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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신의 이해를 돕기 위하여-130화 (130/176)

130화

두 사람이 곧 건물에 들어섰다. 바이올렛은 처음 와 보는 건물이었다. 안에서는 커피 향이 가득 풍겨 오고 있었다.

“대표님?”

안에 서 있던 중년 여자가 알아보자 윈터가 말했다.

“웰더, 아내가 비를 맞았으니 따듯한 것 좀 가져와. 그리고 마차가 극장 문 앞에 있으니 여기로 불러. 옷을 갈아입고 돌아가지.”

“그러지요. 아가, 너는 나가서 마차를 찾아오렴.”

웰더가 직원 하나를 불러 말하자, 직원이 우산을 펼쳐 들고 얼른 그곳을 나섰다. 바이올렛이 윈터가 안내해 준 의자에 앉아 물었다.

“여기는 뭐 하는 곳이죠?”

“수입한 커피 원두를 다루는 곳.”

“그렇군요…….”

바이올렛이 따듯한 분위기의 건물을 둘러보았다. 비가 와서 커피 향이 더욱 진하게 느껴졌고, 원두가 가득가득 쌓여 있는 모습이 이색적이었다.

잠시 후, 웰더가 두 사람이 앉아 있는 작은 공간에 우유와 커피를 내려놓았다.

“고맙소.”

바이올렛이 감사의 인사를 하자 웰더가 고개를 살짝 숙인 후 떠났다.

잔을 들어 커피를 한 모금 마신 바이올렛이 행복한 표정을 짓자 윈터가 물었다.

“맛있지?”

“늘 커피를 내려 주는 저택 사람들에겐 미안하지만…… 이렇게 맛있는 커피는 처음이에요.”

“당연하지. 웰더는 세계 최고의 커피 전문가야. 여기서 끊임없이 연구를 거듭하지. 워낙 처박혀 사는 걸 좋아해서 저 여자를 고용하려고 저 여자가 살던 곳과 똑같은 환경까지 만들어 줬잖아.”

“그래서 이렇게 특별한 공간이 생긴 거였군요.”

윈터의 말에 바이올렛이 흐뭇한 표정을 지었다. 윈터가 픽 웃으며 말했다.

“당신은 참 이런 얘기를 재미있어해.”

“이런 얘기요?”

“처음엔 성공담을 좋아한다고 생각했는데 아니야. 잘 보니 당신이 좋아하는 이야기는 내가 다른 사람의 마음을 산 이야기더군.”

“아…… 내가 그랬군요?”

바이올렛이 뒤늦게 깨달았는지 눈을 동그랗게 떴다. 윈터가 고개를 끄덕이고 말을 이었다.

“하여튼 독특한 공주님이야.”

“그래도…… 재미있는걸요. 궁금하고.”

“뭐가 궁금해?”

“당신이 어떻게 살아왔는지. 당신이 외로울 때 누가 옆에 있어 줘서 이렇게 성공했는지 알고 싶어요.”

“하옐은 내가 인재를 납치해 오는 거라고 하던데.”

“살짝 그래 보일 때도 있지만요.”

바이올렛이 그리 말하고는 농담이었는지 입을 가리고 웃었다.

그런 그녀가 너무나 사랑스러워서 윈터는 마음이 녹아내리는 기분이 들었다. 내가 전생에 무슨 좋은 일을 해서, 현생을 이렇게 개판으로 살았는데도 천사와 결혼하게 되었나…….

그는 진지하게 생각하며 턱을 괴고 사뭇 행복한 표정으로 아내를 바라보았다. 그러다 캐서린이 제 아내를 때렸던 게 순간 생각이 나서 손으로 그녀의 뺨을 감쌌다.

이렇게 별것 아닌 이야기와 커피 한 잔에 행복해하는 그녀에게 폭력을 휘둘렀다. 물론 더 이전에 그녀를 벽장에 가두었던 것도 결코 잊지 않고 있었다.

저는 감히 꽉 쥐는 것도 두려워하는 제 소중한 공주님이었다.

이제 그의 인생은 바이올렛을 위한 것. 그는 아내를 위해서라면 무슨 짓이든 할 수 있었다.

윈터가 바이올렛의 뺨에서 손을 떼고 이번엔 그녀의 보드라운 손을 만지작거리며 말을 이었다.

“당신은 귀한 줄 아는데 귀족들은 귀한 줄 모르는 게 있어.”

“그게 뭔데요?”

“노동력.”

“노동력?”

“귀족들은 어려서부터 권위만으로도 사람을 부려 왔기 때문에 노동력을 당연하게 알거든. 하지만 지금은 상황이 꽤 많이 변했지.”

윈터가 그녀의 뺨에서 눈을 떼지 않고 말을 이었다.

“워호슨 놈들은 그걸 몰라. 그러니 어디 한 번 두고 보자고. 그 우습고 천하게 여기던 사람들 없이 남부 꼴이 얼마나 잘 돌아가는지.”

바이올렛은 윈터가 하려는 바에 대해 잘 예상하지 못했으나, 제 뺨을 바라보는 그의 시선의 의미만큼은 이해했다.

그러다 보니 제가 같이 뺨을 때렸다는데도 제 손이 괜찮나, 살피던 윈터가 떠올랐다.

그걸 떠올리니 이상하게 입을 맞추고 싶어졌고, 유혹하는 법을 잘 모르는 바이올렛은 그저 제가 원하는 대로 몸을 기울여 그의 입술에 입을 맞추는 것밖에 하지 못했다.

닿았던 부드러운 입술이 떨어지고, 두 사람의 눈빛이 얽혔다. 윈터가 중얼거렸다.

“이래놓고 집 가면 손만 잡고 잘 거지.”

“환자니까요.”

그녀가 대답하고는 빙그레 미소를 지었다. 그 미소에 윈터가 괴롭고도 행복한 표정을 지었다.

두 사람은 시간 가는 줄 모르고 시간을 보냈다. 그리고 얼마 뒤, 바이올렛이 비를 맞았다는 소식에 갈아입을 옷을 가져온 젠이 차마 그 분위기를 깨지도 못하고, 동시에 제 작은 마님의 건강이 걱정되어 발을 동동 구르다가 결국 안으로 들어오며 데이트는 끝이 났다.

*

가을비에 흠뻑 젖은 바이올렛은 피로를 풀기 위해 목욕이 끝나고도 욕조에서 길게 몸을 담그고 있었다.

젖은 옷을 계속 입고 있었다면 감기에 걸릴 뻔했다. 몸이 차가운 바이올렛을 위해 젠은 욕조에 꽃잎을 듬뿍 띄운 후 촉촉이 젖은 머리칼을 말끔히 틀어 올려 수건으로 감싸 놓고 욕실을 나갔다.

긴 하루의 피로를 따듯한 물에 풀어내고 있을 때, 욕조를 둘러싼 커튼 너머에서 윈터의 목소리가 들렸다.

“다 씻었어?”

“아직…… 어, 어딜 들어와요!”

커튼이 휙 열리는 바람에 기겁한 바이올렛이 두 팔로 몸을 가렸다. 비록 꽃잎이 수북이 쌓여 있어 몸이 보이는 건 아니었지만, 그래도 당황스러운 건 마찬가지였다.

멋대로 들어온 윈터는 바이올렛이 너무 욕조에 있어 탈진하지 않도록 목을 축이던 물을 멋대로 벌컥벌컥 들이켰다.

당황한 바이올렛의 늘씬한 목선을 따라 물방울이 미끄러졌다.

바이올렛이 물 잔을 내려놓는 윈터에게 말했다.

“나가요.”

“왜 이렇게 쫓아내지 못해 안달이야. 목욕 시중 들어 주러 왔는데.”

윈터가 장난치며 소매까지 걷어 보였다. 바이올렛이 말했다.

“다 씻었어요. 나갈 거였어요.”

“그러셨군.”

윈터가 커다란 수건을 꺼내 펼쳤다.

“자, 공주님. 나가시죠?”

그의 능청에 바이올렛이 인상을 썼다.

“눈 감아요.”

그녀의 명령에 윈터가 눈을 감았다. 그 모습을 확인한 바이올렛이 하도 목욕이 길어져 노곤히 풀어진 몸을 욕조에서 일으켰다.

바이올렛이 수건에 닿자 윈터가 눈을 감은 상태로 아내의 몸에 수건을 둘러 주었다.

그 즉시 바이올렛이 윈터가 저를 등지게 그를 돌려버리고는 몸의 물기를 알아서 닦아내며 말했다.

“환자 취급이 싫은 마음은 알겠어요. 하지만 아직 안 돼요.”

“제발.”

“그렇게 억울하면 빨리 회복해요.”

바이올렛이 걱정스레 말하고는 물기를 다 닦아내고 평소에는 젠이 발라주는 크림을 발랐다.

그리고 잠옷까지 다 입고 난 후에야 윈터의 등을 톡톡 건드렸다.

“다 됐어요.”

다시 바이올렛 쪽을 본 윈터의 표정이 한 번 더 일그러졌다.

부끄러움에 뽀얀 뺨이 붉어져, 물이 덜 말라 촉촉한 머리칼과 속눈썹이 야릇하게 보였다.

그녀의 보석 같은 두 눈을 마주하고 있으려니 울리고 싶어 몸이 달았다. 윈터는 목울대가 크게 들썩이게 침을 삼키며 급한 성질머리를 가라앉혔다.

“다친 것도 서러운데 어떻게 잠자리도 못하게 해?”

“억울하면 총 앞에 뛰어들지 말아요.”

“안 돼. 난 시간을 되돌려도 거기 뛰어들 거야.”

그의 퉁명스러운 대꾸에 바이올렛의 말문이 막혔다.

아직 상처가 다 아물지도 않았는데, 정말 미치도록 아팠을 텐데도 저렇게 쉽게 말할 수 있는 게 새삼 신기했다.

윈터가 제 말에 머뭇거리는 바이올렛을 발견하곤 기회를 잡았다는 듯 능청을 떨었다.

“아프니까 오히려 잊게 해 줘야지. 우리 공주님은 라크라운드 시민을 사랑하시잖아?”

“또 공주님…….”

“정정하지. 우리 부인께서는 날 사랑하잖아?”

귀에 닿는 그의 목소리가 달아서, 바이올렛은 허락도 부정도 못하고 입술을 깨물었다.

윈터가 태연히 바이올렛의 두 손을 당겨와 제 허리를 감게 했다. 강한 힘이 느껴지는 등근육과 셔츠에 감싸인 늘씬한 허리선으로 저를 유혹하는 걸 안 바이올렛이 원망스레 말했다.

“아직 허락 안했어요.”

“허락한 눈빛인데.”

“……거짓말.”

“으응?”

그가 애교 부리듯 고개를 기울이자 바이올렛이 마지못한 척 고개를 끄덕였다.

*

욕실에서 나와서 침대에서도 몇 번을 뒹굴고 나니 총격 사건 이후 바이올렛과 윈터 사이에 있던 모든 벽이 사라졌다.

바이올렛의 침실에는 그녀가 욕조에 있는 사이 윈터가 사다 놓은 꽃다발이 있었고, 그 꽃다발 덕에 벅차게 매달려 오는 윈터를 얄미워하지 않을 수 있었다.

윈터가 지쳐서 제 품에 안겨 새근새근 숨만 쉬는 바이올렛에게 말했다.

“알리카에 한번 가자.”

“알리카에요?”

하옐에게 혼혈은 못 들어간다는 이야기를 들었던지라 바이올렛이 머뭇거리자 윈터가 말을 이었다.

“할린 그 녀석이 와 보라고 하더군. 그 망할 순혈 놈들, 망해 봐야 정신을 차린다고 이제야 배척만 해서는 못 버틴다는 걸 안 거지.”

“으음…….”

“나랑 같이 가 보자. 궁금했어. 친어머니가 사는 곳.”

아무리 버림받음에 괴로웠어도 그리움이 남았던 모양이었다.

“가서 뭐가 하고 싶어요?”

바이올렛이 힘이 되어 줄 생각에 안간힘을 내서 눈을 떠 윈터를 바라보고 다정히 물었다. 그러자 윈터가 신중한 표정을 지었다. 우선 심장이며 반려며, 이게 뭔지 알고 싶었다. 무엇보다 저를 살리려 대가를 치른 게 분명한 바이올렛의 안전을 확인해야 했다. 그러나 그것에 대해 말할 수는 없으니, 사업적인 부분을 솔직하게 고백하기로 했다.

“알리카에 도착하면 우선 개발이 가능한지 확인하고.”

“…….”

“다음으로 토지 매매가 가능한지 확인한 다음, 전부 사서 그 망할 일족 놈들을 싹 내쫓겠어.”

그렇게 말한 윈터가 느긋하게 웃자 바이올렛이 다급하게 말했다.

“윈터, 당신을 아이 취급하고 싶지 않지만 지금은 어쩔 수 없네요. 그러면 못써요.”

“왜 안 돼? 다섯 살짜리도 혼혈은 안 들여보내 주는 쓰레기 같은 곳인데.”

다른 사람이 말하면 농담이겠지만 이 남자에게 가면 농담이 아니었다. 게다가 지금 말하고 있는 윈터의 눈빛에는 일말의 장난기도 없었다.

갑자기 카닉 일족의 고향을 등에 업게 된 바이올렛이 쑤시는 몸을 일으켜 자리에 앉았다.

“애초에 북쪽 끝에 있어서 개발할 가치가 없을 것 같네요.”

“혹시 광물이라도 나올지 누가 알아.”

“가치 있는 광물이 나오면 땅을 안 팔겠죠?”

“가치 있는 광물이 나오는 걸 인지했다면 이방인들이 이것보단 잘살았겠지?”

윈터의 냉정한 말에 바이올렛은 할 말이 없어졌다. 이러다 정말 알리카를 사서 거기 사람들이 다 쫓겨나는 건 아닐까.

그녀가 염려하고 있는데 윈터가 바이올렛을 다시 끌어안아 재우려는 듯 토닥이며 말을 이었다.

“너무 염려하지 마. 혹시 광물이 나와도 알리카를 사는 건 한참 뒤의 일이니까. 블루밍 가문부터 처리해야지.”

“……어쨌든 사긴 사겠다는 건가요?”

바이올렛이 충격받은 표정을 지었다. 윈터는 제가 그를 떠났어도 제게 단 한 번도 칼날, 심지어는 날카로운 것 비슷한 것도 들이댄 적이 없었다.

그녀는 윈터가 저와 ‘저를 제외한 모든 것’에 가지는 기준치가 완전히 다르다는 걸 조금씩 깨달았다.

당신의 이해를 돕기 위하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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