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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신의 이해를 돕기 위하여-19화 (19/176)
  • 19화

    막 입술이 닿았을 때, 바이올렛은 익숙한 입맞춤이라고 생각해 별 반응이 없었다. 그가 유난히 긴장을 하게 만들긴 했지만 곧 입술을 떼리라 예상했던 것이다.

    그러나 윈터가 입술을 움직여 제 입술을 덮었다가 아랫입술을 물고 입 속에서 뭘 찾으려는 것처럼 움직이자 놀라서 그를 밀어냈다.

    “뭐, 뭐 하는…….”

    항명하려던 바이올렛의 입술이 다시 윈터에게 덮이고, 밀어내려던 양 손목은 겹쳐져 윈터의 한 손에 붙잡혔다. 그가 바이올렛의 입술을 열며 안으로 혀를 밀어 넣었다. 살면서 처음 경험하는 행위에 바이올렛이 그대로 굳었다.

    그녀는 너무 놀라 이제 반항은커녕 반응하는 방법조차 잊은 듯했다. 그에게 제 입안을 점령당했다는 생각에 사고가 정지했다. 윈터는 그녀의 목덜미를 손으로 감아 작은 짐승을 달래듯 쓰다듬었다.

    웬만하면 그냥 밀어붙일 생각이었지만 바이올렛이 숨을 잘 쉬지 못하자, 윈터가 별수 없이 그녀를 놓아주었다.

    그녀는 황당해 어쩔 줄 모르겠다는 표정을 지었지만 지금 윈터에게는 그마저도 달콤하게 느껴졌다. 경직되어 있던 바이올렛의 표정은 녹아 버린 지 오래였고, 고고하던 눈동자에는 온기가 감돌았다.

    바이올렛이 따지듯 물었다.

    “이런 건 배우들이 하는 거 아니에요? 혀를 왜…….”

    “난 원래 이렇게 해.”

    “납득이 안 가요.”

    “그럼 그냥 외워.”

    윈터는 로렌스 가문의 전통에 맞춰 주기 위해 3년 동안 제 성욕을 억눌러 왔다. 나는 돈 버는 노예다, 스스로를 세뇌하며 살아왔는데 이제는 그러지 않기로 했다. 이혼 얘기가 나온 이후부터였다. 바이올렛의 앞에서만큼은 신사를 흉내 내던 그의 이성이 무너져 내렸다.

    윈터가 가빠진 호흡을 서서히 정돈하는 바이올렛의 귀에 속삭였다.

    “코로 숨 쉬는 법은 잊어버렸어?”

    “너무 놀라서 그랬어요.”

    “똑똑한 공주님이니까 어서 적응해.”

    바이올렛은 어려서부터 모든 배움에 성실했다. 설령 윈터의 말이 농담이었다고 해도 그녀는 빨리 적응할 생각이었다.

    그러나 윈터의 입술이 그녀의 목덜미에 닿자 화들짝 놀라 비명이 나올 뻔한 제 입을 손으로 틀어막았다. 그가 입술을 댄 상태로 물었다.

    “이건 확실히 입맞춤이지?”

    “그건…….”

    “아니야?”

    맞다, 아니다를 구분하기가 어려웠다. 그의 입맞춤 방식은 너무나 터무니없었다. 이렇게 혀를 섞고 이상한 행위를 하니까 바이올렛은 온몸이 긴장으로 예민해져서 윈터가 건드리는 곳마다 그 감각이 불꽃처럼 사방으로 번지는 기분이었다.

    이렇게 긴장하는데 그만둘까, 윈터는 잠시 고민했지만 자신을 보는 바이올렛의 눈망울을 마주하니 그럴 수가 없었다. 내기에서 이긴 건 자신이었다. 아내가 이렇게 말간 눈으로 보는 데다 내기까지 이겼는데 가만히 있는 사내가 세상에 있을까.

    윈터가 다시 입을 맞췄다. 흥이 끊어질 법도 한데 전혀 그렇지 않았다. 오히려 더 달아올라 그녀의 몸이 이만큼 떨어진 것도 아까웠다. 윈터는 결국 그녀를 안아 올려 소파로 가 앉았다. 바이올렛은 충격에 휩싸여 있어서인지 그 행동에 반항이 없었다.

    윈터가 바이올렛의 허리를 한 팔로 끌어안아 단단히 결박했다. 이어서 다른 한 손이 가슴에 닿자 바이올렛이 놀라서 손가락 끝으로 그의 어깨를 할퀴듯 누르며 몸을 움찔거렸다.

    건드리는 것만으로도 고장 난 것처럼 구니, 윈터는 오늘은 그냥 입맞춤 정도로만 끝내야겠다는 생각을 했다. 놓아준 가슴은 곧 사내의 단단한 가슴팍 위에서 뭉개졌다.

    입맞춤이 이어지고, 서서히 그의 온도와 바이올렛의 온도가 같아졌다. 같은 온도는 서로가 서로의 몸을 제 것으로 착각하게 만들었다.

    바이올렛이 어느 순간 저도 모르게 윈터의 목을 두 팔로 끌어안았다. 윈터는 그녀에게 정신을 모조리 빼앗긴 와중에도 이 행동이 너무나 기특해 손가락을 바이올렛의 머리칼 사이로 넣어 부드럽게 쓰다듬었다.

    그때, 문 두드리는 소리가 들렸다.

    “작은 마님, 잠자리를 봐 드릴게요.”

    룰루의 목소리에 정신이 번쩍 든 바이올렛이 입술을 뗐다.

    “어, 언제 시간이 저렇게…….”

    시계를 보니 한 시간이 넘어가고 있었다. 바이올렛이 흐트러진 옷을 매만지며 문 쪽을 돌아보고는 말했다.

    “금방 열겠네!”

    그리고 일어나려는데 윈터가 그녀의 허리를 끌어안고 놔주질 않았다. 그의 머리칼은 완전히 헝클어져 있었고 셔츠는 서로의 가슴이 닿는 과정에 단추가 풀려 넓고 우람한 가슴팍이 드러나 있었다.

    윈터가 미약한 힘으로 제 팔에서 벗어나려 애쓰는 바이올렛을 바라보며 한쪽 눈썹을 치켜 올렸다.

    “나 어릴 때 하인으로 일했다고 하옐에게 들었다며? 잠자리 정리는 내가 하지.”

    바이올렛은 하마터면 고개를 끄덕일 뻔했다. 그러나 곧 이성을 찾아 고개를 빠르게 저었다.

    “안 돼요. 그럼 룰루가 우릴 뭐라고 생각하겠어요?”

    “내일은 침구가 많이 더럽겠구나, 하겠지.”

    그게 무슨 소리인가, 그 와중에 잠시 고민하던 바이올렛은 아주 드문 그와의 잠자리를 떠올린 후에야 말뜻을 알아듣고 기겁을 해 그의 품에서 벗어나려 애썼다.

    윈터는 제 품에 안긴 말랑말랑하고 보드라운 아내에게 심한 욕정을 느꼈지만, 그녀의 품위를 생각해 신경질 가득한 얼굴로 바이올렛을 놓아주었다.

    윈터가 풀린 단추를 잠그며 말했다.

    “파티는 두 번만 불러. 세 번 다 가면 내기의 의미가 없으니까.”

    “……정말요? 제가 졌는데도?”

    “그래. 졌는데도. 넓은 아량으로 가 주지.”

    바이올렛의 눈이 동그래지더니 고개를 끄덕였다. 그녀가 말했다.

    “내기 자주 해요.”

    “매번 파티 오는 걸 걸어서 모든 파티에 참여하게 만들려고?”

    “네. 그러고 싶어요.”

    윈터가 혀를 차더니 문을 먼저 열고 밖으로 나갔다. 앞에서 기다리던 룰루와 그 뒤에 서 있던 하옐의 눈동자가 정신없이 떨렸다. 그런 두 사람을 지나쳐 윈터가 말없이 성큼성큼 걸어가자 하옐이 얼어 있다가 잽싸게 그를 따라 걸어갔다.

    “대표님, 바로 회사로 가시죠? 급하거든요.”

    “쉬라고 할 땐 언제고?”

    “그렇게 말해도 안 쉴 줄 알고 말씀드린 거예요. 제가 잘못했습니다.”

    하옐이 우는소리를 내며 윈터를 끌고 사라졌다.

    두 사람이 멀어질 때까지 눈동자만 데굴데굴 굴리던 룰루가 부끄러움에 얼굴이 새빨개진 바이올렛을 놀렸다.

    “에구, 불도 안 땠는데 방이 왜 이렇게 후끈후끈 덥나 몰라요?”

    “룰루!”

    “은근슬쩍 같은 방으로 옮겨 드려요?”

    “전혀 그럴 필요 없네. 정말이야.”

    바이올렛이 평소 같은 평정을 조금도 찾지 못한 얼굴로 고개를 저었다. 룰루는 그런 바이올렛의 새로운 반응이 귀여워 까르륵 웃으며 자꾸만 놀려 댔다.

    룰루가 침실 온도와 습도를 확인하고 바이올렛이 누운 것까지 본 후 불을 꺼 주었다.

    “그럼 편안히 주무셔요, 작은 마님.”

    룰루가 흐뭇한 표정으로 방을 나갔다.

    침대에 누운 바이올렛이 손으로 제 입술을 쓰다듬어 보았다.

    그의 방식들은 이상했지만 싫기만 하진 않았다.

    *

    그로부터 나흘 뒤, 부부는 다시 블루밍 저택이 있는 남부로 돌아가기 위해 짐을 챙겼다.

    바이올렛은 챙이 넓은 하늘색 모자와 하옐이 쓸어 온 드레스 중 하나였던 윤이 나지 않는 하늘색 드레스를 입었다.

    룰루는 섭섭해 어쩔 줄 몰라 하며 바이올렛을 꼭 안았다가 놨다가, 못 견디고 꼭 안았다가를 반복한 후에야 그녀를 보내 주었다.

    수도를 뒤로하고 바이올렛은 기차에 탔다. 떠나는 순간부터 굳기 시작한 그녀의 표정이 신경 쓰였는지 윈터가 말을 걸었다.

    “무슨 생각을 그렇게 해?”

    “……윈터.”

    “왜.”

    “우리…… 수도에서 살면 어때요?”

    “수도?”

    바이올렛이 고개를 끄덕였다.

    남부에 다가가면 다가갈수록 산소가 희박해지는 기분이었다. 가슴이 답답해지고 어지러워 금방이라도 쓰러질 것 같았다.

    그런 곳이었지만 그래도, 언젠가 수도에 올 수 있다는 희망이 있다면 그곳에서도 버틸 수 있을 것 같았다.

    그녀가 힘겨운 목소리로 말을 이었다.

    “나중에라도 좋아요. 생각해 봐요. 수도에 살아도 괜찮잖아요……. 아, 수도에 머물러 주면 대가로 당신 필요할 때 언제든 몸을 바꿔 줄게요. 어때요?”

    바이올렛의 목소리가 점점 더 간절해졌다.

    “회사도 수도에 있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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