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7화. 베리트 도베로만
아카데미를 졸업한 후 레기는 황성의 기사단으로 입단하여 출근을 하기 시작했고 에드 또한 황실의 마법사로서 황성으로 출근하기 시작했다.
아이들의 성장과 아이들의 이루어진 꿈의 모습에 세린과 제이는 그저 흐뭇했다.
아쉽게 졸업을 놓쳐버린 딸 또한 걱정이 되었다.
그날 밤, 세린은 제이의 가슴에 기대어 누우며 나직이 말했다.
“앤젤라는 내년에 만날 수 있겠네요...”
“아쉽지만 어쩔 수 없지요. 그 아이도 열심히 노력했던 것이었으니 수고했다고 할 수 밖에요.”
“그렇죠...”
세린이 조금 시무룩해보이자 제이가 다정히 웃으며 세린을 제 품에 가뒀다.
시원하면서도 달콤한 향기가 풍기자 세린의 입가에 다정한 미소가 담겼다.
제이는 그런 세린의 이마에 입을 맞추며 말했다.
“4년을 기다렸는데... 1년이라고 기다리지 못할까요.”
“하하하 그것도 맞네요.”
“저도 우리 딸이 너무 보고 싶지만 잘 참아보겠습니다.”
“네? 하하하! 제이.”
제이의 농담 같은 진담에 결국 세린이 웃음을 터트리며 그의 품에 기대었다.
그도 어지간한 딸바보라 앤젤라가 몹시 그리울 것이라는 것을 알았던 탓도 있었다.
“잘 하겠죠 우리 앤젤라.”
“레기와 에드도 잘해냈지 않았습니까. 잘해낼 겁니다.”
“제이 말이 맞아요.”
세린의 눈이 천천히 감겼다.
근사하게 자란 제 아들들도, 졸업을 못했지만 노력을 하고 있는 제 딸도 모두 사랑스러웠다.
부디 그녀가 빨리 돌아오기를 간절히 바랬다.
*
그녀의 바람처럼 시간은 느리고 동시에 빠르게 흘렀다.
앤젤라의 노력이 닿은 듯 아카데미에서부터 딱 1년 만에 졸업장을 받았고 앤젤라는 제 졸업장을 눈물진 얼굴로 바라보았다.
“드... 드디어....!”
엄마에게 갈 수 있어!
그녀의 눈에 감격이 차오르자마자 누군가 그녀를 불렀다.
“앤젤라.”
“응??”
같은 교실에서 공부를 하던 학생이었다.
여학생이 다정히 ‘졸업 축하해.’ 라고 말한 후 창문 밖 아카데미의 입구를 가리키며 말했다.
“누군가 널 찾아왔대.”
“나를?”
“응. 입구에서 기다리고 있나봐.”
“아! 고마워!”
앤젤라의 두 눈이 밝아졌다.
혹시 자신을 그토록 기다리던 레기와 에드가 아닐까 싶은 마음에 그녀의 발걸음이 빨라졌다.
“헉...! 헉!”
‘레기 오빠... 에드 오빠!’ 제가 졸업을 못해 걱정했을 오빠들이 자신을 축하해주러 온 것 같은 느낌이었다.
해맑은 얼굴로 아카데미 입구에 나타난 앤젤라의 두 눈동자가 점차 커져갔다.
하늘을 맑았다.
하늘 밑에 서있는 한 사람도 맑고 아름다웠다.
그녀의 시양 백금색의 머리카락이 부드럽게 담겼고 이내 청록색의 아름다운 눈동자가 시야에 다가왔다.
큰 키와 넓어진 어깨 위로 눈부신 미모가 빛을 발했다.
앤젤라가 떨리는 목소리로 입술을 열었다.
“데... 데미언 오빠...?”
제 부름에 그의 눈동자가 반짝였다.
그는 긴 다리를 옮겨 제 앞으로 다가섰고 이내 그 누구보다 아름다운 동작으로 상체를 숙였다.
그리곤 앤젤라의 손을 붙잡고 말했다.
“보고 싶었습니다.”
“... 오빠!! 어, 어떻게 여기에...”
“제가 말씀드렸던 것 기억하십니까.”
“네...?”
앤젤라의 동그란 눈이 퍽 사랑스러웠다.
데미언은 굵고 나직한 목소리로 조용히 속삭이듯 말했다.
“다음번에는 제가 당신에게 고백하겠다고 했던 그 말.”
“....!!!!”
앤젤라의 두 볼이 잔뜩 붉어졌다.
데미언은 그런 앤젤라를 따뜻하게 바라보며 말했다.
“좋아합니다. 앤젤라님.”
“.... 오빠...”
“당신은 제 빛이고 동시에 땅입니다.”
“.....”
“당신에게 진심을 전할 수 있도록 노력하고 노력했습니다.”
두 사람의 시선이 허공에서 마주 닿았다.
진심이 불어왔다.
“좋아합니다.”
사랑도 함께 불어왔다.
앤젤라의 두 눈에 눈물이 차올랐고 데미언의 눈에 웃음이 차올랐다.
한 사내가 이제는 여인이 된 첫사랑에게 제 온 진심을 쏟아 부었고 여인은 그런 사내의 손을 꼭 잡아주었다.
“저도 좋아해요... 여전히요.”
진심과 진심이 마주 닿았다.
*
“으무아! 부부바!!!”
“그래, 베리트. 배가 고팠구나.”
“마맘맘마!”
“맘마 여기 있단다.”
부드러운 음성 속에 사랑이 듬뿍 담겨있었다.
아이의 옹알이에 모든 대답을 성실하게 하는 이는 다른 누구도 아닌 이엔 도베로만 이었다.
그런 그의 품에서 옹알이를 마구마구 쏟아내는 이는 그와 리사의 하나 뿐인 딸 베리트 도베로만 이었고 말이다.
베리트는 풍성한 검은색의 머리카락을 하고 있었고 아름다운 금빛 눈동자를 빛내며 제 아비의 옷을 붙잡고 있었다.
너무도 자연스럽게 그런 베르트를 어르고 달랜 이엔이 그녀의 입 안으로 아기우유를 물려주자 베르트는 우유 통을 작은 손으로 붙잡고 힘차게 먹기 시작했다.
“므우....”
“그래, 맛있구나. 다행이야.”
이엔의 수려한 옆모습과 시선 속에서 꿀물이 뚝뚝 흘렀다.
달디 달콤한 시선을 받으며 베르트는 우유를 먹었다.
“잘 먹네 우리 베르트... 엄마 닮았구나.”
“브...”
“옳지, 조금만 더 먹자꾸나.”
“무마마마!”
“엄마는 지금 일을 하고 계시는 중이란다. 우린 얌전히 집에서 기다려야 해.”
아이의 모든 말에 대답해주는 성실한 엄마(?) 이엔은 자신을 쏙 빼닮은 베르트를 바라보며 조금 의문스럽다는 듯 물었다.
“베르트는 모두 예쁘고 사랑스럽지만... 왜 엄마를 닮지 않았을까...”
“부브!”
“그녀가 낳았는데....”
묘한 아쉬움이 묻어난 목소리에도 베르트를 열심히 우유를 먹었다.
그런 작은 아기의 모습에 결국 이엔은 의문을 모두 지우고 환히 웃음 지었다.
“착하지 우리 아가.”
“너도 아가랑 똑같이 웃는구나?”
“!! 리사님??”
갑작스런 리사의 등장에 이엔의 눈이 동그랗게 변했다.
리사는 막 퇴근을 마친 제복차림으로 피식 웃으며 서있었다.
제 딸과 제 남편의 지금 모습이 너무 사랑스러웠다.
“그렇게 예쁘냐.”
“당연하죠. 매일 얼굴을 보는데도 질리지 않아요. 더 예쁘기만 하고....”
“나도 그러는데 말이지.”
털썩!
리사가 부드럽게 이엔의 옆에 안착했다.
베르트를 안고 있던 이엔은 그런 리사를 맑게 웃으며 바라보았고 베르트 또한 제 우유병을 입에서 빼고 맑게 웃음을 터트렸다.
“리사님.”
“브아!”
“느허억!!”
그 화사한 장면에 리사는 제 심장을 움켜쥐었다.
사랑스러워도 이리 사랑스러우면 곤란했다.
그녀의 집에서는 항상 제 심장을 노리는 부녀가 매일같이 그녀의 목숨을 위태롭게 만들었다.
이엔은 그런 리사를 당황스런 눈으로 바라보며 물었다.
“괜찮으세요? 어디 몸이라도 안 좋으신 거 아닌...”
“괜찮아... 자연스러운 현상이야.”
“네에...?”
“아, 이엔! 좋은 일이 생겼어.”
“뭔데요?”
“앤젤라가 드디어 졸업장을 땄다고?!”
“!!!”
이엔의 얼굴에 환한 웃음이 자리 잡혔다.
“정말 기쁜 소식이네요!”
“그치? 우리 앤젤라는 졸업하는 시간도 나랑 똑~~같단 말이야? 역시 전하와 날 닮은 것이 분명해.”
“하하하하 그러네요.”
“그런 기념으로 대공저에서 작은 파티를 열려나봐. 우리도 초대를 받았으니 조금 있다 출발하자.”
“아! 그렇겠네요. 그러면 베르트도 예쁜 옷을 찾아봐야겠어요.”
“내가 방금 사왔어. 베르트는 워낙 본판이 빛나니까 뭘 입어도 예쁘겠더라고.”
“그건 맞아요.”
참 팔불출 중에 팔불출다운 부부였다.
자식의 칭찬과 조카의 사랑을 토해내느라 바쁜 리사는 베르트와 이엔을 데리고 대공저로 향했다.
대공저에서 이루어진 작은 파티에는 작지만은 않은 사람들이 자리했다.
황제, 황후, 황태자에 심지어는 전대 황제, 전대 대공작, 대마법사, 기사단장, 암살 왕까지 존재했다.
어마어마한 가족의 일원의 축하를 받으며 앤젤라는 부끄럽다며 웃음을 터트렸다.
“아니... 늦게 졸업한 건 부끄러운 일인데... 축하 파티 라뇨오...”
앤젤라가 수줍게 웃자 제이가 다정히 말했다.
“앤젤라, 아카데미는 원래 7년을 다녀야 하는 곳이야. 그곳을 5년 만에 졸업한 것이니 얼마나 대단한 일이겠니.”
“그, 그치만...”
“졸업을 축하한단다.”
“아빠...”
앤젤라의 두 눈에 눈물이 글썽이자 제이는 “이런”라고 말하며 앤젤라의 눈에서 눈물을 닦아내었다.
그의 푸른 눈에 담긴 다정한 애정에 앤젤라는 맑게 웃음 지었다.
“고마워요 아빠...”
“내가 더 고마운 일이지. 너도 레기와 에드도 모두 엄마와 아빠의 자랑이란다.”
“아빠아...”
세린도 그런 딸의 손을 잡아주며 말했다.
“오늘은 너의 날이야. 네가 원하는 거, 먹고 싶은 거 다해~!”
“정말요??”
“그럼 그럼! 이참에 원하는 게 있다면 다 말해! 다 들어줄게.”
“약속한 거예요?”
“엄마랑 아빠가 약속할게!”
앤젤라가 정말이냐는 눈으로 제이를 바라보자 제이도 부드럽게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제이와 세린의 따스한 사랑에 앤젤라가 키득키득 웃었다.
“사랑해요 엄마, 아빠.”
“우리도 사랑해.”
다정히 서로를 품어 안는 모녀를 레기와 에드, 제이가 부드럽게 바라보고 있었다.
황족들도 그런 두 사람의 모습을 애틋하게 바라보고 있었고 말이다.
앤젤라는 세린의 품에서 달콤한 향기를 들이마시며 이내 나직이 말했다.
“하고 싶은 거 생겼어요, 엄마.”
“음? 벌써??”
“네. 정말 정말 하고 싶은 거요!”
“그렇구나, 그게 뭔데?”
자신과 똑 닮은 연두색 눈동자가 아름답게 빛났다.
선명히 들어나는 확고한 감정에서부터 앤젤라의 진심이 느껴졌다.
앤젤라는 자신을 바라보는 많은 가족들의 앞에서 환히 웃으며 외쳤다.
“저 연애 할래요!”
“!!!!!”
쿠쿠쿠쿠궁!!
여인들을 제외한 남자들의 가슴이 무너지는 소리였다.
에드와 레기, 제이의 얼굴이 딱딱해진 것은 당연지사였고 사랑스럽다는 듯 조카를 바라보던 리사와 트레일, 로레인, 테오의 입매가 매우 딱딱하게 굳었다.
에드윅의 눈도 만만치 않게 굳었고 말이다.
세린은 잠시 놀란 눈을 했다가 이내 맑게 웃음을 터트렸고 제이와 레기, 에드는 다급히 외쳤다.
“안 돼!!!”
“아하하하!”
격렬하게 반대하는 제 식구들의 반응에 세린과 앤젤라의 두 눈이 곱게 휘었다.
예상 가능한 반응이었고 언제나 그랬듯이 사랑스런 반응이었다.
가족들은 언제나 화목했다.
그 화목함은 영원히 변치 않을 것이 분명해서 감정은 배가 되었다.
세린은 화사한 방의 분위기 속에서 그 누구보다 행복하게 웃음을 터트렸다.
사랑했다.
서로를 서로가 너무도 많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