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두 번째 딸로 태어났습니다-211화 (210/218)

외전 3화. 브로크

레기는 통신실에 도착하자마자 전담 교수를 향해 말했다.

살벌한 기세를 마구 흩뿌리며 하는 말이 무언가 살벌하게 느껴졌다.

“스페라도 대공저에 연락을 취하고 싶습니다.”

“어, 어... 무, 무슨 연유로....”

말을 더듬으며 눈을 굴린 교수를 향해 오스카가 난처하지만 단호히 입을 열었다.

“신관부의 앤젤라 스페라도가 사라진 것 같아서요.”

“ㄴ, 네에에에??!!”

오스카의 말에 경악한 교수가 자리에서 벌떡 일어나자 의자가 처참하게 바닥에 널브러졌다.

쿠당탕탕!!

파밧!!

그리고 동시에 에드도 허공에서 나타났고 말이다.

에드는 허공에서 나타나자마자 레기의 앞에 서며 잔뜩 질린 얼굴로 외쳤다.

“없어!! 없다고오!!!”

“진정해라 에드.”

“앤젤라가 없는 데 어떻게 진정해?! 아, 아버지께는 연락드려봤어??!”

“이제 드리려던 참이다. 교수님. 통신석을 써도 됩니까.”

“그, 그러세요...!”

교수가 황급히 수락하자 레기는 망설임 없이 통신실 안으로 들어서며 대공저를 향해 통신석을 움직였다.

빠른 손길에서부터 그가 얼마나 급한지가 느껴졌다.

투둑.

통신석에 이내 밝은 빛이 퍼지고 그 안에서 제이 스페라도의 모습이 나타났다.

[레기구나.]

“아버지.”

환한 은발 밑으로 레기, 에드와 똑 닮은 이목구비가 아름다운 미소를 담았다.

그의 건장한 어깨에서부터 단단한 상체가 제복 밖으로도 느껴졌고 그 든든한 자태를 바라보며 레기가 말했다.

“지금 시간이 괜찮으십니까.”

[시간이야 괜찮다. 에드도 오스카도 있었구나. 앤젤라는?]

“...... 아버지.”

레기의 목소리에서 심상치 않은 것을 느낀 제이가 천천히 표정을 굳혔다.

아까부터 보이지 않던 제 딸의 모습에서부터, 이 시간에 연락을 취한 레기와 에드, 오스카에게서부터 묘한 불안을 느꼈다.

레기는 굳어가는 제이를 향해 말했다.

“급한 일이 생겼습니다.”

[급한 일.]

“앤젤라가 아카데미에서 사라졌습니다.”

[...!!!]

통신석 안에서의 제이의 표정이 창백하리만치 하얗게 질렸다.

레기는 그런 그를 향해 말했다.

“요 근래 일어나고 있는 실종사건과 연관되어 있는 것 같아요.”

[황태자님께서 조사 중이시던 일이구나.]

제이의 푸른 눈이 분노를 담았다.

[내가 지금 황성으로 가보마. 너는 그곳에서 할 수 있는 일을 하도록.]

“네, 아버지.”

*

터벅 터벅

빈 탑의 계단을 오르고 또 오르자 사내와 앤젤라의 발걸음 소리가 공허하게 울려 퍼졌다.

주변은 거미줄만 없을 뿐이지 사람이 지낼 수 없을 만큼 냉기가 가득했다.

‘사람들의 손길이 없어... 임시로 쓰는 거처 같은 곳이겠지.’

철컥!

끼이이이익

탑의 정상에 오른 듯 사내가 거대한 문을 힘겹게 열었다.

낡은 문의 소리에 저절로 한쪽 눈을 일그러트린 앤젤라는 이내 누군가가 앉아 있는 작은 집무실을 발견할 수 있었다.

앤젤라는 그 집무실의 가운데에서 제일 먼저 마주한 눈동자에 입술을 깨물었다.

너무도 고혹적으로 빛나는 바다를 닮은 눈동자와 열려진 창문에 흩날리는 남색의 머리카락.

마스터라 불리는 이는 젊은 남성이었다.

‘저렇게 멀쩡하게 생긴 사람이... 노예로 아이들을 납치하라고 시켰단 말이야...?’

20대 초반은 되어 보이는 그 사내는 매끄러운 미소를 지으며 앤젤라와 사내를 맞이했다.

“어서와.”

반갑게 맞이하는 살가운 말투가 조금 날카롭게 느껴질 무렵 앤젤라를 붙잡은 사내가 잔뜩 당황한 모습으로 말했다.

“에?? 어... 마, 마스터는... 어디에... 아니 그보다 누구신지...”

“.....?”

앤젤라의 눈이 저절로 동그랗게 변했다.

‘뭐야, 처음 보는 사람이었어?’

이상한 흐름의 전개로 상황이 흘러가자 앤젤라가 사내만큼 당황한 눈으로 두 사람을 번갈아 바라보았다.

애써 머리를 굴려보아도 영문을 알 수 없는 상황은 마찬가지였다.

앤젤라를 붙잡고 있던 사내를 유심히 바라보던 이가 집무실의 의자에서 조용히 일어섰다.

“네 마스터라면 턱수염이 물방울처럼 생긴 사람 말하는 거지?”

“아... 그런데... 요?”

“그라면 아직 집무실에 오지 않았어.”

“당신은 누구신지...”

“나?”

사내의 매혹적인 미소가 진해졌다.

“난 브로크라고 해. 네 마스터의 윗선이지.”

“네?”

“이 경매장을 세우라고 명령한 주인. 그게 나야. 네 마스터라는 인간한테 못 들어봤어?”

“!!!”

앤젤라와 사내의 얼굴이 창백해졌다.

브로크는 두 눈을 곱게 접어 웃으며 이내 다정히 물었다.

“그리고 궁금해서 그러는데...”

눈은 웃고 있으나 입은 전혀 웃고 있지 않는 듯한 모습이었다.

“네가 붙잡고 있는 그 여인은 뭐야?”

“ㄴ, 네??”

“경매장 뒤에서 들리는 애들 목소리는 뭐고... 스페라도가의 대공녀는 어디서 어떻게 데려온 거야?”

“!!!!”

브로크의 질문에 앤젤라의 얼굴이 딱딱하게 굳었다.

이 상황이 도대체 어떻게 된 것인지 조금도 알 수 없었다.

그러던 그때였다.

콰과과광!!!

“오.”

“!!!!”

어마어마한 폭발음과 함께 탑이 자잘하게 흔들렸다.

브로크는 그 굉음에 피식 웃음을 지으며 휘파람을 불었다.

그리곤 벌벌 떠는 사내를 바라보며 짓궂은 미소를 짓고 이내 즐겁다는 듯 물었다.

“너희가 지금 무슨 짓을 저질렀는지 알아?”

“네?? 아니 무슨...!”

“건드리면 안 되는 것을 건드렸어. 인생이 아주 지옥의 바닥으로 나가떨어지는 이 소리가 안 들려?”

“네에??”

“멍청하긴.”

브로크는 부드럽게 걸어 나와 앤젤라의 속박된 밧줄을 풀었다.

그리곤 그녀의 손목을 부드럽게 제 손수건으로 감싸주며 말했다.

“괜찮습니까 영애.”

“네....? 아... 네.”

“설마 이렇게 말도 안 되는 일이 제가 없는 사이에 벌어질 줄은 꿈에도 몰랐습니다.”

“어....”

“뭐 눈에는 뭐만 보인다더니... 귀한 것을 찾아 경매에 올리라고 명령하니 설마 마력을 지닌 아이들을 데려올 줄은...”

“......”

쿵쿵!!

쿠과과광!!!

“이러다 여기 있는 것들이 모두 무너질 것 같군요. 나가시지요.”

“어어어??”

브로크는 그 말을 끝으로 부드럽게 앤젤라를 안아주며 창문 밖으로 뛰어들었다.

뒤에서는 여전히 어벙하니 서 있는 사내를 내버려둔 채였다.

창문 밖으로 몸이 던져지자 아찔한 높이가 제일 먼저 눈에 띄었다.

앤젤라는 저절로 두 눈을 꼭 감고 브로크에게 매달렸다.

“꺅!!”

타닥!

브로크는 부드럽게 바닥에 안착한 후 앤젤라를 내려주었다.

동공지진을 일으키는 앤젤라가 천천히 시야를 올리자 분홍빛의 머리카락이 제일 먼저 눈에 띄었고 이내 날카롭게 빛나는 붉은 눈동자를 발견할 수 있었다.

커다란 키에 넓은 어깨, 검은색의 제복이 무척이나 잘 어울리는 수려한 외모까지 모두 낯이 익었다.

앤젤라는 저절로 벌어지는 입을 다물지 못하고 안심한 듯 외쳤다.

“테리 오빠!!”

테리 레바스찬의 등장이었다.

테리는 제게로 달려오는 앤젤라의 어깨를 부드럽게 감싸며 브로크를 찢어 죽일 듯이 바라보았다.

“네 경매장이 언제부터 노예들을 팔기 시작한 거지?”

“죄송하지만 불법 노예를 하겠다고 생각한 적은 한 번도 없었습니다.”

“그럼 저 아이들은 어떻게 설명할 거냐.”

“부하의 뇌가 비었다는 증거지요. 제 불찰입니다.”

“여전히 그 입만 살아있군.”

“그리 느껴지셨다니 감사합니다.”

눈빛과 대화가 생각보다 살벌했다.

앤젤라는 테리의 품에서 고개를 들어 오랜만에 마주한 테리를 바라보았다.

날렵한 턱 위로 보이는 섬세한 이목구비가 햇빛을 받아 아름답게 빛났다.

“테리 오빠...”

“앤젤라, 다친 곳은?”

“소, 손목이 조금...”

“뭐?”

테리의 눈이 왈칵 일그러졌다.

테리는 부드럽게 앤젤라의 팔을 잡아 제 붉은 눈을 옮겨 그녀의 손목을 살폈고 억센 밧줄로 인해 푸르게 멍이 들어버린 손목의 자국을 그대로 마주했다.

테리의 표정이 딱딱하게 굳었다.

“너....”

“에, 에드오빠가 치료해줄 거야! 마법이면 바로...”

“누구야.”

“으응?”

테리의 낮은 저음이 앤젤라의 귀에 박혔다.

“누가 네 팔을 묶었지?”

“오, 오빠?”

“아니, 누가 애초에 너를 이딴 곳으로 데려온 거냐.”

테리의 붉은 눈이 무섭게 타올랐다.

앤젤라의 등 뒤로 식은땀이 흐를 때 테리가 앤젤라를 제 품에 가두며 브로크를 바라보았다.

날카로운 살기가 그의 주변이 마구 흩날렸다.

“네가 일으킨 일이 일에 대가는 잘 알겠지.”

“제 불찰이니 달게 받겠습니다.”

“후작은 마음고생이 심해지겠어.”

‘후작?’ 앤젤라가 작은 의문을 품을 때 테리가 그녀의 궁금증을 빠르게 풀어줬다.

“하나뿐인 후계자가 죄인으로 벌을 받게 될 테니까 말이야.”

“으엑!!”

앤젤라는 혀를 깨물 뻔 한 표정으로 황당하게 브로크를 바라보았다.

‘뭐야, 후작의 후계자였어?!’

그런 자가 왜 이런 경매장을...

브로크는 두 눈에 가득 의문을 품은 앤젤라와 눈이 마주치자 부드럽게 웃었다.

묘한 색이 흘러넘치는 그 미소가 햇빛을 받아 눈이 부셨다.

“원래는 법을 준수하고 합법적인 경매를 추구하는 곳입니다. 귀중한 보석을 달아 놓은 악세사리, 혹은 쉽게 구할 수 없는 예술작품들만이 경매에 올라올 수 있죠.”

“그... 그렇다면 아이들은 왜...”

“송구스러우나....”

브로크의 미소가 난처함을 담았다.

“부하에게 명한 일이 잘못 전달된 모양입니다. 귀한 것을 경매에 올릴 준비를 하라고 일렀을 뿐인데... 제가 유학을 다녀온 사이에 이런 소동이 벌어져 있더군요.”

“아....”

“그들의 생각에서 귀한 것은 마력을 지닌 이들이었나 봅니다.”

브로크의 눈에 조금의 씁쓸함이 담겼다.

앤젤라가 그 눈의 의미를 알아가려는 무렵 뒤에서 들리는 거대한 소음이 그녀의 말문을 막았다.

쿠당탕!!

과과과광!!

“앤젤라아아아!!!”

“엥....”

“앤젤라!!”

“.....”

가까이서 들리는 이 목소리들은 모두 낯이 익었다.

너무도 낯이 익어서 문제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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