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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 번째 딸로 태어났습니다-193화 (192/218)

193화. 때늦은 감기

방긋 해가 떴다.

대공 부부의 침실에도 역시 따뜻한 햇살이 넘치게 들어왔다.

“음...”

제이는 몸을 조금 뒤척이다가 눈도 뜨지 않고 부드러운 이불을 세린의 어깨 위까지 올려 덮어주었다.

자동반사적인 버릇이었다.

그리곤 덮어준 이불 위로 제 팔을 휘감아 그녀를 제 품에 가뒀다.

달콤한 향기와 함께 미미한 열기가 그의 단단한 가슴에 닿았다.

‘세린 향기....’

사랑스런 그 향기에 취해 몽롱한 정신을 가다듬지 않던 제이는 이내 미묘한 느낌에 눈썹을 꿈틀 거렸다.

가슴에 닿아오는 따뜻한 열기 때문이었다.

‘열기...?’

세린은 원래 몸에 열이 많은 여인이 아니었다.

그 생각에 미치자마자 제이는 그녀를 안은 자세로 빠르게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리곤 고개를 내려 세린을 두 눈에 담았다.

옅게 올라온 홍조는 붉었고 벌려진 입술 사이로는 뜨거운 입김이 새어나왔다.

이마도 땀을 얼마나 흘린 것인지 머리카락이 조금 젖어있기 까지 했다.

제이는 저절로 창백해지는 안색으로 세린의 이마에 제 손을 가져갔다.

‘뜨거워...’

이정도 열을 가지고 얼마나 있던 것이지?

아니, 애초에 왜 그녀가 아픈 것을 눈치 채지도 못했느냔 말이다.

제이는 자신에게 원망을 쏟아 부으며 세린을 불렀다.

“세린.”

“으....”

“세린, 일어나보세요.”

“제이...”

그녀의 입술 밖으로 새어나온 목소리가 잔뜩 갈라졌다.

‘목도 부은 건가? 편도가 부으면 열이 난다고 들었는데...’

빠르게 세린의 상태를 살피던 제이가 다정히 그녀의 이마를 정돈해주며 말했다.

“열이 많아 납니다. 의원을 불러야겠어요.”

“아.... 감기가 왔나...”

“그런가봅니다. 일단 진정하세요. 많이 아픈 것이 아닐 겁니다.”

“하하하... 제이가 진정해야 할 것 같은데요?”

제이의 다급함이 담긴 말에 세린이 아이처럼 키득키득 웃었다.

그리곤 이내 얼굴을 일그러트리며 거친 기침을 토했다.

“콜록!! 콜록!”

기침 한 번에 제이의 얼굴은 창백해져갔다.

‘여름이 다 되어 가는데 감기라니....’

이대로는 안 된 다는 생각에 잡히자마자 제이는 자리에서 벌떡 일어나 제 겉 와이셔츠를 입고 빠르게 방문을 나섰다.

의원을 불러 그녀의 진찰을 도와야 했다.

아침 댓바람부터 찾아온 대공의 모습에 의원이 소스라치게 놀라며 자리에서 일어났다.

“공작님! 무슨... 일이신지...”

“부인이 열이 난다. 가서 진찰을 해줬으면 하는데.”

“헉!! 열이 말입니까?! 지금 얼른 가겠습니다.”

제이의 창백한 말에 의원이 황급히 왕진가방에 도구들을 쓸어 담고 문을 박차며 나갔다.

제이는 그런 의원을 따라 발걸음의 속도를 높였다.

*

세린은 제 손목에 손을 올려 진찰을 하는 의원을 붉어진 얼굴로 바라보았다.

저절로 얼굴에 몰린 열이 온 몸에 힘을 빠지게 만들었다.

의원은 땀범벅이 된 대공부인인 세린의 모습에 안쓰러운 얼굴로 눈을 휘며 말했다.

“몸살과 함께 감기가 오신 듯합니다. 여름감기가 많이 힘드실 텐데...”

“자네가 좋은 약을 지어주겠지. 안심하고 있어.”

“당연히 좋은 약을 지어드리지요. 식사는 꾸준히 챙기셔야 합니다. 올려드릴 탕약이 조금 쓸 수 있으나 식 후 꼭 챙겨 드세요.”

“하하하 내가 아이는 아니니 꼭 먹도록 하겠네.”

세린의 눈이 곱게 휘었다.

땀에 젖은 붉은 얼굴에 핀 웃음이 너무도 아름다웠지만 동시에 너무도 안쓰러웠다.

의원은 몇 가지 주의사항을 더 알려준 후 약을 짓기 위해 서둘러 자리를 떠났다.

제이는 그런 의원이 급히 나가자마자 세린의 옆에 바로 앉았다.

세린은 그런 제이를 동그란 눈으로 바라보며 물었다.

“제이, 출근해야 하지 않나요...? 오늘은 황성에 가야 하는 걸로 알고 있는데....”

“그래야 합니다만.... 아까 서신을 보냈습니다.”

“.... 네?”

“당신이 아프니 오늘은 쉬어야겠다고 했습니다.”

“네에...?!”

놀란 세린은 소리를 치자마자 바로 나오려는 기침에 다급히 목을 감싸고 괴롭게 숨을 토했다.

“윽... 쿨럭!! 으으...”

“세린!!”

다급히 세린을 부축해주는 제이의 안색에 세린이 난처하다는 듯 웃어버렸다.

그의 표정만 보면 자신이 피라도 토하는 줄 알 것이었다.

“제이, 그냥 감기에요.”

“예. 열이 40도 가까이 나고 목이 부어 물을 삼키기 힘든 정도의 감기지요.”

“...... 하하..”

“저를 출근시키고 싶으시다면 빨리 나으셔야 할 것입니다.”

진심이 듬뿍 묻어나온 잔소리였다.

세린은 그런 제이를 멍하니 바라보다가 이내 키득키득 웃으며 자리에 누웠다.

‘그래, 얼른 나아서 제이를 출근시켜야지....’

쿠당탕탕!!

쾅!!!

“어머니!!!”

“어, 어머니!”

“엄마!!!”

“움마!!!!”

‘........ 얼른 나을 수 있겠지...?’ 어마어마한 소음과 함께 등장한 이들은 다름 아닌 세린과 제이의 사랑하는 아이들.

레기, 에드, 앤젤라, 플로리아였다.

세린은 누운 모습으로 아이들을 바라보며 다정히 웃었다.

“얘들아.”

“어머니, 아프시다는 말을 듣고 달려왔습니다. 어디가 안 좋으신 거죠? 많이 아프신가요?”

“레기, 엄마 괜찮아. 그냥 감기야.”

놀란 듯한 레기의 푸른 눈이 걱정스럽게 깜빡였다.

세린은 그런 레기의 머리카락을 부드럽게 넘겨주며 그를 진정시켰고 이내 옆에 있던 에드가 다급히 말했다.

“어머니! 내가 마법으로 나을 수 있게 해줄게요!”

“에드, 엄마가 마법에만 의존하면 안 된다고 했지?”

“하지만....”

“엄마는 혼자서도 나을 수 있어. 그러니 마법은 쓰지 마.”

마법에만 의존했던 예전 자신이 남부의 사건 속에서 그 마법을 사용하지 못하게 되자 느꼈던 절망을 세린은 아직도 기억하고 있었다.

그래서 마법을 사용하는 에드에게 늘 했던 말은 마법에만 의존하지 말고 다른 자신의 힘을 기르기였다.

에드는 그런 세린의 말에 당황하다가 이내 입술을 꾹 깨물고 고개를 끄덕였다.

앤젤라는 거의 울기 직전이었다.

“엄마.... 많이 아파요??”

“하나도 안 아파. 왜 너희들이 더 아픈 표정을 하는 거야?”

“아프지 마세요...”

“얘들도 참....”

아이들의 진심이 듬뿍 담긴 걱정이 담긴 말에 세린의 미소가 짙어졌다.

기운이 없는 미소였지만 기쁘다는 감정이 여실 없이 보여 졌다.

“엄마 괜찮아. 그냥 정말 단순한 감기가 온 거야.”

“여름감기가 더 아프다고 했어요. 약은 지으셨나요?”

“방금 의원에게 부탁했단다. 엄마 걱정 말고 너희들도 얼른 수업을 들으러 가렴.”

“.....”

제 이야기에 아이들의 시선이 땅을 향했다.

무언의 가지 않겠다는 거절의 표현에 세린이 당황했다.

제이는 그런 아이들을 바라보다가 이내 다정히 말했다.

“엄마는 휴식이 필요하단다. 그런데 너희들이 이렇게 걱정하면서 서 있으면 어떻게 엄마가 쉴 수 있겠니.”

“하지만...”

“아빠 미오!!”

“..... 리아, 너도 가서 글공부 해야지.”

“엄마 리아가 호~ 해줄 거야! 엄마 옆에 있을 꼬야!”

“안 돼. 아빠가 엄마를 지켜줄 테니 넌 가서 공부를 하거라.”

“시러 시러!!”

어쩌다보니 또 리아와 말다툼을 하게 된 제이는 제 막내딸을 나름대로 달래 보내려 노력했다.

세린은 그 모습을 멍하니 바라보다가 이내 키득키득 웃으며 말했다.

“레기, 에드, 앤젤라, 리아.”

“.... 네 어머니.”

“네...”

“......”

“엄마 때문에 너희들이 수업에도 빠지고 일도 하지 않으면... 엄마 마음이 속상해. 알지?”

세린의 손이 천천히 레기를 붙잡았다.

“그리고 엄마 감기가 너희한테 옮아지기라도 한다면... 더 마음이 아플 거야.”

“어머니....”

“엄마는 정말 하나도 아프지 않으니까 걱정하지 말고 다녀오렴.”

“......”

아이들은 세린에게 약해도 너무 약했다.

레기는 조금 수그러든 얼굴로 세린의 손을 마주 잡았다가 이내 동생들의 손을 잡아주며 말했다.

“수업을 다녀오고 쉬는 시간이나 점심시간 때 뵈러 올게요.”

“그래그래.”

“약은 꼭 챙겨 드시고요.”

“그럼.”

세린의 다정한 웃음에 기운이 없다는 것을 안 레기지만 이내 머뭇거리다가 동생들을 데리고 밖으로 향했다.

끝까지 제 걱정을 하는 아이들이 사랑스러워 세린은 기운 없이 웃음을 지었다.

“쟤들도 참...”

“언제 저렇게 컸는지 모르겠군요.”

“제이도 그런 생각을 했어요? 나돈데...”

“그런 생각이 들 수밖에 없지요.”

제이의 손이 부드럽게 세린의 손을 잡았다.

조심스럽게 깍지가 껴지는 단단한 손의 감촉에 세린이 잔잔히 웃음을 지었다.

제이는 그 미소를 바라보며 말했다.

“부모의 걱정을 할 줄도 알고, 챙길 줄도 아는 모습을 보면 어떤 부모가 안 컸다고 할까요.”

“하하하... 맞아요. 우리 아이들이 다 컸네요.”

“아이들도 저만큼 걱정을 하니 빨리 나으셔야지요.”

“알겠어요. 얼른 나을게요.”

세린의 눈이 곱게 휘었다.

그러나 그들이 간과한 것이 하나 있었다.

바로 제이의 서신으로 인해 세린이 아프다는 소식이 퍼진 황성이었다.

‘부인이 아파 당분간 황성의 업무를 보지 못할 것 같습니다. 추 후 소식을 전하겠습니다.’

참 간결하다 싶었다.

그러나 간결한 한 문장 속에는 테오의 가슴을 쿵 떨어트릴 소식이 담겨 있었다.

‘아프다고...? 그 아이가...?’

테오의 붉은 눈이 마구 흔들렸다.

테오는 서신을 다시 한 번 읽어보며 제가 읽은 내용이 틀림없다는 것을 인지하고 자리에서 벌떡 일어났다.

“당장 마차를 대기시켜라! 아니, 로레인을 불러라!”

“폐, 폐하??

“스페라도 대공저에 갈 것이다!”

“네에에에?!?!”

시종의 경악스런 외침을 무시하고 테오는 긴 다리로 성큼 성큼 서재를 빠져나갔다.

세린의 소식은 테오의 로레인 호출로 인해 1기사단에서 일하던 트레일의 귀에도, 정원을 거닐던 에드윅의 귀에도, 이제 막 첫날밤을 치룬 달콤한 신혼부부 리사와 이엔의 귀에도 들어갔다.

“으으으...”

“세린? 왜 그러십니까.”

“아니... 뭔가 오한이....”

“감기가 심해지는 것 같습니다. 일단 누우세요.”

그런 오한이 아닌 것 같은데...

세린의 가슴에 불안감이 엄습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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