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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신의 이해를 돕기 위하여-115화 (115/176)
  • 115화

    바이올렛은 두 사람이 재회한 이후에는 임신을 목적으로 잠자리를 한 적이 없다는 것을 떠올렸다.

    그러므로 가임기와 동떨어진 시기에 잠자리를 해 왔었는데, 그녀의 머릿속으로 계산해 보니 지금이 딱 가임기였다.

    그녀는 할린이 두 사람 사이에서 아이가 태어날 가능성에 대하여, 윈터가 아닌 제게만 말한 이유를 이해했다.

    윈터는 그 사실을 알게 되어도 전혀 기뻐하지 않을 것이 분명했다. 오히려 그 희망 고문 때문에 죽어 갈지도 모른다.

    게다가 바이올렛에 비해 그는 참을성이 부족했다. 매번 임신을 했는지 확인했다가 실망하기를 반복할 거라 생각하니, 윈터가 그 사실을 모르게 하는 것이 나아 보였다.

    그런 실망은 저 혼자 하는 것으로 족했다.

    바이올렛이 머뭇거리다가 살며시 손을 뻗어 노를 쥔 윈터의 손을 감쌌다.

    그러자 윈터가 물었다.

    “아까부터 무슨 할 말 있어?”

    그러자 바이올렛이 머뭇거리더니 하려던 말 대신 딴소리를 내놓았다.

    “나도 노를 저어 봐도 돼요?”

    “안 될 것 없지.”

    윈터가 그리 말하고는 바이올렛 방향으로 배에 달린 고리에 걸려 있는 노의 손잡이를 건네주었다.

    “뒤로 저을 때는 이렇게 각도를 맞춰서 젓는 거야.”

    “아, 그렇군요.”

    바이올렛은 제 스스로에게 약간 자괴감을 느끼며 노를 받아 들었다.

    그래도 받은 김에 힘껏 노를 당겨 보니 배가 앞으로 나갔다. 바이올렛이 신기해하며 눈을 동그랗게 떴다.

    “앞으로 가네요?”

    “생각보단 힘이 있네.”

    “그렇다니까요. 정말 누굴 약골로 알아요?”

    “그렇다고 당신이 약골이 아닌 건 아니지.”

    티격태격하며 몇 번 더 노를 저어 보니 배가 호수 위를 미끄러졌다. 꽃나무 구석구석을 보려고 노를 젓는 것이 재미있었다.

    윈터는 힘들어하면서도 동시에 즐거워 어쩔 줄 모르는 바이올렛이 귀여웠는지 고개를 젖히고 유쾌하게 웃었다.

    “처음 놀러 나온 어린애 같군.”

    “노를 저어 보는 건 정말 처음인걸요?”

    “이제 그만하고 줘. 죄책감 드니까.”

    “여기요.”

    바이올렛이 노를 돌려주었다. 그는 다시 노를 저었고, 바이올렛은 행복하게 꽃구경을 즐겼다.

    향기가 진동을 하는 호수 위를 노니는 것은 꿈같은 일이었다. 게다가 윈터 역시 이 데이트가 무척이나 즐거운 듯했다.

    황홀한 기분으로 호수 한 바퀴를 돌고 나서 두 사람은 다시 레이크하우스로 돌아왔다.

    꽤 오래 노를 저었는데 윈터는 전혀 힘들지 않아 보였다. 바이올렛은 제가 정말 약골인 건지, 저 남자가 지나치게 강골인 건지 분간이 가지 않았다. 레이크하우스로 들어가 보니 이곳 직원들이 이미 그들의 짐을 다 정리해 놓은 후였다.

    이 집에서 가장 큰 방이 2층 창가 침실이었다. 여기 오기 전부터 침실을 함께 쓰기로 정해놓은 게 그나마 다행이었다. 전망을 보기 위해 바이올렛이 침실 발코니에 서자 윈터가 말했다.

    “내일 아침이면 카닉사 놈들이 올 거야. 공동 부대표 둘과 하옐까지 다 와서 이 레이크하우스에서 머물며 회의를 할 예정이지.”

    그러자 바이올렛이 고개를 끄덕였다.

    “이야기가 잘 풀렸으면 좋겠군요.”

    그렇게 말한 바이올렛이 발코니에서 돌아오며 커튼을 잘 닫았다. 윈터가 침실에 놓인 테이블 앞에 앉아 아내를 주시하며 말했다.

    “욕실이 두 개인데 2층 욕실이 아주 좋아. 큰 욕조가 있거든.”

    바이올렛이 발코니를 등지고 서서 고개를 끄덕였다.

    “이미 거기 목욕물 준비해 달라고 했어요. 하옐이 미니어처를 가져다주어서 봐 뒀거든요.”

    “그랬군. 하여튼 그 망할 놈은 요즘 들어 나보다 당신을 훨씬 잘 따른다니까.”

    바이올렛은 투덜거리는 윈터를 가만히 바라보았다. 내일 카닉사 사람들까지 와 버리면 기회는 오늘뿐이었다.

    그때 이 레이크하우스의 관리인이 문을 두드렸다.

    “목욕물 준비해 두었습니다.”

    “아, 고맙네.”

    바이올렛이 대답했다.

    다시 윈터를 돌아본 바이올렛은 제가 읽은 책과 제 상식의 절충안을 선택했다.

    드디어 결심한 바이올렛이 윈터의 앞에 서더니 하늘거리는 블라우스의 리본을 풀었다.

    “……뭐 하는 거야?”

    그 모습을 발견한 윈터의 입매가 빠르게 굳었다.

    바이올렛이 블라우스를 벗기까지 하자 그는 뭔가 큰 문제에 직면한 사람 같은 얼굴이 되었다. 그녀가 침착한 목소리로 말했다.

    “같이 목욕해도 돼요.”

    “당신 누구야? 혹시 나 말고 다른 사람이랑 몸이 바뀐 건가?”

    “그렇지 않아요. 책에서 읽은 거예요.”

    윈터가 꼼짝도 안 하고 얼어서 제 얼굴만 바라보자 바이올렛이 난감한 표정을 지으며 블라우스를 집어 들었다.

    “미안해요. 당황스러웠다면 옷 다시 입을게요.”

    “당황스럽지만 입지 마.”

    말을 마친 윈터가 그녀의 손에서 블라우스를 뺏어 던지고 그녀 앞에 바짝 붙어 섰다. 아내가 학습 능력이 좋은 건 알았지만 이런 건 전혀 예상을 하지 못했다.

    윈터가 한 손으로 그녀의 치마 리본을 당겨 풀어내며 속옷까지 벗기려 하자 바이올렛이 서둘러 그의 손을 밀어냈다.

    “뭐 하는 거예요?”

    “같이 목욕하자며.”

    “우선 수건으로 몸을 두르고 벗을게요. 당신도 그렇게 해요.”

    그러자 윈터가 허리를 숙여 아내와 눈을 마주치며 물었다.

    “그러고 욕조에 들어가자고?”

    “그러는 게 맞겠죠. 그런데 왜 그런 표정이죠?”

    “난 같이 목욕하자는 걸 당신 몸을 구석구석 만져도 된다는 말로 알아들었거든.”

    “그, 그게 어떻게 그 말이 되죠?”

    “원래 같은 말이야. 당신이 허락했으니 말 바꾸지 마.”

    바이올렛이 윈터의 손에 이끌려 욕실로 향하며 당황스러운 표정을 지었다.

    *

    바이올렛은 제 말이 왜곡되었다는 것을 욕실에 들어가는 순간부터 알았다.

    목욕을 너무 오래 해 바이올렛은 욕실에서 나오자마자 침대에 쓰러졌다. 온몸 구석구석 남편의 입술이며 손이 닿지 않았던 곳이 없어 사방에서 열이 나는 기분이었다.

    언제 잠들었는지, 바이올렛이 다시 눈을 뜬 것은 아침이었다.

    “……세상에, 하루가 어떻게 끝난 거람.”

    그녀가 혼잣말하며 옆을 보니 윈터가 없었다.

    아침 챙기러 갔나 보구나, 바이올렛이 가운을 챙겨 입으며 생각하다가 뒤늦게 ‘아’ 하고 탄성했다.

    “너무 받기만 하나?”

    그러나 뒤이어 생각해 보니 저만 이렇게 진이 쪽 빠졌는데 윈터가 챙기는 게 당연했다.

    그렇게 생각을 정리한 사이 윈터가 아이스크림을 가지고 들어왔다. 그는 테이블을 들어다 침대 앞에 둔 뒤 거기 아이스크림을 올렸다. 그러고는 허리를 숙여 붉어진 바이올렛의 눈가에 입을 맞췄다.

    “그러게 왜 울어.”

    “그러게, 라니. 그게 무슨 말이에요?”

    “당신이 우니까…….”

    “무례해지더군요. 더더욱.”

    더더욱 바이올렛을 미치게 한 것은 침대 위에서는 그가 아무리 무례하게 굴어도 싫지가 않다는 사실이었다. 다행히 윈터가 바이올렛이 받아들일 수 있는 단계를 지켰기 때문이었고, 그 단계에 따라서 바이올렛도 조금씩 더, 황홀함에 가까워지는 감정들을 느끼게 되었기 때문이었다.

    애초에 바이올렛은 관계 중에 저를 끌어안아 귓가에서 들리는 윈터의 참는 듯한 신음 소리를 좋아했다. 그 큰 덩치로 저를 어찌하지 못해 안달이 나 있는 것이 묘하게 그녀의 정복욕을 자극했다.

    자주는 체력이 안 되겠지만 종종이라면 괜찮을 것 같았다. 어차피 윈터는 다음 날 움직이기 힘들어하는 바이올렛을 웬만큼 충직한 하인보다 더 극진히 모셨다.

    바이올렛이 아이스크림을 한 숟갈 크게 떠서 열이 남은 입에 넣었다. 진한 초콜릿 아이스크림이 입에서 녹았다.

    맛있게 먹는 아내를 즐거운 얼굴로 바라보던 윈터가 미련 가득한 목소리로 말했다.

    “이 망할 카닉사 놈들, 오지 말라고 할 걸 그랬어. 아니면 내일 오든지.”

    “그러게요.”

    “……그러게요?”

    “하지만 그럼 안 돼요. 중요한 회의를 해야 하니까.”

    바이올렛이 금방 진정하고 현실적으로 말하자 윈터가 사뭇 심각한 표정으로 상체를 숙여 그녀에게 얼굴을 가까이 했다.

    “그러게요? 그렇게 나랑 둘이만 있고 싶어, 우리 공주님?”

    “당신이 먼저 말했잖아요.”

    “난 늘 당신과 둘만 있고 싶어.”

    윈터가 태연히 말하고도 대답을 바라는 듯 그녀를 빤히 보았다. 바이올렛이 한 소리 하려다가 빨개진 그의 귀를 발견하고 손을 뻗었다.

    “귀가 빨개요.”

    “어?”

    “부끄러워요? 나도 둘만 있고 싶다고 해서?”

    전세가 역전되어 그녀가 묻자 윈터가 당황하며 몸을 뒤로 기댔다. 그리고 고개를 돌려 버리는데, 밝은 곳에서 보니 그의 목덜미까지 벌게져 있었다. 바이올렛은 그게 낯설었고, 그런 것을 놀리는 편이 아니었으므로 별말 없이 아이스크림을 내밀었다.

    “왜 안 먹어요, 당신 단 거 좋아하잖아요.”

    그러자 윈터가 그녀 쪽을 보더니 두 손으로 얼굴을 감싸며 중얼거렸다.

    “젠장, 진짜로 열이 나네.”

    그의 커다란 손에 얼굴이 다 들어가 감춰졌다. 그러더니 그 열을 식히려는 듯 아이스크림을 끌어당겨 숟가락으로 크게 떠서 먹기 시작했다.

    그런 그의 낯선 행동에 바이올렛은 덩달아 부끄러워져 저도 곧 아이스크림으로 시선을 돌렸다.

    *

    저녁 늦은 시간 공동 부대표 둘과 하옐이 도착했다.

    그들은 남는 방에 각자 짐을 풀고, 깊은 밤 1층 거실에 모였다.

    남부의 사업을 정리하겠다는 윈터의 선언 때문에 모이긴 했지만, 여기에는 작위 문제도 얽혀 있었고, 언제 터질지 모르는 에쉬의 행로에 대해서도 대비가 필요했다.

    만약 워호슨을 적으로 돌렸는데, 귀족사회 전체가 워호슨 편을 들고 나서면 고급호텔업을 하는 카닉사도 입장이 곤란해졌다.

    바이올렛 역시 이 일에 깊이 연관되어 있었기 때문에 소파 한편에 앉아 회의를 경청했다.

    팔을 한쪽 팔걸이에 걸친 윈터는 대각선에 앉아 잠을 쫓기 위해 거듭 커피를 들이켜는 바이올렛을 힐끔거리다 못 참고 말했다.

    “당신은 들어가지?”

    “괜찮아요.”

    “잘 시간 지났잖아.”

    “그래서 커피 마시고 있어요.”

    바이올렛이 잔을 들어 보이자 윈터가 못마땅한 얼굴로 혀를 찼다. 이글린이 그 모습에 놀라워하며 말했다.

    “대표님 정말 아내분께 꼼짝을 못 하시네요.”

    “닥쳐.”

    그러자 옆에서 하옐이 맞장구쳤다.

    “저희가 명령 안 들었으면 저 테이블 뒤집으셨을 거잖아요.”

    지금도 뒤집고 싶은 마음이 굴뚝같았지만, 바이올렛이 있는 관계로 그럴 수 없었다.

    그가 짜증을 감추지 못하고 바이올렛에게 물었다.

    “에쉬의 발표에 대한 당신 입장은 정했어? 생각할 시간이 더 필요해?”

    그러자 바이올렛이 잠시 생각하더니 커피잔을 내려놓으며 말했다.

    “네, 아무래도 국책은 내가 관여할 일이 아닌 것 같아요. 의회에서 결정할 일이니.”

    “당신답군.”

    “그리고 나와 마찬가지로, 에쉬 로렌스도 거기서 손을 떼야 한다고 생각해요.”

    그녀의 조용한 목소리에 네 사람의 눈동자가 전부 집중되었다.

    바이올렛이 말을 이었다.

    “그러려면 할 수 있는 한 에쉬가 가진 권력의 연결고리를 잘라내야겠죠.”

    그녀는 더 이상 제가 에쉬의 성공의 보상이 되기를 바라지 않았다.

    오히려 그의 성공가도를 막아서는 걸림돌이 되리라, 그녀는 마음먹었다.

    그녀는 제 성격답게 에쉬의 힘줄들을 잘라낼 계획을 차근차근 세워두었다.

    그러면서도 혹시 제가 사적인 복수심에 이러는 건 아닌가, 많은 고민을 했다.

    윈터가 마차에서 모처럼 참을성을 가지고 기다리던 날, 그녀가 한 고민은 그것이었다.

    며칠의 시간을 보낸 후, 그녀는 제 목표를 위해 그 정도 복수심은 섞여도 상관없다는 결론을 냈다.

    당신의 이해를 돕기 위하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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