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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신의 이해를 돕기 위하여-50화 (50/176)

50화

남겨진 바이올렛이 진이 빠져 손으로 이마를 짚는데 하옐이 신나서 달려왔다.

“작은 마님! 응접실로 잠시 가시겠어요?”

하옐은 생김새가 어려 보이는 편이라 바이올렛보다 연상인데도 그가 귀엽게 느껴질 때가 있었다. 바이올렛이 미소를 지었다.

“내가 그러는 편이 자네에게 좋겠지?”

윈터의 불같은 성격을 놀리고 있음을 안 하옐이 유쾌하게 웃었다. 그가 응접실로 안내하며 평소보다 들뜬 상태로 재잘거렸다.

“댁에 가실 때 선물 좀 챙겨 드릴게요. 엄청 좋은 술이 있습니다. 이웃분들과 드세요. 이 동네는 뭐만 생기면 파티던데요?”

“흥이 많은 사람들이라. 술은 챙겨 주면 고맙지.”

바이올렛이 웃었다. 하옐은 작은 마님이 정말로 회사를 위기에서 구해 주었다고 생각했고, 앞으로 대표님을 제어할 수 있는 유일한 사람이 그녀라고 믿어 의심치 않았다.

바이올렛이 조용히 뒤따라오는 플립에게 말했다.

“지난번에 챙겨 준 빵, 정말 맛있게 먹었어, 플립.”

“다, 다행입니다. 제가 그때는 무례를…….”

“내 걱정해 준 게 왜 무롄가. 그런 말 말게.”

응접실에 도착해서도 두 사람은 할 말이 많았는지 바로 가지 않고 바이올렛에게 윈터가 얼마나 저희를 괴롭혔는지 일러바쳤다.

잠시 후 돌아온 윈터가 꺼지라고 손짓하자 두 사람이 후다닥 도망쳤다. 윈터가 털썩 앉으며 물었다.

“도대체 왜 당신만 나타나면 주변이 시장 바닥이 되는 거지?”

“무슨 의미죠?”

“사람이 몰린다고.”

윈터는 짜증을 냈는데, 바이올렛은 웬일로 배시시 웃었다. 그러자 윈터가 더욱 인상을 썼다.

“그런 식으로만 하면 사람 못 부려. 칭찬 아니야.”

“나에겐 칭찬이에요. 다들 불편해하는 줄 알았는데.”

“무슨 소리야. 예뻐하는 건 예뻐하는 거고, 불편해하는 건 불편해하는 거지.”

그의 직설적인 말에 바이올렛의 눈동자에 충격이 감돌았다. 윈터가 속도 모르고 한마디를 덧붙였다.

“심지어 나도 당신이 불편해.”

“뭐라고요? 어느 면이 불편해요? 내 성격에 문제가 있는 건가요?”

바이올렛이 걱정스레 묻자 윈터가 실소했다.

“그럼 왕족이었던 사람이 어떻게 아주 편해?”

“내가 로렌스 가문 사람인 걸 모르는 사람도 불편해하는 건 문제잖아요.”

“당신 눈빛이며 손짓 하나도 왕족 그 자체야. 본능적으로 남이 어려움을 느끼게 한다고.”

윈터 입장에서는 그 고귀함이 전 재산을 내놓고라도 얻고 싶었던 것이었고, 그러므로 이거야말로 칭찬이었지만 바이올렛에게는 제가 남에게 불편함을 주는 사람이라는 충격만 남았다.

윈터가 술이 있는 테이블로 걸어가며 물었다.

“술?”

“아, 난 괜찮아요.”

그러자 윈터가 고개를 끄덕이고 트위스트를 넣은 마티니를 한 잔 만들어 단숨에 들이켰다. 그가 잔을 내려놓으며 말했다.

“오늘 내가 당신한테 해야 할 말이 있어서, 이렇게 하면 여기로 올 줄 알고 머리 좀 굴렸어.”

“무슨 말인데요?”

바이올렛이 묻자 윈터가 그녀 쪽으로 걸어와 앞에 무릎을 꿇었다.

그의 행동에 바이올렛의 눈망울로 당혹감이 담겼다. 윈터가 고개를 들어 그녀를 올려다보며 말했다.

“미안해.”

“…….”

“이 말은 해야 할 것 같아서.”

바이올렛이 저도 모르게 치맛자락을 꽉 쥐었다.

“뭐가 미안해요, 갑자기?”

“당신 말이 맞았어. 당신이 그랬지? 비싸게 주고 샀는데 못 쓸 물건 같다고. 난 그때는 이해가 안 갔어. 나와 당신의 결혼이, 결국은 내가 돈을 주고 작위를 사기 위한 것이었고, 그걸 위한 결혼에 당신이 희생해야 했다는 걸. 그걸 인정하기 싫었어.”

“…….”

“사과하지.”

바이올렛은 자신을 올려다보는 윈터의 눈을 마주 보았다.

형용하기 어려운 감정이 들었다.

“그렇게 말해 줘서 고마워요.”

“얼마나? 머리라도 쓰다듬어 주고 싶은 정도인가?”

윈터가 이제 진지함은 끝났다는 듯 짓궂게 묻자 바이올렛이 저도 모르게 어휴, 하고 소리를 냈다. 그러자 윈터가 기가 차다는 듯 웃었다.

“당신이 그런 소리를 다 내네.”

“아까 같이 온 핌에게 배웠어요.”

“대단한 걸 배우셨군.”

“당신에게서 비꼬는 법도 배웠죠.”

“아, 그러셔?”

바이올렛이 그제야 아주 조금, 미소를 지었다.

“나도 미안해요.”

“돈을 날린 것에 관한 거면 됐어. 당신 탓도 아닌데 골백번도 더 했잖아, 사과. 떠난 것에 대한 사과라면 그것도 됐고. 영원히 용서하지 않을 테니까.”

“음…… 그럼 취소하죠.”

“현명하군.”

윈터가 말했다.

오래 걸리긴 했지만, 그의 사과로 두 사람의 관계는 꽤 부드러워졌다.

그리고 바이올렛은 윈터가 지난 1년을 아무렇지도 않게 여기는 것만은 아니라는 것을 짐작했다.

바이올렛이 몸을 일으킨 후 윈터를 일으켜 주려 팔을 당기자 그가 몸을 일으켰다. 그러다 휘청거리는 시늉을 하며 아내를 한 팔로 끌어안았다.

그가 바이올렛의 어깨에 얼굴을 묻고 중얼거렸다.

“다리가 저려서 못 서겠는데.”

“당신 지금 서 있어요. 무게가 전혀 안 느껴지거든요.”

“……젠장.”

윈터가 투덜거리며 몸을 바로 했다.

사과를 받고 마음이 조금 풀려서인지, 그런 그가 조금 귀엽게 느껴졌다.

바이올렛이 물었다.

“왜 이렇게 끌어안고 싶어 해요?”

“당신 몸이 안기 딱 좋거든.”

바이올렛은 지난 1년간 윈터가 다른 누군가를 만났을지도 모른다고 생각했다. 그러나 자신을 끌어안는 걸 보니, 지금은 아닐 것이다.

바이올렛은 윈터가 한 번에 두 명, 세 명씩 만나는 쓰레기가 결코 아니라는 신뢰가 있었다.

“안기 딱 좋다는 게 도대체 무슨 의미죠?”

“좋은 냄새가 나. 부드럽고, 말랑말랑하고.”

“말랑말랑?”

바이올렛이 고개를 갸우뚱하자 윈터가 그녀의 허벅지 뒤를 팔로 감아 번쩍 들어 테이블 위에 앉혔다. 그녀가 입을 열자마자 윈터가 선수를 쳤다.

“알아, 알아. 테이블 위는 앉는 곳이 아니지.”

“알면서 왜 그래요?”

바이올렛이 정말로 이해가 안 간다는 듯이 물었다. 윈터는 혀를 쯧 하고 차며 무시하고 제 팔을 내밀었다.

“만져 봐.”

그의 요구에 바이올렛이 손을 들어 팔을 만져 보니 피부 속에 촘촘하게 들어찬 근육이 바늘 하나 안 들어갈 것처럼 단단했다. 이어서 윈터가 바이올렛의 손을 잡아 들어 그녀의 팔을 만지게 했다.

자신의 피부도 만져 본 뒤 바이올렛이 이제 안다는 듯 손을 뗐다. 그러나 그녀의 팔을 쥔 윈터의 손은 떨어지지 않았다.

그가 눈을 마주친 상태로 손을 움직였다. 그의 손은 바이올렛의 손목을 당기면 빠져나갈 수 있을 정도의 세기로 쥐었다가, 천천히 위로 올려 팔뚝을 같은 세기로 잡았다. 그의 커다란 손에 팔뚝이 넉넉히 잡혔다.

그의 손이 더 올라가 어깨를 지나 목을 감더니 천천히 아래로 내려왔다.

그리고 가슴 윗부분에 닿자 바이올렛이 붙잡아 멈췄다. 그녀가 다급한 목소리로 말했다.

“이러지 말아요.”

“여기다 눕힐 생각 같은 거 없어. 그럼 꼭 그런 걸 바라고 사과한 것 같아지잖아.”

“알긴 아네요. 그리고 여기다 눕히다니, 무슨 소리예요?”

“여기서 할 수도 있지. 급하면.”

그의 말에 놀란 토끼 같은 눈을 한 바이올렛이 아이를 혼내듯 말했다.

“미쳤어요? 여긴 응접실이에요.”

“당신 입에서 미쳤단 소리가 나올 정도면 천지개벽할 충격이란 뜻 같은데.”

“그 정도는 아니지만 부부 관계는 침대 위에서 하는 거예요.”

“궁금한 게 있는데.”

윈터가 진지한 표정으로 그녀의 앞으로 당긴 의자에 다리를 꼬고 앉았다. 바이올렛이 내려가려 하자 그가 그녀의 종아리를 움켜쥐어 붙든 채로 말을 이었다.

“당신 상식에 말이야.”

“네.”

“침대를 야외에다 놓으면 거기선 해도 되나?”

“…….”

바이올렛의 눈이 경악과 수치스러움과 공포로 가득 찼다.

인간의 머릿속에서 어떻게 저렇게까지 천박한 생각이 나올 수가 있나, 싶은 표정이었다. 윈터는 그녀의 격한 반응에 웃음이 터져 나오려 해 억누르느라 괴로움이 이만저만이 아니었다.

그가 좀 더 따져 보자는 듯 테이블에 손을 올리며 말을 이었다.

“진짜로 궁금해서 그래. 어쨌든 침대 위라는 건 맞잖아?”

“침대는 야외에 있으면 안 돼요. 당연한 거 아닌가요?”

“왜 안 돼? 그럼 집과 집 사이에 침대를 운반해야 하면 어떻게 해? 순간 이동시켜?”

“논점 흐리지 말아요. 그런 문제가 아니잖아요?”

“그물 침대는? 야외에 있잖아.”

“그물 침대라니……. 이 이야기 이제 그만해요. 당신과는 말이 안 통해요.”

“그물 침대의 뭐가 문제인지 정확히 말해 줘야 내가 알아먹지. 성교육을 워낙 달리 받아서.”

“윈터!”

결국 폭발한 바이올렛의 목소리가 높아졌다. 그녀의 얼굴이 드물게 붉어져 있었다.

“침대는 무조건 실내에 있어야 하고, 부부 관계는 침대에서만 가능해요. 그물 침대는 이름만 침대지, 침대가 아니니까 이제 더 이상 말장난하지 말아요!”

“그물 침대가 들으면 섭섭해하겠군. 게다가 말장난이라니, 난 매우 진지한 고민을…….”

바이올렛이 두 손으로 윈터의 입을 틀어막았다. 덕분에 두 사람의 시선이 가까워졌다.

윈터는 능청스러운 빛을 띠고 있었고, 바이올렛은 제 뜻을 관철하겠다는 고집스러운 눈빛을 하고 있었다.

윈터가 몸을 조금 기울여 그녀에게 가까이 다가갔다.

그러더니 바이올렛이 손을 떼려 하기 직전에 몸을 일으키며 그녀의 손에서 벗어났다.

“올리브 오일 선물, 당신이 시킨 거지?”

“그건 어떻게 알았어요?”

“이런 촌구석에서 나에 대해서 그렇게 잘 아는 사람이 있을 리 없잖아.”

“촌구석이라고 하지 말아요.”

“당신은 얼굴이 예쁜 걸 감사히 여겨. 꼬장꼬장해 가지고.”

“…….”

“뭐.”

바이올렛이 어색함과 의아함이 감도는 눈으로 윈터를 주시했다.

그걸 짜증 가득한 표정으로 마주 보던 윈터가 되물었다.

“모르는 척하지 마. 자기가 예쁜 거 몰라?”

“그런 말 당신에게 처음 들어요.”

“거짓말 마. 내가…… 진짜 그런 말을 안 했다고?”

바이올렛이 대답 대신 고개를 끄덕이자 윈터가 헛기침하고 물었다.

“……다시 무릎 꿇을까?”

“이제 충분해요.”

두 사람 사이에서 잠시 침묵이 흘렀다.

윈터가 바이올렛의 턱을 손으로 감싸며 말했다.

“당신 얼굴이 예쁘지 않았다면 난 그 망할 잠자리에 대해 알자마자 도망쳤을 거라고.”

“도대체 그게 왜 그렇게 싫은 거죠?”

“배고픈데 물로 배 채워야 하는 기분이라면 이해하겠어?”

“물로 배를 채우는 기분은 이해할 수 있지만 그게 왜 우리의 부부 관계에 비유되는지 모르겠군요.”

바이올렛은 여전히 이해가 안 간다는 표정이었다.

윈터는 제 손에 만져지는 바이올렛의 보드라운 피부에서 손을 떼기 어려웠다. 꼭 맑은 물속에 손을 넣어 천천히 젓고 있는 기분이었다.

그가 저도 모르게 약지를 움직여 바이올렛의 뺨을 간질였다. 먹을 수 있는 거였으면 전부 먹어 치웠을 것 같다고 생각했다.

바이올렛이 윈터의 손을 떼서 밀치자, 그는 입꼬리를 씰룩이며 그녀 쪽으로 몸을 숙였다.

“왜. 정말 내가 무슨 짓이라도 할까 봐?”

“그런 건 아니에요. 당신이 그런 무뢰한까진 아니니까.”

“이봐, 난 침대를 밖에다 가져다 놓을 생각도 하는 사람이야.”

윈터가 놀리듯이 말하며 바이올렛의 손을 잡아 테이블에서 내려 주었다.

“다음 주에 축제가 있다더군. 당신이 데이트 신청을 해 주지 않을 것 같아서 내가 먼저 할까 하는데.”

그의 장난스러운 데이트 신청에 바이올렛은 난처한 표정을 지었다. 그러나 그녀는 성실한 편이라, 숙려 기간에 대한 노력을 보여야 한다고 생각해 곧 허락의 의미로 고개를 조금 까딱여 보였다.

당신의 이해를 돕기 위하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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