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당신의 이해를 돕기 위하여-168화 (168/176)

외전 3-1

“세상에, 어쩜 이렇게 사랑스러울까. 젠과 하옐에게서 좋은 점을 다 빼다 닮은 것 같네.”

바이올렛이 젠이 보여 주는 사진들을 행복한 얼굴로 바라보다가 걱정스럽게 물었다.

“둘째를 가졌다며. 지금부터 바로 쉬어야 하는 거 아닐까?”

“아뇨. 거듭 말하지만 마님이랑 있는 것만큼 좋은 태교도 없어요. 게다가 마님이 머리 해 드리는 거 말고는 아무 일도 못 하게 하시잖아요.”

젠은 임신해 있는 동안 바이올렛을 꾸미는 데 집중했고, 영문을 모르겠지만 그게 이유 없이 짜증날 때 도움이 된다고 했다.

젠이 민망해하며 말했다.

“저 첫 애 임신했을 때 기억하세요? 여름에 말이에요, 낮잠 주무실 때 깨워서 제가 사 온 리본 달아 보시라고 했잖아요. 아휴, 그땐 왜 그랬을까요?”

그날 하옐이 놀라서 달려와 사과하던 걸 떠올리며 바이올렛이 미소를 지었다.

“그럴 수도 있지.”

“그럼 안 되는 거였는데 말이죠……. 마님 머리를 만지고 있으면 마음이 평화로워져요.”

“도움이 되었다니 기쁘네. 혹여 셋째가 생기면 젠도, 하옐도 그런 일로 미안해하지 마.”

바이올렛의 말이 들렸는지, 응접실에 들어서던 하옐이 끼어들었다.

“이제 그만하고 집에 가요, 젠.”

“마님이 있어도 된다고 하셨어요!”

“허락하신다고 다 되는 건 아니에요.”

하옐이 핀잔했다. 바이올렛이 그에게 말했다.

“정말로 괜찮아. 그나저나 육아가 힘들 텐데 자네는 오히려 얼굴이 점점 밝아지기만 하네.”

“말도 마세요. 대표님 비서 일을 하느니 세쌍둥이를 키우는 게 쉬울걸요.”

반대로 젠은 전에 잠깐의 출산 휴가 동안에도 울상이 되어 있었다.

젠을 데리러 왔던 하옐까지 합세해 한참 수다를 떨던 부부가 집으로 돌아간 후, 바이올렛은 모처럼 여유를 누리며 사랑스러운 두 아이를 재웠다. 바이올렛이 동화책을 다 읽었을 때쯤 올리비아가 다 감긴 눈으로 말했다.

“엄마, 나 아직 안 자…….”

그러자 바이올렛을 사이에 두고 맞은편에 누운 테오가 말했다.

“어서 자, 올리브.”

“올리브는 안 자려고!”

올리비아가 당당히 말하자 바이올렛이 웃음을 터트리고는 아이의 눈을 잠시 손으로 감쌌다.

“알았어. 그럼 우리 잠깐 자는 척만 할까? 밤의 요정이 검사하러 올 테니까.”

“그래! 밤의 요정만 지나가면 다시 일어나서 엄마랑 테오랑 놀아야지…….”

웅얼웅얼거리던 올리비아는 자는 척을 시작하자마자 곧장 잠이 들었다.

올리비아가 잠들자 바이올렛은 테오와 조심스럽게 침대에서 일어나 바로 옆에 붙은 테오의 방으로 들어갔다. 아이가 침대에 눕자 바이올렛이 이불을 단단히 덮어 주며 말했다.

“그럼 우리 테오도 잘 자렴.”

그러자 테오가 머뭇거렸다. 소년도 마찬가지로 아직 잠들고 싶지 않았고, 자야 하더라도 잠깐 칭얼거리고 싶은 마음은 있었기 때문이었다.

그러나 태생이 얌전한 소년은 결국 그러지 못하고 제 어머니와 똑같이 닮은 다정한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안녕히 주무세요, 어머니.”

“그래, 테오.”

바이올렛이 이마에 입을 맞추고 몸을 일으켰다가 곧 어딘가 장난스러운 눈빛으로 물었다.

“잠들기 싫은 표정이구나?”

“으음…….”

테오가 부끄러운지 이불을 코까지 당기곤 배시시 웃었다.

“아직은요.”

바이올렛이 테오의 옆에 앉아 머리칼을 쓸어 넘겨 주며 물었다.

“학교에서 재미있는 일 없었니?”

“아! 있었어요! 오늘 헨리가 정말 웃겼거든요.”

테오가 반가움을 숨기지 못하고 얼른 일어나 앉았다. 그러더니 금방 재잘재잘거리기 시작했다.

눈이 저절로 감길 때까지 신나게 이야기하던 테오까지 잠들고, 바이올렛이 살금살금 침실에서 걸어 나왔다.

복도로 나와 문을 닫자마자 문 앞에서 기다리고 있던 윈터가 훌쩍 그녀를 안아 들었다. 그리고 침실로 향하자 바이올렛이 그의 머리칼을 쓰다듬으며 물었다.

“언제 들어왔어요?”

“방금.”

“지쳐보이네요.”

그러자 윈터가 침대에 앉아 아내를 무릎에 앉히고, 제 걱정 해 주기만 기다렸다는 듯이 투정을 부리기 시작했다.

“아무래도 회사를 집 근처로 옮겨야겠어. 중간에 당신이랑 꼬마들이 보고 싶어도 올 수가 없잖아!”

“진정해요, 윈터.”

“은퇴해야겠어. 난 이미 돈이 너무 많아. 더 많은 건 불합리해. 당신 불합리한 거 싫어하잖아.”

바이올렛은 윈터가 저를 끌어안고 있는 것으로 하루의 피로를 푼다는 것을 알고 있었으므로 뺨을 쓰다듬으며 이야기를 들어 주었다.

금방 기분이 좋아진 윈터가 바이올렛의 눈을 마주보며 말했다.

“자, 이제 우리 공주님 차례야. 오늘 어땠어?”

“별일 없었어요.”

“어떻게 별일 없었는지 자세히 말해 줘.”

그가 토닥이며 말하자 바이올렛이 웃음을 터트렸다. 그리고 그녀도 남편의 품에 머리를 기대고 이것저것 투정을 늘어놓았다.

*

올해 일곱 살이 된 올리비아는 윈터가 직접 노란 천을 사다가 만들어 준 배낭을 꺼내 들었다. 윈터가 아이들을 위해 온갖 가장 좋은 물건들을 사다 주었으나 올리비아가 가장 좋아하는 것은 이 배낭이었다.

올리비아가 그 안에 물통을 넣는 모습을 본 테오가 걱정스럽게 말했다.

“아버지가 알면 놀라실 텐데.”

“그러니까 몰래 나가는 거지.”

몰래 빼돌렸던 폭신한 식전 빵까지 챙겨 넣은 올리비아가 배낭을 메고 두 손으로 끈을 야무지게 쥐었다.

“다녀올게.”

“잠깐만.”

테오가 늘 들고 다니는 손수건을 꺼내더니 허리를 숙이고 올리비아의 배낭에 넣어 주었다.

“넘어지지 않게 조심해, 올리브.”

“응! 그럼 다녀올게! 최고의 선물을 찾아낼게!”

올리비아가 씩씩하게 대답하더니 모험을 위해 복도로 나섰다. 테오는 짧은 다리로 아무리 열심히 걸어도 복도의 절반 겨우 도착한 올리비아의 뒷모습을 바라보다가 동생이 따라오지 못하게 해 발을 동동 구르는 호위, 프란에게 말했다.

“떨어져 다니는 건 위험하니까, 중간에 그냥 들켜. 화내면 내가 명령해서 별수 없었다고 해. 그럼 나에게 좀 삐지고 그만일 거야.”

“네, 도련님.”

“아버지께는…… 절대 들키지 말고.”

“절대! 안 들키겠습니다.”

다른 사람은 몰라도 올리비아가 이런 위험한 일을 벌이기로 마음먹은 걸 알면 윈터가 시장의 모든 상인을 전부 매수해 버릴 것이 분명했다.

테오는 어린애인 올리비아와 그 어린애보다 더 막무가내인 아버지를 중재하느라 고생이 이만저만이 아니었다.

그래도 어머니가 출타하셨을 때 이런 일을 담당할 것은 자신뿐이라고 생각하며 테오는 자그마한 두 주먹을 꼭 쥐었다.

‘내가 정신을 바짝 차려야 돼.’

그러더니 곧 자리에 멈춰 서서 중얼거렸다.

“난 선물로 뭘 구하면 좋지…….”

소년이 곤란한 표정을 지으며 습관적으로 서재로 향했다. 그러나 혼자 집에 있으려니 아쉬운 기분이 들었다. 올리비아는 일곱 살에 벌써 모험을 떠나는데, 저 혼자 너무 재미없는 사람이 되는 것 같았다.

물론 아버지는 아들의 그런 면이 어머니를 닮았다며 귀여워하곤 했지만, 테오는 자신에게 어머니처럼 사랑하지 않고는 버틸 수 없는 면이 있다고 생각하지 않았다.

신중히 고민하고 난 테오가 문을 열고 나와서 제 경호원인 다섯 살 위의 카닉 일족 청년, 알린에게 말했다.

“알린, 외출이 하고 싶어.”

그러자 알린이 충격받은 표정을 지었다.

“지금요? 왜요?”

“왜라니. 하고 싶을 수도 있지.”

“도련님은 그런 사람 아니잖아요.”

“오늘은 하고 싶어.”

알린은 놀랐지만 일단 짐을 챙겨 들고 테오를 따라나섰다.

*

테오는 비밀로 한다고 했지만, 윈터는 집에서 벌어지는 모든 일의 일거수일투족을 보고받고 있었다.

올리비아의 외출 소식에 회사에서 곧바로 마차로 달려 나왔던 윈터는 하옐의 이어진 보고에 충격받은 표정을 지었다.

“우리 작은 공주님이야 말썽쟁이니 그렇다고 쳐도, 테오까지?”

“마님 생신 선물을 사러 간다고 하잖습니까.”

하옐이 혀를 차고 말하더니 슬쩍 물었다.

“그보다 대표님, 저희 애들 사진 보실래요?”

“아까도 보여 줬잖아.”

“또 보시죠.”

“귀찮게 하는군.”

윈터가 짜증을 내며 손을 내밀자 하옐이 젠이 섬세하게 찍어 준 사진을 건네주었다. 이제 세 살이 된 뺨이 발그레한 아이가 갓난아기의 손을 꼭 쥐고 있었다. 그 사진을 유심히 보던 윈터가 그것을 돌려주며 말했다.

“지금 유모가 보고 있나?”

“네, 젠은 마님과 동행했으니까요. 제가 빨리 퇴근해서 우리 아이들 보러 가야죠.”

“……퇴근해.”

“넵. 그러실 줄 알았습니다.”

점점 더 아이들만 보면 마음이 말랑말랑해지는 윈터였으므로 사진을 보여 주며 조기 퇴근을 기대할 수 있었다. 두말 않고 마차에서 내리려던 하옐이 슬쩍 다시 말을 이었다.

“휴가도 주시면 우리 꼬마들이 기뻐할 겁니다. 출근할 때 절 얼마나 찾는지…….”

“금요일부터 다시 출근해.”

“감사합니다!”

하옐은 휴가도 윈터의 변화도 흐뭇해하며 아이들을 돌보러 달려갔다.

윈터는 곧 왕성 쪽으로 마차를 돌렸다. 아내는 지금 사흘 밤낮, 왕성 건물을 어디까지 개방할 것인지 회의하느라 바빴다. 그래도 이제 슬슬 끝날 때가 되었으니 아이들의 모험을 구경하기 위해 모시러 가도 될 것 같았다.

*

로렌스가 사람들과 의원들은 바이올렛을 중심으로 왕성 구석구석을 살피는 중이었다. 다행히 지난 사흘의 회의가 효과가 있어, 대부분 건물의 사용처가 결정되었다.

“어느 정도 되었으니 차를 한 잔 마실까요?”

바이올렛이 묻자 참석자 모두가 동시에 그러자고 고개를 끄덕였다. 바이올렛이 차 한 잔을 가지고 창가에 앉자, 그녀의 사촌 안젤라가 다가왔다.

“바이올렛, 너도 참 너야. 그렇게 내리 일만 하면 어떡해?”

“그럼 안 되는 거니?”

“당연히 안 되지! 네가 그렇게 성실하게 일하면 다른 사람들도 쉬질 못하잖아.”

“어머.”

바이올렛이 생각을 못 했는지 난처한 표정을 지었다.

“난 그냥 빨리 회의 끝내고 아이들이 보고 싶어서…….”

“너도 참. 네가 사장이면 그리 좋은 사장은 아닐 거야.”

안젤라의 핀잔에 바이올렛이 웃으며 말했다.

“그러게. 네 말대로 난 사업은 하면 안 되겠어.”

“하고 싶으면 해. 네가 사업하고 싶다고 하면 윈터 경께서 뿌리를 뽑아다 주실 텐데.”

두 사람이 이야기하며 차를 마시고 있을 때, 문이 벌컥 열렸다. 윈터가 불쾌한 표정으로 안을 한 번 들여다보고는 바이올렛을 발견하고 성큼성큼 걸어왔다.

“누가 내 아내를 이렇게 오래 붙잡고 있어?”

윈터가 묻자 바이올렛은 멈칫하고, 안젤라는 웃음을 터트렸다. 그러더니 바이올렛을 곤란에서 구해 주려 말을 돌렸다.

“윈터 경, 바이올렛이 사업하고 싶다네요.”

“무슨 사업이요?”

“꽃 사업이겠죠?”

“아.”

윈터가 머릿속으로 잠시 계산하다가 바이올렛에게 물었다.

“얼마나 크게?”

그의 말에 바이올렛이 장단 맞춰 주려는 듯 물었다.

“얼마나 크게 해도 돼요?”

“나라 규모로 할 건지, 대륙 규모로 할 건지.”

“……선택의 폭이 좁군요.”

“그럼 우리 공주님이 사업을 하는데 동네 단위로 하나?”

“나에겐 작은 가게도 버거울 텐데요.”

“전문경영인을 따로 고용하면 되지.”

윈터가 뭘 당연한 얘기를 하냐는듯 말하고는 아내의 차를 한 모금 마셨다.

보통의 귀족이 할 행동은 아니었지만 이제는 그의 행동을 진심으로 지적할 만큼 용감한 사람이 라크라운드에 남지 않았다.

찻잔을 내려놓은 윈터가 말했다.

“지금은 일단, 우리 애들 시장으로 모험을 떠났거든. 구경 가지?”

“어머, 정말? 테오도?”

“테오도. 그러니까 더더욱 구경 가야지.”

윈터가 꼬드기자 바이올렛이 금방 몸을 일으키고는 안젤라에게 말했다.

“남은 회의 부탁해, 앤지.”

“걱정 마. 빨리 끝내고 다 집에 보낼게.”

안젤라의 능청에 바이올렛이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당신의 이해를 돕기 위하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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