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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신의 이해를 돕기 위하여-150화 (150/176)

150화

리네의 집에서 출발한 두 사람이 할린이 마련한 집 앞에 마차를 대고 내린 것은 10시가 넘은 시간이었다. 체력적으로 무리한 탓에 얼굴이 하얗게 질린 할린이 오들오들 떨며 두 사람을 반겼다.

“때마침 좋은 집이 새로 나와서……. 가, 가구도 그대로 두고 가서 바로 하인님들께서 청소하고, 닦고, 시트도 하녀님들께서 바꿔 주셨습니다.”

“다 했으면 꺼져.”

“하, 하지만 알리카의 집이 비싸지 않아서 돈이 너무 많이 남았는데…….”

“심부름값 하라고 했잖아. 시체 치우기 싫으니까 뒈질 거면 집에 가서 뒈져.”

윈터가 거칠게 내뱉자 할린이 내밀었던 남은 돈을 다시 챙기고 급하게 도망쳤다. 바이올렛이 한숨을 쉬고 물었다.

“약값 준 거면 약값이라고 말하지 그래요? 어차피 줄 거면서 왜 그렇게 밉게 말해요?”

“심부름값이라니까. 알리카 집값이 싼 게 내 탓은 아니잖아.”

윈터는 제 이부동생에게는 그렇게 사납게 굴어 놓고, 눈이 내리기 시작하니 한 손은 코트 주머니에 욱여넣고 다른 한 손으로는 바이올렛의 머리 위를 가렸다.

부부가 알리카에 가지게 된 별장은 붉은 벽돌로 단단하게 지은 사랑스러운 집이었다. 1층에 제법 넓은 거실과 주방, 사용인들이 쓸 수 있는 방이 있고, 2층 창으로는 멀리 협곡이 보이는 근사한 전망을 가지고 있었다.

바이올렛이 라크라운드에서는 볼 수 없는 형태의 협곡을 내려다보며 감탄했다.

“세상에, 근사해라……. 어떻게 하루 만에 이렇게 좋은 집을 구했을까요?”

“여기 출신인데 이 정도는 구해야지. 그나저나 이런 집을 사고도 돈이 그만큼 남는군. 오면서 보니까 이 바로 뒤에 온천도 있던데 여기 좀 더 머물면서 관광지로 쓸만한지 살펴봐야겠어.”

“외부인 출입이 안 될 텐데요.”

“봉헌하라던 그 뻔뻔한 노인네들에게 돈 좀 찔러 주면 돼. 아까 마차에서 기다리면서 쌍둥이와 이야기를 해 보니 여긴 어떻게 된 게 경제 기반으로 삼을 만한 것이 전혀 없더군. 그나마 관광업이면 활로가 되겠지.”

“당신 전공이네요.”

“그게 그렇게 되나.”

윈터는 금맥이라도 발견한 것처럼 들떠 있었고, 바이올렛은 그 모습을 기꺼워했다.

그가 마음만 먹으면 조용히 무너져 가는 알리카도 키론처럼 금방 활력을 띌 것이 분명했다.

곧 두 사람은 마주 보고 앉아 가져온 음식을 먹고, 피로를 풀기 위해 따끈한 온천수로 목욕을 했다. 가운을 입은 바이올렛이 벽난로 앞에 앉아 행복한 얼굴로 말했다.

“온천 정말 좋네요.”

“그럴싸하더군.”

윈터가 동의하자 그녀가 나른한 얼굴로 고개를 끄덕인 후 다시 입을 열었다.

“차를 한 잔 마시고 자야겠어요.”

“눈 오는 날?”

“눈이 상관이 있나요?”

바이올렛이 고개를 갸우뚱하고 묻자 윈터가 기다리라고 손짓하더니 주방으로 가 컵을 두 개 가지고 돌아왔다. 그 안에는 먼저 목욕을 마치고 나온 윈터가 만든 핫 초콜릿이 들어 있었다.

“눈 오는 날은 이거지.”

“어머나…….”

“내 특별한 레시피로 만든 거야. 남에게 해 준 건 처음이군.”

아내에게 해 주기 위해 재료를 챙겨 왔던 윈터가 긴장된 표정을 지었다. 바이올렛이 핫 초콜릿을 한 모금 마시더니 눈을 동그랗게 떴다.

“뭘 넣은 거예요? 이렇게 맛있는 핫 초콜릿은 처음 먹어요.”

“남들 넣는 거. 코코아 파우더, 우유, 넛맥, 시나몬 스틱, 설탕. 하지만 내 비율이 있지.”

“세상에. 너무 맛있어요.”

바이올렛은 정말이지 이렇게 맛있는 건 처음 먹는다는 듯한 얼굴로 핫 초콜릿을 홀짝거렸다. 그게 귀여워서 윈터가 의자 뒤로 기대 유쾌하게 웃었다. 바이올렛이 물었다.

“이게 마시고 싶으면 호텔에 가면 되나요? 메뉴에 있어요?”

“아무리 내가 돈을 좋아해도 내가 가진 걸 다 팔지는 않아. 가끔은 내 것도 있어야지.”

“이건 당신 것이군요?”

“이제 당신 것이기도 하지. 맛있어? 혹시 이것 때문에 나랑 못 헤어질 정도인가?”

윈터의 짓궂은 질문에 바이올렛은 그를 흘겼으나, 이내 다시 행복한 얼굴로 핫 초콜릿을 마셨다.

그녀가 잔을 비우도록 윈터의 시선은 아내에게서 떨어질 줄을 몰랐다. 신전에서 나온 이후, 줄곧 이 상태였다. 원래도 그랬지만, 지금은 좀 더 심해서 바이올렛이 걱정스럽게 물었다.

“계속 그렇게 나만 볼 건가요? 신전을 다녀왔는데 마음이 평안해지진 않고 더 불안해하는군요.”

“난 7년 만에 당신을 보는 거야. 계속 보고 있을 거라고.”

“할 수 없네요.”

“어머니도 만났고. 오늘은 당신이 날 더 많이 동정해 줘야 해.”

가여운 시늉으로 무마하려는 윈터에게 넘어간 바이올렛이 안쓰러워하며 그의 뺨을 쓰다듬었다. 그러자 그가 아예 바이올렛을 잡아다가 제 무릎 위에 앉혔다.

“우리 공주님.”

바이올렛이 그가 원하는 걸 이해한 눈으로 윈터를 바라보았다. 윈터가 거의 닿을 듯이 가까이에서 말했다.

“당신은 눈이 예뻐. 물론 코도 예쁘고 입술도 예쁘지만.”

“그게 뭐예요…….”

“목도 예뻐. 성실한 것도, 고지식한 것도 예뻐. 처음 날 보던 날부터 지금까지 당신의 눈빛에 있는 심지가 언제나 사랑스러워.”

“아…….”

“난 어디가 예뻐?”

그가 짓궂게 묻자 바이올렛이 조금 웃고는 생각에 잠겼다.

바이올렛이 한참 생각하다가, 가문 회의에서 봤었던 사촌인 안젤라와 벤자민 부부의 행동을 떠올렸다.

분명 그들도 저와 같은 성교육을 받았을 텐데, 그 부부는 아무렇지도 않게 남들 있는 데서 몰래 엉덩이를 토닥거리고 있었다.

게다가 샤론은 또 어떤가. 그녀는 저에게 손가락 하나도 못 댈 해군을 덮쳐 버렸다.

‘내가 너무 융통성이 없었던 걸까?’

바이올렛이 걱정스러운 표정을 지었다. 물론 안젤라도, 샤론도 유난히 가만히 못 있는 청개구리들이긴 하지만…….

그녀가 말이 없으니 윈터가 슬쩍 인상을 썼다.

“왜. 아무리 생각해도 예쁜 데가 없어?”

“아뇨. 다 예뻐요.”

“성실하게 대답해. 당신은 성실한 사람이잖아.”

“여기가…….”

바이올렛의 손이 윈터의 옆구리를 감쌌다. 윈터가 순간 근육이 긴장하는 것을 느끼며 물었다.

“그게 예뻐?”

“네. 여기 근육이. 나와 가장 다른 부분 같아요.”

그녀가 광배근을 따라 손으로 피부를 쓸어 올리더니, 곧 두 손을 그의 어깨에 얹으며 말을 이었다.

“그리고 여기가 넓고 두꺼운 것도.”

“그게 좋아?”

“심미적으로.”

“정말 내 몸을 좋아하는군.”

“아, 그리고 문신도 어울려요. 나는 무서워서 못 하지만.”

“당신은 문신이 없는 게 어울려.”

“그리고…….”

“또 있어?”

“목소리도 좋아하고.”

바이올렛은 7년간 받은 윈터의 고통을 녹여 줄 것처럼 성실하게 하나씩 제가 좋아하는 부분을 찾아내기 시작했다.

윈터는 제 품에서 곰곰이 생각하며 술술 말하는 아내 덕에 만취한 것처럼 머릿속이 핑핑 돌았다. 그의 허리 아래가 뻑적지근하게 경직되는 것을 바이올렛이 느낄 텐데도 그녀는 피하려 하지 않았다.

윈터가 손으로 그녀의 허리를 덮듯이 감으며 물었다.

“그리고?”

“아마…… 당신이 가진 야망도 좋아할걸요.”

“열등감 같진 않고?”

“글쎄요.”

바이올렛이 이해가 안 된다는 듯 고개를 조금 기울이며 물었다.

“당신 같은 남자가 열등감을 가질 이유가 있나요?”

그녀의 목소리가 귓전을 울리자 윈터는 마치 크게 화라도 난 것처럼 숨이 거칠어졌다. 지금까지 호텔을 쌓아 올리며 느꼈던 쾌감을 다 합쳐도 이만만 못할 것 같았고, 제가 모든 스포츠를 보아 오며 느낀 흥분감을 다 합쳐도 역시나 못 미칠 것 같았다.

이 폭발하는 열망을 제 품에 폭 파묻힐 정도로 체격 차이가 나는 아내에게 일순 쏟아부을 순 없어 윈터는 그녀의 얼굴을 바라보는 것으로 어느 정도의 만족을 느껴 둘 수밖에 없었다.

바이올렛은 그걸 아는지 별말 없이, 아주 가까이에서 저를 삼킬 듯 바라보는 남편의 눈을 침착하게 마주 보고 있었다.

그의 숨이 천천히 부드러워지자, 바이올렛이 물었다.

“진정했어요?”

“상당히.”

“신사답군요.”

바이올렛이 칭찬하듯 그의 목덜미를 쓰다듬자 윈터가 그녀를 한 팔로 안아 들고는 다른 손으로 제 셔츠 단추를 풀며 침실로 향했다.

*

처음 알리카에 올 때 생각과 달리, 두 사람은 신전에서 겪은 일을 해소하기 위해 예정보다 여러 날을 침실에 틀어박혀 있었다. 그게 아니더라도 두 사람은 은근히 알리카를 마음에 들어 했다.

바이올렛은 온천이며 알리카의 전경들을 마음에 쏙 들어 했고, 윈터는 알리카의 관광업을 틀어쥐겠다는 야심이 폭발해 매일같이 샤먼들에게 회유와 협박을 병행하고 다녔다. 그를 들어오지 못하게 하는 것이 더 쉽지, 들어와서 활개 치는 것을 막는 건 어려웠다.

중간에 도착한 이글린까지 합세해 알리카의 부동산을 휘젓고 다니는 사이, 바이올렛은 경호원들과 병원에 찾아가 아이들을 살피기도 하고, 알리카 여기저기를 구경하러 다니기도 했다.

알리카는 신전을 중심으로 방사형 형태로 이루어진 도시였다. 길이 제대로 닦이지 않아 헤매기 쉬웠지만, 그만큼 거의 모든 건물이 기록된 지도가 잘 나와 있기도 했다.

처음 알리카 사람들은 이방인인 바이올렛을 무척이나 경계했으나, 그들에게도 라크라운드의 소식이 전해진 후부터 하루하루 시선이 달라졌다.

알리카는 매우 조용하고, 아름다운 곳이라 생각을 정리하기 좋았다. 바이올렛의 마음은 더할 나위 없이 편안했다.

알리카에서도 그녀는 여느 때처럼 윈터보다 일찍 자고 늦게 일어났다. 그녀가 눈을 뜨자 윈터가 바이올렛의 코를 톡 건드리며 웃었다.

“하마터면 깨울 뻔했어.”

“깨우지 그랬어요?”

“너무 곤히 자더군.”

“알리카 참 좋네요. 온천수도 좋고, 햇살도 좋고…….”

“또 오자.”

윈터의 말에 바이올렛이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그녀가 몸을 일으켜 보니 윈터는 오늘도 아침에 하는 루틴을 마친 후였다. 그는 아침이면 고강도의 운동을 한 후 샤워를 하며 면도를 했기 때문에, 턱을 보면 그가 한참 전에 일어났다는 걸 알 수 있었다.

바이올렛이 무심코 그의 턱을 만지작거리자 윈터가 물었다.

“왜?”

“여긴 운동하기엔 너무 춥지 않아요?”

“달리면 안 추워.”

“아.”

“산책 가자. 다시 돌아가기 전에.”

“음, 추울 것 같아요. 그냥 온천에 있다가 가는 게 좋겠어요.”

“의외로 느긋한 사람이야, 당신은.”

“당신이 내 몫까지 해 주고 있으니까 괜찮아요.”

“그것 참 신선한 변명이군.”

윈터가 놀리듯 말했다. 그러곤 아내의 다리를 당겨다 제 허벅지 위에 두고 슬리퍼를 신기기 시작했다. 이제 그 행동에 익숙해져 아무 말 않는 바이올렛에게 윈터가 말했다.

“밖에 꼬마들이 인사하러 왔어. 우리가 오늘 알리카를 떠날 거란 걸 들었나 보더군.”

“병원에 좀 더 있어야 하지 않아요?”

“워낙 못 먹어서 그랬는지, 잘 먹이고 따듯한 곳에서 재웠더니 싹 다 나았다더군. 오히려 이전보다 훨씬 건강하대.”

“그렇군요.”

“꼬마들과 눈싸움하자.”

“음…… 핫 초콜릿 또 만들어 주기로 약속하면요.”

“해 줄게.”

윈터의 대답에도 바이올렛은 약속하라는 듯 새끼손가락을 내밀었다. 그녀의 행동에 윈터가 어깨를 들썩이고 웃으며 새끼손가락을 걸어 주었다.

당신의 이해를 돕기 위하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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