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두 번째 딸로 태어났습니다-189화 (188/218)

189화. 와인의 향기

“꼬모!!!!”

“리아!!! 우리 애기!!!”

“꼬모 꼬모!!!”

앙증맞은 팔이 리사를 향해 뻗어졌다.

리사는 볼에 잔뜩 오른 홍조를 하고 그런 플로리아를 향해 달려갔고 작디작은 아이를 온건히 끌어안을 수 있었다.

“보고 싶었다고! 우리 예쁘니!!!”

“꺄하하!! 꼬모 죠아!”

“나도 좋아!! 사랑해!”

아름다운 두 사람의 상봉에 세린과 이엔이 다정히 웃었다.

세린은 리사에게 다가가며 말했다.

“어디 다친 곳은 없어?”

“없습니다. 건강하기만 해요.”

“다행이다. 이렇게 빨리 올 줄 몰랐어.”

“좀 무리하기는 했어요. 빨리 돌아오고 싶었거든요.”

“흐흥~”

세린의 눈이 장난스럽게 휘었다.

이엔의 얼굴은 말 할 것도 없이 붉어졌고 리사는 세린의 귀여운 눈웃음에 살짝 당황한 얼굴로 눈을 굴리다가 말했다.

“우, 우리 애기들이 보고 싶어 서요!”

“누가 뭐라고 했나~? 나도 알고 있어.”

“지, 진짜입니다 전하!!”

“알고 있다니까?”

리사의 당황하는 모습이 귀여웠던 세린이 맑은 웃음을 터트리며 리사의 두 볼에 손을 올렸다.

두 손에서부터 느껴지는 부드러운 감촉에 세린이 만족스런 표정으로 물었다.

“그보다 언제까지 전하라고 부를 생각이야? 이제는 제대로 불러줘야지.”

“아... 아직 어려운 단어입니다.”

“그것도 늘 똑같이 하는 변명이잖아. 기대 많이 하고 있다고!”

“......”

리사의 얼굴이 점점 굳어가자 세린이 어쩔 수 없다는 듯 웃으며 말했다.

“알겠어, 그만 놀릴게. 리사가 원할 때 불러줘.”

그리곤 이내 그녀를 부드럽게 안으로 이끌며 말했다.

“일단 들어와! 오늘 할 것들이 생각보다 많다고?”

“네??”

리사와 이엔의 눈이 동그랗게 떠지자 세린이 손가락을 하나씩 접으며 말했다.

“일단 충분히 쉬어준 다음에 깨끗이 씻고 단장을 하고 드레스를 입고...”

“전하 잠시... 단장이요?”

“응?”

리사의 얼굴에 가득한 의문에 세린이 당연한 것을 묻는 다는 듯 말했다.

“오늘 황성에 연회가 열린다며?”

“그렇지만 그게 왜...”

“그 연회가 너와 황궁의 기사단들과 우리만 참여하는 연회고 말이지?”

“네.”

“그리고 너와 이엔의 소식을 알려주는 자리이고 말이지?”

“.......!”

“그런 자리에 제복을 입힐 순 없지 리사! 내 욕심일 수 있지만 오늘 하루는 날 위해서라도 드레스를 입어줘.”

할 말을 잃었다.

반짝이는 세린의 눈동자를 보며 어찌 거절의 말을 내뱉을 수 있을까.

세린은 작게 절망하는 리사의 귀에 제 입술을 가까이 대며 속삭였다.

“이엔도 근사하게 꾸며 달라 일렀어. 제이가 도와준다고 했으니 나만 믿어.”

동지가 생긴다는 것은 리사에게 크나큰 위안이었다.

리사는 할 수 없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 하루만이라면.

*

제이는 소리 없이 이엔의 방으로 찾아와 아무 말도 하지 않고 검은색의 아름다운 정장을 이엔에게 건네주었다.

금색의 자수가 박힌 고급스런 정장은 보는 사람들을 압도할 만큼 눈부셨고 무척이나 아름다웠다.

이엔은 얼떨떨한 눈으로 그 정장을 바라보다가 이내 제이를 바라보며 물었다.

“다.. 단장은 저도 포함이었나요?”

“네 예상 그대로다. 입도록.”

“......”

“옷이 별로인가?”

“아니요! 무척 근사합니다.”

“?”

제이가 그런데 왜 그런 표정이냐는 눈으로 이엔을 바라보자 이엔이 난처하게 웃으며 말했다.

“저 옷이 저에게 어울리지 않을 것 같아서...”

근사한 옷이니만큼 입는 사람도 근사해야 빛을 받을 것이었다.

이엔은 저 옷을 소화할 자신이 없었다.

제이는 그런 이엔을 짜게 식은 눈으로 바라보았고 말이다.

“입고 나서 말하도록.”

“아...! 네.”

검은색의 정장을 입어 나가는 이엔이 와이셔츠의 소매에 단추를 잠가갈 때였다.

제이가 이엔을 바라보며 잔잔한 목소리로 물었다.

“황제폐하께서 하사해주신 프레제라는 성을 소중히 여겼단 것을 알고 있다.”

“......”

“그 성을 내려놓고 리사에게 가게 되는 것을 후회하지는 않겠나.”

“.....”

제이의 질문에 담긴 조그마한 걱정에 이엔의 입가에 부드러운 미소가 떠올랐다.

“후회하지 않습니다.”

“흠...”

“리사님의 성도 폐하께서 하사해주신 귀한 성이니까요.”

노을 진 하늘의 빛을 받은 이엔의 옆모습이 수려하게 빛났다.

“저는 그저... 제가 그 분께 성을 하사 받았었고 그 분께 기사로서 인정을 받았다는 것만으로도 만족합니다.”

“너는 언제나 작은 것 하나로도 쉽게 만족했지.”

“하하하 작지 않습니다.”

“아니. 작았다.”

제이의 입가에 미미한 웃음이 담겼다.

화사한 외모에서 피어난 작은 미소가 눈부시게 아름다웠다.

제이는 그 아름다운 미소를 입가에 담으며 이엔의 어깨에 망토를 둘렀고 이내 나직이 말했다.

“원대한 소원을 하나 가져보는 것은 어떤지 묻고 싶군.”

“......?”

“그것이 무엇이던 지금보다 더 욕심을 부려도 괜찮다는 말이다.”

“아...”

“그보다 옷이 잘 어울리는군.”

제이는 이엔을 위에서부터 아래로 살펴보며 만족스럽게 고개를 끄덕였다.

큰 키와 다부진 몸 위로 덮인 정장이 이엔에게 몹시도 잘 어울려서 골라준 제이로서는 굉장히 뿌듯했다.

“가서 리사를 데리고 황성으로 이동하도록.”

“대공 전하께서는 함께 안 가십니까?”

“곧 갈 것이다. 아이들의 준비가 아직 멀어서 말이지.”

“아...”

“가서 에스코트 해주고 오도록.”

제이의 눈이 반달로 휘었다.

“그 아이는 오늘 하루 기사가 아닌 아름다운 여인이니까.”

“!!”

*

이엔은 서두르는 발걸음으로 리사의 방문 앞에 섰다.

아름다운 여인이라고 했다.

그녀는 언제나 제게 아름다운 연인이었고 언제나 사랑스런 사람이었다.

기사로서의 모습이던 아니면...

끼익

여인으로서의 모습이던.

열린 문 사이로 금빛 눈동자와 푸른 눈동자가 마주쳤다.

환한 은발을 한쪽 어깨에 곱게 땋아 내린 리사의 머리에는 티아라가 장식되어 눈이 부셨고 동그란 어깨와 선명한 쇄골이 가루를 뿌린 듯 반짝였다.

가슴께에서부터 입혀진 은색의 드레스는 리사의 머리색보다는 조금 짙었으나 화사하게 빛이 났고 그녀의 몸에 곡선을 따라 딱 붙은 드레스의 자태가 참으로 고왔다.

이엔은 마른 침을 삼켰다.

살결이 보이고 쇄골이 보이고 심지어 몸의 라인도 보인다.

난감했다.

몹시도 난감해서 머릿속이 하얗게 변할 지경이었다.

세린이 웃음을 참는 목소리로 이엔을 향해 물었다.

“이엔! 정말 멋지다! 제이가 보는 눈이 있다니까?”

“.....”

“리사는 어때? 어울리지?”

어울리냐고?

어울린다고 표현할 정도로는 성에 차지 않을 정도로 눈부셨다.

이엔은 멍하니 리사를 바라보며 말했다.

“아름다우십니다...”

“.....”

그의 귀가 붉어진 것과 리사의 볼에 홍조가 오른 것은 동시의 일이었다.

리사는 얼떨떨한 얼굴로 자리에서 일어나며 말했다.

“느, 늦겠습니다! 먼저 가보겠습니다 전하!”

“아! 내가 너무 붙잡았구나? 얼른 가봐~!”

‘빨리 빨리!’, ‘나란히 걸어가란 말이야!’

주변의 시종, 시녀, 세린의 눈동자들이 그리 외치는 듯 했다.

우물쭈물 이엔의 옆에 선 리사를 보자마자 세린이 황홀하다는 듯 제 볼을 감싸며 감탄했다.

“아으...! 정말 잘 어울린다 두 사람!”

“힉!!”

부끄러움에 고개를 들지 못한 리사가 이엔의 팔을 붙잡고 서둘러 마차로 달려갔다.

그 끈질긴 시선은 황성에 도착한 후부터도 계속 되었고 말이다.

“다, 단장님?”

“단장님이라고??”

“힉!!!!”

“다들 눈 안 깔아?! 드레스 입은 사람 처음 봐?? 앙?!!”

리사의 호탕한 외침에 기사단들이 와인잔을 들고 서둘러 눈을 돌렸다.

이엔은 부끄러움을 타는 리사를 빤히 바라보다가 이내 나직이 웃으며 그녀의 팔을 잡았다.

“진정하세요, 이만 폐하께 가야죠 리사님.”

“이씨....”

드레스를 멀리한지 세월을 셀 수 없었다.

그래서 더욱 제 스스로가 어색한 리사가 심각하게 어색한 구두를 신고 빳빳하게 테오의 앞에 도달했다.

이엔이 잡아주지 않았다면 아마 제대로 걷기 힘들었을 것이었다.

테오는 열심히 꾸미고 온... 아니 꾸며져서 온 두 사람을 피식 웃으며 바라보았다.

“두 사람 모두 평소와는 달라 보이는군.”

두 사람의 얼굴이 붉어졌다.

“잘 어울리니 대답은 되었다. 그보다 두 사람이 결혼을 하기로 했다고.”

“네, 프레제 백작이 제게로 장가 올 것입니다.”

“..... 너무 당당해서 짐이 할 말을 잃었다. 뭐.... 축복받을 일이기는 하지. 축하하네.”

“감사합니다.”

“이번 연회는 2기사단들을 위한 연회이기도 하나 두 사람의 축하 연회이기도 하네. 충분히 즐기도록 해.”

결혼의 일정과 결혼식의 장소는 전적으로 황실이 지원해줄 것이라 하며 테오는 이엔과 리사를 무대로 보냈다.

댄스홀에 당도한 두 사람이 기사단들의 축복과 휘파람 소리를 들으며 얼굴을 잔뜩 붉혔으나 철판으로 무장한 리사가 이내 그의 어깨에 손을 올리며 말했다.

“야, 이왕 이렇게 된 거 즐기자!”

“네??”

“춤? 까짓 거 질릴 때까지 쳐주자고.”

참 신나는 일의 연속이었다.

춤을 추고 와인을 마시고 축복을 받고 환하게 웃고 떠들고.

그랬다. 참으로 즐거운 시간이었다.

테라스에서 달을 바라보던 이엔의 곁에 리사가 드레스를 입고 털썩 주저앉았다.

“구두 불편해.”

“발은 아프지 않나요.”

“웅, 아프지는 않아.”

이엔은 너무도 자연스럽게 그런 그녀의 앞에 한 쪽 무릎을 꿇었고 부드러운 손길로 그녀의 발에서부터 구두를 벗겼다.

달빛을 받아 아름다운 이엔의 수려한 외모를 물끄러미 바라보던 리사가 이엔을 향해 물었다.

“정말 나랑 결혼하려는 거 후회 안 해?”

“리사님을 놓치는 것이 더 후회될 일인 것을요.”

“날 얼마나 사랑하는데?”

“그걸 어떻게 말로만 표현하나요?”

“넌 왜 이렇게 내가 듣고 싶어 하는 말만 골라서 하는데?”

“사랑하니까요.”

이엔은 천천히 제 망토를 벗어 그녀의 빈 어깨를 감쌌다.

그리고 시야를 내려 리사를 두 눈에 담았다.

눈부시게 아름다웠고 여전히 강인해 보이는 여인이 오늘따라 참 보호를 해주고 싶을 정도로 여려보였다.

금빛 눈동자가 착 가라앉았다.

“키스해도 됩니까.”

“응.”

물음이 끝나기도 전에 대답은 나타났고 대답에 끝나기도 전에 입술을 마주 닿았다.

짙은 키스 속에서는 달콤한 와인의 향기가 풍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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