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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신의 이해를 돕기 위하여-1화 (1/176)

당신의 이해를 돕기 위하여

1화

라크라운드에서 작위를 얻을 수 있는 방법은 두 가지뿐이었다.

계승과 결혼.

윈터 블루밍은 블루밍 공작이 결혼을 하기 전에 생긴 사생아였고 친모는 이방인이었다.

그는 자신이 작위를 이어받을 가능성이 없음을 알았다.

때마침 라크라운드 왕실은 국책 실패로 막대한 빚을 지고 있었다. 매일같이 왕을 처형하라는 시위가 왕성 앞에서 벌어졌다.

윈터는 그 빚을 갚아 주는 대신 왕녀인 바이올렛 로렌스와의 결혼을 약속받았다.

*

그런 이유로 한 결혼이었고, 결혼식은 거의 대부분 생략되었지만 바이올렛은 만족했다.

이제 갓 열여덟을 넘긴 그녀의 머릿속에는 얼른 남편에게 말을 걸고 싶다는 생각만이 가득했다.

‘태어나서 이렇게 멋있는 남자는 처음 봐…….’

소문처럼 윈터 블루밍은 이방인인 친모의 피를 진하게 이어받아 회색 눈동자를 가지고 있었다. 스물네 살이라고 들었는데, 듣던 것보다 훨씬 어른스러웠다.

근사한 이목구비에도 군데군데 낯선 분위기가 박혀 있다. 그게 바이올렛은 너무나 좋았다. 살면서 이렇게 그녀를 두근거리게 한 남자는 없었다. 그가 처음이었다. 제가 첫눈에 누군가에게 반할 줄은 몰랐다.

심지어 그 상대가 남편이라니, 이렇게 운이 좋을 수가 있나.

‘그도 내가 마음에 들까?’

피로연이 끝날 즈음 궁금함을 참다못한 바이올렛이 눈을 딱 감고 덥석 윈터의 손을 잡았다.

윈터와 눈이 마주치자 심장이 더욱 빠르게 뛰었다. 낯선 남자의 손을 잡는 것은 큰 용기가 필요한 일이었다. 바이올렛은 금방이라도 도망치고 싶은 것을 꾹 참고 잡은 사내의 손을 제 쪽으로 당기며 말했다.

“내가 이렇게 운이 좋은 사람이란 걸 당신을 만나고 알았어요.”

그의 반응이 너무 걱정스러워 1초가 100년 같았다.

무언가 대답하려던 윈터는 무심코 소리가 나는 쪽으로 고개를 돌렸다.

바이올렛의 오빠이며 라크라운드의 왕위를 이어받을 에쉬 로렌스가 와인 잔을 스푼으로 두들겨 시선을 모았기 때문이었다.

그가 입을 열었다.

“감사하게도 이 결혼을 약속으로 하여 윈터 블루밍 경께서 2,400만 라크네를 내놓으셨다는 건 다들 아실 겁니다.”

갑자기 돈 얘기는 또 왜 꺼낸담.

바이올렛이 섭섭해하는데 에쉬가 말을 이었다.

“이 돈으로 아버지께서 국책 실패로 지신 빚을 대부분 갚게 되었습니다. 왕실은 여기서 그치지 않고 라크라운드를 위험에 빠뜨린 것을 사죄하려 합니다. 그 증거로 오늘부로 왕실을 해체하고 모든 권한을 의회에 위임하려 합니다. 또한 로렌스 가문은 모든 작위를 포기하겠습니다.”

에쉬의 말에 결혼식장에 침묵이 흘렀다. 그러나 이내 하객 중 누군가가 박수를 치기 시작했다.

이윽고 식장 안 모든 사람들이 그의 용감한 선택에 박수를 보냈다.

반면 윈터는 표정을 있는 대로 구기며 자리에서 일어났다. 사람들의 시선이 그에게 쏠렸다.

어떠한 실패도 없이 백만장자에 올랐던 그의 전 재산이 공중분해 되는 순간이었다.

서자라는 열등감에 평생 모은 돈을 오로지 작위를 사기 위해 썼다. 그런데 로렌스 가문이 왕실을 해체하고 작위를 내려놓겠다고 선언했으니 왕녀의 남편에게 내리는 공작 작위 역시 사라지는 것이었다.

윈터가 분노를 감추지 못하고 들고 있던 술잔을 바닥으로 집어 던졌다.

옆에 앉아 있던 바이올렛은 쨍그랑 소리에 놀라서 눈을 질끈 감았다. 윈터는 그대로 피로연장을 빠져나갔다.

잠시 후, 아무 일도 없었다는 듯이 사람들이 에쉬를 칭찬하며 모여들었다.

에쉬가 빚을 갚는 일과 시위대의 마음을 달래는 일에 여동생을 희생시켰다는 건 그 자리의 모두가 알았다. 그러나 오늘 결혼식의 두 주인공의 희생으로 많은 이가 한숨 돌리게 되었다.

바이올렛은 멍하니 앉아서 제게 다가오는 블루밍 가문의 성난 사람들을 바라보았다.

3년 전의 일이었다.

당신의 이해를 돕기 위하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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