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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 번째 딸로 태어났습니다-186화 (185/218)

186화. 극복해야 할 일

세린은 새벽하늘에 떠오르는 밝은 해를 바라보며 누워 있었다.

저 풍경을 늘 보고 있음에도 아름답다는 생각은 변하지 않았다.

그러나 오늘따라 유독 저 새벽하늘이 참 가슴을 묵묵하게 만들고 있다는 느낌이 강했다.

‘왜 그럴까...?’

잠시 멍하니 하늘을 보는 세린의 허리에 단단한 손이 휘어 감겼다.

그 부드러운 손길에 세린의 입가에 미소가 피어올랐고 말이다.

“제이?”

“벌써 깨셨습니까.”

“그냥 눈이 떠져서요. 내가 깨웠나요?”

“아뇨, 당신이 보고 싶어서 눈을 떴습니다.”

“네에??”

세린이 붉어진 얼굴로 당혹스럽게 제이를 내려다보자 그녀의 허리를 감싸고 품에 고개를 묻은 제이가 부드럽게 고개를 올렸다.

화사한 이목구비 속에서 푸른 눈동자가 새벽의 빛을 받아 고요히 빛났다.

그의 입가에는 어느 새 세린이 가장 좋아하던 근사한 미소가 담겨있었다.

“당신이 새벽하늘 보는 모습이 너무 아름다워서 말이지요.”

“힉!! 제이!”

“이 모습 보려면 새벽같이 일어나야 하는 제 마음을 이해해주세요.”

세린의 얼굴을 터트릴 말들만 내뱉던 제이는 다시 세린의 품에 고개를 기대며 눈을 감았다.

짙고 아름다운 눈동자가 풍성한 속눈썹에 감춰졌다.

세린은 멍하니 그 모습을 보다가 이내 키득키득 웃으며 제이의 어깨에 팔을 둘렀다.

“아기 같네요, 제이.”

“......”

“귀여워요. 어째 나이를 먹을수록 이렇게 귀여워지나 몰라...”

“.......”

세린의 달콤한 말에 제이가 피식 웃으며 말했다.

“날 보고 귀엽다고 하는 건 세린뿐일 겁니다.”

“음?? 왜요?? 제이는 정말 귀여워요.”

“어릴 적부터 저와 연관이 없던 표현법이지요.”

“제이는 어릴 적에도 귀여웠는데...?”

세린이 정말 영문을 모르겠다는 듯 눈을 크게 뜨자 제이는 어린 아이처럼 키득키득 웃었다.

만약 이 말을 제 아비나 리사가 들었다면 어떤 표정을 지을 지 기대가 된 탓이었다.

“세린, 그 말을 리사의 앞에서 해줄 수 있을 만큼 장담합니까?”

“당연하죠!”

“그럼 해주세요.”

“의심도 많지! 정말 해줄 수 있으니까 어디 두고 봐요.”

제이와의 다정한 대화 속에서 세린은 묵묵했던 감정이 녹아내렸음을 느끼지 못했다.

‘그러고 보니 왜 먹먹했지?’

조금 동그래진 눈으로 허공을 바라본 세린이 이내 고개를 작게 가로저으며 제이의 환한 은발에 입을 맞췄다.

먹먹할 필요가 없을 것이다.

이렇게 사랑하는 사람과 사랑하는 아이들이 제 곁에 있는데 그럴 시간이 어디 있겠는가.

세린은 다정히 웃으며 제이를 바라보았다.

행복한 하루의 시작이었다.

그런 세린의 행복과는 다르게도 앤젤라는 슬픔이 뚝뚝 묻어나오는 하루의 시작이었다.

눈을 뜨자마자 확 느껴지는 외로운 공기와 커다란 빈자리에 입술을 질끈 깨물었다.

앤젤라는 제 이불을 단단히 끌어안고 다시 눈을 감았다.

그 사건 이 후, 로라는 로레인의 손에 의해 황성으로 옮겨졌다.

그녀를 어떻게 하려는지 앤젤라가 물어보자 로레인은 고개를 저으며 말했다.

“귀족의 시해 미수로는 그치지 않을 거야. 귀한 성녀의 마력을 사람을 죽이려는 곳에 사용했으니 그 죄 몫이 더 커지겠지.”

“..... 네...”

“그리고 앤젤라.”

“.....?”

로레인이 부드럽게 앤젤라의 두 볼을 감싸며 말했다.

“할머니 일은... 가족들이 몰랐으면 해.”

“아...”

“할머니는 아마 모두에게 알려져 가족들이 슬퍼하는 것을 원하지 않았을 테니까 말이야.”

“.....”

그의 말이 맞았다.

그녀라면 그런 슬픈 결말 따위를 바라지 않았을 것이었다.

앤젤라는 숙인 고개 아래로 제 눈물이 또 다시 바닥을 적셔가는 광경을 바라보았다.

이놈의 눈물은 평생을 그치지 않을 것처럼 흐르고 또 흘렀다.

로레인은 그런 앤젤라를 품에 안아주며 말했다.

“네가 우는 것도 바라지 않으셨단 걸 알아주렴.”

“.... 네...”

“네게 많이 힘든 일이란 것을 알아. 그러니 삼촌에게 많이 의지해주렴.”

그 하나의 문장에 앤젤라는 로레인의 품에서 다시 울음을 터트렸다. 참고 참았던 서글픈 감정을 모두 쏟아내었다.

그랬었는데... 여전히 가슴은 쓰라렸다

앤젤라는 제 침대에서 멍하니 하늘을 바라보다가 이내 자리에서 천천히 일어났다.

이 일은 이제 자신 스스로가 극복해야 할 일이었다.

앤젤라는 서글픈 감정을 천천히 내리기 위해 로레인이 이야기해주던 세 가지를 가슴으로 읊조렸다.

‘잊지 않기, 슬퍼하지 않기, 울지 않기.’

그래, 울지 말자.

내가 울면 그녀도 함께 울지도 몰라.

그건 싫어.

앤젤라가 고개를 가로 저으며 이내 잔잔히 미소를 지었다.

이렇게 시간이 지나다보면 무뎌지지 않을까 싶었다.

침대에서 내려오려는 앤젤라가 이내 이불을 향해 손을 뻗자 손등에 무언가가 툭 닿았다.

“응?”

그러고 보니 누가 코를 고는 것도 같은 소리가 났다.

고로롱

그 귀여운 코를 고는 소리에 앤젤라가 고개를 돌리자 제일 먼저 보이는 건 제 침대에 흐트러진 환한 은발이었고 곱게 눈이 감긴 아름답고 사랑스런 얼굴이었다.

앤젤라의 눈이 커졌다.

“리아...?”

“고로로롱...”

“......”

“우무.... 엉니.... 내꺼...”

플로리아가 왜 여기에...?

그런 고민이 끝나기도 전에 플로리아가 또 중얼거렸다.

“엄마 내꼬.... 아빠 미오....”

“.... 아하하!”

그 사랑스런 잠꼬대에 앤젤라가 환히 웃음을 터트렸다.

앤젤라는 두 팔로 그런 플로리아를 감싸 안고 눈을 감았다.

이왕 이렇게 된 거 플로리아와 늦잠이라도 잘 생각이었다.

앤젤라의 고요한 마음은 아주 조금씩 평온을 찾아가고 있었다.

*

이엔은 대공저의 정원에서 아인과 정원을 거닐고 있었다.

뭔가 낯선 조합이면서도 낯설면 안 되는 조합이었다.

그저 아침에 일어나 새벽공기를 맡으며 산책을 하던 그와 마주친 덕분에 생긴 조합이었다.

조금 빳빳해진 얼굴로 이엔은 아인의 발걸음에 맞춰 걸음을 옮겼다.

아인은 그런 이엔의 순수한 반응에 피식 웃으며 말했다.

“내가 불편한가?”

“아, 아닙니다!”

“불편하다고 해도 이젠 익숙해져야 하지 않겠나.”

아인은 그 말 후로 등 뒤로 제 두 손을 마주 잡으며 천천히 걸었다.

딸아이의 첫 번째 남자이자 마지막 남자가 될지도 모를 그의 곁에서 말이다.

이럴 땐 그에게 무슨 말을 해줘야 할까.

“......”

잠시 고민이 깊어지는 아인의 미간이 슬며시 펴지며 이내 부드러운 어조로 이엔을 향해 말했다.

“곧 그 아이가 오겠구나.”

“네. 지금쯤이면 오시는 중이 아닐까 싶습니다.”

“우리 리사가 어디가 그리 좋던가?”

“....!!”

아인의 질문에 이엔의 볼이 순식간에 붉어졌다.

그 순수한 반응에 아인이 나직이 웃으며 말했다.

“이엔 네가 그 아이의 매력에 단단히 빠진 것 같아서 말이지.”

“아.....”

이엔의 수려한 얼굴에 수줍은 미소가 피어올랐다.

지나가는 새마저 떨어트릴 정도로 아름다운 미소였다.

“항상 변함이 없으십니다. 늘 한결 같으시고 늘 다정하세요.”

생각에 빠진 아인의 눈이 가늘어졌다.

‘다정한 것은 너와 아이들과 세린 한정이지만....’

“그리고... 솔직하게 표현해주시는 모습도 좋습니다. 하고 싶은 말씀도 망설이지 않고 해주세요.”

‘욕도 함께 망설이지 않고 날리는 게 문제지만...’

“웃는 모습이 참 예쁘시기도 합니다.”

‘그건 날 닮아서 그렇지.’

마지막 말에는 아인의 입가에 미소가 올라왔다.

굉장히 만족이 가득한 미소였다.

아인은 나직이 웃으며 이엔을 바라보았다.

훤칠한 키에 부드럽게 휘날리는 검은색의 머리카락.

황금을 씌운 듯 아름답게 빛나는 금빛 눈동자.

수려하다 못해 눈부신 살짝 날카로운 이목구비.

자신의 딸이지만 참 잘난 신랑을 찾아온 것 같아 뿌듯하기만 했다.

아인은 이엔을 향해 말했다.

“변함없는 것도, 웃는 것이 예쁜 것도 이엔 너도 똑같구나.”

“....!!!”

“연인은 닮은 다는 소리가 있던데... 너와 리사도 그 닮아가는 연인 중 하나인 듯 하고 말이다.”

아인의 말에 이엔의 볼에 오른 홍조가 짙어졌다.

귀는 당연히 새빨갛게 변했고 말이다.

“가... 감사합니다...”

여전히 귀여운 반응이었다.

날카로워 보이는 외모와 정반대의 성격은 참 신기하기도 했지만 귀엽기도 했다.

잔뜩 놀리고 싶은 심술 맞은 마음도 들고 말이다.

아인의 입가에 개구진 미소가 담겼다.

“리사가 잡아먹지는 않았나?”

“켁!!!!”

예상만큼 재밌어 아인은 만족스러웠다.

*

리사는 기사단을 이끌고 제국으로 귀환하는 중이었다.

말을 타고 앞서 걷던 리사는 이내 말에서 내려 주변에 있는 꽃들을 따기 시작했다.

처음 보는 리사의 여성적인 행동에기사단들의 낯이 창백해졌다.

“대, 대장...?”

혹시 꽃으로 누굴 죽이려고?

어쩌면 꽃다발에 칼을 숨겨놓을 지도...

프레제 백작님이 무슨 짓을 하셨기에 갑자기...

오만가지의 생각 속에서 기사들의 얼굴은 보기 좋게 일그러졌다.

극도의 무서움 탓이었다.

벌벌 떠는 기사들을 모르는 리사는 그저 제 눈에 예뻐 보이는 꽃들만 따서 다발을 만드는 중이었다.

‘이거 예쁘네. 아, 이것도.’

점점 형태가 거대해져가는 꽃다발이 참 예뻐 보였다.

‘그 녀석이 좋아하면 좋겠군.’

리사는 아주아주 착실하게도 청혼을 준비하는 중이었다.

돌아가는 그녀의 걸음이 경쾌했고 흩날리는 환한 은발마저 눈부시게 아름다웠다.

그러나 그녀의 푸른 눈만큼은 전혀 아름답지 않았다.

그의 순수하고 여린 가슴과 순결한 심정을 지켜주기 위해 이만큼 참아줬으니 이제 가자마자 할 것은 하나였다.

첫 번째는 청혼해서 내 옆에 묶어 놓기.

두 번째는 잡아먹기.

머릿속에 그려지는 상황은 살벌하기 그지없으나 걸어 나가는 발걸음은 순수했다.

“!!!”

“왜 그러는가?”

“아니요, 갑자기... 간지러워서...”

“누군가 자네를 노리고 있나보군.”

“그, 그런 말씀 마세요.”

진짜 같잖아요...

이엔의 눈이 자잘하게 흔들렸다.

영문 모를 두려움을 느끼는 이엔의 하루가 깊어져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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