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Episode 1 (1/8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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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Episode 1

    “당신을 사랑해요.”

    “……제발 내보내주세요……. 도, 도련님은 이런 분 아니잖아요?”

    “이해해 주세요. 다 이유가 있다고 생각해 주시면 안 될까요? 언제나 그랬던 것처럼요.”

    오세스가 유리아의 뺨을 쓸었다. 그녀는 몸을 움츠리곤 뒤로 주춤 물러섰다. 등에 닿는 것은 차디찬 쇠창살이다. 

    신사답던 오세스가 사람을 감금하는 데 일조하다니, 저택에서 일하는 그 어떤 고용인도 믿을 수 없을 것이다. 

    아니, 어쩌면 알고 있을지도 모른다. 단지 도련님들의 괴상한 취미를 감추기 위해 단체로 입을 다물어버린 걸지도. 

    유리아는 벌벌 떨리는 손을 다잡으며 오른쪽 벽을 바라보았다. 

    “도망갈 생각은 하지 마, 유리아.”

    벽에 기대서 있던 아서가 책을 한 장씩 넘기며 대뜸 내뱉었다.

    “어디로 도망가든 널 잡아 올 자신이 있으니까.  우리 가문이 괜히 공작가가 아니라고.”

    소년의 눈동자는 평소와 달리 따스한 기운을 품고 있었으나 내뱉는 말은 차갑기 그지없었다. 

    어디로도 도망갈 수 없다. 평민일 뿐인 그녀가 어찌 귀족에게 반항할 수 있을까. 유리아는 눈을 내리깔고 몸을 벌벌 떠는 일밖에는 할 수가 없었다. 

    그 모습을 본 이즐리가 웃음을 터뜨렸다. 그가 앉은 의자가 경박한 몸의 움직임에 맞춰 왼쪽, 오른쪽으로 흔들린다. 

    “토끼야, 이제부터 평생 함께 사는 거야. 어때, 좋지?”

    * * *

    「장미 저택의 비밀」, 참 신명 나게도 봤던 19금 피폐 로판이었다. 

    이야기는 아름다운 평민 소녀 유리아와 동생 라일라가 함께 1년 내내 장미가 화사하게 피어 있는, 에머슨 공작가에 고용되면서 시작된다. 

    세 명의 도련님은 아름답고, 친절하고, 당당한 유리아의 매력에 속절없이 빠져든다. 

    그 사랑은 독이었다. 

    공작가의 도련님들은 사랑이라는 명목하에 유리아에게 집착을 하다 지하에 감금시키기 이르렀고, 그녀에게 온갖 끔찍한 짓을 자행했다. 

    그러니까 무슨 소리냐면……. 어, 다시 한번 말하지만 이 소설은 19금이다. 그것만 말하겠다. 

    누군가는 내가 이 사실을 어떻게 알고 있는지 궁금할 것이다. 흥, 당연히 알 수밖에! 그야 나는 한국에서 살다 죽어, 「장미 저택의 비밀」에서 다시 태어난 환생자니까!

    "……ㄹ……!"

    큼큼, 아무튼…… 그렇게 유리아는 몸도 마음도 피폐해져, 몇 번이나 목숨을 끊으려고 한다. 

    도련님들은 유리아의 상처를 치료해 주었지만 결코 그녀를 가둔 문만은 열지 않는다. 

    결국 유리아는 미쳐버린 채 현실을 받아들ㅇ…….

    “ㄹ…… 라!”

    누군데 이렇게 시끄러워?

    “라라!”

    번뜩 눈을 떴다.

    친구인 마리가 나를 내려다보며 엉엉 울고 있었다. 이마가 뻘겋게 부어 있다. 그 얼굴을 멍하니 지켜보다 머리를 짚었다. 

    “너 왜 울어…….”

    “훌쩍!”

    머리가…… 머리가 왜 이렇게 아프지? 난 또 왜 누워 있고? 끄응, 마리의 부축을 받아 몸을 일으켰다. 

    그리고 눈앞에 보이는 광경은…… 마치 폭탄이라도 터진 것처럼 엉망이었다. 하녀들의 얼굴이엉망이었다는 소리다. 

    “……? 너희들 왜 눈탱이가 밤탱이가 돼있냐?”

    뭐야. 다 어디서 쥐어 터졌는지 얼굴이 멍투성이다. 

    아프다고 짜고 있는 세 명의 또래 하녀 중 한 사람, 싸가지를 밥 말아 드신 레몬 씨가 코피를 닦아내며 빽 소리를 질렀다. 

    "네가 그런 거잖아! 이, 이 망할 계집애야!”

    “아- 맞다. 내가 그랬지! ……. 야! 감히 너희들이 우리 언니를 욕해?!”

    냉큼 노란 머리카락을 잡아챘다.

    손맛이 아주 좋구나.

    “아악-!”

    “라라 진정해! 재수 없고 짜증 나고 싸가지 없는 애라지만 죽이면 안 돼!”

    이제야 전부 생각났다. 오늘은 장미저택에 온 지 한 달 되는 날이었다. 

    저택의 고용인들은 대체로 착했지만 유독 짜증 나게 구는 몇몇이 있었다. 바로 레몬과 그 무리였다. 

    그것들은 언니가 예쁜 데다가 도련님의 관심까지 받자 질투해서 저택에 이상한 소문을 퍼뜨리고 다녔다. 

    뭐 이 자식들아? 누가 여우야? 누가 꼬리를 치고 다녀?

    잘난 사람은 모난 돌 취급을 받는다더니, 딱 그 꼴이지. 그러다 나한테 걸려서 죽도록 얻어맞은 것이다. 

    내가 레몬에게 떠밀려 뒤에 있던 마리와 머리를 부딪치고 기절한 것이 사건의 전말이었다. 

    그때, 누군가 다급하게 빨래터로 달려왔다.

    “못 살아 정말……. 라라, 남을 때리면 안 돼!”

    하나뿐인 내 가족, 유리아 언니였다. 언니의 움직임에 따라 아름다운 연갈색 머리카락이 화사하게 흩날렸다. 

    내 팔을 붙들고 말리던 마리도, 내 손을 뜯어내려고 하던 레몬도, 그곳에 있던 하녀 모두가 멍한 얼굴로 언니를 바라보았다. 

    하기야 우리 언니가 좀 예쁘긴 하지.자랑스러운 마음이 든 것도 잠시, 파란 눈동자가 질책을 담고 나를 내려다보자 정신이 확 들었다.

    “그만하자. 응?”

    언니가 레몬의 머리카락을 쥐고 있던 내 손을 풀었다. 

    저 하얀 얼굴을 보자 꿈속에서 봤던 장면이 새록새록 떠오른다. 

    그래, 맞아……. 잃어버렸던 기억들이 선명해지기 시작한다. 

    마리의 돌머리와 부딪힌 덕에 전부 기억났다. 나는 환생한 뒤 어떤 사건 때문에 과거의 기억을 잃었던 것이다! 

    울컥 눈물이 쏟아졌다. 

    언니…… 도련님, 아니 그 개새끼들이 미래에 언니 감금하고 막막 나쁜 짓을 해. 근데 우리는 평민이라서 아무것도 못 하고 당하기만 하구. 거기다가 내가 방해된다면서 죽인다? 언니가 나만 좋아한다고 하면서. 

    아니…… 생각해 보니까 억울해 죽겠네? 언니 맘 못 잡은 건 자기들 잘못이면서 왜 날 죽여?!

    내가 훌쩍거리자 언니가 당황한 듯 어쩔 줄 몰라 했다.

    “미안해 라라. 상황을 파악하지도 않고 널 말리기만 해서……. 하지만 남을 때리는 건 잘못된 일이잖아. 언니는 그 부분을…….”

    “그게 아니야!”

    “으응……?”

    “언니이…… 우리 이직하자…….”

    아니 이직해야 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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