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화. 부녀의 데이트
화창한 하늘 위의 햇빛이 플로리아의 창문 밖으로 쏟아졌다.
플로리아는 그 햇빛에 의해 몸을 뒤척이다가 이내 천천히 눈을 떴다.
“우....”
벌써 아침이야...?
라는 기색으로 얼굴을 일그러트린 작은 소녀는 할 수 없다는 듯 몸을 일으켰다.
작은 입술을 삐쭉이며 제 몸을 일으키는 모습이 여간 사랑스러운 것이 아니었으나 플로리아는 온 얼굴을 일그러트리며 나름 진지하게 투덜거리는 중이었다.
“졸려... 엄마... 엄마 보고 싶어... 아빠 미워.”
귀여운 잠투정을 하며 침대의 이불을 걷어버린 플로리아는 잠깐 상념에 젖어 있다가 이내 두 눈을 번쩍 떴다.
오늘은 플로리아가 기대하고 기대했던 세린과의 외출이 있는 날이었다.
어제 저녁, 세린이 플로리아를 안아주며 말했었다.
‘수도에 있는 카페에서 우리 플로리아가 좋아하는 레몬케이크를 사줄게. 그 곳은 케이크가 이렇게 작은 컵에 구워져 나온다고 했단다. 정말 신기하지?’
‘리아 갈래요! 리아 갈 거야!’
‘그래그래, 우리 둘이 내일 가보자.’
‘우와....!’
좋아하는 플로리아가 귀여웠던지 세린의 미소가 짙어졌다.
‘그렇게 좋니?’
‘죠아요!!!’
‘엄마도 좋아. 우리 맛있게 먹고 오자!’
‘네에!!’
엄마랑 둘이, 그것도 레몬케이크를 먹으러!
이 얼마나 행복한 날인지!!
플로리아는 그 기억이 끝나자마자 자리를 박차고 나가 잠옷도 갈아입지 않은 채 세린과 제이의 방문을 마구 두드렸다.
쿵쿵쿵!!
똑똑!!
“엄마! 엄마아아!”
엄마랑 놀러!
얼른 나가고 싶어!
플로리아의 푸른 눈이 부담스럽게 반짝여질 무렵 굳게 닫힌 문이 부드럽게 열렸다.
끼이익
그리고 마주친 것은 분홍빛 머리카락을 살랑거리는 사랑스런 세린이 아닌, 단단하고 다부진 신체를 가운 하나로 감추고 있는 제이였고 말이다.
플로리아의 얼굴이 단숨에 실망으로 가득 찼다.
“.... 엄마.”
“엄마는 지금 씻고 계신단다.”
“힝... 엄마...”
“들어와서 기다리려무나.”
바로 침울해지는 딸이 귀여워서 제이는 피식 웃으며 플로리아를 안아 올렸다.
온 몸이 단단한 품에 안겨지자마자 플로리아는 시무룩하니 그의 어깨에 제 얼굴을 기대며 입술을 삐죽였다.
“엄마랑 리아! 웅 레몬케이크 먹으러 가야 해요.”
“레몬케이크?”
“엄마가 막! 어... 수도에 간다고 했어요!”
어때? 부럽지?
라는 기색을 면면에 띄며 플로리아가 맑게 웃음 지었다.
제이는 그런 플로리아를 바라보다가 이내 의문스럽다는 듯 말했다.
“엄마라면 오늘 그 수도 못 갈 것 같은데...”
“......?!”
이게 무슨 엉뚱한 소리야?
플로리아의 눈이 기겁으로 커지자마자 세린이 단장을 끝내고 서둘러 안으로 들어섰다.
익숙한 풍경 속에서 제이가 플로리아를 안고 있는 모습을 발견하자 세린의 얼굴에 환한 미소가 담겼다.
세린은 두 손을 뻗으며 사랑스런 딸을 향해 다가섰다.
“리아! 깼구나, 우리 애기!”
“엄마아!”
바로 두 눈을 반짝이며 세린의 품에 달려든 플로리아였다.
세린은 제 품에 안기는 딸을 맑게 웃으며 바라보다가 이내 그녀의 등을 두드려주고 말했다.
“그렇지 않아도 엄마가 우리 리아한테 가려고 했는데.”
“엄마! 수도 가요? 케이크 먹으러 가요?”
“에고....”
“레몬 케이크...! 작은 컵!!”
플로리아의 눈에 가득 찬 기대에 세린이 난처하게 웃었다.
“실은 리아... 오늘 엄마는 못 갈 것 같아...”
“?!?!”
“미안해 정말로...”
세린이 너무도 미안하다는 말을 반복하며 시무룩하니 말했다.
“할아버지가 엄마가 보고 싶다고 하셔서... 엄마가 가봐야 할 것 같아.”
“할아버지?”
“응! 엄마한테 아침에 편지가 왔어. 그래서 우리 리아랑 한 약속을 못 지켜버렸네... 미안해.”
“힝...”
“에구 우리 딸 기대 많이 했는데...”
세린의 눈이 무척 슬프게 휘었다.
플로리아의 속상함을 알기 때문에 미안한 감정이 더욱 요동쳤다.
세린은 부드럽게 풀로리아를 안아주며 그녀를 달래다가 이내 자신을 바라보는 제이를 발견하고 방긋 웃었다.
“제이! 오늘 쉬는 날 맞죠?”
“네, 쉽니다.”
“그럼 우리 리아랑 저 대신에 카페에 다녀와 주실래요?”
“카페요.”
“네! 레방스 카페인데 레몬 컵케이크가 유명하다고 해요. 우리 리아랑 가려고 자리도 예약하기는 했는데...”
세린이 말끝을 어색하게 흐리자 제이가 부드럽게 미소를 지었다.
“그러겠습니다.”
“미안해요... 저 때문에 괜히...”
“미안할 것도, 괜히도 아니지요. 저도 리아와 데이트를 할 겸 수도도 산책하는 것이니 좋습니다.”
“고마워요 제이.”
“정 고마우시다면 오늘 기대하지요.”
“에?”
세린이 멍하니 제이를 바라보자 제이는 의미심장한 웃음을 지으며 리이가 들리지 않게끔 작게 속삭였다.
“내일도 쉬니 오늘은 밤을 절 재우지 않아도 됩니다.”
“!!!!”
“부부에게 이만큼 좋은 날이 어디 있겠습니까.”
“제, 제이!”
세린이 기겁을 하며 얼굴을 붉히자 제이가 소리 내어 웃으며 플로리아를 받아 안았다.
그리곤 플로리아를 향해 물었다.
“리아가 선택하거라. 집에 있겠느냐 이 아버지랑 나가서 케이크를 먹고 오겠느냐.”
“우....”
플로리아의 미간이 좁아졌다.
선택의 폭은 좁건만 그 좁은 폭에서 선택하기는 왜 이리 어려운 것인지...
플로리아는 꿍하니 고민을 하다가 이내 외쳤다.
“갈래요!”
가서 엄마의 선물이라도 사올 생각이었다.
좋은 선물을 사다주면 분명 기뻐할 그녀를 알기에 플로리아의 기대가 커졌다.
얼른 가서 선물을 사오고 싶었다.
세린은 아빠와 다녀오겠다 외치는 딸을 다정히 바라보다가 이내 그녀의 이마에 입을 맞췄다.
“엄마랑도 다음에 다녀오자. 우리 예쁘니.”
“네에!”
“아빠랑 잘 다녀오고.”
“네에!!”
자신감이 넘치는 대답을 들은 후 세린은 빠르게 황성으로 갈 준비를 끝마쳤다.
제이는 그런 세린의 입술에 짧게 입을 맞춘 후 말했다.
“조심해서 다녀오세요.”
“제이도 조심해서 다녀와요.”
“사랑합니다.”
“하하하! 저도요!”
그 인사를 끝으로 세린이 마차에 올랐고 마차는 빠르게 황성으로 달렸다.
제이는 플로리아를 안아주며 마차가 사라질 때까지 바라보았고 이내 플로리아를 향해 물었다.
“우리도 가보자꾸나.”
“우...!!”
“불만이어도 입술은 좀 넣어두고.”
“엄마 보고 싶어... 힝.”
“아빠도 똑같단다.”
딸의 속상한 투덜거림이 귀여워 제이가 피식 웃음 지었다.
제이는 단단하게 플로리아를 감싸 안은 후 수도를 향해 걸어갔다.
살랑거리는 바람이 제이와 플로리아를 감쌌다.
똑같이 빛나는 환한 은발과 푸른 눈동자가 너무도 아름다웠다.
그 고귀한 머리카락에 의해 수도의 사람들은 길을 텄다.
수도에 도착하자마자 맛있는 냄새들이 풍겨오자 플로리아의 눈이 번쩍 뜨였다.
“아빠! 이고!! 이고 꼬기에요?”
“흠?”
플로리아의 고사리 같은 작은 손이 가리키는 것은 닭꼬치였다.
“닭꼬치라고 한단다. 닭의 고기를 꼬치에 끼우고 튀겨서 만든 음식이지.”
“우와....”
제이는 그런 닭꼬치를 바라보고 침을 흘리는 플로리아를 바라보다가 이내 물었다.
“먹고 싶니?”
“네!!”
물음이 다 들리기도 전에 대답은 튀어나왔다.
제이는 그런 딸을 할 수 없다는 듯 바라보며 닭꼬치 장수에게 다가섰다.
기품 있는 걸음과 숨 막히게 아름다운 얼굴을 한 대귀족의 등장에 꼬치장수는 창백해진 낯으로 고개를 숙였다.
“귀, 귀하신 분을...!”
“인사는 되었고 꼬치를 사고 싶은데.”
“힉!! 어, 얼마나 필요하신지....!”
“하나면 되겠군.”
“ㄴ, 네!!”
장수가 서둘러 닭꼬치에 달콤한 소스를 발라 제이에게 두 손으로 건네주었다.
제이는 “고맙군.
“ 라고 인사하며 부드럽게 돈을 건네주었고 이내 닭꼬치를 플로리아의 손에 쥐어주었다.
플로리아는 푸른색의 두 눈을 반짝이며 환히 웃었고 제이는 그런 리아를 부드럽게 바라보았다.
“앗뜨!!”
호기롭게 한 입 먹어보려던 플로리아는 김이 나는 닭꼬치에 의해 한 발 후퇴했다.
제이는 그런 플로리아를 놀란 눈으로 바라보며 그녀의 볼을 부드럽게 잡고 다급히 살폈다.
오동통한 입술 안으로는 데인 상처가 보이지 않음에 안심한 그는 플로리아에게서 닭꼬치를 가져가며 말했다.
“기다려 보거라.”
그리곤 입으로 부드럽게 바람을 불어 닭꼬치를 식히기 시작했다.
그가 호호 불 때마다 나부끼는 달꼬치의 김이 천천히 가늘어졌다.
플로리아는 제이가 어서 제게로 닭꼬치를 주기를 바라보며 침을 뚝뚝 흘리고 있었고 이내 그녀의 손에 닭꼬치가 다시 쥐여졌다.
바삭!
“웅얌!!”
“맛있느냐.”
“마시써여!!!”
입안에 가득 찬 고기로 인해 발음이 흘렀으나 그 모습도 참으로 귀여웠다.
제이의 눈이 곱게 휘었고 플로리아의 웃음도 깊어졌다.
제이는 자연스럽게 플로리아의 머리카락을 정돈해주며 앞으로 걸어가기 시작했다.
세린이 말해준 카페가 이 근처라는 것으로 알고 있어서 부지런히 눈을 굴려 찾는 중이었다.
그러던 그때, 그의 입가로 닭꼬치가 나타났다.
제이의 눈이 커진 것과 동시에 플로리아의 귀여운 푸른 눈이 그를 향해 올려졌다.
“아빠도 아!”
“흠?”
“아아!”
“먹어보라는 것이냐.”
“웅!!”
‘뭘 먹여주는 건 세린을 닮았나보군.’ 맛있는 것을 먹으면 무조건 제이도 한 입 주려는 세린의 모습이 떠올랐다.
그녀의 그 모습도 너무 사랑스러웠기 때문에 입가의 미소가 저절로 피어났다.
제이는 피식 웃음 지으며 딸이 건네준 닭꼬치를 한 입 맛을 봤다.
바삭!
“맛있죠??”
“맛있구나.”
“히히!”
개구진 모습으로 웃는 막내가 참 귀여웠다.
늘 입으로는 아빠가 밉다고 하지만 실은 그 반대라는 것을 제이 스스로도 무척 잘 알고 있었다.
“아빠.”
“??”
“미워요.”
“......”
조금 표현법이 독특하서 걱정이기는 하지만 말이다.
가끔씩 진심도 섞인 것도 같다.
똑 닮은 외양을 한 오묘한 부녀의 데이트는 이제 막 시작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