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두 번째 딸로 태어났습니다-202화 (201/218)

202화. 아카데미

세린은 침실에서 제이의 어깨에 기대어 아이들의 아카데미 입학통지서를 유심히 바라보았다. 생각해보니 정말 아이들은 아카데미에 입학해야 하는 나이였다.

아직 자신들의 눈에는 어리게만 보이고 감싸주고 싶은 아이들인데... 이런 곳에 갈 수 있을 정도로 컸다는 것이 믿기지 않았다.

세린은 제이의 단단한 어깨에 턱을 올리며 물었다.

“아이들이 언제 이렇게 컸죠...? 나만 그렇게 느낀 걸까요...”

“같은 마음입니다 세린. 벌써 아카데미에 입학해야 하는 나이라니... 예상도 하지 못했군요.”

“하하하... 우리 둘 다 바보였네요.”

“그러게 말입니다.”

제이가 피식 허탈한 웃음을 지으며 세린의 어깨에 팔을 둘렀다. 세린은 그런 그의 품에 기대며 눈을 감고 한숨을 내뱉듯 입술을 열었다.

“아카데미에 가면... 방학이 아니고서야 얼굴 보기가 힘들겠죠?”

“규정 상 그럴 것입니다.”

“으.... 너무 싫다....”

기숙사를 쓰게 하는 것도 속상한데 반년에 두 번 볼까 말까라니...

세린의 눈이 슬프게 휘었다.

아카데미는 어린 아이들의 세계에서 배우는 첫 사회였고 자신의 진로와 미래로 나아갈 길을 다지는 중요한 시기였다.

새로운 인연과 새로운 관계, 새로운 세계를 향해 첫 발을 내딛는 아이들을 응원해야 하건만.... 아이들을 떠나보내기 싫어 속상해하는 자신이 조금은 창피하기도 했다.

“아이들한테는 내일 이야기를 해줘야겠네요...”

“그렇겠지요.”

“아이들이 잘 할 수 있을까요?”

“우리 아이들은 하나도 둘도 아닌 셋입니다. 서로를 의지하고 나아가다보면 분명 잘해내겠지요.”

“맞아요...”

제이의 다정한 위로에 세린의 눈이 부드러이 감겼다.

신뢰가 중요하다 했던가.

그래, 지금은 아이들을 믿고 보내야 할 때였다.

“아카데미요?”

“그래. 어제 편지로 왔더구나.”

“아....”

레기와 에드, 앤젤라의 눈에 당황이 서렸다. 그곳에 갈 것이라는 생각은 어렴풋이 했으나 막상 상황이 마주하니 당황스런 마음이 컸다.

세린은 그런 아이들을 다정히 바라보며 말했다.

“너희도 놀랬지? 엄마도 깜짝 놀랐다?”

“예상은 했었어요. 하지만 갑자기 소식을 들으니 조금 당황스러워서...”

“엄마도 그랬어. 편지를 보고 얼마나 놀랐는지....”

세린의 개구진 웃음에 에드가 시무룩하니 입술을 삐죽였다.

“거기로 가면 어머니도 아버지도 리아도 볼 수 없는 거잖아요.”

“방학이 온다면 볼 수 있단다.”

“방학은 1년에 두 번 밖에 없다고 들었어요... 그것도 한 달만요!”

“흠.....”

슬픈 티를 내는 에드에게 다정히 말해준 제이도 난처하게 침음을 흘렸다. 자신도 보내기 싫은 것은 매한가지지만 제 욕심으로 아이들의 노력과 스스로 인생을 개척해나갈 기회를 없애고 싶지는 않았다.

제이는 속상해하는 에드의 손을 잡아주며 말했다.

“우리도 똑같이 서운하고 섭섭하단다. 하지만 영원히 헤어지고 있는 것이 아니지 않니.”

“.......”

“네가 하고 싶은 것을 마음껏 배우고 알아갈 수 있는 기회가 바로 아카데미란다. 아카데미에는 훌륭한 교사들이 많고 학업과 마법에 열중하기 좋은 환경을 갖추고 있어.”

“알고 있지만....”

“우리들의 욕심으로 너희들을 붙잡고 있는 것은 엄마도 아빠도 싫단다.”

제이의 단호한 듯 다정한 말에 에드의 눈이 슬프게 휘었다. 레기는 그런 에드를 바라보다가 이내 굳은 결심을 한 눈으로 제이를 바라보며 말했다.

“갈게요 아버지, 어머니.”

“레기?”

“우수한 성적을 유지하면 조기졸업이라는 것을 할 수 있다고 들었어요.”

레기는 야무진 말투로 이어 말했다.

“방학도 1년에 꾸준히 두 번이고, 근 한 달 동안 나오기도 하니까... 제가 빨리 졸업을 해서 나오면 더 오래 함께 있을 수 있는 거잖아요.”

“레기....”

“열심히 공부하고 노력할 테니까 어머니께서도 아버지께서도 걱정하지 마세요.”

첫 째 레기의 성격은 확고했다. 자신의 목표한 바를 위해 시간과 노력을 아끼지 않는 그 확고한 성격이 제이와 세린의 가슴에 안도를 가져왔다.

앤젤라 또한 그런 레기를 바라보다가 이내 맑게 웃으며 말했다.

“레기 오빠도 있고, 에드 오빠도 있으니 하나도 무섭지 않아요. 그런데 조기졸업은 조금 어려울 것 같지만... 노력해볼게요!”

“앤젤라...”

“저도 잘 다녀올 수 있어요! 어머니랑 리아랑 아버지가 보고 싶은 건 어쩔 수 없지만....”

“에드..”

세린의 눈시울이 조금씩 붉어졌다. 의젓하게 이야기하는 세쌍둥이들의 마음이 너무도 사랑스러워서 걱정만 하던 제 자신이 부끄러울 지경이었다.

제 아이들은 그 누구보다 훌륭히 자라고 있었고 여린 마음도 단단하게 굳어가고 있었다. 제이는 울먹이려는 세린의 손을 부드럽게 잡아주며 아이들을 향해 말했다.

“아카데미의 조기졸업은 쉽지 않을 것이란다.”

“...... 그쵸.”

“그 이유 중 하나는 일단 비슷한 실력의 경쟁자지.”

“??”

“너희들의 상황에 예를 들면....”

그 예시에 들어맞는 이는 오스카 레바스찬.

현재 아카데미 입학예정자 중 조기졸업을 제일 먼저 할 것 이라며 관심이 쏠리는 이였다.

트레일은 오스카의 아카데미 입학통지서를 들고 오열하며 그의 팔에 매달렸다.

“아빠를 버리지 마!!!”

“.... 놔주세요. 아버지”

“으아아아!! 안 돼!! 오스카! 아카데미 따위 안 가도 괜찮아!! 아빠가 평생 먹여 살릴게!”

“전 가고 싶어요, 아버지.”

“아니야!! 안 돼!! 아, 아빠를 잘 봐봐 오스카!!”

트레일이 다급히 오스카의 앞에 서며 방긋 웃었다.

“아빠는 아카데미를 가지 않아도 이렇게 훌륭히 잘 자랐다고? 황실의 마스터라고???”

그의 자랑 아닌 자랑에 오스카의 눈이 가늘어졌다.

오스카는 의가양양한 제 아버지를 바라보다가 이내 나직이 그를 불렀다.

“... 아버지.”

“응??”

“솔직히 그건 신분과 동시에 재능이 넘치기에 가능한 일이에요.”

“컥!!!!”

“황족에게 아카데미 졸업장은 없어도 그만 있어도 다 그만인 거 알고 있어요.”

“윽!!!!”

트레일은 오스카의 핵심을 찌르는 말에 결국 무릎을 꿇었다. 오스카는 그런 그를 냉정히 바라보며 팔짱을 끼고 말했다.

“전 제 실력을 있는 그대로 인정받고 졸업장을 받고 싶어요.”

“오... 오스카아....”

“조기졸업은 레기 형님이 있으니까 조금 어려울지는 몰라도 노력할 테니까 기다려주세요.”

오스카의 붉은 눈이 곱게 휘었다.

“그러니까 이해해주세요.”

“....... 으으..”

아들의 고운 웃음에 트레일은 무너진 어깨로 서글프게 눈물을 삼켰다.

“가서 다치면 안 돼....?”

“네. 안 다칠게요.”

“아파도 안 되고, 울지도 말고... 막 그... 어, 괴롭힘 당하면 나한테 이르고...”

“아버지, 아직 가려면 한 달도 더 남았어요.”

“지금 말하지 않으면 까먹는단 말이야!”

“......”

오스카의 눈이 질린 기색을 띄었으나 이내 다정한 온기를 품었다. 자신을 너무도 사랑하기 때문에 나오는 말투와 행동인 것을 잘 알고 있기 때문이었다.

오스카는 열심히 뭔가를 이야기하는 제 아버지를 유심히 바라보다가 이내 푸르게 웃었다.

그의 이런 모습을 자주 보지 못하게 되는 것은 속상했으나 이번 기회에 열심히 노력하려 했다.

제 꿈을 위해서, 그의 당당해질 어깨를 위해서.

자신의 성공과 행복으로 부디 제 아버지의 어깨가 당당해지기를 바라며 오스카는 부드럽게 웃음을 흘렸다.

“휴....”

제이에게서 들은 엄청난 경쟁자의 등장에 레기가 바람 빠지는 한숨을 내쉬었다. 오스카 레바스찬의 명석함과 유능한 능력을 누구보다 잘 알고 있던 터라서 욕심을 내던 조기졸업에 위협을 느꼈다.

보통의 노력으로는 그를 재치기 힘드니 보다 더 노력을 해야 할 것이었다.

레기는 마음을 다잡으며 주먹을 꾹 쥐었다.

‘누가 이기나 한 번 해볼까 오스카?’

보이지 않는 경쟁 심리에 각 가족의 첫째들의 눈이 불타올랐다.

*

그날 밤.

앤젤라와 레기, 에드는 한 방의 침대에 누워 도란도란 이야기를 나누고 있었다.

레기가 다정히 물었다.

“너희는 어떤 것을 배우고 싶어?”

“나는 당연히 마법이지.”

“나는 신관의 일을 배우고 싶어.”

“그렇구나.”

동생들의 대답은 확고했다.

망설임 없이 나오는 동생들의 목표에 레기의 입가에 안도의 미소가 잡혔다.

“함께 가더라도 아카데미에서는 사용할 교실도, 수업도, 지내는 곳도 달라지겠네...”

“우.... 우리도 떨어지게 되는 거야?”

레기의 나직한 말에 앤젤라가 울상을 지었다. 앤젤라의 그 모습에 양 옆에 있던 레기와 에드가 부드럽게 그녀의 양 손을 꾹 잡았다.

레기가 먼저 다정히 말했다.

“하지만 네가 부르면 언제든 달려갈 수 있어 앤젤라. 우리는 완전히 떨어진 게 아니라 그저 지내는 공간이 달라진 것뿐이니까.”

“레기오빠...”

“네가 힘들면 언제든지 괜찮으니까 나 불러. 마법사 오빠 뒀다가 뭐해? 필요할 때는 불러도 괜찮아.”

“에드오빠...”

레기가 부드럽게 앤젤라의 손등에 입을 맞추며 말했다.

“서로 누가 보고 싶거나, 필요하거나, 위험하면 너희들도 나도 망설이지 않겠지.”

그것은 자신들이 ‘쌍둥이’ 이기 때문이었다.

“서로가 하고 있는 일들을 믿어주고 열심히 응원할 테고 말이야.”

‘가족’이라는 이름 아래에 이루어진 신뢰였다.

“재밌는 추억도 많이 만들고 오자. 슬플 때도 있을 수 도 있고 화가 날 때도 몰론 있을 거라고 생각해.”

레기의 두 눈이 동생들을 담았다. 그의 입가에는 어느 새 잔잔한 미소가 가득 담겨 있었다.

“우리 혼자 슬프거나 화나는 그런 일들을 삭히고 있지 말기로 약속하자.”

세쌍둥이들의 새끼손가락이 굳게 연결되었다. 하늘은 어두웠으나 달빛을 받은 아이들의 눈은 맑게 빛났다.

“하지만 조기졸업은 내가 가져갈 거야.”

“레기오빠!!”

“뭐라고요?!!”

“아하하하하!!”

아이들의 웃음소리가 방을 부드럽게 울렸다.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