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4화. 로레인의 스토커
아이들이 아카데미에 입학한 후 세린은 공허해진 대공저 복도를 서글프게 바라보았다.
방학 때까지 언제 기다린단 말인가.
벌써부터 제 아이들이 걱정되었다.
‘엄마!’
‘어머니.’
‘어머니이!’
아이들의 목소리가 귀에 아른거려 더욱 서글펐다.
“안 돼! 이러면 안 돼!”
자신이 정신을 차리고 마음을 다잡아야 아이들이 걱정을 하지 않을 것이었다.
훌륭한 엄마는 그런 것이라 생각하며 세린은 입술을 꾹 다물고 서재를 향해 걸어갔다.
글공부를 하고 있는 플로리아를 위해 읽기 좋은 동화를 골라볼 참이었다.
[파밧!]
“응?”
세린은 제 앞으로 둥 떠오른 하나의 영상구에 놀란 눈을 했다.
갑자기 온 연락의 출처는 바로 황성이었으니까.
“아빠신가? 무슨 일이라도 있는 건 아니겠지...”
세린의 눈이 당황을 품으며 다급히 영상구를 받았다.
그러자 텅 빈 복도에 트레일의 목소리가 가득 울려 퍼졌다.
[세린~!!!!!]
“윽! 트, 트레일 오빠??”
그의 고성에 놀라 세린이 제 귀 한쪽을 막고 눈을 찌푸리자 트레일이 목을 다시 가다듬고 그녀를 불렀다.
[흠흠, 세린~~~!]
“트레일 오빠. 무슨 일이에요 갑자기?”
[실은 완전 엄청난 일이 생겼어!!]
“네??”
세린의 눈이 동그랗게 변하자 영상구 안의 트레일이 장난스런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로레인 형님의 일이야!]
드물게 트레일의 입에서 로레인의 일이 생겼다고 하자 세린의 눈에 걱정이 담겼다.
“레인 오빠요?? 무, 무슨 일인데요...? 어디 다치신 건...”
[아니, 전혀 다른 소식이야. 너도 놀랄걸??]
“무슨....”
세린이 답을 찾지 못하고 눈을 굴리자 트레일이 환히 웃으며 소리쳤다.
[로레인 형님이 연애를 하는 것 같아!!]
“네에에??!!!”
그랬다.
정말 엄청난 소식이었다.
세린은 단숨에 밝아진 눈동자를 빛내며 물었다.
“꺅!! 상대는 누구신가요?? 누구기에 오빠가...!”
[그걸 몰라.]
세린의 눈이 굳었다.
“.... 엥? 모른다고요...?”
[진짜야. 분명 있는 건 확실한데 누군지 몰라.]
“네..? 무슨 소리를 하는 거예요?”
세린의 눈이 질린 기색으로 눈을 가늘게 떴다.
자신을 놀리는 건가 확인하는 기색에 트레일이 다급히 말했다.
[아니! 그러니까 내가 얼마 전에 수도에서 형님을 발견했거든? 막 그 뭐냐... 마법 반지를 껴서 머리가 초록색이었는데 누가 봐도 형님이었다고.]
“그런데요....?”
[그런데 그런 형님의 옆에 여자가 있는 거야! 서로 손을 마주 잡고 말이야!]
“!!!!”
소, 손을 잡고??
수도를 나란히 거닐며??
그 이야기의 결과가 무엇인지 알기에 세린의 볼에 홍조가 올랐다.
레인오빠가 정말 연애를??
“그, 그럼 정말 오빠가...!”
[그래! 그런데 눈치를 챈 건지 눈앞에서 사려져버려서.... 어쩐지 요즘 자꾸 황성 밖을 나가더라고.]
“그렇구나...”
[그래서 너한테 연락을 한 거고.]
“네?”
[네가 도와줘야해.]
“뭐를요?”
세린의 물음에 트레일의 입가에 근사한 미소가 담겼다.
[형님의 애인이 누군지 알아내기!]
“!!!!”
참으로 원대한 계획이 아닐 수 없었다.
*
그렇게 황성의 집무실에 가족들이 모두 모였다.
세린은 기대감으로 두 볼이 달아오른 상태였고 테오와 트레일도 흥미가 동한 눈빛이었다.
에드윅은 그런 자식들을 귀엽다는 듯 바라보다가 이내 물었다.
“그래서... 로레인의 뒤를 밟아보자? 뭐 그런 이야기더냐.”
“네!! 맞아요 아버지!”
“대마법사인 그 녀석을 어떻게 숨어서 쫓을 생각인 것인지 물어도 되겠느냐.”
“그 문제의 답은 세린이죠!”
“호오...”
에드윅의 눈이 가늘어졌고 트레일은 세린을 바라보며 개구지게 웃었다.
“세린이 형님의 마력을 쫓아서 같이 이동을 해보는 거죠! 최대한 우리 마력을 숨기면서 가면 찾을 수 있지 않겠어요?”
“로레인이 그리도 간단히 쫓을 수 있을 인물은 아닌데 말이지...”
트레일의 의견에 테오가 한 마디를 던졌다.
“그 녀석, 보통 눈치가 아닌데다가 괜히 대마법사의 칭호를 얻은 게 아니지 않느냐. 보다 쉽게 접근할 방법을 찾아야지.”
“쉽게 접근할 방법...?”
“이왕이면... 다른 이를 시켜 뒤를 밟게 하고 우린 그 뒤를 쫓는다던지.”
“오오!!!”
“오빠 그것도 정말 좋은 방법 같아요!”
세린과 트레일의 칭찬에 테오의 입가의 미소가 피식 피어올랐다.
참 귀여운 남매다 싶어서였다.
에드윅은 그런 남매들을 바라보며 웃음을 삼켰고 말이다.
‘누군지 모르겠으나 잘 숨겨야 할 것이다 로레인.’
네 동생들과 네 형이 제대로 눈을 빛내고 있으니 말이다...
보이지 않는 제 둘째 아들에게 고이 기도를 올리며 에드윅이 부드럽게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럼 누구를 섭외할 생각이더냐.”
그의 눈도 자식들과 견주어도 지지 않을 만큼 빛나고 있다는 것이 문제였지만 말이다.
*
“잘 부탁한다!!”
“..... 네에..”
트레일의 든든한 목소리에도 기사의 등은 펴지지 않았다.
이런 엉뚱한 계획에 휘말리게 된 것은 다른 누구도 아닌 제 1기사단의 막내기사였다.
평상복의 차림으로 영상구와 통신구를 받은 기사는 조금 난처한 얼굴로 물었다.
“그러니까... 전하께서 통신구로 알려주신 위치에서 영상구로 레거스님을 찾으면 된다는 뜻... 맞습니까?”
“맞아!! 바로 그거야! 아마 머리색이 바뀌었을 테니까 잘 살펴봐야 해!”
“네에...”
일단 시켜서 하려고는 하지만 주변인들의 눈부신 자태에 정신부터 혼미해졌다.
황제 테오, 전 황제 에드윅, 기사단장 트레일, 대공부인 세린까지.
황족의 모임이 이리도 눈이 부시던가.
어린 막내 기사는 눈을 부릅뜨고 영상구와 통신구를 꾹 잡고 수도로 이동했다.
정신 차리고 맡은 일이나 열심히 하려는 노력이었다.
기사가 수도에 도착했다는 소식이 들리자마자 세린은 두 눈을 감고 황성에서 로레인의 마력을 찾아보았다.
설마가 사람을 잡는다고 역시나 로레인은 황성에 없었다.
“황성에 없어요. 마력을 보니 나간 지 얼마 안 지난 것 같아요.”
“어디로 이동한 것 같아?”
“잠시 만요.”
세린이 그 말을 남기고 사라졌다.
워프로 로레인의 연구실에 이동한 것이었다.
잠시 후 테오의 통신석에 세린의 목소리가 울렸다.
[수도의 중심지에 있는 마법도구 판매점이에요.]
“들었지 막내야?? 달려 빨리!”
트레일이 다급히 소리차자 통신석에서 막내 기사가 외쳤다.
[네!]
세린은 그 대답을 들은 후 다시 가족의 품으로 이동했고 동시에 가족들을 모두 이끌고 수도로 워프했다.
로브를 깊게 눌러 쓴 귀여운 가족들은 수도의 골목에서 몸을 숨기며 주변을 둘러보기 시작했다.
“어디 있지...?”
“잘 찾아 보거라.”
테오와 트레일의 말소리에도 세린과 에드윅은 열심히 주변을 둘러보기 바빴다.
도대체 누구일까.
로레인의 연애 대상은 누구기에 이리도 꼭꼭 숨기기 바쁠까.
무척이나 궁금한 감정과 호기심이 주체하지 못할 만큼 흘러 넘쳤다.
지지직!
[지금 막 마법도구 판매점에서 나오신 분 같습니다.]
“뭐!”
[머리가 초록색이시지만 분명 제비꽃 눈동자시고 외모도 아름다운 그대로십니다.]
“차, 찾았다!! 누구랑 있어??”
[어.... 여성분이시네요. 조금 짙은 금발을 가지신 분이십니다.]
“꺅! 여성분이시래요!”
세린이 밝아진 얼굴로 에드윅의 품에 안기며 외쳤다.
에드윅은 즐거워하는 딸의 등을 부드럽게 잡아주며 물었다.
“눈은 무슨 색이더냐.”
[보라색이십니다. 레거스님의 눈동자 색보다 더 짙은 색입니다.]
“흠...”
‘그런 용모의 영애는 본 적이 없는데...’ 귀족이 아닐 것 같다는 생각이 물씬 들었고 에드윅과 가족들의 궁금증은 더욱 달아올랐다.
트레일이 밝아진 얼굴로 외쳤다.
“보러가 봐요 아버지!”
“눈치가 빠른 녀석이니 그 마력부터 잠재우거라. 잠행검거란 자고로 몰래 가서 덮치는 것이 방식이다.”
“네!”
에드윅의 말에 트레일과 테오, 세린은 부드럽게 제 마력들을 감추고 또 감췄다.
천천히 다가가 그의 여인과 그를 놀라게 해줄 생각에 벌써부터 기대가 되었다.
로레인의 등 뒤로 귀여운 스토커들이 네 명이나 붙었다.
*
초록색의 머리카락을 휘날리며 벨과 걸어가던 로레인은 이내 제 뒤를 쫓는 듯 보이는 한 소년의 모습에 눈썹을 들어올렸다.
“흠.....”
“왜 그래?? 레인?”
벨의 물음에도 잠시 침묵하던 로레인은 부드럽게 벨의 손을 잡아주며 말했다.
“누가 쫓아오는 것 같은데...”
“엥?? 누가?? 아니 그보다 또 손을...!”
“살기는 없으니 위험해 보이지는 않지만.... 수상하기는 하군.”
얼굴이 완전히 붉어진 벨의 말은 깔끔하게 무시하며 생각했다.
‘누군가의 사주인가?’
누군가의 사주라면 누구일지 예상도 조금은 가고 말이다.
로레인은 그런 소년을 힐끔 바라 보다 이내 제 주변에 스쳐지나간 네 명의 검은 로브를 발견하고 입술을 꾹 다물었다.
이렇게 다물지 않으면 웃음이 터질 것 같았기 때문이었다.
이 수상하고 재밌는 스토커들의 행동이 웃겨서 미칠 것 같았다.
‘참 재밌는 가족들이야...’
별로 숨길 생각은 없었지만 로레인의 입가에는 즐거운 미소가 자리 잡혔고 이내 벨의 보라색 눈동자를 바라보았다.
벨과는 아무 사이도 아니었다.
아.직. 은 말이다.
로레인은 벨의 부드러운 손을 다시 고쳐 잡은 후 벨에게 말했다.
“네 마법을 연습하기 좋은 상황이야.”
“응??”
“지금 내 스토커가 주변에 얼쩡거리고 있어.”
“무.. 뭐?? 어디!!”
“그러니 네가 날 안전하게 스토커에게서 지켜줘. 먼저 워프부터.”
“에에엥??”
놀라는 벨의 눈을 바라보며 로레인이 싱긋 웃었다.
“그렇지 않으면 나 잡힌다고?”
“그, 그렇지만 너 즐거워 보이는데...”
“성격이야. 나 생각보다 지금 마음 급해졌어. 빨리.”
“아, 알겠어!! 나만 믿어!”
벨의 눈에 결심이 섰고 벨은 로레인의 손을 잡고 외쳤다.
“워프!”
재밌는 추격전의 시작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