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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신의 이해를 돕기 위하여-164화 (164/176)

외전 1-4

후원 파티에 도착한 바이올렛은 저 끝까지 올라가 있는 후원금에 눈이 동그래졌다. 어쩐지 급하게 후원 파티에 먼저 가 버리더니만…….

안잘리에게 물어 윈터가 있는 스위트룸으로 들어선 바이올렛은 열어 놓은 창문 앞으로 끌어다 놓은 테이블 위에 다리를 꼬고 앉아 있는 제 몸을 발견했다. 드레스가 불편했는지 다 벗어 버리고 실크로 된 잠옷을 입고 슬리퍼만 대충 발에 걸쳐 놓고 있는 모습이 매우 바이올렛을 당황시켰다.

“거기서 뭐 해요?”

“술 마시고 싶은데 당신 몸이라 참아.”

윈터가 괴로운 목소리로 말하더니 훌쩍 내려서서 물었다.

“스파이는 어떻게 됐어?”

“레위 가문에서 보냈더군요. 바로 경관들을 불렀어요.”

“그래? 큰일 했네.”

“가계도를 보니 레위 가문 둘째딸을 보냈더군요.”

“알아 달라고 몸부림치는데 내가 몰라줬네.”

윈터가 어이없다는 듯 말했다. 그런 그를 바이올렛이 걱정스레 바라보자, 윈터가 핀잔했다.

“회사 걱정은 회사가 알아서 할 거야. 걱정하지 마.”

“회사 걱정이 아니고, 당신 걱정이에요.”

“그럼 좀 더 하고.”

윈터가 바로 말을 바꾸자, 바이올렛이 걱정을 잠시 내려놓고 웃음을 지었다. 그녀가 말을 이었다.

“그리고 어쩌면…… 에쉬의 신변에 큰 문제가 생길 수도 있겠어요.”

“그거 재미있는 소식이군. 자세히 들려줘.”

그리 말하며 윈터가 의자를 당기려 하자, 바이올렛이 저도 모르게 불편한 기색을 보이며 제가 의자를 당겨 주었다. 그 모습에 윈터가 혀를 차더니, 팔짱을 끼고 서서 고개를 삐딱하게 기울이고 말했다.

“우리 몸 바뀐 상태로 같이 누운 적 없지, 공주님?”

“한 번도 없죠.”

“당신 아까 헤어질 때 잘 다녀오라는 키스도 안 해 줬어.”

“……내 얼굴에 하고 싶지 않아요.”

“나도 그래. 하지만 당신이니까 한번 해 볼까.”

“음.”

두 사람 다, 상대가 제가 사랑하는 사람이란 걸 알아도 본인 얼굴에 입맞추기가 영 껄끄러웠다. 한참 고민을 거듭하던 바이올렛이 고개를 조금 숙여 부드럽게 입을 맞춰 보았다. 그러더니 곧 중얼거렸다.

“그렇게 나쁘진 않네요. 몸이 바뀌어도 내가 사랑하는 상대란 건 변함없으니까.”

윈터 역시 동의한다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 그때 바이올렛이 잠시 생각하더니 팔을 뻗어 제 가슴을 손으로 감쌌다. 그러자 깜짝 놀란 윈터가 그 손을 밀치며 물었다.

“이게 무슨 끔찍하게 문란한 짓이야?”

“내 몸이잖아요.”

“지금은 내가 가지고 있잖아.”

“가슴에 큰 의미를 부여하지 말아요.”

“아니, 지금 이 상황에서 그게…… 그보다 왜 아직도 몸이 안 바뀌는 거지?”

“늘 때 되면 바뀌었잖아요. 기다려 봐요.”

“당신한테 키스하고 싶은데 내 얼굴은 싫어!”

윈터가 버럭 소리쳤다. 그러나 그가 당황하는 게 바이올렛은 그냥 좀 재미있는 상황 정도의 느낌인 듯했다. 그것이 희미하지만 웃음으로 드러났는지, 괜스레 욱한 윈터가 빈정거렸다.

“웃었지, 지금? 당신 몸이니까 옷 벗어도 전혀 문란해 보이지 않겠군.”

“당신이 부끄러울 것 같은데.”

“벗은 건 당신인데 내가 왜 부끄럽겠어?”

윈터가 놀리듯 말하더니 창문을 닫고 커튼으로 가린 뒤, 제가 입고 있던 바이올렛의 잠옷을 휙 벗어 던졌다. 처음엔 다소 인상을 쓰던 바이올렛이었으나, 어쨌든 제가 벗은 건 아니니 큰일도 아닌 것으로 느껴졌다.

바이올렛 역시 몸을 일으키더니 헐벗은 제 몸으로 다가갔다. 그리고 윈터가 종종 하듯이 목덜미에 입술을 대는 순간, 윈터가 기겁하며 뒤로 물러섰다. 그러자 바이올렛이 언제나처럼 우아한 미소를 지으며 물었다.

“이제 당신이 내 몸에 입 맞출 때 어떤 기분인지 알겠어요?”

“전혀.”

“못된 짓을 하는 기분이에요.”

그 대화를 끝으로 두 사람은 서로를 물끄러미 마주 보고 있었다.

보이는 것은 제 몸이어도 명백히 다른 사람이었다. 둘은 늘, 상대의 영혼이 있을 때의 제 몸을 여느 때보다 훨씬 매력적으로 느꼈다.

*

다음 날 아침, 예상 못 하게 스위트룸 침대 위에서 눈을 뜬 두 사람은 상체를 일으키고 앉아서 잠든 사이 원래대로 돌아온 상대를 바라보며 곧 헛웃음을 지었다. 윈터가 두 손으로 제 얼굴을 가리고 말했다.

“당신이라도 이성이 있어서 다행이야. 미친 짓을 할 뻔했어.”

“……정말 내가 미쳤었나 봐요.”

“이상하게, 분명히 내 몸인데 당신이 들어 있으니까…… 하고 싶더라고.”

바이올렛이 고개를 끄덕거렸다. 조금이라도 이성이 있는 바이올렛이 필사적으로 말리지 않았다면 그대로 잠자리를 할 뻔했다.

윈터는 전날의 성욕이 그대로 몸에 쌓여 깊게 한숨을 쉬며 침대에서 내려섰다. 그런 그의 상태를 직접 경험하여 알게 된 바이올렛이 힐끔 남편을 보았다. 그러더니 흘러내린 머리칼을 쓸어 한쪽 어깨로 넘기며 입을 열었다.

“윈터.”

그녀 쪽으로 고개를 돌렸던 윈터는 바이올렛의 표정과 눈빛에 이끌리듯 앞으로 걸어갔다. 그리고 침대 위에 걸터앉은 그녀의 발치에 무릎을 꿇고 올려다보며 물었다.

“왜 그렇게 봐?”

“어떻게 봤는데요?”

“무릎 꿇으라는 표정으로.”

윈터가 농담처럼 말하고는 바이올렛의 다리에 바짝 붙어 앉았다. 그러자 바이올렛이 손을 내밀어 남편의 턱을 감싸 고개를 조금 들게 했다.

손질하지 않은 머리칼이 흐트러진 그의 얼굴이 눈부시게 아름답다고 생각했다. 바이올렛은 저도 모르게 손가락으로 남편의 긴장한 턱을 문질렀다. 그녀가 엄지로 입술을 누르자 윈터가 순순히 입을 열었다. 바이올렛이 중얼거렸다.

“오늘따라 말을 잘 듣네요.”

“오늘이 아니어도 난 당신이 시키는 건 무엇이든 할 거야.”

윈터가 대답하며 아내의 두 발을 양손으로 붙잡았다. 제 커다란 손에 폭 감긴 발을 만져 보던 윈터가 그것을 제 허벅지 위에 올려놓았다.

바이올렛은 제 발에 닿는 있는 대로 흥분한 윈터의 몸에 당황해 눈을 감아 버렸다. 그래도 그녀가 피하지 않으니, 윈터가 아내의 발등을 손으로 움켜쥐고 제 허벅지 위를 천천히 문질렀다.

바이올렛은 피가 빠르게 돌아 쓰러질 것 같은 기분이 들어 손을 떼고 침대 시트를 꼭 쥐었다. 그리고 눈이 마주치자 침대로 올라오라고 옆을 톡 건드렸다. 윈터가 기다렸다는 듯 달려들자, 바이올렛은 그가 꼭 훈련이 잘 된 사냥개 같다는 생각을 했다. 남편에게는 비밀이었다.

*

침대 위에서 오전 시간을 보내고 점심까지 먹은 후에야 부부는 저택으로 돌아왔다. 그사이 잠에서 깬 테오와 느긋하게 시간을 보내고 나서, 윈터는 스파이 건을 마무리하기 위해 응접실로 향했다.

스파이가 하나 더 잡히긴 했지만 그렇다고 심문하지 않은 나머지를 풀어 줄 수는 없었다. 응접실에는 다섯 명의 연구원들이 남아 있었다.

윈터의 얼굴이 보이기 무섭게 연구원들이 긴장한 표정을 지었다. 그중 발명가인 솔린이 말했다.

“대표님, 전 정말 레위 가문과 아무 연관이 없습니다!”

“알아. 네놈은 전혀 상관이 없더라.”

“예? 근데 왜 아직도 집에 못 가게 하시는 건가요!”

윈터가 진지한 얼굴로 솔린의 어깨에 손을 올리며 말했다.

“너는…… 그냥 내가 안 좋아해.”

“왜요!”

“눈치가 없잖아!”

“아닙니다! 저 눈치 있습니다!”

“심지어 자기가 눈치가 없는 것도 모르잖아, 네놈은! 당장 꺼져!”

“앗, 넵.”

퇴근 소식에 갑자기 눈치가 빨라진 솔린이 잽싸게 짐을 챙겨 도망쳤다. 혀를 차고 난 윈터가 남은 네 명을 바라보며 말했다.

“넷은 왜 남았는지 알지?”

그의 질문에 네 사람 다 한숨을 푹 쉬었다. 남고 보니 보안 책임 직원들이었다.

“죄송합니다, 대표님.”

“스파이가 있는 걸 몰랐습니다……. 주디는 정말 열심히 일하는 평범한 녀석으로 보였습니다.”

넷이 울상이 되어 사과하는데 윈터가 입을 열었다.

“보안 책임 직원들도 못 찾는 걸 내 아내가 찾았어. 네놈들 해고 안 당하는 건 다 내 아내 덕인 줄 알아.”

“네! 다음에 따로 감사의 편지 드리겠습니다!”

“그러든지. 그리고 우리 아내가 말이야.”

그가 곧 제 아내 자랑을 은근슬쩍 늘어놓기 시작했다.

스파이 잠입을 찾아내지 못한 죄로 네 명의 보안 책임 직원들은 그로부터 한참을 더 윈터의 아내 자랑을 듣고 서 있어야 했다.

*

마차에 탄 바이올렛이 신문을 펼쳤다.

카닉사에서 레위 가문에서 보낸 스파이를 색출하다.

그녀가 신문에 있는 기사 절반 정도를 읽었을 때, 마차가 에쉬가 살고 있는 하구 근처의 별장에 도착했다.

이곳은 원래 바이올렛 가족의 소유로, 지금처럼 더운 시기에 지내던 별장이었다.

어릴 때 부모님과의 추억이 그리 많은 것은 아니나, 바이올렛이 가진 좋은 추억들은 전부 이 집에 있었다. 언제나 슬픈 표정이던 아버지가 잠시 모든 것을 잊은 것처럼 해변에 앉아 책을 읽던 곳이었고, 어리던 바이올렛이 주워 온 조개를 보며 어머니가 잠깐이나마 웃음 짓던 곳이기도 했다.

늦은 밤, 그녀가 도착하자 별수 없이 응접실에 격식을 갖추고 나와 앉은 에쉬가 짜증이 솟구친 표정으로 물었다.

“여긴 왜 왔어?”

그러자 바이올렛이 모든 인사를 생략하고, 곧바로 물었다.

“레위 가문 사람과 결혼할 생각이라며.”

“눈치가 빨라졌군. 안 그래도 이제 날짜를 잡으려고.”

에쉬의 태연함에 바이올렛이 잠시 침묵하자 그가 말을 이었다.

“이거야말로 나라를 위한 거지. 군수 사업을 하는 가문과 결혼하는 게.”

“무기를 팔 생각부터 하는 가문이야.”

“누가 전쟁이라도 하자고 했어? 국방을 튼튼하게 하자는 거잖아.”

“네가 뒤를 봐준다는 전제하에. 그건 그저 비리일 뿐이야.”

바이올렛의 말에 에쉬가 픽 웃더니 대답했다.

“튼튼한 군대를 가지는 걸 반대하는 사람은 없어. 네가 빚을 갚으려고 결혼한 것처럼 나도 튼튼한 군대를 가지기 위해서 결혼을 하는 것뿐이야. 칭찬받을 일이지.”

“힘을 얻으려는 거잖아.”

“‘결혼을 통해서’ 힘을 얻으려는 거지. 아무 능력 없이 남편 도움으로 부유하게 살고 있는 너처럼.”

에쉬가 빈정거렸다.

바이올렛은 와인을 들이켜는 에쉬를 물끄러미 바라보다 입을 열었다.

“널 믿고 레위 가문에서 당당하게 스파이짓을 했구나.”

“그 좋은 기술을 사업가가 돈 버는 일에만 쓰는 건 이기적인 일이야.”

그의 말에 바이올렛이 저도 모르게 실소했다. 그러더니 에쉬를 똑바로 바라보며 말했다.

“언제나처럼, 도둑질을 해 놓고도 뻔뻔하네.”

“도둑질이란 건 인정하겠지만, 필요한 도둑질이었지.”

에쉬가 예상했다는 듯이 대꾸하자 바이올렛이 미간을 좁히며 물었다.

“그게 왜 너에게 필요하지?”

“방금 말했잖아. 튼튼한 군대를…….”

“그러니까, 네가 신경 쓸 일 아니야. 그건 첫째로 의회가 결정할 일이고, 만약 우리 둘 중에 누군가가 그 문제를 신경 써야 한다면 그건 네가 아니야.”

“아무리 왕실이 해체되었어도 나는!”

“만약 아직도 왕좌가 존재한다면 그건 내 거야.”

바이올렛의 말에 에쉬가 말을 멈췄다. 그녀가 거만하게 들리는 목소리로 말을 이었다.

“의회도, 어머니도, 시민들도 그렇게 결정했지. 만약 내가 나의 계승식에서 왕가의 문장을 걸지 않고, 새벽의 종을 울리지 않는다고 해도 내가 그 사실을 모르는 건 아니야.”

“…….”

숨이 거칠어지면서도 에쉬가 대꾸를 하지 못하자 바이올렛이 몸을 일으켰다.

“결혼은 축하해. 새벽의 종을 꺼낼 생각이었지?”

“……안 된다고 할 거지?”

“다행이구나. 이제 내 허락이 없으면 안 된다는 걸 이해한 게지.”

그녀가 그렇게 말하고 자리에서 돌아섰다. 손을 부들부들 떨던 에쉬가 들고 있던 와인을 벌컥벌컥 들이켰다. 그때 바이올렛이 다시 돌아서며 말했다.

“그보다 레위 가문의 화를 풀 방법을 생각해두는 게 좋을 거야.”

“무슨 소리야?”

에쉬가 신경질적으로 묻자 바이올렛이 담담히 말을 이었다.

“레위 가문에서 보낸 스파이가 기술을 빼내려 했으니 남편은 레위 가문에 큰 배상금을 물릴 거야. 내가 알기로 카닉사 사람들은 손해를 보는 일에 절대로 무르게 굴지 않거든.”

뒤늦게 그 사실을 깨달은 에쉬의 얼굴이 하얗게 질렸다.

만약 제가 배상금만 물리게 하고, 레위 가문의 군수품을 라크라운드군이 사들이게 하지 못한다면, 바이올렛이 블루밍 가문에서 겪었던 것과 다름없는 사기 결혼의 당사자가 될 것이 분명했다.

당신의 이해를 돕기 위하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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