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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 번째 딸로 태어났습니다-188화 (187/218)

188화. 무승부였다고 합니다.

세린은 플로리아와 이엔과 함께 따뜻한 빛을 받으며 산책을 즐기고 있었다.

따뜻하고 황한 날씨에 저절로 기분이 좋아졌다.

세린이 맑은 웃음을 지으며 이엔을 향해 말했다.

“이엔, 날씨가 너무 좋다!”

“네, 오늘은 유독 햇빛이 밝네요.”

“좋은 일이 있으려나봐. 오늘 같은 날 소풍이라도 가야 했나?”

“주방에 부탁드려 도시락을 싸서 정원에서 점심을 다 같이 드시는 것은 어떠신가요?”

“와! 너무 좋다! 지금 주방으로 가자 플로리아.”

“웅!! 엄마랑 소풍 좋아!”

“엄마도 너무 좋아.”

단란한 모녀의 대화가 몹시도 사랑스러웠다.

이엔의 입가에 잔잔한 미소가 떠올랐고 이내 그녀들과 함께 대공저의 주방으로 향했다.

그들의 발걸음은 산뜻했고 하늘은 너무도 맑았다.

살랑거리는 바람이 이엔의 검은 머리카락을 흐트러트릴 무렵 대공성의 입구에서 허겁지겁 시종이 달려왔다.

“헉..! 헉...! 저, 전하. 소, 소식이 방금... 헉.”

얼마나 급하게 온 것인지 호흡마저 이미 거칠어져 있었다.

세린은 그의 등을 두드려주며 그의 진정을 도왔다.

“무슨 일이지? 우선 진정을 좀 해야겠어.”

“헉... 헉....”

시종의 이마에 맺힌 땀방울이 바닥을 한 두 방울 적시자마자 시종은 제 땀을 닦아내며 공손히 고개를 숙였다.

“무례를 용서해주세요.”

“괜찮으니 고개를 들도록. 혹시 큰일이라도 난 건가?”

“아닙니다. 지금 막 황성에서 온 소식을 빨리 전해드리고 싶은 마음에 바로 달려온 것입니다.”

“그렇군. 무슨 일이지?”

세린의 뒤에 서 있던 이엔의 눈도 동그랗게 변했다.

무슨 일이기에 차분한 시종이 저리도 급한 것인지 몹시 궁금해진 탓이었다.

시종은 고개를 살짝 숙이며 말했다.

“지금 도베로만 백작님께서 제 2기사단들을 이끌고 모든 토벌과 수행을 완수하여 복귀하는 중이시라고 합니다.”

“정말인가?!!!”

세린의 표정이 단번에 밝아지고 이엔의 얼굴에도 경악이 서렸다.

시종은 놀란 두 사람을 향해 다정히 웃으며 말했다.

“네, 지금 수도를 넘어가 이리로 오고 있다고 합니다.”

“버, 벌써 수도를 넘어가고 있다고?”

“네. 오늘 저녁에 연회라고 열 수 있도록 준비를 하고 있다고 합니다.”

세린은 그의 말을 듣자마자 바로 이엔을 돌아보았다.

“이엔!”

“..... 네!”

“빨리 가도록 해!”

“....!!!!”

이엔의 눈동자가 커졌고 세린은 단호하게 외쳤다.

“많이 기다렸잖아! 어서 가 봐! 리사도 분명 같은 마음이었을 거야.”

“전하....”

“서둘러야지! 가는 길이 어긋나기라도 하면 어쩌려고? 얼른 가!”

“...... 감사합니다.”

이엔의 대답에 세린이 맑게 웃었다.

“잘 다녀와!”

“전하.”

“응?”

“송구합니다... 한 가지만... 부탁을 드려도 괜찮을까요?”

“뭔데??”

*

이엔은 말을 타고 달려갔다.

속력을 멈추지 않고 달리는 말 위에서 이엔은 조금 긴장한 얼굴을 하고 있었다.

‘좋아, 너도 기대하라고.’

‘안 재울 테니까.’

“........”

그녀와의 마지막 대화가 떠오르자 이엔의 귀가 붉게 달아올랐다.

무엇이든 어떤 것이든 상관없었다.

그녀와 함께 있는 그 시간은 언제나처럼 귀중하고 사랑스러울 것이었다.

지금 그 귀한 시간에 빨리 닿고 싶었다.

그래서 말을 재촉하고 재촉했다.

그녀에게 달려가고 있다.

그 사랑스러운 사람에게로.

그 아름다운 사람에게로.

그 굳건하고 강인한 사람에게로.

이엔의 금빛 눈동자에 웃음기가 올라왔다.

그녀에게 가는 길의 햇빛은 너무도 밝았고 공기는 맑았다.

말을 타고 달려가는 이엔의 한 손은 말의 고삐를 쥐었고 다른 한 손에는 붉은 장미가 다발로 잡혀 있었다.

조금 삐뚤삐뚤한 장미송이들의 길이를 보아서는 급하게 뽑아온 것 같았다.

“송구합니다... 한 가지만... 부탁을 드려도 괜찮을까요?”

“뭔데??”

세린의 물음에 이엔은 쑥스럽게 웃으며 말했다.

“정원에서 꽃을... 조금만이라도 좋으니 한 송이만이라도 가져가도 될까요?”

“......”

그 수줍은 웃음에서 윤기가 흘렀고 사랑스러움이 뚝뚝 묻어나왔다.

세린의 얼굴이 딱딱하게 굳을 만큼 눈부신 미소였다.

그녀는 곧 다급히 제 주변에 있던 정원사들에게 물었다.

“꽃!!! 이, 이엔이 꽃을 좀 꺾어도 될까?!”

“다발로 가져가셔도 됩니다!! 아니, 다 뜯어가세요!!”

“리아가 꽃 사쥬께!!!”

“아... 감사합니다.”

그렇게 가져오게 된 꽃다발이었다.

모두의 관심을 한 번에 쓸어온 꽃다발은 잔뜩 생기를 머금고 있었다.

이엔이 어느 덧 수도를 넘어 황성의 입구에 도착할 무렵 멀리서 가득히 풍기는 마력이 그의 발걸음을 늦췄다.

“......”

이 시원하고 청량한 마력은 누구보다 잘 아는 그 사람의 것이었다.

자신을 똑 닮은 마력을 시원하게 풍기며 제게로 다가오는 그 사람이 가까워짐에 이엔은 말을 재촉했다.

망설임 없이 앞으로 달리고 달렸다.

가까워졌다.

그녀가 제게로.

제게로 올곧이 달려오고 있었다.

이엔의 수려한 금빛 눈동자에 한 인영이 시야에 담겼다.

화사한 은발이 하늘에 휘날렸고 누구보다 아름다운 푸른 눈동자가 자신을 눈에 담았다.

시간이 느리게 흘러가듯 모든 것들은 천천히 지나갔다.

리사가 부드럽게 말에서 내리며 근사한 미소를 지었고 이엔을 향해 두 팔을 벌렸다.

그녀의 한 손에는 아름다운 하얀 꽃들이 다발로 이루어져 있었다.

이엔은 그 부드러운 손과 아름다운 미소에 홀린 듯이 웃으며 말에서 내렸다.

그리곤 맑게 웃음을 터트리며 외쳤다.

“리사님!”

그 해맑은 부름에 리사가 손가락을 까딱하며 말했다.

“닥치고 이리와!”

리사의 재촉에 이엔의 발에서 망설임이 사라졌다.

장미다발을 들고 리사에게로 달려간 이엔은 그녀가 건네주는 따스한 품에 제 몸을 담았다.

부드럽게 안기게 된 그녀를 제 품에 가두며 이엔은 그녀의 등에 제 두 팔을 휘어 감았다.

그토록 그립던 시원한 향기를 깊이 들이마시며 이엔이 잔잔히 웃었다.

“보고 싶었습니다.”

“나도.”

리사의 푸른 눈이 스르륵 이엔을 향해 올려졌다.

금색으로 빛나는 아름다운 눈동자가 리사를 담았다.

리사는 그 부드러운 눈동자를 바라보다가 이내 시원하게 웃으며 말했다.

“사랑해.”

“...!!!”

“사랑해.”

“..... 저도 사랑합니다.”

그 말을 끝으로 두 사람이 동시에 쥐고 있던 꽃다발을 건넸다.

그리곤 서로를 바라보며 웃음을 터트렸다.

청량감 있는 웃음 후에는 사뭇 진지한 고백이 이어졌다.

“결혼해주세요.”

“결혼하자.”

누가 먼저랄 것 없는 동시의 고백이었다.

두 사람의 눈에 웃음기가 피어올랐다.

“누구보다 행복하게 해드릴게요.”

“항상 웃기 해줄게.”

“제가 리사님께 가겠습니다.”

“그래, 나한테 장가 와.”

행복한 대화 속에서 두 사람의 미소은 깊어졌고 그들을 지켜보던 기시단들의 표정은 썩어갔다.

‘누군 애인 없나?’

‘너 없잖아.’

‘닥쳐줄래.’

가족이 보고 싶거나, 연인이 보고 싶거나, 없는 연인을 찾고 싶어지거나 등등 다양한 반응이었다.

염장을 지르는 애정의 행각 속에서 겨우겨우 빠져나온 기사단들은 황성에서 열리는 연회의 소식에 기뻐했다.

리사의 재촉아닌 재촉에 토벌을 무리하게 끝내고 와 심신이 지친 참이었다.

그런 자신들을 위한 연회와 잔치라고 하니 저절로 감정이 벅차올랐다.

‘오늘 먹고 마시고 죽어야겠어!!’

그들을 위한 날이기도 했다.

주방이 갑작스런 연회의 준비로 바쁠 무렵 황성에 있던 제이가 황성의 입구에서 그들을 맞이했다.

“일찍 왔구나.”

“흥, 이 정도는 식은 스프 먹기죠.”

“그래, 너에게는 그런가 보구나. 다음에는 조금 더 네 수행에 걸 맞는 것으로 정해주마.”

“.......”

리사의 이마에 힘줄이 돋아났다.

이엔은 다급히 두 사람을 중재하며 말했다.

“우선 기사들부터 쉴 수 있도록 해야 할 것 같습니다. 많이 지쳐보여서요.”

“누구를 따라가느라 힘들었겠지... 다들 들어가서 쉬도록. 저녁에는 황성으로 모이도록 하거라.”

“네!!!”

우렁찬 대답 끝에 기사단들이 빠르게 흩어졌다.

제이는 흩어지는 기사들을 바라보다가 이내 이엔과 리사를 물끄러미 바라보았고 두 사람의 손에 있는 꽃다발들의 모습에 피식 웃음을 지었다.

“결심이 섰나 보구나.”

“네.”

“흥!”

“잘 된 일이지. 얼마 전부터 폐하께서 너희들의 식을 위한 준비를 하고 계셨다.”

“.... 엥?? 폐하께서?”

“그래.”

제이가 나직이 웃으며 말했다.

“네가 떠나기 전에 결혼할 것이라 미리 이야기를 했다고 들었다.”

“.....”

리사의 눈이 가늘어졌다.

그랬던 것도 같고 아닌 것도 같고...

제이는 그런 리사의 머리를 흐트러트리며 말했다.

“뭐든 좋은 일인 것이지. 폐하께서 꽤나 고민하시고 말씀을 나누셨다. 나중에 너에게 이야기해주시겠지.”

“.... 네.”

“수고했다. 너도 이엔도 이만 들어가서 쉬도록 하거라.”

리사는 제이의 말에 고개를 끄덕이며 투덜거렸다.

“안 그래도 그럴 생각이거든요?”

“그래, 고생했어.”

“고생은 무슨... 아! 우리 아가들은요? 전하는!”

“.......”

제이의 눈이 가늘어졌다.

“내 아가들이다만...”

“내 천사들이기도 하죠!! 우리 예쁜이들은 어디 있어요?! 뭐해요?! 나 가봐야겠다!!”

앤젤라와 에드, 레기, 리아가 분명 리사를 찾고 보고 싶어 한 것을 알지만 묘한 질투가 제이에게 피어올랐다.

제이는 삐뚜름한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어디에 있는지는 알아서 찾도록. 말 안 해줄 거니까.”

“..... 치사하게 굴지 마요.”

“흠.”

리사의 말에 제이가 코웃음을 쳤다.

이엔은 그런 두 사람의 사이에서 난처하게 웃었지만 또 행복하게 웃었다.

다행스럽게도 아이들 모두 대공저에 있으니 만나기는 쉬울 것이었다.

“가요 리사님.”

“응!”

달려가는 발걸음이 산뜻했다.

함께 마주 잡은 손이 따뜻했다.

이만큼 행복한 하루가 또 어디 있을까.

엔과 리사의 청혼의 결과는 무승부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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