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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신의 이해를 돕기 위하여-65화 (65/176)
  • 65화

    그의 능청에 작게 웃음이 터진 바이올렛의 눈꼬리가 휘어졌다. 윈터는 젠의 솜씨가 신기한지 단발로 만든 머리를 살피며 중얼거렸다.

    “그나저나 이런 것도 되는군. 신기하네.”

    “젠이 재주가 좋아요.”

    실컷 관찰하던 윈터가 팔짱을 끼라는 듯 제 팔을 내밀었다. 바이올렛이 부드럽게 감싸 잡자 윈터가 걸음을 옮기며 말했다.

    “어울리네.”

    “왜 하필 검은색 드레스예요?”

    “보석 비싼 거니까 돋보이라고.”

    “당신이 비싸다고 할 정도의 가격이군요. 잃어버릴까 봐 무섭네요.”

    “보험 들었어. 훔쳐 가면 보험사에서 산탄총을 들고 쫓아갈 테니 염려 마. 그보다 드레스가 마음에 안 들면 갈아입어. 호텔에 많으니까.”

    “많다니요?”

    “내가 많다고 했나? 무심코 과장했군. 한두 벌 있어.”

    윈터가 태연히 수습했다.

    바이올렛이 제 목걸이를 손으로 쓰다듬었다. 여러 색의 작은 다이아몬드 쉰여섯 개와 그 두 배 크기의 다이아몬드 일곱 개, 그리고 중간을 은으로 장식한 목걸이였다.

    많은 보석이 들어 있음에도 심플해 보였다. 또한 그녀의 어깨에 걸친 숄을 고정하는 브로치는 로렌스 가문의 위대한 업적을 세운 여성의 모습을 조각해 새긴 것으로, 바탕이 옥으로 되어 있었다.

    잠시 후, 두 사람은 술집이 있는 창고 같은 곳 앞에 멈춰 섰다.

    바이올렛이 작게 물었다.

    “이런 곳에 술집이 있어요?”

    “응.”

    윈터가 걸어가더니 검게 칠한 나무 문을 두들겼다. 다섯 번, 세 번, 두 번. 윈터가 두들기며 말했다.

    “이 숫자는 초대장에 적혀 있지.”

    “그렇군요?”

    바이올렛은 숨바꼭질이라도 하는 기분이 들어 조금 들떴다.

    잠시 후, 검은 문이 열리자 바이올렛의 입이 저절로 벌어졌다.

    문 안쪽은 밝고 흥겨웠으며, 카닉 일족의 특징인 회색 눈, 혹은 은발, 혹은 두 가지 특징을 다 가진 사람들로 가득했다.

    윈터가 바이올렛과 안으로 들어서자 다시 문이 닫혔다.

    윈터가 바이올렛을 향해 손을 내밀자 그녀가 숄을 벗어 주었다. 그는 숄을 팔에 걸치고 안으로 들어서서 옷을 관리하는 직원에게 맡겼다.

    한편 안으로 들어선 바이올렛은 제가 지금까지 봐 온 파티와는 무척 느낌이 다른 파티를 호기심 어린 눈으로 살폈다. 사람들은 제가 춤을 추고 싶은 곳에서 춤을 추었고, 앉고 싶은 곳에 앉았다.

    두 사람이 들어서자 몇몇이 퉁명스러운 얼굴로 다가왔다.

    “무슨 일로 왔소? 여기 뭐 뜯어먹을 게 있다고.”

    그들은 라크라운드의 말을 사용할 수 있었는데, 바이올렛은 처음 들어본 억양이었다. 윈터가 하찮다는 듯이 바라보며 비꼬았다.

    “뜯어먹힐 것도 없잖아. 알거지들이 노는 것만 좋아해선.”

    윈터가 그리 말하고는 확 사람들을 밀쳐 버렸다. 바이올렛이 대신 미안하다고 사과하고 그를 흘기며 말했다.

    “어떻게 이렇게 밉게 말할 수가 있는지 몰라요, 당신도.”

    “그럼 시비를 거는데 듣고만 있어? 불쾌하게.”

    “그보다 당신은 왜 저 사람들과 같은 억양으로 말해요? 당신은 라크라운드 남부 억양을 쓰잖아요.”

    그러자 윈터가 표정을 찡그리며 대꾸했다.

    “이렇게 안 하면 이상한 놈으로 봐. 차별받는 사람들이 남을 차별하지 않을 거라고 생각하면 오산이지.”

    그러더니 미리 잡아 둔 자리로 가 털썩 앉았다. 바이올렛은 보통의 신사들은 숙녀가 먼저 앉는 것을 확인하고 앉는다고 머릿속으로만 지적하며 저도 곁에 앉았다.

    윈터가 테이블에 놓인 메뉴판을 턱짓하며 물었다.

    “아는 음식 있어?”

    “음…… 아뇨. 처음 보는 이름들이네요. 카이온테…… 라고 읽나요?”

    “키온테.”

    “그렇군요.”

    바이올렛이 난처하게 고개를 끄덕이자 윈터가 픽 웃으며 말했다.

    “나도 종종 그래.”

    “네?”

    “전에 내가 양장점에서 저 파란색 격자를 달라고 했더니 나에게 라티카라고 교정해 주더군. 라티카란 놈이 개발한 거라나. 내가 알 게 뭐야. 당신은 구분할 수 있어?”

    “…….”

    바이올렛이 대답 없이 윈터를 보고만 있자 그가 어처구니없다는 듯 투덜거렸다.

    “하긴, 우리 공주님이 그런 걸 모르실 리가.”

    “파란색 격자를 라티카라고 불러요. 게니스 가문의 라티카란 사람이 유행시킨 거라. 그리고 주문은 도저히 모르겠으니까 당신이 자주 먹는 걸로 해 줘요.”

    바이올렛이 빠르게 설명한 후 곧바로 말을 돌리며 메뉴판을 윈터 쪽으로 밀었다.

    윈터는 우선 전통술부터 두 잔 주문했다.

    카닉 일족 전통술은 하얗고 불투명했다. 바이올렛이 한 모금을 홀짝 마시고 감탄했다.

    “달아요.”

    “그거 엄청 독하니까 다 마시지 마.”

    “전혀 독하지 않은 것 같은데.”

    “독하다니까. 속지 마. 카닉 일족 전통술은 다 독해.”

    “그렇군요.”

    바이올렛이 잔을 내려놓았다. 메뉴판을 들고 심각하게 고민하던 윈터가 물었다.

    “이국적인 걸로 시키자.”

    “이국적인 거요?”

    “응. 귀족들은 이국적인 거 좋아하잖아. 정작 이방인은 싫어하지만.”

    “맞는 말이네요.”

    바이올렛이 특별히 부정하지 않고 고개를 끄덕였다.

    잠시 고민하던 윈터가 웨이터에게 말했다.

    “이봐, 이싱을 하나 가져와.”

    “지, 진짜요? 우리한테 돈 한 푼 안 쓰시더니 무슨 일이십니까?”

    “네놈들에게 내 돈을 왜 써? 염치없는 건 일족 특성인가?”

    윈터가 금방 멱살이라도 잡을 듯이 굴자 웨이터가 겁을 먹어 후다닥 도망쳐 달려갔다. 그러고는 걸려 있는 종을 두들기며 말했다.

    “윈터 씨께서 이싱을 사신답니다!”

    “이야, 진짜?”

    “잘 먹을게요, 윈터 씨!”

    다들 즐거워하며 몸을 일으키자 바이올렛도 당황하며 얼떨결에 같이 몸을 일으켰다.

    직원들이 닫아 두었던 문을 열기 시작했다. 그리고 앞에 있는 공터에 장작을 던져 놓기 시작했다.

    바이올렛이 의아해하는 사이 그 위에 장정 다섯 명이 달라붙어 거대한 솥을 가져다 올렸다.

    그리고 그 안에 엄청난 양의 재료를 쏟아붓기 시작했다. 바이올렛은 처음 보는 광경에 입을 다물지 못했다.

    “저런 건 처음 봐요…….”

    “난 카닉 일족과 어울려 살아 본 적이 없어 모르지만, 좋은 일이 있으면 저렇게 있는 재료들을 다 꺼내다가 들이붓고 전통 소스를 넣어 끓여서 먹는 문화가 있다더군. 아주 한심하기 짝이 없는 문화지.”

    “신기해라.”

    다 같이 우르르 몰려 먹는 걸 무례하게 여길 거라는 윈터의 예상과 달리 바이올렛의 보석 같은 눈은 호기심으로 평소보다도 반짝거리고 있었다. 이미 육수가 팔팔 끓고 있던 덕에 음식들이 순식간에 익었다.

    직원들은 주변에 모여든 사람들에게 모두 접시를 나눠 주었고, 사람들은 빙 둘러앉아 걸어 놓은 국자들로 각자 음식을 떠다 먹었다. 바이올렛 역시 음식을 떠 온 후, 카닉 일족의 전통 조미료를 위에 뿌렸다.

    그리고 음식을 먹어 보더니 금방 웃음을 지었다.

    “정말 맛있네요.”

    “카닉 일족 요리 중에 가장 고기가 많이 들어간 요리니까. 당신은 편식이 심하고.”

    윈터가 놀리자 바이올렛이 그릇을 들고 그를 흘겼다. 윈터는 그런 그녀를 보고 낄낄거리더니 저도 식사를 시작했다.

    저녁이 되니 조금 쌀쌀했는데 팔팔 끓고 있는 솥 앞에 앉으니 온도가 딱 적당했다.

    솥을 중심에 두고 사람들은 춤을 추고, 술을 마셨다. 즐거운 분위기에서 식사를 마칠 즈음, 사각형의 물감 범벅인 나무통을 든 청년이 다가왔다.

    “얻어먹었으니 문양이라도 그려 드릴까요?”

    그러자 윈터가 욱해서 멱살을 잡았다.

    “어디에 더러운 손을 대.”

    “저, 전 그저 카닉 일족 전통 문양을…….”

    “지금 라크라운드 공주님께 이방인 문양을 그려 넣겠단 건가?”

    “하, 한 달이면 지워지는 물감입니다!”

    청년이 울려 하자 바이올렛이 윈터의 팔을 잡아 내렸다. 그리고 그에게 물었다.

    “어디다 하면 좋을까요?”

    “당신은 거절 좀 해. 오늘따라 무례하단 말은 왜 안 해?”

    “내가 아무거나 무례하다고 트집 잡는 줄 알아요? 게다가 당신도 있잖아요? 왼쪽 어깨 뒤쪽에.”

    바이올렛의 말에 윈터가 혀를 찼다. 바이올렛이 제 왼쪽 어깨를 가리켰다.

    “그럼 나도 여기에 해 주게.”

    “예, 금방 해 드리겠습니다.”

    청년이 얼른 나무 상자를 내려놓고 검푸른 잉크가 들어 있는 펜을 꺼냈다.

    그는 의자에 앉은 바이올렛의 어깨에 조심스럽게 문양을 그려 넣었다. 카닉 일족의 꽃과 뱀이 섞인 독특한 문양이 그녀의 양쪽 어깨에 이어졌다. 윈터가 몸을 숙여 청년에게 위협적으로 말했다.

    “누가 이렇게 길게 그리라고 했지? 죽고 싶어?”

    “아, 아뇨! 그, 그냥 잠깐 예술혼이 불타서…….”

    “시답지 않은 소리 마.”

    그의 성격이 터져 나와 청년은 겁에 질렸지만 예술혼으로 이겨 내고 문양을 이어 갔다.

    잠시 후, 그녀의 어깨에 문양이 다 새겨졌다. 바이올렛이 윈터를 돌아보며 물었다.

    “어때요?”

    “재주는 좋은 놈이군. 그런데 당신이 그걸 왜 해.”

    “당신이 했으니까요.”

    “나랑 무슨 상관이야? 당신이 왜 이런 미력한 놈들 전통을 따르느냐고.”

    윈터가 인상을 쓰고 묻자 바이올렛이 더욱 무서운 표정으로 말했다.

    “다시 말하지만, 당신도 했잖아요. 당신 호텔 이름도 일족의 이름이고, 전통도 따르잖아요. 그런데 왜 자꾸 당신 혈통을 나쁘게만 말하는 거죠?”

    그녀가 침착하게 화를 내자 윈터가 순간 말문이 막혀 입을 다물었다가, 고개를 돌리며 화제도 돌려 버렸다.

    “며칠 뒤가 오픈 파티인데 안 지워지겠군.”

    그가 물러나듯 말하자 바이올렛도 순간 너무 화를 낸 것이 미안한지 농담하듯 말했다.

    “그러고 보니 당신, 나에게 오픈 파티 초대도 건성으로 했죠?”

    “합의를 본 거지.”

    “여기 오자고 할 때 나한테 어떻게 물어봤죠?”

    “드레스를 사 주고 당신 하녀에게 일정을 알려 줬어.”

    “데이트 신청할 때 그러면 돼요, 안 돼요?”

    그녀의 말에 윈터가 온 얼굴로 웃으며 놀리듯 대꾸했다.

    “안 됩니다, 바이올렛 선생님.”

    “놀리지 말아요.”

    그녀가 부루퉁한 표정으로 말하자 윈터가 손을 내밀며 물었다.

    “나와 함께 호텔 오픈 파티에 가 주겠소?”

    그러자 바이올렛이 고개를 조금 옆으로 기울이고 윈터의 손을 내려다보았다. 그러더니 제 손을 그의 손 위에 올려 당겼다.

    “그러죠.”

    *

    바이올렛을 집에 데려다주던 윈터가 혀를 찼다.

    “내가 말했지? 당신 주변은 늘 시장통이 된다고.”

    “다 당신이 사 온 거잖아요.”

    바이올렛의 집 앞은 손수레와 함께 제가 쓸 거라며 윈터가 걸어 둔 그물 침대 덕에 아이들의 놀이터가 되어 있었다. 윈터가 한 손을 휙휙 저으며 말했다.

    “9시가 넘었는데 어딜 돌아다녀. 가서 자.”

    “무, 무서운 아저씨다!”

    아이들이 화들짝 놀라 얼어붙었다. 그러자 바이올렛이 다가가며 말했다.

    “아저씨 더 화내기 전에 들어가서 자. 내일 와서 놀아.”

    “응, 바이올렛! 잘 자!”

    아이들이 얼른 그물 침대에서 내려와 바이올렛에게 인사하고 각자의 집으로 흩어졌다.

    그 후에야 윈터가 손을 흔들었다.

    “당신도 잘 자고, 늦었는데 재워주지 그래?”

    “안 돼요.”

    “알았어, 호텔 가서 자면 되잖아.”

    윈터가 투덜거리더니 바이올렛의 이마에 입을 맞추고 말했다.

    “이건 키스로 치지 말고.”

    놀라서 동작을 멈췄던 바이올렛은 그의 능청에 살짝 고개를 끄덕였다.

    “알았으니 이제 가요.”

    “잘 자.”

    윈터가 인사하고 떠났다.

    얼마 뒤 바이올렛이 씻고 잠들려는데 옆집의 핌이 문을 두들겼다. 바이올렛이 문을 열어 주자 그녀가 무언가를 내밀었다.

    “아까 하옐 씨가 줬어요. 바이올렛 전해 주라고.”

    “아, 고맙소.”

    바이올렛이 라크라운드 신문을 받아 들었다. 바이올렛은 그 사이에 끼어 있는 손 글씨를 연습한 종이를 발견하고 고개를 갸우뚱했다. 그러자 핌이 짝 박수를 쳤다.

    “전에 얘기하지 않았어요? 내가 전신 부호 쓰는데서 일했다고.”

    “들었으면 기억이 있을 텐데, 들은 기억이 없소.”

    “그래요? 하긴, 뭐 중요한 거라고. 아니, 호텔 타이프라이터가 망가졌다고 하옐 씨가 울상이라서 내가 오늘 좀 도와줬어요. 오랜만에 손 글씨를 써서 아까 연습하던 게 껴 들어갔네요.”

    “아.”

    바이올렛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녀가 신기해하며 핌을 보고 물었다.

    “하옐과는 언제 친해졌소?”

    “네? 아, 여기 툭하면 안절부절못하고 돌아다니더라고. 전에 차 한 잔 주면서 얘기했지.”

    “그 이야기를 들으니 하옐에게 미안해지네…….”

    바이올렛이 흐리게 웃고는 핌이 잽싸게 챙겨 간 종이를 손짓하며 말했다.

    “서체가 참 좋소.”

    “내가 처음 일할 때만 해도 다 손으로 적었거든요.”

    “어디서 일했었소? 이 대륙에는 전신국이 별로 없던데.”

    바이올렛이 무심코 묻는 질문에 스파이가 움찔했다.

    당신의 이해를 돕기 위하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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