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두 번째 딸로 태어났습니다-194화 (193/218)
  • 194화. 불치병

    밝은 햇살에 이엔의 눈이 천천히 떠졌다.

    아침의 햇빛이 그의 금빛 눈동자에 비춰지자 숨 막히게 더욱 제 빛을 밝히며 아름다워졌다.

    이엔은 제 눈을 비비며 천천히 상체를 일으켰다.

    ‘아침.... 인가?’

    단단하게 자리 잡은 근육들이 그의 몸을 장식하고 있었다.

    참 색정적으로 느껴질 정도로 침 나오는 제 몸을 누군가가 훑어보고 있다는 것을 모르던 이엔은 뻐근한 몸을 풀었다.

    우두둑

    뚜둑

    돌려지는 손목과 목에서부터 뼈가 부러지는 듯한 소리가 났다.

    이엔은 몸을 조금 풀다가 자연스럽게 벗겨진 제 상체로 시선을 돌렸다.

    “.....?”

    왜 나체지?

    이엔의 눈에 당황을 담겼다.

    황급히 눈을 옆으로 돌린 이엔은 두 눈을 가늘게 뜨고 있는 아름다운 푸른 눈과 마주쳤다.

    당연하게도 그 푸른 눈은 리사였다.

    리사는 자신을 멍하니 바라보는 이엔을 지켜보다가 이내 환히 웃으며 말했다.

    “잘 잤냐?”

    나체의 몸으로 두 팔을 제 뒷머리에 이고서 말이다.

    “끄악!!”

    털썩!

    이엔의 얼굴이 순식간에 붉어지며 이내 다급히 이불을 제 머리 위까지 끌어올려 덮었다.

    그 광경이 참 귀엽기 그지없었다.

    리사는 웃음을 참는 얼굴로 커다란 몸을 이불에 숨긴 이엔을 향해 물었다.

    “뭐하냐?”

    “.... 그...”

    “그?”

    “그게....”

    이불 밖으로 이엔의 얼굴이 슬며시 나타났다.

    덩치에 맞지 않는 앙증맞은 표정으로 리사를 바라보던 이엔이 입술을 달싹이다가 이내 조심스럽게 물었다.

    “어제... 기억나시나요?”

    “어제?”

    “네에....”

    “엄청 잘 기억나는데?”

    “......”

    그녀의 대답에 이엔의 얼굴에 홍조가 올라왔다.

    리사는 그런 순수한 그를 놀리고 싶은 심정에 피식 웃으며 말했다.

    “왜?? 또 하고 싶어?”

    “컥!!! 아니요!!”

    “뭐야, 나랑 하는 게 싫었어?”

    “그, 그게 아니라...!!”

    이엔의 잔뜩 붉어진 얼굴이 당황을 가득 품었다.

    흔들리는 동공을 한 채 이엔이 망설이다가 이내 두 눈을 질끈 감고 속삭였다.

    “저야... 저야 너무 좋지만....”

    “좋지만?”

    “여인들은 초반이 아프다고 해서... 리사님이 아프실 것 같습니다...”

    “.......”

    결국 또 제 걱정에서 우러나오는 대답이었다.

    리사는 그 다정함과 상냥함에 말문이 막혔다가 이내 파하하 웃음을 터트렸다.

    그리곤 한 손을 뻗어 이엔의 머리카락을 쓸어내리며 말했다.

    “넌 어째 변하지를 않냐.”

    “네...?”

    “귀여워.”

    “...!!!!”

    그녀의 부드러운 사랑에 이엔의 귀는 붉어지다 못해 타질듯이 타올랐다.

    그러던 그 때였다.

    “백작님!! 백작님!”

    “..... 뭐야?”

    문 밖에서 들리는 다급한 음성에 리사와 이엔의 눈이 동그랗게 변했다.

    어제 결혼식을 올린 신혼부부의 방문을 두드리는 무 개념은 누구지?

    그런 생각을 한 리사가 문을 향해 날카롭게 물었다.

    “무슨 일이냐.”

    “배, 백작님 그것이...”

    “??”

    “대공마님이 지금 아프시다는 서신이...”

    벌떡!! 우당탕탕!!!

    시종의 말이 끝나기도 전에 리사와 이엔은 자리에서 일어나 순식간에 옷을 갈아입고 방문을 열었다.

    그리곤 창백해져있는 시종을 향해 물었다.

    “전하가 아프시다고? 어디가? 얼마나??”

    “그, 그게... 그냥 아프시다는 통보만 오셔서....”

    “당장 대공저로 간다. 마차를 대기시켜!”

    “ㄴ, 네!!!”

    허겁지겁 멀어지는 시종을 바라보던 이엔이 리사를 향해 물었다.

    “좋은 약이라도 지어가야 하지 않을까요.”

    “대공저에도 유능한 의원이 있기는 하지만... 일단 황성의 좋은 약재를 찾아서 가져가자.”

    “네.”

    다급한 부부의 발걸음이 황성의 복도를 울렸다.

    “그 아이가 어디가 얼마나 아픈 것이냐.”

    “아프다는 통보만 와서 잘 모르겠습니다. 요즘 날도 더워져 가는데... 더 병나지 않을 지 걱정이네요.”

    세린의 소식을 듣고 테오에게 가는 길에 만난 로레인과 에드윅은 황급히 황제의 집무실로 발을 들였다.

    그러던 중 멀리서 자신들을 향해 달려오는 트레일을 발견해 멈췄고 말이다.

    다다다다다!!!

    “아버지!!! 형님!!!”

    “.... 트레일?”

    “세린 이 녀석이 아프다면서요?!??”

    “진정하거라.”

    “어디가 얼마만큼 아픈 거예요?! 심하데요?!”

    “모른다. 그래서 우리가 보러 가는 것이니 넌 여기 있거라.”

    에드윅의 말에 트레일이 버럭 소리쳤다.

    “우리 애가 아프다는데 어떻게 기다려요!! 나도 갈 거예요!!!”

    “......”

    하여간 말은 더럽게 안 듣지....

    에드윅 질린 눈으로 트레일을 바라보았고 이내 고개를 가로 저으며 말했다.

    “그럼 얼른 다녀오자꾸나.”

    “네!!”

    “네 아버지.”

    테오의 집무실이 열리고 그렇게 세 부자들은 대공저를 향해 출발을 준비했다.

    세린은 제 이마를 부드럽게 닦아주는 제이의 손길을 느끼며 낮잠에 들었다.

    깊이 잠든 것이 아닌지 미간이 살짝 좁아져 있었다.

    제이는 다정히 세린의 이마에 손을 올려 그녀의 열을 확인해보았다.

    ‘열이 잘 안 내리는군...’

    아침부터 지금까지 계속 열이 내리지 않고 있어 걱정이 가득했다.

    제이는 낮게 한숨을 내쉬며 다시 땀을 흘려가는 세린의 이마를 닦아주었다.

    차라리 아픈 것이 자신이었으면 하는 마음이 간절했다.

    ‘얼른 나아야 할 텐데...’

    참 오랜만에 아픈 것 같은 세린의 모습에 제이의 한숨이 깊어져갔다.

    잘 안 아프던 사람이 한 번 아프면 그만큼 많이 고생을 한다고 했다.

    세린이 지금 딱 그런 것 같아 제이의 가슴이 차가워졌다.

    그가 그런 걱정을 품고 있을 때, 대공저의 입구로 마력이 요동치기 시작했다.

    제이의 눈이 가늘어졌다.

    “.......”

    ‘벌써 오신 것인가? 서신이 도착하자마자 바로 달려오신 것 같군.’ 제이는 고개를 작게 끄덕이며 자리에서 일어났다.

    귀한 손님을 맞이하러 가야했다.

    세린은 살짝 좁아진 미간을 피며 눈을 떴다.

    그러자 보이는 것은 바다를 닮은 파란색의 머리카락이었고 호박색의 눈동자였다.

    세린의 눈이 곱게 휘었다.

    “어머니...”

    “이 계절이 아프면 어떻게 하니... 내가 건강 잘 챙기라고 이야기 했지?”

    “하하... 죄송해요....”

    “네가 아픈 게 나한테 사과할 일은 아니지. 다 괜찮으니 얼른 나아주렴.”

    “네에....”

    메리의 다정한 말에 세린의 미소가 짙어졌다.

    그녀를 지켜보던 아인도 걱정스럽게 말했다.

    “뭐 먹고 싶은 것은 없니.”

    “괜찮아요. 제이가 챙겨줘서 배가 불러요.”

    “더 아픈 곳은 없고?”

    “네, 괜찮아요.”

    다정한 걱정들이었다.

    고작 감기일 뿐인데 이리 걱정하실 줄은 몰랐다.

    그러나... 세린은 몰랐다.

    난처해진 이 상황에서 더욱 난처해질 상황이 다가오고 있음을...

    똑똑

    “..... 누구지...?”

    정갈한 노크 소리에 세린의 의문을 표하자 아인과 메리가 질린 눈으로 방문을 바라보았다.

    “징하다니까 정말...”

    “동감하오.”

    “누구기에 그러세요?”

    메리와 아인의 작은 질책에 세린의 눈이 동그랗게 변했다.

    메리는 난처하게 미소를 지으며 세린의 이마를 쓸어주다가 이내 문을 열도록 입을 열었다.

    “열어주렴.”

    철컥!

    “세린!!!!”

    “세린, 괜찮은 것이냐!”

    “세린?? 어디가 아픈 거야??”

    “세린.”

    누워있는 세린의 동공이 잔뜩 흔들렸다.

    열리는 문 사이로 차례대로 등장하는 분홍색 머리카락의 행진에 저절로 경악스런 외침이 흘러나왔다.

    “아, 아빠...?! 오빠들?! 콜록 콜록!!!”

    “목이 아픈 거야?! 세상에 열도 나잖아!”

    자연스럽게 제 이마로 온 트레일의 큰 손에 세린이 눈을 깜빡였다.

    “오.. 빠... 왜 여기에...”

    “그게 문제야?! 네가 아프다는데 당연히 와야지!”

    “하지만...”

    “누워 일단!”

    트레일이 부드럽게 세린을 이불로 이끌었다.

    입술까지 덮어진 이불의 감촉에 세린이 눈을 동그랗게 뜨며 제 가족들을 바라보았다.

    에드윅과 로레인은 걱정이 가득한 얼굴로 세린이게 먹일 약들을 꺼내기 시작했고 테오는 세린의 이마를 부드럽게 닦아내기 시작했다.

    갑작스런 등장에 갑작스런 간호.

    어안이 벙벙했지만 세린은 이내 다정히 미소를 품었다.

    자신이 아프다는 소식에 걱정되어 찾아와준 가족이 사랑스럽기 그지없었다.

    “걱정했어요...?”

    “당연하지! 네가 아프다는데 어떻게 걱정을 안 해?”

    “그냥 감기에요. 너무 걱정하지 마요.”

    세린의 미소를 다정히 바라보며 로레인이 말했다.

    “여름감기가 무서운 법이야. 밥은 먹었니?”

    “네... 먹었어요.”

    “잘했어. 밥은 잘 챙겨먹어야 해.”

    세린의 대답에 기특하다는 듯 테오가 그녀의 머리를 부드럽게 쓸었다.

    에드윅도 세린의 이불을 장리해주느라 바쁠 때, 밖에서 우렁찬 소리가 복도를 울렸다.

    “전하!!!!”

    “....??”

    그 목소리의 주인을 너무도 잘 알고 있는 탓에 세린의 눈이 경악을 담았다.

    “리사...?!”

    “전하!!! 괜찮으신 겁니까!!!”

    “리, 리사! 이엔까지....”

    리사와 이엔의 뒤로 거대한 약재 바구니가 쏟아져 나왔다.

    세린의 얼굴이 창백해질 정도의 양이었다.

    대공부부의 침실이 가득 차는 것은 순식간의 일이었다.

    세린이 난처한 얼굴로 제 주변의 가족들을 바라보았고 이내 할 수 없다는 듯 웃었다.

    “고작 감기인데...”

    “고작이 아니지. 네가 아픈 것을 우리가 고작이라고 칭할 수는 없단다.”

    에드윅이 다정히 세린의 볼을 감쌌다.

    세린은 그 따뜻한 관심과 사랑에 다정히 웃었다.

    “다들 고마워요...”

    어릴 적 생각이 났다.

    처음으로 황성에 와서 아팠던 날.

    그때도 가족들은 쓴 약을 먹는 자신을 달래주고 어르기 위해 별의별 노력을 다 했었다.

    그 기억이 너무도 애틋해서 세린의 눈이 곱게 휘었다.

    하지만 자신으로 인해 업무들을 재치고 두 번이나 이렇게 달려오게 만드는 것은 사양이었다.

    세린은 남들에게 피해를 주지 않기 위해서라도 자신이 아프지 않아야 함을 다시 한 번 깨달았다.

    ‘팔불출도 병이라니까....’

    고칠 수 없는 불치병.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