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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신의 이해를 돕기 위하여-145화 (145/176)

145화

신전에 들어갈 수 있게 되자 윈터가 함께 온 다섯 명의 호위 중 세 명에게 아이들을 맡기며 말했다.

“다 데리고 병원에 가. 누구 하나 시비 거는 새끼 있으면 일단 두들겨 패. 내가 책임질 테니까.”

그러자 카이슬 선수 출신인 셋이 동시에 어리둥절한 표정을 지었다.

“저희 셋이 다니는데 시비 걸 사람이 있겠습니까?”

“대표님 혼자 다니셔도 누가 대놓고 시비 걸진 않잖아요? 뒤로 여우 짓을 하면 모를까.”

세 사람의 말에 윈터가 짜증스레 빈정거렸다.

“이 비정상적으로 폐쇄적인 놈들이 무슨 짓을 할지 어떻게 알아. 아무튼 병원 가기 전에 시장에서 꼬마들 배부터 채워 둬.”

“네. 배 터지게 먹여 놓겠습니다. 아, 다녀오는 김에 술집 봐 둘까요? 알리카에 온 기념으로 한잔하시죠?”

“맞습니다. 우리가 이방인이 아닌 곳에 왔잖아요.”

“개소리 마. 난 여기서도 이방인이야.”

윈터가 성질을 내자 호위들이 움찔하고 입을 다물었다. 그 모습을 본 바이올렛이 다가와 다정히 물었다.

“여기 세 사람도 다 당신이 좋아하던 팀의 선수들인가요?”

“그렇지.”

바이올렛이 신기한 표정으로 세 사람을 번갈아 보다가 궁금했는지 물었다.

“그나저나 재작년에 같이 경기장에 갔을 땐 자주 진다고 들었던 것 같은데. 올해는 성적이 어땠나요?”

“갑자기 그건 왜?”

윈터가 한 대 얻어맞은 듯이 당황하며 물었다. 덩치 큰 네 사내의 시선에 둘러싸인 바이올렛이 두 손을 맞잡고 단정한 눈빛으로 대답했다.

“당신이 좋아하는 거잖아요. 관심을 가져 보려고요. 올해 성적은 어때요?”

“……리빌딩 중이야.”

“네?”

그러자 옆에서 다른 선수들도 씁쓸한 얼굴로 맞장구쳤다.

“맞습니다. 리빌딩 중이죠.”

“내년엔 잘할 겁니다…….”

그러더니 자리를 피하고 싶은 듯 아이들을 데리고 병원을 찾아 사라졌다. 바이올렛이 의아한 얼굴로 물었다.

“표정이 왜 그래요?”

그녀의 멋모르는 질문에 윈터가 대꾸했다.

“세상에 딱 두 가지 내 마음대로 절대 안 되는 게 우리 팀 성적이랑 당신이야.”

“그렇게 성적이 안 좋았나요?”

“상처받으니까 크게 말하지 말아 주겠어? 내가 직접 선수 교섭을 한 적까지 있는데도 이 망할 자식들이. 잠깐, 내가 그딴 팀 은퇴한 놈들에게 월급을 주고 있었네? 뭘 잘했다고! 돌아가면 전부 해고야!”

운동 경기 이야기가 나오자 안 그래도 거칠던 윈터의 말투가 더욱 거칠어져 욕설이 튀어나왔다. 바이올렛이 조금 웃고는 다정히 말했다.

“그래도 나는 비교적 당신 마음대로 움직여주지 않나요?”

“당신은 내 맘대로 되는 게 아니지. 내가 당신 맘대로 되는 거야. 주종이 반대잖아.”

윈터가 한탄하듯 대꾸하고는 신전 안으로 향했다.

알리카를 지배하는 다섯 샤먼 중 넷은 파누스처럼 혼혈을 일족으로 인정하지 않았지만 한 사람, 최근에 샤먼이 된 노더라는 청년만큼은 의견이 달랐다.

금빛이 도는 가는 밧줄로 긴 은발을 칭칭 올려 묶은 그 개방주의자 청년, 노더가 부부의 안내를 맡았다. 그가 앞장서며 거대한 돌 쟁반에 담겨 있는 ‘영원히 꺼지지 않는 불’에 이어 다음 설명을 이어 갔다.

“알고 계시겠지만 안 그래도 카닉 일족은 억압을 받고 있습니다. 그런데 이렇게 순혈만 고집하다니요. 혼혈과 카닉의 피가 없는 분들 사이에서 아이가 태어나지 않는 걸 해결할 생각은 않고, 저주라 설교하고 다닙니다.”

“우리가 아이를 낳으면 저주가 풀렸다고 떠들고 다녀.”

윈터가 말하자 노더가 고개를 끄덕이고 한숨을 쉬었다.

“이런 식으론 존속이 불가능합니다.”

“그럼 저 재수 없는 노인 네 명을 다 쫓아내고 네놈이 수장을 먹지 그래?”

“재수 없는 노인이라니요, 제발 말 좀 높여 주시면……. 아무튼 샤먼은 한 분이 돌아가실 때까지 자리가 나지 않아 아직은 어렵습니다.”

“하나 정도는 처리해도 모를 것 같은데. 대의를 위해서 희생시켜.”

윈터의 극단적인 제시에 노더가 한숨을 푹 쉬었다. 말려 줬으면 싶었는지 노더가 바이올렛을 보았지만 그녀는 원래도 두리번거리지 않는 편인 데다 유난히 더 두 사람의 대화에 관여하지 않고 있었다.

그녀가 추위에 떨고 있는 아이들을 마주쳤을 때, 다섯 살의 윈터가 그 위를 스쳐 지나갔다.

남편이 칼슨 로우의 총을 맞고 쓰러지던 날, 바이올렛은 그를 이렇게 자라게 한 모든 이들을 원망했었다. 그리고 여기 알리카의 샤먼들은 윈터가 버려지는 것에 지대한 영향을 끼쳤다.

곧 세 사람은 붉은 융단을 바른 문 앞에 도착했다.

“이곳이 불의 신을 모시는 곳입니다. 여기에 들어가시면 불의 신께서 두 분의 질문들에 답을 해 주실 겁니다.”

노더가 그렇게 말한 후 문을 열었는데, 안은 완벽한 암흑이었다. 윈터가 욱해서 노더에게 소리쳤다.

“저딴 곳에 내 아내를 어떻게 들여보내!”

“부, 불의 신께서 돌보시는 안전한 곳입니다!”

“닥쳐, 이 범죄자 같은 새끼야! 불을 켜든지 뭐라도 해야 할 거 아냐!”

“다들 그냥 들어가시는데 저한테 왜 그러시는……. 바, 밖에 저렇게 무서운 호위분들도 버티고 계시지 않습니까! 심지어 신전에 총을 들고 오시다니요! 불의 신을 얼마나 우습게 아시는 겁니까!”

“그럼 내가 너희 같은 새끼들을 믿고 그냥 들어올 줄 알아! 불의 신 같은 소리 하고 있네, 우습다 못해 한심하기 짝이 없어!”

알리카에 온 이후부터 성격이 한층 더 나빠진 윈터가 당장에라도 나머지 네 샤먼을 찾아가 두들겨 팰 것같이 굴자 바이올렛이 드디어 그를 달래기 시작했다.

“무섭지 않아요. 같이 들어갈 건데.”

“신전을 뭐 이따위로 만들어 가지고!”

“다른 불을 켜놓으면 불의 신이 오셨을 때 알아보기 어려운 게 아닐까요?”

바이올렛의 말이 합리적이라 느낀 건지, 아니면 그냥 아내가 달래서인지 흥분한 말처럼 날뛰던 윈터가 곧 진정을 되찾았다. 그러더니 노더를 확 밀쳐 버린 뒤 바이올렛의 손을 잡고 안으로 들어섰다.

문이 닫히고, 두 사람은 완전한 암흑 속에 갇혔다. 손을 꼭 잡고 있지 않았다면 모든 감각을 상실할 것 같은 어둠이었다.

“윈터.”

“무서워? 나갈까?”

“아뇨. 다만 신기하네요. 이곳이라면 정말로, 정말로 불이 소중하게 느껴지겠어요.”

“아, 우리 공주님은 어떻게 이딴 상황에서도 장점을 찾아내.”

윈터가 투덜거려 놓고 웃음소릴 내더니 아내를 부드럽게 끌어안았다. 그 순간, 두 사람은 서로의 몸이 바뀐 것을 깨달았다.

“어머, 몸이 바뀌었네요.”

“내 목소리로 그런 고상한 말씨를 쓰니 기분이 이상하군.”

“그래요? 난 내 목소리가 그렇게 거칠어지면 재미있던데. 아, 다시 돌아왔네요.”

두 사람이 이야기하고 있을 때였다. 잡고 있던 손이 사라지는 것을 느낀 두 사람이 다급하게 서로를 찾았다.

“뭐, 뭐야. 손 놓은 거야?”

“아뇨. 당신이 놓은 게 아니었어요?”

두 사람은 당황하며 서로의 목소리가 들리는 곳으로 걸었으나 이상하게 그 목소리들은 멀어지기만 할 뿐이었다. 그리고 어느 순간 두 사람은 제 스스로의 존재를 잊어버리게 만드는 어둠 속으로 빨려 들어갔다.

*

아침 일찍 눈을 뜬 윈터는 이상하게도 잠자리가 뒤숭숭하다는 생각을 했다. 라크라운드 수도 호텔의 침대는 어디 내놔도 손색이 없는, 나라 안에서 가장 좋은 침대였다. 그럼에도 이렇게 아침이 불편하게 느껴지는 것이 이상했다.

조금 열린 창문으로 바람이 흘러 들어와 커튼을 스치고 그의 머리칼을 흔들었다.

“개 같네.”

윈터가 투덜거리며 상체를 일으키는데, 문이 열렸다.

“대표님, 일어나셨죠?”

“어. 커피 가져와.”

“네.”

하옐이 윈터가 기상한 걸 확인하고 바로 커피를 주문한 뒤 정장 한 벌을 가져다주었다. 그가 걱정스레 말했다.

“그리고 제발 부탁이니 오늘은 넥타이 좀 해 주세요. 공적인 자리잖아요.”

“내가 알아서 할 테니 닥쳐.”

윈터가 신경질을 내고 그 자리에서 빠르게 옷을 갈아입었다. 곧이어 하녀가 가져다준 커피에 하옐이 설탕을 듬뿍 넣어 건네자 그것을 한 번에 들이켰다.

준비를 마친 윈터의 옆에서 하옐이 로월 쪽에서 원두의 그램당 가격을 30라운드씩 올렸다는 터무니없는 소리를 하는데도 집중이 잘 되지 않았다.

제가 뭔가 놓치고 있다는 기분이 들었다. 분명히, 이것보다 더 중요한데 잊어버린 일이 있을 것이다.

윈터가 뒷목을 문지르고 있을 때, 하옐이 버럭 소리쳤다.

“대표님! 제 말 듣고 계세요? 또 숙취세요?”

“회의 취소해.”

“예, 예에? 안 돼요!”

“취소해. 다음번에 다시 회의할 때 내가 바이델린으로 가겠다고 해.”

윈터가 신경질적으로 말하고 제가 잊어버린 것을 알아내려 머리를 굴렸다.

도대체 뭐지. 뭘 잊어버린 거지.

그렇게 생각하던 그는 제가 다시 수도로 오던 날 보았던 아내의 얼굴을 무심코 떠올렸다.

여느 때처럼 공주님스럽기 짝이 없어서는 맨발이었다. 이상하게, 머리끝부터 발끝까지 다 공주님인데 딱 발만 그랬다.

“……가지가지 하는군.”

그게 집을 나서던 순간부터 거슬리더니 이 중요한 회의를 앞에 두고 다시 거슬리기 시작했다.

그 공주님은 정말이지 욕이 나올 정도로 꽉 막힌 사람이었다. 재산이 싹 다 날아갔는데도 언제나 착장을 반듯하게 했다. 정황이 안 좋다고 생각하는지 패물을 사거나 하지는 않았지만 제가 본래 가지고 있는 것을 요리조리 잘 맞춰 가며 알차게 사용했다.

그런데 맨발이었다는 것이다.

윈터가 산만하게 방을 걸어 다니다가 버럭 성질을 내며 욕설을 퍼부었다. 그러더니 하옐에게 말했다.

“남부에 다녀오지.”

“예, 예? 무슨 소리세요, 갑자기?”

“그냥 기분이 안 좋아.”

“이건 그렇다고 해도 다른 일정은요!”

“부대표들 시켜.”

그러더니 더 설명도 없이 객실을 그냥 나섰다. 하옐이 뒤에서 울상이 되어 소리쳤지만, 무시하고 곧장 기차역으로 향했다.

다행히 바로 기차가 있어 일곱 시간 꼬박 타고 남부에 도착했다. 아침 일찍 출발한 탓에 집에 도착했을 때도 점심시간을 조금 넘긴 시간이었다.

윈터는 집에 들어서자마자 곧바로 하녀장을 발견하고 물었다.

“아내 어디 있어?”

결혼 후 거의 처음으로 윈터가 아내의 행방을 묻자 하녀장이 당혹스러워하며 대답했다.

“작은 마님이요? 아직 안 일어나신 것 같은데요.”

“같은데요? 장난해?”

“죄, 죄송합니다! 안 일어나셨어요!”

“지금 시간이 몇 신데…… 아, 젠장.”

오후까지 빈둥거리는 공주님 상태 확인하려고 수도에서 달려온 제가 한심해서 윈터는 순간 기운이 쭉 빠지는 것을 느꼈다.

욕이 치밀었지만 여기까지 온 게 아까우니 그만 자라고 한 소리 해 주고 가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 곧바로 계단을 올랐다. 아내의 방에 자주 가지 않아서 이제야 알게 된 건데, 그녀의 방은 이 저택 안주인치고 좀 외진 곳에 있었다.

“취향인가 보지. 나랑 멀리 있는 게 좋거나. 그 공주님 마음을 내가 어떻게 알겠어.”

윈터가 혼잣말로 빈정거리며 아내의 방 문을 두들겼다.

“이봐.”

그러나 안에서는 대답이 없었고, 그 이후 몇 번 더 두들겨도 답이 없었다.

이 정도면 그의 성격에 꽤 예의를 차려 준 편이었다. 윈터가 결국 문을 쾅 내리쳐 열고 안으로 들어갔다.

“술이라도 마셨어? 왜 대답을…….”

윈터가 자리에 멈춰 섰다.

바이올렛은 천장을 보고 반듯한 자세로 누워 있었고, 바닥에는 빈 약통과 술병이 뒹굴고 있었다.

“공주님. 이봐.”

윈터가 아내를 부르며 다가갔으나 대답이 없었다. 윈터의 걸음이 조금 급해졌다. 서둘러 걸어가 바이올렛을 흔들었다.

“바이올렛. 눈 좀 떠, 바이올렛 블루밍.”

그녀는 일어나지 않았고, 숨도 쉬지 않았으며, 온기도 느껴지지 않았다.

당신의 이해를 돕기 위하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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