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82화. 미쳐가는 과정
로라는 좁은 방구석에서 깊은 고민에 빠져 있었다.
성녀로 입증이 되어 만인들에게 이 사실을 알리고 귀족의 후원으로 지지대를 얻게 된다면 앞으로의 인생은 보장이 된 것이나 다름이 없었다.
지금 자신이 머물고 있는 이 좁아터진 방에서 탈출할 수 있었다는 이야기였다.
쨍그랑!!
와장창!!
“꺅!! 왜 이래요!”
“돈 가져오라고!! 빨리!!!”
“저번에 이미 당신이 다 가져갔잖아요!”
“누가 네 목소리가 듣고 싶다고 했어?! 돈이나 내놔!”
쿵!!!
‘미X놈....’
또 시작이냐는 눈으로 방문을 바라본 로라는 두 귀를 굳게 막고 눈을 질끈 감았다.
가지고 있는 마력을 모두 소진했을 시 본래의 이 삶을 다시 살아가야 함을 알고 있기에 고민은 깊어져갔다.
‘방법... 방법이 있을 거야...’
벼랑 끝에 몰린 로라의 인생의 지지대는 그녀를 천천히 낭떠러지로 이끌어 가고 있었다.
고민이 깊어지는 로라의 눈이 순간 이채를 받았다.
‘잠깐....’
자신이 가지고 있는 태초의 마력과 성녀라는 호칭이 귀해지면 귀해질수록 안정된 삶의 질이 더욱 높아진다.
그렇다면 자신은 이 제국에서 단 하나뿐인 성녀여야 했고 단 한 명뿐인 태초의 마력을 보유한 자가 되어야 했다.
‘그렇다면....’
자신의 삶에서 안정을 빼앗고 있는 것은 그 아이... 즉 앤젤라 그 한명 밖에 없다는 이야기였다.
로라의 눈이 굳어져가며 천천히 입매가 비틀어졌다.
생각을 정리한 어린 소녀는 망설이지 않고 창문을 통해 밖으로 나갔다.
집 안을 소란스럽게 만드는 가족들을 등지고 말이다.
*
노을빛의 조명 밑으로 왁자지껄한 사내들의 목소리가 가득 울려 퍼졌다.
한 테이블에서 카드를 돌리고 있던 남자가 옆에 앉은 사내에게 말했다.
“오다, 대장은 어디 갔어?”
“대장이라면 또 산에 가지 않았을까? 수련인지 우유던지 뭐 그거 하러.”
“또?? 아까도 갔다 왔잖아!”
“나한테 묻지 말고 카드나 빨리 받아! 대장이 무슨 애도 아니고 어련히 잘하겠지.”
“대장은 자기 몸 안 챙기는 거 알잖아! 이 재수탱이가!”
“뭐야?!”
딸랑딸랑
“어서 오세요.”
손님이 왔음을 알리는 청아한 종소리에 오다라는 사내가 영업용으로 짓는 맑은 미소를 지으며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런 오다를 질린 눈으로 바라보던 남자는 갈색 머리카락을 휘날리며 같이 자리에서 일어나 방문한 손님을 바라보았다.
“어서 오세....”
“......”
손님이 존재할 것 같은 시선 쪽에 아무도 없음에 천천히 시선을 내린 사내는 제 가슴 밑 부근쯤은 자라보이는 작은 소녀를 발견했다.
소녀의 검은 머리카락과 검은 눈동자가 노을빛 조명을 받고 붉게 빛나고 있었다.
“어... 손님이세요?”
“이 곳의 주인을 만나고 싶은데요.”
“주인이요?”
“네. 이곳에서 제일 높은 사람이요.”
“지금 그 분은 외출 중이시라 자리에 안 계시는데... 저희라도 괜찮다면...”
“아니요. 전 그 분이어야 해요.”
“.....”
명확한 거절에 사내의 눈에 난처함이 담았다.
사내는 오다를 바라보며 어깨를 으쓱하자 오다가 다정히 소녀를 향해 물었다.
소녀의 목표물이 오기 전까지 잠깐 시간이라도 때울 생각이었다.
“이름이 뭐에요?”
“말 할 수 없어요.”
‘궁금하지도 않았어.’
“나이도요?”
“말 할 수 없다고요.”
‘궁금하지 않아 나도.’ 내뱉지도 못하는 속마음을 집어 삼키며 오다는 인내심을 키워나가기 시작했다.
건방지기 짝이 없는 소녀 로라는 냉정히 오다를 바라보며 말했다.
“그럼 그 주인은 언제 오시죠?”
“아마... 지금쯤 오고 있지 않을까 싶네요.”
“어디서요?”
“이 ㄴ...”
딸랑딸랑!
욕설이 난무할 것 같은 오다의 입을 다물게 만든 청아한 종소리였다.
밝은 종리를 내며 문을 연 사내는 짙은 남색의 로브를 깊게 눌러쓰고 있었고 그의 로브 겉으로 나뭇잎과 흙, 물기가 잔뜩 고여 있었다.
갈색머리의 사내가 다급히 수건을 들고 달려와 그의 로브를 닦아내기 시작했다.
“대장! 내가 숲에 갈 거면 로브라도 더럽히지 않게 조심히 입어달라고 했죠! 이 상태로 가게에 들어오니까 또 더러워지잖아요.”
“......”
“이거 영업 방해에요! 더러운 상태로 어떻게 장사를 하라고.”
“내가 주인인 것으로 알고 있는데...”
“주인이 주인답게 자리를 꿋꿋이 지키고 있어야지 이렇게 싸돌아다니면 누가 주인인 줄 알겠어요?”
“..... 너 나가. 시끄럽군.”
“대장 옷부터 정리 다 하면 나가서 알아서 놀고 올 테니 제발 로브 좀 벗어요.”
제 말에도 꿋꿋이 대꾸하는 사내를 묵묵히 바라보던 남자가 천천히 고개를 돌려 가게 중앙에 서 있는 로라를 바라보았다.
“누구지.”
“아, 손님이요. 대장에게 할 말이 있다는데요? 꼭 대장이어야만 한데요.”
“......”
남자는 깊게 눌러쓴 로브를 툭툭 털어낸 후 부드럽게 안으로 들어섰고 그대로 로라를 지나쳤다.
“어린 꼬마랑 나눠야 할 말은 없어.”
“!!!!”
자신을 지나치는 남자를 창백해진 안색으로 바라본 로라가 다급히 그를 붙잡으며 외쳤다.
“다, 당신을 보러 온 거예요!”
“.......”
“지금 그쪽의 도움이 필요해요! 제 이야기를 들어주세요.”
“어린 손님을 받을 만큼 우리 가게는 궁하지 않아.”
“.... 나도 엄연히 돈을 지불할 수 있는 손님이에요.”
“..... 너도 시끄럽군.”
천천히 바뀌어가는 남자의 기세에 오다가 다급히 둘 사이를 가르며 말했다.
“?裏?대장 또 예민해진다. 손님, 손님이 필요한 걸 우리한테 말해줘야 대장이 판단할 수 있어요.”
“.... 중요한 일이에요. 듣는 사람들은 적어야 해요.”
“여기 있는 사람들은 모두 우리 사람들입니다. 안심하고 말해주세요.”
“못 미더워요.”
“.......”
오다의 입가가 일그러지자마자 남자가 로브를 벗어내며 로라를 바라보았다.
밝은 금발이 제일 먼저 로라의 시야에 들어왔고 자신을 찢을 듯 날카롭게 바라보는 푸른 눈과 턱에 자리한 깊은 화상 자국이 두 번째로 시야에 들어왔다.
남자는 그레고리였다.
그레고리는 굳어있는 로라를 향해 음산하게 말했다.
“용건.”
“!!!!”
로라의 표정이 단번에 밝아졌다.
“돈은 얼마든지... 어떻게 해서든지 꼭 드릴게요!”
“용건.”
“.....!”
그레고리의 스산한 물음에 로라가 입술을 꾹 깨물다가 이내 단호한 모습으로 말했다.
“한 사람을....”
“.....”
“죽여주세요.”
“...!!!!”
그레고리의 푸른 눈이 커졌다.
그는 손에 쥔 로브를 거칠게 던져 테이블에 올려놓으며 물었다.
“너 몇 살이야.”
“... 네?”
“몇 살이냐고.”
“.... 13살이요.”
“.... 미치겠군.”
그레고리가 기가 막힌 듯 혀를 내둘렀다.
그리곤 냉정한 푸른 눈동자를 내려 로라를 바라보며 말했다.
“네 멍청한 부탁 따위 들어줄 것 같더냐.”
“!!!!”
그의 대답에 로라의 얼굴이 창백해졌다.
“그게 무슨...!! 이 청부업은 전쟁이든 정보든 그 어떤 부탁도 들어준다고 알고 온 거예요!”
“첫 번째는.”
“!!!”
그레고리가 로라의 말을 무시하고 말했다.
“우리 청부업은 살인을 저지르지 않아.”
“!!!!”
“똑바로 조사도 해보지 못했나보구나. 그런 걸 어리석다고 하는 거다.”
“......”
로라의 얼굴이 잔뜩 붉어졌다.
그러나 그레고리는 멈추지 않고 말했다.
“살인을 하지 않는 단 건, 토벌이나 전쟁의 지원군으로 참전하는 건 몰라도... 암살 같은 명백한 범죄를 하지 않는 단 소리다.”
“그런...”
“우리가 파는 건 정보와 힘이지 살인이 아니야.”
그레고리는 창백하게 질려가는 로라를 바라보며 말을 이었다.
“두 번째는.... 살인을 저질렀다가 일어날 후폭풍을 네가 혼자 책임질 수 있냐는 것이다.”
“......!”
“사람 목숨은 네 집 인형처럼 가지고 놀 수 있는 장난감이 아니야.”
그레고리가 섬뜩하게 눈을 빛내며 로라에게 한 걸음 다가섰고 분노에 찬 눈으로 말했다.
“그딴 생각 없는 부탁을 여기저기 뿌리지 말고 얌전히 집으로 돌아가. 내쫓기 전에...”
“......”
“대장, 진정해.”
오다가 부드럽게 그레고리의 어깨를 쥐며 말하자 그레고리는 로라를 묵묵히 바라보다가 고개를 휙 돌리고 테이블로 던진 로브를 쥐었다.
뒤돌아서는 그의 넓은 등을 멍하니 바라보던 로라가 이내 입술을 꾹 깨물고 고개를 숙이자 오다가 물었다.
“실례인 줄은 알지만... 궁금해서 안 되겠다. 손님은 누굴 그리 죽이고 싶은 거야?”
“.......”
“말 안 해줄 줄 알았어.”
“..... 앤젤라.”
“뭐?”
로라의 눈이 구명줄을 잡듯 오다를 바라보며 말했다.
이렇게 된 거 그 누구라도 제 부탁을 들어주기를 간절히 바랬다.
“앤젤라 스페라도요.”
“....!!!!”
걸어 나가던 그레고리의 발이 멈췄다.
그레고리는 잠시 시간이 멈춘 듯 가만히 서 있다가 이내 뒤를 돌아 창백해진 동료들을 지나쳐 로라의 작은 팔을 꾹 쥐었다.
“꺅!!!”
그리곤 거침없는 발걸음으로 그녀를 끌고 이동했고 가게의 입구를 부술 듯이 활짝 열었다.
쾅!!!
“꺄악!! 이거 놔요!”
“잘 들어.”
“!!!!!”
아까 전의 기세보다 더욱 날이 선 기세는 로라의 피부를 찢을 듯 날카로웠다.
로라는 타오르는 듯 보이는 푸른 눈동자 속에서 겁을 먹은 제 얼굴을 마주했다.
그레고리는 그런 로라를 향해 꾹 다문 입술 사이로 한자 한자 강하게 내뱉으며 말했다.
“우린 지나가는 거지도 노인도 여자도 돈만 쥐여 준다면 누구든 손님대우를 해줄 수 있어.”
“......”
“하지만 넌 아냐.”
“!!!!”
“오래 살고 싶거든 이 근처에서 얼씬거리지 않는 게 좋을 거야.”
“......”
“꺼져라.”
“꺅!!!”
그 말을 끝으로 그레고리는 던지듯이 로라를 내팽개친 후 그대로 문을 굳게 닫았다.
철컥
단단하게 잠긴 거대한 문을 멍하니 바라보던 로라는 천천히 다시 호흡을 고르기 시작했다.
거대한 살기에 잠시 숨을 쉬는 법을 잊은 탓이었다.
‘안 돼...’
지금 이 청부업은 그녀가 생각한 제일 최후의 수단이었다.
그 수단이 물거품이 되자 극도의 불안이 그녀를 집어 삼키기 시작했다.
그녀를 죽일 수 없다면 자신은 영원히 거지같은 인생에서 벗어날 수 없을 것이다.
안정된 삶, 넘치는 사랑, 귀한 신분, 자상한 부모.
모든 것을 다 가진 소녀가 미치도록 싫었다.
‘어떻게 해서든... 그 아이를 어떻게 해서든....’
로라의 검은 눈이 극도의 불안감과 공포로 천천히 미쳐가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