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두 번째 딸로 태어났습니다-210화 (209/218)
  • 외전 2화. 어쩌다 납치, 어쩌다 분노

    “음....”

    다가닥 다가닥 다가닥

    격하게 움직이는 공간에서 밖의 소음을 조용히 듣고 있던 앤젤라가 난처하게 한숨을 흘렸다.

    “후....”

    빛 한 점 들어오지 않는 여긴 밖의 소리만 들어도 마차의 짐칸이라는 것을 알 수 있었고 속박된 밧줄은 단단해서 풀리지 않을 것이 분명했기 때문이었다.

    앤젤라는 나직한 한숨을 연달아 흩뿌리며 기절해있는 죠이를 바라보았다.

    자잘하게 남은 작은 상흔 말고는 크게 다친 곳은 없어 보였다.

    “다행이다.”

    아니, 다행일까?

    납치가 되었고 이리 붙잡혀 어디로 보내질지 모르는데...

    ‘아카데미에서 많이 벗어난 것 같아. 어디로 이동시키는 거지?’

    일단 가장 확실한 부분은 에드와 레기가 설명해줬던 아카데미 마법과 학생들의 실종사건들은 지금 이 상황과 매우 연관이 있다는 점이었다.

    자신이 없어졌다는 것을 아마 레기와 에드도 눈치를 챘을 테니 금방 돌아갈 수 있겠지만 동시에 걱정도 되었다.

    ‘다들 무사했으면...’

    실종되었다고 알려진 붙잡힌 학생들의 무사.

    그게 제일 걱정되는 일이었다.

    앤젤라는 조심스럽게 주변을 둘러보다가 허공을 향해 고개를 올려 물었다.

    “밖에 뭐가 보이는 지 이야기해줄 수 있니?”

    ‘이야기! 이야기 해 달래!’

    ‘히히히 내가 할래!’

    꺄르르 웃음을 터트리는 맑은 소리는 바로 영혼인 존재들이었다.

    작은 아이들은 키득키득 웃으며 마차 밖으로 빠져나갔고 곧이어 앤젤라의 곁으로 돌아와 속삭였다.

    ‘나무 있어! 많아!’

    ‘집도 많아! 멀리 있어.’

    “고마워.”

    작은 영혼들의 이야기에 앤젤라가 맑게 웃으며 인사를 전하자 영혼들은 깊은 미소를 흩뿌리며 앤젤라의 주위를 맴돌았다.

    앤젤라는 그런 영혼들을 바라보며 생각에 잠겼다.

    나무가 많다는 건 지금 여기는 숲이라는 것이었고 멀리서 보이는 집은 분명 마을일 것이었다.

    ‘어디로 가는 거지? 얼마나 아카데미에서 멀어진 거지...’

    빨리 에드와 레기가 제 존재가 사라진 것을 알아채고 데리러 와줬으면 했다.

    앤젤라는 마차에 실어진 짐에 등을 기대며 눈을 감았다.

    ‘'빨리 와줘... 레기오빠, 에드오빠.’

    레기는 검술의 수련이 끝나자마자 빠르게 앤젤라의 교실을 향해 걸어갔다.

    아카데미에서 실종사건이 벌어진 후부터 지속된 지극정성의 보살핌과 걱정이 아닐 수 없었다.

    검술부와 신관부의 교실은 아카데미의 양 끝이었다.

    그의 빠른 걸음으로도 오고 가는 시간만 10분은 될 터였지만 레기는 하루의 쉬는 시간도 빠지지 않고 그녀에게 달려갔다.

    쉬는 시간은 단 30분밖에 없는 데도 불구하고 말이다.

    그 점은 에드도 마찬가지였다.

    드르륵

    환한 은발이 찰랑이며 신관부의 문을 연 레기는 수려한 눈을 굴려 아름다운 분홍색의 머리카락을 찾았다.

    “......?”

    확 눈에 띄어야 할 그 머리카락과 사랑스런 얼굴이 보이지 않음에 레기의 눈이 천천히 일그러졌다.

    자신이 쉬는 시간마다 찾아오는 것을 알고 있는 앤젤라가 이렇게 교실을 비운 적은 한 번도 없던 일이었다.

    레기가 천천히 불안감에 휩싸일 무렵 에드도 앤젤라의 교실에 도착했다.

    “형?”

    “에드.”

    “뭐야? 왜 안 들어가고 이러고 있어?”

    “앤젤라가 보이지 않아.”

    “뭐어??”

    레기의 말에 에드가 눈을 일그러트리며 다급히 앤젤라의 교실에 얼굴을 들이밀었다.

    죄다 처음 보는 (관심 없는) 학생들뿐이었고 앤젤라가 앉아 있던 고정석은 비어져있었다.

    레기는 동공지진을 일으키는 에드를 바라보며 말했다.

    “아침에 앤젤라와 인사를 나누던 그 신입생도 없어.”

    “화, 화장실이라도 간 건 아니야?”

    “흠... 그럼 기다리...”

    “저, 저기!”

    레기와 에드가 화장실 앞에 죽치고 있을 듯이 나누던 대화를 누군가 중단 시켰다.

    에드와 레기의 눈이 저절로 그 인물을 향해 시선을 돌렸고 그 아름다운 시선을 한 몸에 받은 학생이 두 볼에 홍조를 가득 매달았다.

    너무도 눈부신 쌍둥이를 향해 여학생이 부들부들 떨리는 입술로 말했다.

    “고, 공녀님과 죠이가... 이번 수업에 들어오지 않았어요...”

    “.... 뭐?”

    레기의 얼굴이 저절로 창백해졌다.

    에드는 창백하게 질린 낯으로 여학생을 향해 물었다.

    “형이 분명 교실까지 바래다주었잖아! 그런데 안 들어왔다니...”

    “그, 그게... 교실에 앉으시자마자 창문을 보시고 바로 달려 나가셨는데 그 후로는....”

    “이런 미ㅊ...!!!”

    “에드, 통신실로 간다.”

    저절로 험한 말이 튀어나온 에드를 뒤로 하고 레기는 망설임 없이 교실을 나섰다.

    수업에 충실하던 그 아이가 수업에 안 들어왔다고?

    아니, 안 들어온 것이 아니라 못 들어왔을 가능성이 높았다.

    레기가 그런 생각에 빠질 때 에드가 옆에 서며 말했다.

    “나, 납치가 아닐 수도 있잖아! 난 일단 아카데미 내부에 있는 지 찾아볼게.”

    “난 아버지께 연락을 드려야겠어.”

    “아 진짜 이게 무슨 일이야...!!”

    에드는 그리 외치며 다급히 워프했다.

    레기는 그런 에드가 사라지는 것을 바라보지도 않고 아카데미의 통신실로 이동했다.

    빨리 제 여동생을 눈에 담아야지만 가슴이 진정될 것 같았다.

    ‘레기 오빠!’

    해맑은 그 아이의 미소가 눈에 아른거렸다.

    만약 그 작은 아이에게 무슨 일이라도 생긴다면...?

    그 끔찍한 일을 한 번 상상해본 적은 있으나 결과는 처참했다.

    그 아이의 안전을 위해 그 아이의 뒤에 서 있는 사람은 수많았다. 능력하나 부족한 이가 없었기에 그녀의 안전은 확실했다.

    그러나 지금은 그렇지 않게 되어버렸다. 아카데미에서 앤젤라를 지킬 사람은 자신과 에드 뿐이었는데... 그와 자신은 그녀를 지키지 못한 것이 분명했다.

    그 사실이 레기의 분노를 끓어 올렸다. 범인을 찾으면 반드시 찢어 죽일 듯한 살기를 담고 걸어갔다.

    그러던 그때였다. 누군가 빠르게 앞으로 나가는 레기를 붙잡았다.

    “레기형님?”

    “..... 오스카.”

    푸른 머리카락을 휘날리던 그 사람은 바로 오스카 레바스찬이었다.

    “레기형님, 무슨 일이라도 있나요? 얼굴이...”

    “..... 앤젤라가 사라졌다.”

    “네..??”

    오스카의 눈이 커지며 이내 다급히 물었다.

    “그냥 화장실에 갔다거나... 다른 교실로 이동했다거나...”

    “교실에는 내가 바래다주었어. 그 후 잠깐 밖으로 나갔다던데 수업이 끝나기 전까지 교실에 돌아오지 않았다고 했다.”

    “....!!”

    수업을 중요시 여기는 앤젤라가 그런 일을 일부러 자처하지 않을 것이었다.

    오스카는 심각해진 얼굴로 레기를 향해 말했다.

    “이번에 연달아 일어난 학생들 실종사건과도 연관이 있는 듯하군요.”

    “.....”

    “테리 형님께서도 조사하시던 일입니다. 지금 연락을 드리러 가봐야겠어요.”

    “나도 아버지께 말씀드리려던 참이다.”

    “함께 가요. 전 형님께 연락을 드리고 교무실로 이 사실을 알리러 이동하겠습니다.”

    “그래. 고맙다.”

    “고맙긴요, 가족이잖아요.”

    든든한 지원군의 등장에 레기의 가슴이 아주 조금 진정이 되어갔다.

    쾅!!!

    “!!!”

    마차가 거칠게 그 자리에서 멈췄다.

    앤젤라는 그 기세에 흠칫하며 마차짐칸의 문을 바라보았다.

    저벅 저벅

    “저건 어쩔 거야? 들킨 게 불안해서 데리고 오긴 했는데 누가 봐도 귀족 같잖아.”

    “일단 마스터에게 말해보자...”

    “걸리면 우린 싹 다 죽는 거라고!”

    그들이 마차에서 내리며 나누는 대화를 유심히 듣던 앤젤라가 고개를 작게 끄덕였다.

    ‘내 머리카락이랑 눈을 보고도 대공녀란 걸 모른다면... 우리 제국 사람이 아닐 가능성이 높아.’

    철컥!

    어두웠던 짐칸의 문이 열리자 환한 햇빛이 그녀의 눈을 자극했다.

    자칫 따갑게 느껴지는 빛으로 인해 두 눈을 찌푸린 앤젤라는 아까 전, 죠이와 자신을 붙잡아간 사내 둘을 발견했다.

    “......”

    사내들은 분홍색의 머리카락을 나풀거리며 아름다운 연두색 눈동자를 빛내는 앤젤라를 멍하니 바라보다가 다급히 속삭였다.

    “야, 귀족이 아니라 황족이라고 해도 믿겠어... 어쩌지? 잘못 데려온 거 아니야?”

    “그, 그렇지만 안 데려왔으면 우린 분명 걸렸다고. 그리고 지금 아카데미에는 황족은 없다고 하셨어.”

    “일단 저 애만 마스터한테 데려가고 꼬맹이는 경매장 뒤편으로 옮기자.”

    ‘경매장...?!’ 그들의 작은 목소리를 듣고 있던 앤젤라가 두 눈을 크게 떴다.

    경매장에 아이들을 납치해서 옮긴다고?

    그렇다는 것은...

    불법노예 경매

    ‘실종된 학생들은 모두 우리 마법과 학생들이거든.’

    ‘평민들이였어.’

    에드의 말이 퍼뜩 앤젤라의 귀를 강타했다.

    귀한 마법사의 자질을 타고 난 평민들을 납치했다고.

    고귀한 귀족들을 납치 한다면 잡힐 가능성이 매우 높았을 것이었다.

    그렇다면 평민들을 노리는 것인데.

    평민은 아이들을 납치해도 그들을 찾을 능력이 부족하여 붙잡힐 가능성은 현저히 줄 것이었다.

    “.......”

    앤젤라의 눈이 불타오른 듯 분노에 휩싸였다.

    그런 조건으로 아이들을 납치하고 경매장에 내다 팔려고 하는 이 사람들의 마음을 이해할 수 없었다.

    콱!!

    “야! 나와 봐 넌!!”

    사내의 억센 손길이 앤젤라의 팔에 닿았다.

    등 뒤로 손이 묶여진 탓에 사내가 잡아당기는 팔이 너무도 아팠지만 앤젤라는 입술을 꾹 깨물며 눈물을 참았다.

    ‘울면 지는 거야.’

    절대 울지 않겠다는 의지를 다지며 앤젤라가 사내가 이끄는 대로 따라 걸었다.

    ‘죠이...’

    그 어린아이가 어른들의 욕심에 휘말려 무서운 일을 겪고 있음이 걱정되었다.

    걱정스럽게 뒤를 돌아본 앤젤라의 두 눈이 커졌다.

    죠이와 눈이 마주친 탓이었다.

    “...!!”

    죠이의 눈이 겁을 먹고 눈물이 고였다.

    앤젤라는 그런 죠이를 향해 이내 작게 미소를 지어보였다.

    안심하라고 말이라도 해주고 싶었기 때문이었다.

    죠이는 그런 앤젤라가 미미한 미소에 눈을 크게 떴으나 앤젤라는 이내 사내의 손에 의해 작은 탑의 안으로 들어섰다.

    ‘레기오빠... 에드 오빠...’

    그들이 너무도 보고 싶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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