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3화. 다녀오겠습니다.
푸른 하늘 아래에 대공저의 거대한 마차가 흔들림 없이 달려 나가고 있었다.
그 마차 속에서 세린은 잔뜩 울상을 지었다.
“...... 세린.”
제이가 그런 그녀를 안쓰럽다는 듯 바라보며 조심스럽게 그녀의 어깨를 안아주었다.
세린은 제이의 든든한 어깨에 기대며 굳게 다문 입술을 들썩였다.
“나 울 것 같아요 제이... 애들 앞에서 그런 모습 보이기 싫은데...”
“슬픈 것을 압니다. 좀 울어도 어떻습니까. 괜찮아요.”
“하지만 아이들이 절 걱정하는 건 싫어요. 울면 안 되는데...!!”
세린이 눈물을 애써 참아보겠다고 입술을 꾹 다물고 눈을 질끈 감았다.
제이는 그런 세린을 걱정스럽게 바라보다가 이내 그녀를 제 품에 가두며 한숨을 삼켰다.
그녀가 아이들에게 슬픈 모습을 보이기 싫어하듯 자신도 그녀의 슬픈 모습이 마음 아프고 속상했다.
지금 제이와 세린은 아카데미로 가는 아이들을 위해 선물과 필요한 물건들을 사려 수도로 나가는 중이었다.
제이는 그런 세린의 손을 꼭 잡고 부드럽게 마차에서 내렸다.
“아이들에게 필요한 것을 먼저 사고 당신이 좋아하는 레몬케이크라도 먹으러 가죠.”
“네에...”
“리아랑 갔던 곳의 케이크 맛이 괜찮았습니다.”
“정말요?”
제이의 부드러운 어조에 세린의 표정이 조금씩 밝아졌다.
제이는 그런 세린을 다정히 바라보며 이내 수도를 걸어 나가기 시작했다.
입학을 압둔 아이들에게 사주고 싶은 것이 얼마나 많은지 몰랐다.
좋은 재질의 것들로 좋은 품질의 것들로만 사주고 싶은 마음에 걷고 구경하고 알아보며 또 걸어 나가기를 반복했다.
짐이 산더미처럼 쌓이기 전까지 말이다.
“제이, 우리 너무 많이 사버린 걸까요?”
“.... 그런 듯도 하지만 아이들에게 다 필요한 것들이었으니 괜찮습니다.”
“그렇죠?”
“네, 세린. 아이들이 분명 좋아할 것입니다.”
제이의 눈이 다정히 빛났다.
세린은 그런 제이를 바라보다가 이내 맑게 웃음을 터트렸다.
그도 자신도 참 주책이다 싶었다.
예전 어릴 적, 자신에게 온 사랑을 쏟은 제 가족을 팔불출이라고 나무랄 수 없었다.
자신도 그도 만만치 않은 팔불출이었으니까.
*
시간은 매우 빠르게 흘러갔다.
아이들의 아카데미 입학은 바로 내일이었고 세린은 여전히 그 사실이 못내 속상했다.
하늘에 달이 뜬지 오래였으나 세린과 제이, 그리고 아이들은 쉽게 잠을 이루지 못했다.
아이들은 특별한 날이라는 일명 아래에 제이와 세린의 침대에 함께 누워 하늘을 바라보고 있었다.
이렇게 다 같이 누워 잠을 잤던 것이 언제였던가.
5살 이후로는 부모님의 침실이 아닌 자신들의 방의 침대에서 잠을 잤었다.
그 사실을 깨닫자마자 내일 아카데미로 떠난다는 것이 가슴에 와 닿았다.
무섭거나 두려운 것은 아니었으나 가족들과 잠시 떨어져 지내는 것이 조금 서글펐다.
사랑하고 의지한 시간이 깊어 그 감정은 더했다.
세린은 그런 아이들을 알고 있다는 듯 바라보며 부드럽게 레기의 손을 마주 잡았다.
레기는 동그랗게 변한 눈으로 그런 세린을 바라보았다.
“어머니?”
“레기, 에드, 앤젤라.”
“네, 어머니.”
세린의 잔잔한 눈동자에 레기가 다정히 대답했다.
세린은 동그란 눈을 곱게 접어 웃으며 애정을 듬뿍 담고 말했다.
“너희들이 어디를 가든, 무엇을 하든 스스로도 잘 할 것이라는 걸 알고 있어.”
“...... 어머니.”
“엄마는 아카데미에 한 번도 가보지 못했지만... 그곳이 힘든 곳이란 걸 이야기로 들었었어.”
세린의 양 손이 부드럽게 레기의 손을 잡았다.
떨어지고 싶지 않을 만큼 따스한 온기를 품고 말이다.
“그런 곳으로 가서 공부하고 가르침을 받을 너희를 생각하면 신기하기도 하고 걱정되기도 하고 슬프기도 해.”
제 품을 떠나 날개를 펼칠 아이들이 기특하면서도 동시에 제 품을 떠나는 아이들에게 느껴지는 섭섭함이었다.
그 자유로운 날개가 아이들을 더욱 빛내줄 것을 알기에 세린은 그 슬픔을 꾹 눌러 담았다.
그녀의 눈에는 어느 새 눈물이 가득 고여 있었다.
“언제 이렇게 컸을까?”
“어머니.”
“이렇게 너희들의 발로 세상에 나갈 수 있을 정도로... 언제 이렇게 자란 걸까?”
귀를 기울여 가만히 듣고 있던 앤젤라와 에드의 코가 시려왔다.
앤젤라는 부드럽게 자신의 손을 잡아오는 온기에 고개를 들었고 이내 자신을 다정히 바라보는 푸른 눈동자를 마주했다.
“아빠...”
“이것 하나만 기억해주렴.”
제이의 목소리에 담긴 온기가 너무도 따스해 에드가 입술을 꾹 깨물었다.
“너희들의 꿈은 너희가 노력해서 쟁취할 것.”
“......”
“하등 보잘 것 없는 녀석들의 이죽거림은 무시할 것.”
“....”
“만약 도를 넘어서거든 다시는 무시하지 못하도록 날려버리렴.”
제이의 눈이 부드럽게 휘었다.
“책임은 이 아빠가 다 질 테니까 말이다.”
“풋!”
앤젤라와 에드, 레기의 얼굴에서 결국 맑은 웃음이 터져 나왔다.
제이는 사랑스럽게 미소를 짓는 아이들을 눈에 한 명씩 담아가며 말했다.
“너희들이 어떤 꿈을 꾸던, 어떤 목표를 다잡던 우린 항상 너희들의 편이란다.”
“아빠...”
“우리가 없는 곳에서 아프면 안 되니까 건강을 신경 쓰면서 공부하고 노력하고 배워나가렴.”
하고 싶은 걸 해.
원하는 게 있다면 하도록 해.
원하는 목표가 없다면 놀고 와도 좋아.
제이와 세린의 다정한 응원 속에서 세쌍둥이는 밝게 웃음을 터트렸다.
넘치는 사랑에 목이 메어왔고 목이 메어오기 전에 웃음이 흘러 나왔다.
일 년에 두 달 볼까 말까하게 될 제 부모님을 두 눈에 담으며 아이들은 서로의 손을 맞잡았다.
빨리 다녀오겠노라고 감히 장담하며 아이들은 달콤한 잠에 빠져들었다.
세린과 제이는 그런 아이들이 잠든 후에도 아이들의 모습을 지켜보느라 잠에 들지 못했다.
눈에 넣어도 아프지 않을 아이들의 성장이 여전히 믿기지 않았다.
세린은 부드럽게 아이들의 이마에 입을 맞춰주며 속삭였다.
“아프지 말고... 잘 다녀와야 해...”
부디 아이들이 좋은 경험과 행복한 일들을 많이 겪고 다녀오길 바라는 마음이 컸다.
아프지 말고 건강하게.
부모의 마음이었다.
그리고 그런 부모의 마음을 품고 있는 또 다른 아버지와 어머니도 밤을 지세우고 있었다.
황성의 늦은 밤.
이미 잠들어버린 오스카의 방에 들어와 그의 머리카락을 다정히 정돈해주는 이는 바로 트레일이었다.
트레일은 굳은살과 흉터로 얼룩진 큰 손으로 부드럽게 오스카의 머리카락을 정돈하고 있었다.
헤일리는 그런 트레일의 옆에서 오스카를 다정히 바라보며 웃고 있었다.
“섭섭해요?”
“당연히 섭섭하죠... 내 눈에는 아직도 아기 같은데 아카데미 입학이라니.”
“그만큼 우리 오스카가 컸다는 일이니까요.”
“흠....”
트레일의 붉은 눈동자가 곡선으로 휘며 슬픈 표정을 그대로 내보였다.
“늘 어른인 척 하는 귀여운 아이라고 생각했는데... 정말 크고 있었네요.”
“그러게요. 언제 이렇게 컸을까요.”
“헤일리도 섭섭하죠?”
“당연하죠... 저라고 뭐 다를 게 있나요.”
헤일리의 표정이 작은 서글픔을 담았으나 이내 다정히 웃었다.
“그래도 오스카는 누구보다 잘해낼 것 같아요. 원하는 목표도 스스로 잘 이루고 오겠죠.”
“뭐든 건강하기만 했으면 좋겠네요.”
“당신은 오스카가 검사이길 바랬어요?”
“검사요?”
트레일이 되묻자 헤일리가 고개를 끄덕였다.
트레일은 그런 헤일리를 바라보고 오스카를 바라보다가 이내 피식 웃으며 말했다.
“그냥 건강하게만 자랐으면 좋겠다고 생각했었어요. 만약 오스카가 기사가 되고자 했다면 하라고 응원했을 거예요.”
“정말요?”
“대신 전쟁에 나가지 못하죠. 대련을 하게 된다고 한다면 오스카보다 실력이 높은 기사들은 제가 먼저 때려눕힌 다음에 해야 할 수 있을 거예요.”
“네??? 큽....!”
놀라울 정도의 팔불출에 헤일리는 결국 입을 막고 웃음을 삼켰다.
트레일은 피식 웃으며 당당히 말했다.
“진심인데요?”
“하하 알겠어요. 어쩌면 오스카가 딱 맞는 진로를 정한 것 같네요.”
‘모든 기사들을 살릴 좋은 진로로 말이죠.’ 헤일리는 그런 생각을 하며 이내 오스카의 이마에 부드럽게 입을 맞췄다.
부디 이 아이에게 좋은 경험들과 행운이 가득하길 빌었다.
“잘 다녀올 거예요.”
“당연하죠! 나와 헤일리 아이잖아요?”
“다들 오스카는 절 닮았다고 하더라고요.”
“네에?? 당연히 그렇기는 한데 나를 닮은 곳도 있다고요! 예, 예를 들어 이 코! 딱 내 코잖아요?”
“하하하 그럼 입술은 절 닮았네요.”
“눈은 저를 닮았다고요. 잘 봐요.”
다정한 가족의 사랑에 잠이 든 오스카의 입가에도 미미한 웃음이 담겼다.
하루는 금방 지나갔다.
*
푸른 하늘 위로 밝은 태양이 떴다. 지저귀는 새의 소리와 상쾌한 바람은 제국의 가득 퍼졌다.
“잘 다녀오렴.”
“잘 다녀와야 해?”
세린과 제이의 목소리에 세쌍둥이들의 입가에 미소가 담겼다.
아이들은 부드럽게 제 부모님의 품에 안기며 다정히 속삭였다.
“다녀올게요!”
“방학이 되면 빨리 올 테니까 기다려주세요!”
“리아 다녀올게~!”
에드윅의 품에 안겨있던 플로리아의 두 볼이 부풀어졌다.
“리아도 아카데미!”
“리아는 조금 더 큰 후에 가자꾸나.”
에드윅이 그런 플로리아를 달랬고 말이다.
테오와 로레인, 트레일과 헤일리, 심지어는 황태자 테리에 황후 클로비스까지 모여 있는 아카데미는 소란스러웠다.
심지어는 제국 최초의 여성 마스터라 불리는 리사 도베로만과 그의 남편 이엔 도베로만까지 등장했다.
아이들의 입학을 축하하고 응원하기 위한 자리에 등장한 고귀한 자들의 등장에 사람들은 기겁했다.
댕! 댕!
아카데미의 입학을 축하하는 종이 울렸고 아카데미의 입구가 부드럽게 열렸다.
레기, 에드, 앤젤라, 오스카는 그 입구를 향해 걸음을 옮겼다.
세린과 가족들의 두 눈에 아이들의 사랑스런 뒷모습이 보였다.
그런 가족들을 향해 뒤돌아 환히 웃는 아이들은 밝은 목소리로 동시에 소리쳤다.
“다녀오겠습니다!”
잘 다녀와.
아프지 말고.
탕!
아카데미의 문이 굳게 닫혔다.
이제부터는 아이들의 스스로의 꿈을 스스로 다져져갈 시간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