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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 번째 딸로 태어났습니다-213화 (212/218)
  • 외전 5화. 레기와 에드의 하루

    에드는 현재 굉장히 기분이 나쁜 상태였다.

    그의 기분을 나쁘게 만든 이유 중 주된 원인은 바로 제 쌍둥이 여동생 앤젤라 스페라도였고 말이다.

    더 정확하게 그가 기분이 나빠진 시기를 꼽자면 앤젤라의 졸업축하 파티가 열린 그 날부터라고 콕 집어서 말할 수 있었다.

    “짜증나...”

    왈칵 일그러진 미간을 피지도 못하고 에드는 제 방의 침대에서 뒹굴었다.

    하얀 이불 위로 흐트러진 은발이 햇빛을 받아 눈부시게 반짝였고 세린을 꼭 닮은 연두색 눈동자가 보석처럼 빛났다.

    그 아름다운 눈동자에 담긴 감정이 강한 질투와 분노라는 것이 문제였지만 말이다.

    “하하하하~”

    창문 밖에서 들리는 환한 웃음소리가 신경에 온통 거슬렸다.

    에드는 그 웃음소리에 미간을 꿈틀거리다가 작게 중얼거렸다.

    “아주 자기들 세상이지 아주....!”

    제 두 팔을 뒷머리에 받치며 입술을 짓씹던 그는 이내 자리에서 벌떡 일어나 창가로 향했다.

    긴 다리로 성큼 성큼 망설임 없이 창가에 도착하자마자 에드는 벌컥 창문을 열어버렸고 이내 더욱 처참하게 얼굴을 굳혔다.

    분홍빛 머리카락을 나풀거리며 정원에서 환이 미소를 짓는 앤젤라를 눈에 담은 탓이었다.

    그 미소를 누구보다 좋아했던 에드였지만 지금은 저 환한 웃음을 마냥 좋아할 수는 없었다.

    자신과 가족들을 향한 미소가 아니었으니까.

    “데미언 오빠~!”

    “앤젤라님, 넘어지십니다.”

    부드러운 손길로 앤젤라의 손을 붙잡은 이는 데미언 하트만.

    대신전의 대신관으로 불리는 이였다.

    이제는 앤젤라의 연인이라고도 할 수 있었고 말이다.

    에드는 그 사실이 너무나도 억울하고 화도 났다.

    “데미언 오빠, 오늘은 기도를 올리는 날이 아니에요?”

    “앤젤라님과 차를 마시고 가도 기도를 할 수 있는 시간은 충분합니다. 혹시 제가 앤젤라님의 시간을 방해를 한 걸까요...”

    데미언의 부드러운 물음에 앤젤라가 기겁을 하며 고개를 가로 저었다.

    “아, 아니에요!! 저야 너무 좋아서 물어본 거지요!”

    “그럼 다행입니다.”

    “하하하하!”

    우득

    창가를 짚은 손에 힘이 들어갔다.

    에드는 부들부들 떨리는 어깨를 하며 창백한 얼굴로 말했다.

    “저 꼴을 보느니 내가 나가야지...!”

    휙!

    냉정히 앤젤라와 데미언의 데이트에서 시선을 돌린 에드는 제 방문을 열고 대공저를 빠져나가기 위해 발을 옮겼다.

    입술을 굳게 다물고 걸어가던 에드는 이내 제가 내려가던 계단의 밑에서부터 짙은 살기를 느끼고 서둘러 걸음을 멈췄다.

    그리곤 황급히 계단 밑을 바라보았다.

    그리곤 제 머리카락과 똑같은 색으로 환히 빛나는 은발을 발견할 수 있었다.

    “형??”

    “..... 에드.”

    살기를 폴폴 풍기는 이는 다름이 아닌 레기 스페라도였다.

    레기는 계단 쪽 창가에 몸을 기대고 팔짱을 끼며 창문 밖을 공허히 응시하고 있었다.

    “형, 거기서 뭐해?”

    “........”

    짙은 침묵 속에서 무서운 기세가 피어올랐다.

    에드는 그런 레기의 옆에 서며 함께 창문으로 시선을 돌려보았고 이내 아까 전 자신이 바라보고 있던 그 장면에 눈을 일그러트렸다,

    “젠장...”

    “......”

    “처음부터 마음에 안 들었어.”

    “앤젤라의 옆에 있으려던 녀석들은 모두 똑같았다.”

    레기의 나직한 말에 에드가 창문에서부터 시선을 돌려 레기를 응시했다.

    햇빛을 받은 수려한 이목구비가 더욱 화사해보였고 건장한 체격이 제복 밖으로 도드라져보였다.

    에드는 자신과 너무도 닮아 있는 레기를 향해 말했다.

    “형은 화도 안나?”

    “......”

    레기의 푸른 눈이 앤젤라에게서 에드를 응시했다.

    고요히 빛나는 푸른 눈동자 밑으로 생기를 머금은 입술이 비틀어졌다.

    “그럴 리가...”

    “....?”

    “지금 참는 중이야. 앤젤라가 있으니까.”

    “......”

    앤젤라의 앞에서는 순한 양 마냥 한 없이 부드러운 레기인 걸 알아서 에드는 질린 눈으로 그런 제 형을 바라보았다.

    앤젤라가 옆에 있는 한 아마 화를 내는 것도, 질투를 하는 것도 표현하지 않을 것이 선명했다.

    “난 질투나.”

    “......”

    “저 녀석이 저렇게 웃어주는 것도, 시간도, 티타임도 모두 다 뺏긴 것 같아서 불쾌해.”

    “너도 중증이구나.”

    “형이 그런 말 하면 더 웃긴 거 알지?”

    “흥.”

    레기의 말에 작게 반박하며 에드가 피식 웃음을 지어버렸다.

    레기는 그런 에드를 향해 나직이 말했다.

    “갈피를 잡지 못하겠어.”

    “응?”

    “저 아이의 행복을 바라는 마음이 반이고 질투를 하는 마음도 반이라서 말이야.”

    “.....”

    레기의 시선을 따라 창문으로 눈을 돌린 에드는 그가 말하고자 한 그 심정에 대해 잘 알 것만 같은 마음이 들었다.

    창문 밖에서의 앤젤라는 늘 행복해 하던 그 웃음을 지으며 걸어 나가고 있었고 그녀의 옆에는 당연하다는 듯, 한 사람이 자리했다.

    그 광경을 어떻게 말로 표현해야 할까.

    항상 저리 웃어줬으면 하는 마음과 가족에게만 웃어줬으면 하는 이기적인 욕심.

    지금 쌍둥이 형제들의 심정이 그러했다.

    질투를 하면서도 너무도 사랑해서 행복을 바랬다.

    참 우스운 이중적인 감정이 아닐 수 없었다.

    에드는 앤젤라의 미소를 물끄러미 바라보다가 제 뒷머리를 긁적이며 한숨을 내쉬었고 이내 밝게 웃음 지으며 레기에게 물었다.

    “술 먹을래?”

    “.....?”

    “낮이지만 수도에 나가면 술을 파는 곳이 있다고.”

    “대공저에도 와인은 가득한데....”

    “고지식하게 좀 굴지 마! 밖에서 맥주라도 먹자는 이야기잖아.”

    “너랑 내가... 말이지?”

    “아 쫌!! 형!”

    레기의 짓궂은 질문들에 에드가 발끈하자 레기는 피식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농담이다.”

    “하여간 농담도 진지해요.”

    “나가자. 네가 장소를 알려주면 딱 좋겠군.”

    “내가 아는 곳이 있어. 조용하게 우리 둘끼리만 먹을 수 있도록 방도 빼줄걸?”

    “그곳으로 가지.”

    에드의 말에 부드럽게 고개를 끄덕인 레기는 긴 다리를 이끌고 유유히 계단을 내려갔다.

    오랜만의 형제들끼리의 데이트(?)였다.

    *

    “이걸 꼭 쓰고 가야하나...”

    “아님 마법반지라도 끼고 가던가.”

    “......”

    레기는 두 눈을 찌푸리며 제 손에 얹어진 녹색의 로브를 바라보았다.

    에드는 갑갑한 것을 싫어하는 레기를 피식 웃으며 응시하다가 달래듯 말했다.

    “형은 마법반지 더 갑갑해하는 거 다 안다고? 불만 갖지 말고 입어.”

    “너 형한테 잔소리가 심해졌어.”

    “형은 잔소리를 듣는 횟수가 늘어났고 말이지.”

    “말이나 못하면....”

    “하지만 밖에 나갈 때 신분을 내비치면 귀찮은 일이 엄청 생긴다고.”

    에드의 말에 레기가 눈을 흘겼지만 이내 푸른 눈에 묘한 즐거움이 담겼다.

    레기는 앤젤라와 플로리아를 눈에 띄게 아끼고 사랑하는 이지만 에드 또한 마찬가지로 아끼고 있었다.

    에드도 자신의 동생이었고 그도 아직 보호해줘야 할 것 같은 아이였으니까.

    레기는 에드가 쥐여 준 로브를 몸에 맞춰 입으며 이내 에드를 부드럽게 바라보았다.

    “이제 가도 되겠지.”

    “응, 잘 어울리네.”

    “가자.”

    에드의 허락에 레기가 긴 다리를 뻗어 대공저의 정문을 향해 걸어갔다.

    에드는 그런 레기의 옆에 서며 당황한 얼굴로 물었다.

    “워프하려고 했는데?? 이리와.”

    “나랑 있을 때는 마법은 쓰지 않아도 좋아.”

    “응?”

    에드의 눈이 동그랗게 변하자 레기는 그런 에드를 향해 다정히 말했다.

    “평상시에 마력을 최대한 사용하지 않는 편이 마법사들의 건강에 좋다고 배웠어.”

    “...!!”

    “그러니 내 옆에서는 마법은 쓰지 않아도 괜찮다는 거다.”

    “어어어....”

    레기의 말에 에드가 입을 떡 벌렸으나 이내 제 머리를 긁적이며 그의 옆에 섰다.

    쓸 때 없이 저런 다정함을 툭툭 내던지듯 버려버리는 바람에 심장이 놀라서 굳어버렸었다.

    에드는 그런 레기의 다정함에 미간을 좁히며 말했다.

    “형, 다른 사람한테는 그런 거 하지 마.”

    “음?”

    “알았지? 그거 나쁜 거야.”

    “뭘 말하는 거지?”

    에드의 말을 이해하지 못했다는 듯 레기가 한 쪽 눈썹을 일그러트리자 에드가 단호히 말했다.

    “챙겨주는 거 말이야. 진짜 사랑하는 사람이 아닌 이상에는 해주지마.”

    “웃긴 이야기를 하는구나.”

    멀어지는 에드의 뒷모습을 가만히 바라보던 레기가 피식 웃으며 그의 옆에 섰고 이내 부드럽게 말했다.

    “네가 사는 거냐.”

    “까짓거 내가 살게!”

    “그 말투는 고모님과 좀 비슷했다.”

    “그치? 으아 고모 보고 싶다.”

    *

    수도에 도착한 쌍둥이는 주변에 가득 울려 퍼지는 왁자지껄한 사람들의 음성에 주변을 둘러보았다.

    레기는 사람들의 인파에 살짝 미간을 좁히며 에드에게 물었다.

    “오늘 유독 사람이 많은 듯한데... 무슨 날이었나.”

    “음.... 그러게....”

    “네가 말한 가게로 얼른 이동했으면 좋겠어.”

    “그러게 워프한다니까!”

    “그럴 바에 조금 더 걷는 것이 건강에 좋은 거다.”

    “잔소리!”

    툴툴거리는 형제들은 겨우 겨우 원하던 가게로 찾을 수 있었다.

    몰론 문이 닫혀있던 채로 말이다.

    레기는 굳게 닫힌 가게의 문을 물끄러미 바라보다가 에드를 향해 물었다.

    “이건 무슨 상황인거지?”

    “......”

    식은땀을 뻘뻘 흘리며 닫힌 문을 관찰한 에드가 이내 난처한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오늘만 문을 닫나봐.... 휴가를 갔다네....”

    “흠.....”

    “다, 다른 곳에 가보자!”

    민망한 웃음을 흘리는 에드를 따라 레기가 이동했고 곧이어 많은 가게들의 문이 닫힌 것을 눈앞에 목격해서야 형제들은 수도에서 술을 먹기 글렀다는 것을 쉽게 깨달을 수 있었다.

    “아무래도 지금 사람이 많은 것도, 가게 문들이 닫힌 것도 이유가 있는 것 같군.”

    “그러니까 말이야... 무슨 일이지?”

    “내가 알기로는 특별한 행사나 축제는 없는 날이었는데 말이지....”

    “한 번 알아봐야겠어.”

    “응??”

    “생각보다 기분이 나빠서 말이지...”

    술이 고픈데 술을 먹지 못해 슬픈 레기의 삐뚤어진 분노가 수도의 인파를 향해 번뜩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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