때문이다. 

자기가 부르면 오렌지를 데리고 오라고 했었지? 뒤이어 이즐리에게 잡혀 있던 하인이 아서 도련님이 정원미로 쪽으로 오라는 말을 했다고 알려주었다. 그리고 용건 끝났으니까 가보겠다고 도망치더라. 

그놈의 얼굴을 봐야 한다니…… 싫다. 

한숨을 푹 쉬고 있자 에이미가 청소는 다 끝났으니 얼른 가보라고 내 등을 밀었다. 아직 꽃병들을 덜 닦았는데도 말이다. 

사랑한다. 착한 에이미. 일이 많이 남았다고 날 붙잡아줬다면 더 좋았을 테지만. 나는 그녀를 꽉 안아주고는 정원으로 향했다. 

근데 이즐리 얘는 또 왜 따라오지? 착각인 줄 알았는데 아니었다. 정원미로의 입구가 흐릿하게 보일 때까지 나를 졸졸 따라왔기 때문이다. 

이러면 오렌지를 데려갈 수가 없는데……. 아서는 봐준다고 했지만 이즐리에게 고양이를 들킨다면 이를 약점으로 나를 휘두르려고 할 것이다. 힐끔 바라보자 눈치 없이 씩 웃는다. 

“진짜 이상하지. 아서가 왜 너를 찾을까? 네가 마음에 들었나? 세상 사람 모두 싫어하는 것처럼 구는 녀석이 그럴 리는 없겠고……. 아, 너 아서한테 뭐 잘못한 거라도 있구나! 그렇지?”

“서…… 설마요…….”

“그래~? 맞는 것 같은데?”

빠밤, 정답에 거의 근접하셨습니다! 게임이라면 그런 알림음이 나오지 않을까 싶다. 쓸데없이 눈치만 빨라가지고. 입을 꾹 다물고 걷기만 하자 내 볼을 꼬집어 쭉 늘린 이즐리가 답지 않게 이렇게 내뱉었다. 

“걱정하지 마. 도와줄 테니까.”

아릿한 오른쪽 볼을 쓱쓱 쓰다듬으며 그를 올려다봤다. 뭐요, 아서가 나 괴롭히면 도와주겠다는 거예요? 도련님 니가요? 솔직히 저리 꺼져주는 편이 나한테 더 많이 도움이 될 텐데. 

별 믿음은 가지 않았지만 알았다는 의미로 고개를 끄덕여주었다. 

어느새 우리는 정원 미로에 도달했다. 근처의 벤치에 앉아 있던 아서가 나와 이즐리를 번갈아 보다가 인상을 찡그렸다. 

“……쟨 왜 데려온 거야?”

입 모양으로 고양이는? 하고 물어오길래 힐끗 이즐리에게 시선을 주었다. 

쟤 때문에 못 데리고 왔는데요. 아서의 얼굴이 더 험상궂어지기 시작했다. 

고양이를 못 봐서 많이 속상한 걸까? 아니면 그냥 이즐리를 봐서 화난 건가? 음, 아마 둘 다 일지도. 

그런 생각을 하고 있던 도중, 아서가 이즐리를 향해 톡 쏘아댔다. 

“넌 내 인생에 도움이 되는 일이 하나도 없어.”

“형아한테 그런 소리 하지 마. 상처 받잖아.”

“죽어버려.”

이즐리는 그의 험악한 말에도 별 타격을 받지 않았는지 배시시 웃다가 내 어깨에 팔을 둘렀다. 

엄멤메, 함부로 손 올리는 것 좀 봐. 

너 이런 식으로 우리 언니한테 수작 부리고 그러지, 응? 남몰래 그를 째려보았다. 

“근데 내 하녀는 왜 부른 거야? 혹시 괴롭히려고? 물론 괴롭히면 반응이 툭툭 나와서 재밌긴 하지만.”

“내가 너랑 같은 줄 알아? 그냥 일이 있어서 그래.근데…… 네 하녀라니? 저거 네 전속 하녀도 아니잖아.”

이즐리가 무언가에 찔린 것 같은 표정으로 눈을 굴리기 시작했다. 누가 보면 옆구리를 칼에 찔린 줄 알겠다. 

“……내, 내 방 청소도 해주잖아? 그러니까 내 하녀지…… 뭐. 이런 게 중요한 게 아니잖아? 그래서 왜 불렀냐니까?”

“그게 궁금해서 여기까지 찾아온 건가?”

“응, 나 궁금한 거 못 참는 거 알잖아.”

아서가 나랑 이즐리를 번갈아 보다가 한숨을 쉬었다. 

“……별거 아니었다고.”

저번에 약속했다고 끝까지 오렌지 얘기를 하지 않을 생각인 것 같았다. 

와, 나라면 이즐리를 떼어놓으려고 그냥 털어놨을 것 같은데. -999였던 그에 대한 나의 호감도가 -998 정도로 상승한 기분이 들었다. 

아서는 손으로 이마를 짚고 한숨을 푹푹 쉬더니, 내게 이제 가보라는 듯 손짓을 했다. 그리고는 정원을 벗어나 저택으로 들어가 버렸다. 

묘하게 쓸쓸해 보이는 그의 뒷모습을 보자 뭔가 괜스레, 그럴 일이 아닌 줄 알면서도 미안한 마음이 들었다. 

볼을 쿡쿡 찌르는 시선이 느껴져서 옆을 바라보았다. 

이즐리가 뭔가를 바라는 것 같은 얼굴로 나를 보며 방긋방긋 웃고 있었다. 

뭐지…… 뭔지 모르겠는데 웃는 얼굴 되게 재수 없다. 

“고맙지?”

“……뭐가요……?”

“내가 아서 물리쳐줬잖아.”

정작 내가 물리쳐야 할 사람은 이즐리 본인이라는 걸 모르는 모양이었다. 

“아……. 네……. 고맙네요…….”

옛다 감사 인사 먹고 꺼져라. 

이즐리가 내 머리를 마구 헝클어뜨리고는 연무장으로 향했다. 기분 좋아 보이는 뒷모습이었다. 날 괴롭히고 떠날 때면 항상 저렇게 즐거워한다. 

아오 저 뒤통수를 한 대 후려치고 싶네. 몰래 주먹을 치켜들다가 아서의 방 창문을 바라보았다. 

“……아씨……. 자꾸 신경 쓰이네. 내가 미쳤나 봐.”

* * *

정말 나는 미쳐버린 걸지도 모른다.  미래에 언니를 감금시킬 인간쓰레기 아서를 위해 주방 뒤편에서 오렌지를 찾아, 나무를 끙끙대며 올라와서 놈의 창문 앞까지 와버렸으니 말이다! 

“언니 말이 맞아……. 난 너무 착하단 말이야…….”

가볍게 주먹을 쥐어 창문을 똑똑 두드렸다. 그러자 곧 인상을 구긴 아서가 나타났다. 

물론, 그 험상궂은 표정은 오렌지를 보자마자 확 풀렸다. 아서는 내게 오렌지를 받아 들고 하, 하고 비웃음 소리를 냈다. 

“……이거 하나 보여주려고 나무를 타고 여기까지 온 거야?”

“어, 결론적으로 그렇게 됐네요……?”

“나무를 타고 이렇게 남의 방 창문을 함부로 두드리는 게 예의에 어긋나는 일인 거 몰라?”

“……죄송합니다…….”

괜히 데려왔다. 으으, 검은 머리 짐승은 은혜도 모른다더니! 

“하지만…… 이번 한 번만 봐줄게.”

아서는 전에 내가 충고했던 대로 오렌지를 조심스레 만지며 웃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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