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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 번째 딸로 태어났습니다-192화 (191/218)

192화. 밤 소풍

앤젤라가 데미언과 사랑스런 약속을 나눌 무렵, 제이는 대공저로 돌아가려는 마차 앞을 정신이 사나워지도록 돌고 또 돌았다.

그러나 그 부산스런 움직임은 에드와 레기도 마찬가지였다.

평소의 잔잔한 성격의 레기도 팔짱을 낀 손가락이 빠르게 움직였고 에드는 발을 동동 굴렀다.

플로리아와 세린만이 얌전히 앤젤라를 기다릴 뿐이었다.

“어머니... 앤젤라가 너무 늦는 것 같습니다.”

“레기, 앤젤라가 간지 아직 5분도 안 되었단다.”

“무슨 일이 있는 건 아니겠죠?!”

“에드, 앤젤라와 함께 있는 사람은 곧 대신관이 될 아이란다.”

“세린, 혹시 앤젤라가 넘어진 것은 아닐지 걱정입니다. 제가 가봐야겠어요.”

“제이, 앤젤라는 아무 곳에서나 넘어지는 어린아이가 아니에요.”

참으로 정신없었다.

세린은 그 팔불출의 남자들 사이에서 플로리아를 안아주며 난처히 웃을 뿐이었다.

‘으이그... 나중에 앤젤라를 시집보낼 때 어쩌려고...’

시린은 지금 이 상황이 난처하기도 했지만 동시에 참 사랑스럽다고 생각하기도 했다.

그만큼 가족들이 앤젤라를 사랑하기 때문이라는 것을 잘 알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세린이 부자들의 모습을 다정히 바라보며 웃고 있을 때 멀리서 앤젤라가 걸어 나왔다.

그녀를 발견한 레기와 에드가 허겁지겁 그녀의 곁으로 달려갔다.

“어디 다친 곳은 없니 앤젤라?”

“응?? 레기오빠?”

“앤젤라! 막 뭐 이상한 소리 들은 건 아니지?!”

“으응??? 에드오빠까지 왜 그래?”

제 쌍둥이 오빠들의 어지러운 반응에 앤젤라의 눈이 커졌다.

당황하는 앤젤라의 주변을 맴돌며 그녀를 살피는 레기와 에드를 말린 것은 다름 아닌 바로 제이였다.

“레기, 에드. 앤젤라가 놀라겠구나.”

“아... 미안.”

“놀랐어? 미안해.”

빠르게 사과하는 아들들을 지나친 제이는 앤젤라의 어깨를 잡으며 다정히 물었다.

“앤젤라 잘 다녀왔니.”

“네, 아빠!”

“다행이구나. 그런데 그 아이와 어떤 이야기를 했....”

“제이.”

세린의 부드러운 제지로 인해 그 궁금증을 풀 수 없었지만 말이다.

황성의 홀 밖으로 왁자지껄한 사내들의 웃음소리가 들렸다.

세린은 뒤풀이를 시작하는 리사와 이엔, 그리고 기사단들의 모습에 다정히 웃으며 이내 앤젤라를 이끌었다.

“이제 가자꾸나. 가서 맛있는 저녁도 먹고 너희가 좋아하는 레몬케이크도 먹자.”

앤젤라와 레기, 에드의 표정이 밝아졌다.

“네!”

아이들이 힘차게 걸어 나가며 마차에 올랐다.

세린은 레기의 도움을 받으며 마차에 오르는 앤젤라를 유심히 살펴보다가 이내 딸의 표정이 진심으로 즐거워보이자 마음을 놓았다.

‘이야기를 잘 나눴나보구나.’

다행이다.

따뜻한 웃음을 지으며 세린도 이내 마차에 올랐다.

*

그 날 밤.

풍족한 식사를 마친 앤젤라는 깨끗하게 씻고 침대에 누웠다.

푹신하고 부드러운 이불의 감촉과 밝은 달빛은 그녀의 마음을 녹아내리게 만들었다.

‘좋다...’

따스한 방의 온기를 느끼며 앤젤라가 천천히 눈을 감았다.

그러자 머릿속으로 데미언의 목소리가 부드럽게 울려 퍼졌다.

‘그땐 제가 먼저 앤젤라님께 고백하겠습니다.’

“......”

울려 퍼지는 그의 목소리에 저절로 앤젤라의 두 볼이 붉어졌다.

갑작스런 제 고백에 놀랐을 법도 한데 진지하게 들어준 그가 너무도 고마웠고 동시에 설레었다.

그의 그 말은 곧 자신과 그가 같은 마음이라는 말이었으니까.

언제부터였을까?

그도 자신과 같은 마음을 느낀 것은...

앤젤라가 두 손을 마주 잡고 천장을 바라보며 생각에 잠길 때, 누군가 문을 두드렸다.

똑똑

“....?”

누구지... 이 시간에?

앤젤라가 다급히 침대에서 내려와 문을 열자 방문 앞에 있는 인영이 따뜻하게 웃었다.

앤젤라의 눈도 환하게 변했다.

“엄마!”

“앤젤라, 잘 준비는 다 했니?”

“네! 다 씻고 준비도 다 했어요!”

“흐음~”

세린의 동그란 눈이 고운 곡선으로 휘었다.

의미심장한 그녀의 웃음에 앤젤라가 당황하자 세린은 앤젤라의 시선에 맞춰 상체를 숙이며 속삭였다.

“그럼 우리끼리만 소풍을 가자.”

“네...??”

“밤 소풍! 이 시간의 대공저 꼭대기가 얼마나 예쁜지 알려줄게.”

“꼭대기요??”

“응. 엄마만 들어가라고 아빠가 만들어준 곳이야.”

“와아!!”

앤젤라의 반짝이는 두 눈을 귀엽다는 듯 바라본 세린은 이내 제 손에 있는 바구니를 흔들어 보이며 다정히 웃었다.

“간식도 준비했다? 어때, 가볼래?”

“네!! 가고 싶어요!”

“하하하, 좋아! 오빠들한테는 비밀이다?”

“네!”

서로를 마주본 모녀가 동시에 검지를 입술에 대었다.

키득키득 아이처럼 웃으며 세린이 앤젤라의 한 손을 잡았고 이내 밝은 연두색의 빛과 함께 워프했다.

*

대공저의 꼭대기는 제이가 하늘을 보는 것을 좋아하는 세린만을 위해 만들어 놓은 공간이었다.

반짝이는 수도의 빛과 제국의 국민들이 잘 보이는 그 높은 방에는 사방이 투명한 유리로 둘러 쌓여있어 보다 밝은 제국의 빛들을 선명하게 바라볼 수 있었다.

그 아름다운 공간의 가운데에 워프되자 앤젤라의 두 눈이 커다랗게 변했다.

“우와아....”

놀란 감정이 가득 담긴 앤젤라를 귀엽다는 듯 세린이 바라보았다.

“그렇게 예쁘니?”

“너무 예뻐요... 우리 성에 이런 곳이 있는 줄은 몰랐어요....!”

“아빠가 엄마를 너무 사랑해서 만들어준 곳이란다. 엄마의 자랑이지!”

“멋지다...”

딸의 순수한 감탄에 세린이 키득키득 웃었다.

그리곤 부드럽게 딸을 이끌어 방의 가운데에 놓인 테이블 앞으로 앤젤라를 앉혔다.

바구니에서 나오는 맛있는 디저트들과 꿀을 넣은 따뜻한 우유가 그녀의 앞에 줄을 이었다.

“어, 엄마.”

“응?”

“이걸 다 먹어도 괜찮아요? 지금은 밤이고... 늦었고...”

“앤젤라.”

세린이 다정히 딸을 불렀다.

앤젤라가 눈을 올려 세린을 바라보자 세린이 다정히 말했다.

“밖을 한 번 봐보렴.”

“....?”

“사람들은 뭘 하고 있어 보이니?”

“.....”

앤젤라의 눈이 창문 밖의 아름다운 풍경으로 향했다.

어두운 밤을 밝히는 등불들과 먹고 마시고 웃고 있는 수많은 백성들.

앤젤라가 그들을 바라보며 나직이 말했다.

“맛있는 걸 먹고... 웃고 있어요.”

“그치? 우리도 저들과 다르지 않아. 우리도 원하는 시간에 맛있는 걸 먹을 수 있고 웃고 떠들 수 있어.”

“.....”

“너희들이 늦게까지 디저트를 먹지 말라고 했던 이유는 건강을 위해서였단다.”

그 말을 끝으로 세린은 하얀 잔 안으로 꿀을 넣은 우유를 따라 앤젤라에게 건네주었다.

“따뜻할 거야.”

“감사합니다...”

두 손에 쥐여진 잔이 너무도 따스한 온기를 품고 있었다.

앤젤라의 입가에 잔잔한 미소가 담겼고 두 볼에 가득 홍조가 올랐다.

세린은 그런 앤젤라를 다정히 바라보다가 이내 개구진 미소를 지으며 물었다.

“그래서 데미언 사제님과는 잘 이야기 나누었니?”

“쿨럭!!”

앤젤라의 두 볼이 순식간에 더욱 달아오르며 이내 놀란 입을 뻐끔 거렸다.

“어... 그... 그어...”

“크읍!”

제 감정을 숨기지도 못하는 딸의 모습이 너무도 귀여웠다.

“그 아이를 좋아하는 거지? 앤젤라.”

“..... 티가 나나요?”

“여자의 감이지.”

세린이 앤젤라를 향해 달콤히 윙크하자 앤젤라가 쑥스럽게 웃었다.

그리곤 두 손으로 컵을 만지며 나직이 물었다.

“엄마는... 아빠를 언제부터 만나셨어요?”

“음? 글쎄...”

세린의 눈이 조금 가늘어졌다.

그를 처음 만났을 때에는 가족들과 늘 행복한 일상을 보내던 때였다.

“7살... 같은 12살 때였지?”

“네?”

“하하 처음 만난 건 12살이었고 정식으로 아빠랑 사랑을 하게 된 것은 엄마가 17살이었을 때야.”

“아빠가 먼저 고백했죠??”

“음....”

그가 제 마음을 고백했을 때에는 상황이 그리 좋지 못한 때였다.

남부제국의 사건에 휘말려 그는 피를 어마어마하게 흘렸었고 상처도 컸었다.

과다출혈에 정신까지 혼미해져 내뱉은 진실 된 고백은 그녀의 가슴을 쿵 떨어지게 만들었었다.

세린은 그 아찔했던 상황을 상상하다 이내 다정히 웃었다.

“그랬지. 그런데 엄마도 고백했었어.”

“??”

“엄마도 아빠를 사랑한다고 솔직하게 이야기를 해서 만나게 된 거야.”

“.... 멋있어요.”

앤젤라는 세린의 이야기를 경청하며 맑게 웃음 지었다.

세린은 그런 앤젤라의 앞 머리카락을 정돈해주며 물었다.

“앤젤라는 어쩌다 그 아이를 좋아하게 된 거니?”

“아....”

항상 남모르게 챙겨주는 다정한 점과 자신을 생각해주는 그 섬세함이 좋았다.

처음에는 그저 제 쌍둥이 오빠들에게 감정인 줄만 알았는데 시간이 지나면서 점점 확고해지는 감정의 변화에 얼마나 많이 고민했는지 몰랐다.

대답을 머뭇거리는 앤젤라였지만 그녀의 표정에서부터 보이는 그 순수한 순정에 세린은 맑게 웃었다.

“말하지 않아도 좋아 앤젤라. 하지만 엄마는 너의 엄마로서, 여자로서 이것 하나만 말해주고 싶어.”

“네...?”

“하고 싶은 대로 하렴.”

“....!”

세린이 앤젤라의 작은 손을 꼭 쥐었다.

“네가 하고 싶은 것, 하고 싶은 말... 이런 거를 숨기지 말고 네 마음대로 다 해.”

“엄마...”

“엄마는 항상 네 편이니까 네가 좋다면 엄마도 좋아. 그러니까 앤젤라.”

세린의 눈이 곱게 휘었다.

“네가 사랑이 하고 싶거든 하렴.”

“.....”

“네가 다치거나 아프지 않는 선에서 말이야.”

모든 엄마들의 마음이 그러하듯 세린도 마찬가지였다.

아이의 모든 것을 지지해주고 싶었고 아이가 하고 싶은 모든 것을 응원해주고 싶었다.

단, 내 소중한 아이가 다치지 않는 그 선까지만 말이다.

첫사랑을 하고 있는 소중한 딸을 바라보며 세린이 앤젤라와 마주잡은 손에 힘을 주었다.

부디 이 과정을 통해 앤젤라가 제 행복을 찾기를 바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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