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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신의 이해를 돕기 위하여-148화 (148/176)
  • 148화

    두 사람이 정신을 차린 순간 눈앞에 불이 타오르며 그곳이 밝아졌다.

    바이올렛이 깜짝 놀라 불을 보았을 때, 윈터가 곧바로 달려와 그녀를 끌어안았다. 그러나 동시에 그가 서 있을 힘이 없는지 그대로 주르륵 미끄러지는 바람에 무게를 못 이긴 바이올렛도 따라서 주저앉았다.

    바이올렛이 놀라서 그를 마주 끌어안자 그녀의 품에서 숨을 헐떡거리던 윈터가 겨우 중얼거렸다.

    “저…… 개 같은 신은 내 혈족들이 믿는 신이 분명해. 내가 욕했다고 열 받은 거야. 총을 들고 신전에 들어온 거에 대한 복수라고. 그렇지 않으면 날 당신이 없는 곳에 7년이나 처박아 놓을 리 없잖아!”

    윈터가 불 쪽을 보며 버럭 성질을 내고는 한동안 진정하지 못하고 아내의 얼굴을 더듬거리며 이쪽이 현실이라는 것을 확인하려 애썼다.

    그는 그렇게 그녀의 이목구비 하나하나, 손발까지 다 확인한 후에야 겨우 이성을 찾아 다시 입을 열었다.

    “당신도 그 꼬마 만났어? 아픈 꼬마.”

    “아, 당신도 만났어요?”

    “난 우리가 세 번 서약하던 장면들을 보고 왔어. 예상한 그대로였고, 당신은 상상 이상으로 귀엽더군. 아무튼 그 이후에 그 망할 꼬마가 신이 당신을 돌려준 대가를 갚으라고 했다면서 날 그런 지옥에 처박았어.”

    윈터가 바이올렛을 다시 끌어안았다. 그러곤 심호흡하더니 말을 이었다.

    “그 꼬마가 난 원래 이곳의 샤먼들 중 하나가 되었어야 한다더군.”

    “그렇대요?”

    “원래 내 능력은 알리카를 위해 써야 했는데, 혼혈이라고 배척한 덕에 내가 싹 다 내 재산 불리는 데 쓴 거지. 자업자득이야.”

    “그렇군요.”

    “당신 몸은?”

    “괜찮을 거라고 들었어요. 전혀 문제없다고.”

    “확실히 혈색이 좋아지긴 했군. 열도 내렸고.”

    윈터가 바이올렛의 이마에 다시 손을 올려 보고 기쁜 표정을 지었다. 그녀의 좋아진 안색을 보니 방금 전 지옥을 겪고서도 여기 온 것이 후회되지 않았다.

    바이올렛 역시 따라 미소 짓고는 윈터의 팔에 걸쳐진 목도리를 가리켰다.

    “그나저나 그거.”

    조금 전까지 바이올렛이 하고 있었던 목도리가 갑자기 20년은 지난 것처럼 낡아 있었다. 바이올렛은 곧 거기서 고개를 돌려 제가 신고 있는 말도 안 되게 폭신한 신발을 발견했다.

    “환상이…… 아닌 건가요?”

    “그런 것 같기도 하고.”

    윈터가 팔짱을 끼고 심각하게 그녀의 발을 내려다보았다. 그러더니 문을 턱짓했다.

    “일단은 나가지? 저 신은 꼴도 보기 싫으니까.”

    바이올렛이 말없이 고개를 끄덕이자 윈터가 문을 거칠게 열어젖혔다.

    문이 열리는 순간 윈터의 표정이 구겨지고, 바이올렛은 이마를 감싸 쥐었다. 그 순간 서로를 마주 보니 몸이 바뀌어 눈높이가 반대가 되어 있었다.

    두 사람은 몸을 다시 바꾸기 위해 서로의 손을 다시 잡았다. 이내 놀란 윈터가 말했다.

    “몸이 다시 안 바뀌잖아?”

    “그러게요. 어쩌죠?”

    두 사람 다 당황해 서로를 만지작거렸지만 여전히 그대로였다. 그러자 앞에 있던 샤먼, 노더가 눈동자를 데굴데굴 굴리며 말했다.

    “신전에서 지나친 애정 행각은 자제해 주시지요.”

    “우리 둘이 몸이 바뀌었단 말이야!”

    잠깐 보았어도 몸에 예법이 익었음이 느껴지던 바이올렛의 입술에서 거친 목소리가 나오자 당황한 노더가 말했다.

    “워, 원래 반려가 같이 신전에 들어가면 몸이 바뀌어 나올 때가 있습니다! 이해를 돕기 위해 같이 들어가는 거니까요…….”

    “그럼 언제까지 이 상태야?”

    “앞으로는 불시에 그렇게 바뀔 수 있습니다.”

    “그럼 미리 말했어야지! 불시에? 다시 돌아오려면 어떻게 해야 해?”

    “침착하게 기다리시며 신께 기도를…….”

    답이 없다는 답을 듣자 윈터가 당장 노더의 멱살을 쥐었다. 그러나 바이올렛의 몸을 한 상태라 들어 올려지지도 않고, 노더도 겁먹기는커녕 얼굴만 시뻘게지자 열이 받아 그를 밀쳐 버렸다.

    윈터와 몸이 바뀐 바이올렛이 서둘러 노더의 사제복을 정리해 주었다. 그러고는 분노가 사라지지 않아 곧장 노더를 주먹으로 치려 드는 윈터의 팔을 붙잡았다.

    “폭력은 안 돼요.”

    “이 자식이 제대로 종교에 귀의하질 못하잖아.”

    “당신이 뭘 어쩌게요?”

    “죽여서 그렇게 좋아하는 신의 곁으로 보내 줘야겠지.”

    농담이어야 할 것 같은데 농담기가 없었다. 바이올렛이 놔두면 샤먼을 두들겨 팰 것 같은 윈터를 가까스로 말리고 손목을 붙잡아 복도로 끌어당겼다. 윈터가 끌려가며 짜증스레 말했다.

    “아프니까 살살 잡아. 상처 나.”

    “아파요?”

    “당신이 생각하는 것 이상으로 살짝 잡아야 자국이 안 난다고.”

    “……그래요?”

    바이올렛이 손의 힘을 확 풀었다. 그러더니 고개를 갸우뚱하며 말했다.

    “놓칠 것 같은데요?”

    “이제 알았지? 난 늘 그런 기분으로 살아.”

    윈터가 투덜거렸다. 곧 두 사람이 신전 밖으로 나왔다. 앞에서 기다리던 할린이 그들을 발견하고 다가왔다.

    “저…… 알리카에는 마땅한 숙소가 없어서요. 외부인이 없으니 호텔이라고 할 만한 게 별로 없어요. 그러니…….”

    제 집에서 묵으란 소리였다. 바이올렛이 걱정스럽게 윈터 쪽을 보니 그는 의외로 관심 있는 표정을 짓고 있었다.

    “내가 여기서 관광업을 시작하면 알리카의 관광업을 독점할 수 있다는 얘긴가? 경쟁자 없이?”

    “예?”

    “여길 싹 다 개발해 뒤집어엎어 버릴 이유가 생겼네.”

    윈터가 만족하며 할린의 팔을 퍽퍽 때렸다. 할린은 잠시 어리둥절했으나 곧바로 두 사람의 몸이 바뀐 걸 알았다. 할린이 머뭇거리다가 조심스레 말을 이었다.

    “그러니 저희 집에 와서 주무시는 게 어떨까, 해서 말씀드리려는 거였습니다.”

    그러자 윈터가 할린을 걷어차는 시늉을 했다.

    “그딴 집 안 가. 어디서 수작이야?”

    제 몸이 말도 안 되는 행동을 하는 걸 본 바이올렛이 한숨 쉬는 소리를 들은 할린이 얼른 그녀를 보며 말했다.

    “부, 부인께서는 어떠십니까?”

    “남편의 의견이 중요하오. 나야 어디든 상관없으니.”

    바이올렛이 부드럽게 말했다. 그 말에 살짝 기분이 풀린 윈터가 할린에게 말했다.

    “빈집 있을 거 아냐. 지금 당장 사지. 안 그래도 꼬마들까지 주렁주렁 달고 와서 그 녀석들도 재워야 하니까.”

    “그렇다고 해도 이제부터 정리하고 주무시려면…….”

    “돈으로 못 하는 게 어디 있어. 무조건 제일 크고 제일 좋고 전망도 좋은 집으로 사.”

    윈터가 말을 마친 뒤 곧바로 바이올렛이 입고 있는 코트를 더듬어 수표책을 찾아 꺼낸 후 빠르게 적었다.

    “이 정도면 넉넉하겠지.”

    알리카에서는 불필요할 정도로 많은 돈에 할린의 입이 딱 벌어졌다. 그가 눈만 깜빡거리고 서 있자 윈터가 인상을 쓰고 말했다.

    “뭐 해. 빨리 가서 잘 곳 마련해. 우리 공주님을 약값도 못 내는 뻔한 집구석에서 재우고 싶지 않으니까.”

    “너, 너무 많습니다!”

    “남으면 심부름값으로 쓰면 될 거 아냐. 그 정도 눈치도 없나?”

    “그, 그럼 제가 주무실 곳 마련할 테니…… 그사이에 식사만 하시면 안 될까요?”

    “꺼져.”

    “며칠 밤을 새우셨거든요…….”

    “이기적이기 짝이 없군. 억지로 주는 것도 일종의 폭력이야. 그렇지?”

    윈터가 당당히 말하고는 칭찬하라는 듯 바이올렛에게 물었다. 억지로 떠안기는 양으로 치면 제가 할 말이 없을 텐데 어쩜 저렇게 뻔뻔한가, 바이올렛이 생각하는 사이 할린은 주머니에서 꼼꼼하게 접은 지도를 내밀었다.

    “여기 집 위치를 적어 뒀습니다. 그럼 저는 가서 주무실 곳 마련해 볼게요!”

    말을 마친 할린이 얻어맞지 않기 위해 재빨리 도망쳤다. 윈터 대신 지도를 받아 든 바이올렛이 그것을 펼쳐 보는 사이, 윈터는 신전 계단에 털썩 앉았다. 바이올렛이 말했다.

    “정말 바로 앞이네요.”

    “갔으면 좋겠어?”

    “아뇨. 받은 거니까 예의상 살펴본 것뿐이에요.”

    윈터가 고개를 끄덕이고는 말을 돌렸다.

    “그나저나 여전히 건강한 몸은 아니군.”

    “그래요? 신전에서 나왔더니 확연히 느껴질 만큼 좋아졌는데. 그보다 찬 곳에 앉아 있으면 감기에 걸릴 거예요.”

    그 말을 듣자마자 윈터가 얼른 몸을 일으켰다. 그러고는 불만스럽게 물었다.

    “그 쓰레기 같은 신을 믿을 수가 있어야지.”

    “정말로 여기 와서 좋아졌어요.”

    “당신이 건강해지지 않으면 이 신전을 부숴버릴 거야. 난 당신 없이 7년을 보냈다고.”

    “어쩐지 어른스러워졌네요.”

    바이올렛이 기분을 풀어주려 장난스레 말하자 윈터가 슬쩍 웃었다.

    그러고 나서야 마음을 정한 윈터가 다시 입을 열었다.

    “밥은 먹자. 차려 놨다니까.”

    “그럴래요?”

    “보나마나 또 돈이나 달라고 하겠지. 하지만 일단은 당신 몸을 쉬게 해줘야겠어. 그 망할 집구석에도 손님용 침대 하나 정도는 있겠지.”

    윈터가 그리 말하고는 바이올렛의 손에서 지도를 낚아채 확인했다.

    “난 이 몸을 거기 가져다 놓고 쉬게 하며 저녁을 때우지. 당신은?”

    “먼저 가서 식사하고 있어요. 나는 병원에 가서 아이들이 잘 있는지 확인하고 그 집으로 갈게요.”

    “빨리 오는 게 좋을 거야. 당신 몸으로 테이블을 뒤집어엎을지도 모르니까.”

    “그래도 용서해 주실 것 같은데요.”

    “주제에 화를 낼 순 없겠지.”

    윈터가 빈정거리더니 평소 바이올렛이 하듯이 손을 내밀었다. 그의 너무도 태연한 행동에 바이올렛이 웃었다.

    “내가 에스코트해요?”

    “당연한 거 아닌가요, 신사분?”

    윈터가 능청스럽게 제 흉내를 내자 바이올렛이 웃음을 터트렸다.

    바이올렛의 에스코트를 받으며 마차에 탄 윈터가 말했다.

    “몸이 바뀐 상태로 쭉 사는 것도 아주 나쁘진 않겠어.”

    “왜 그렇게 생각해요?”

    “그럼 당신은 안 아플 거고, 당신이 어딜 가도 내가 불안을 느낄 일이 없을 테니까.”

    “그렇군요.”

    바이올렛이 미소를 지었다. 윈터는 그런 제 몸을 위아래로 훑어보았다.

    바이올렛은 격식이 더 편한 사람이라, 그의 코트 주머니에 구겨져 있던 검은 가죽 장갑을 하나씩 손에 끼우고는 풀었던 단추들 역시 꼼꼼하게 잠그고 있었다.

    제가 사용할 땐 세상 날건달처럼 건들거리더니, 아내가 사용할 땐 이질적인 외모와 회색 눈동자에도 불구하고 신사답기 그지없었다. 심지어 늘 반항적이기 짝이 없던 눈빛조차 그녀에게 왔을 때는 나긋하고 어른스럽게 보였다. 누가 보아도 명문가에서 자란 혈통 좋은 도련님 그 자체였다.

    ‘……눈만 문제인 줄 알았더니 내용물도 문제였군.’

    윈터가 불만스레 생각할 때, 바이올렛은 의자에 삐딱하게 앉아 다리를 꼰 제 모습을 바라보고 있었다. 팔짱을 끼고 고개까지 비스듬하게 기울인 모습이 영락없는 말괄량이였다. 게다가 뭐 하나 말 돌리지 않고 적나라하게 내뱉는 것도 은근히 흥미로웠다.

    두 사람은 몸이 바뀐 상대를 보며 제 몸일 때는 전혀 느끼지 못했던 매력을 느끼고 있었다.

    당신의 이해를 돕기 위하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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