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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 번째 딸로 태어났습니다-181화 (180/218)

181화. 내색하지 말자

말이 절대 통하는 아이가 아니라는 것을 인지한 앤젤라는 입술을 꾹 다물고 로라를 직시하다가 이내 뒤를 돌아 걸어 나갔다.

로라에게서 멀어지는 앤젤라의 등이 짙은 슬픔을 담았다.

얼마나 많은 영혼들을 그리 보낸 것일까.

그들을 어떤 시선으로 바라본 것일까.

숨이 넘어가는 듯했던 영혼의 비명이 귀에 아른거렸다.

앤젤라는 굳어져가는 발걸음을 멈추지 않고 제 눈을 한 손으로 가렸다.

아리엘이 만약 저 아이를 자신 없이 마주하게 된다면?

그 생각을 떠올리자마자 두려움이 물씬 올라왔다.

‘언니....’

적어도 저런 아이의 품에서 저렇게 그녀를 떠나보낼 수는 없었다.

하지만...

‘조금만 더 있으면 되는데...’

그녀를 행복하게 보내줄 수 있기 위해서는 아직 조금의 시간이 더 필요했다.

앤젤라는 제 품 안에서 흘러넘칠 듯 가득 찬 태초의 마력을 살펴보며 계속 걸어 나갔다.

마음을 단단히 먹어야했다.

*

앤젤라의 멀어지는 등을 유심히 바라본 로라는 이내 코웃음을 쳤다.

“참나....”

내 방식이 잘못되었다고?

어차피 죽은 자들이다.

인도된 곳에서 자신에게 어떠한 해도 끼치지 못하는 불분명한 존재들인데 도대체 무슨 걱정을 하는 것인가.

로라는 두 팔을 꼬아 팔짱을 끼며 앞을 향해 걸어 나갔다.

마음에 들지 않았다.

아니, 몹시도 싫다는 게 정답이었다.

로라는 피식 웃음을 지으며 저 멀리로 걸어 나가는 앤젤라를 눈에 담았다.

‘내가 성녀라는 것이 알려지고 후원이 들어오면 그땐 안녕이니까.’

평민으로 살았던 로라의 계획은 이랬다.

자신이 성녀라는 것이 제국에 퍼지며 평민인 자신을 후원해주는 귀족의 지지를 받는 것.

그리고 제가 지닌 능력을 통해 평안한 삶에서 지내는 것.

더욱 안정적인 삶을 살려면... 성녀가 귀해야 할 것이다.

‘성녀는 한 명이면 된다는 이야기지.’

그게 내가 되어야하고.

로라의 시선이 잔인하게 빛났다.

사라지는 분홍빛의 머리카락을 생각하며 로라는 텅 빈 허공에 시선을 올렸다.

‘대공작과 황실에서 지극히 아끼는 공녀라고?’

그런 그녀를 어떻게 신전에서 치워낼 수 있을까.

*

신께 기도를 올리는 대신전의 기도실.

그 곳에서 묘한 기운이 풍기는 앤젤라와 로라의 모습에 베르와 데미언은 조금 걱정스런 얼굴로 서로를 마주 바라보았다.

“사이가 이미 멀어지신 걸까요.”

“그런 것 같구나... 저번 일로 인해서 그런 것일 수도 있겠어.”

“앤젤라님께서는 이유 없이 남에게 매몰차신 분이 아니십니다.”

데미언이 앤젤라를 감싸자 베르가 부드럽게 웃었다.

“그건 나도 잘 알고 있단다. 걱정말거라.”

“.......”

베르는 천천히 앤젤라에게로 시선을 옮기며 작은 한숨을 쉬었다.

그녀의 곁에 한 영혼이 존재하지 않는 탓이었다.

무슨 일인지는 모르겠으나 어쩌면 그 영혼이 앤젤라를 피한 것 같은 예감이 들었다.

“......”

자신이 그 상황 속에서 해줄 수 있는 건 없었다.

베르는 그저 모두가 행복해지기를 간절히 바라며 기도를 올렸다.

기도가 끝나자 앤젤라는 망설이지 않고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리곤 로라를 지나쳐 베르를 향해 걸어갔고 로라는 어깨를 으쓱하며 그녀를 따라 베르의 앞으로 걸었다.

두 소녀를 난처하게 바라본 베르가 이내 부드럽게 말했다.

“마력을 잠시 살펴봐도 되겠습니까.”

“네. 선생님.”

한 번씩 태초의 마력이 안정적인지 살펴봐주는 그를 알기에 앤젤라는 망설이지 않고 한 손을 뻗었다.

부드럽게 그녀의 손을 감싼 베르는 두 눈을 감고 그녀의 마력을 살폈다.

몸에서부터 넘칠 듯 흘러내렸던 마력들이 집중된 부근에 가득 뭉쳐져 있었다.

그를 느끼자 천천히 눈을 뜨며 말했다.

“그 분을 위한 것이군요.”

“..... 네.”

“이렇게까지 만드시기 힘드셨을 텐데... 고생 많으셨습니다.”

“아니에요, 선생님이 알려주셔서 할 수 있었어요. 감사합니다.”

앤젤라의 다정한 미소에 베르가 허허 웃음 지으며 그녀의 머리를 부드럽게 쓰다듬어주었다.

“마음도 더 견고해지신 듯합니다.”

“그런가요?”

“네. 마음이 놓입니다.”

베르의 칭찬에 앤젤라의 두 볼이 붉게 달아올랐다.

데미언의 눈썹이 살짝 꿈틀거렸으나 베르는 모르는 척 하며 방긋 웃었다.

두 사람의 알 수 없는 대화에 로라가 살짝 미간을 찌푸렸다.

‘뭐라는 거야...’

그녀의 투덜거림이 마음속에서 진해질 때 쯤 베르가 이번엔 로라에게로 손을 뻗었다.

“이미 초면에 살펴보기는 했지만... 정기적인 것이라 한 번 더 살펴봐도 되겠습니까.”

“아... 네.”

베르의 질문에 로라는 베르에게로 손을 뻗어 그의 커다란 손 위에 제 손을 올렸다.

베르는 작은 로라의 손을 쥐며 두 눈을 감았다.

“......”

짧은 침묵 속에서 로라는 무언가 불안함을 느꼈다.

자신의 능력과 제 마력을 파악하는 자는 처음이었으니까.

괜한 긴장감에 두 눈을 데굴데굴 굴렸고 굴린 눈동자 속에 데미언이 담겼다.

자신을 바라보고 있지 않았으나 그 옆태가 묘하게 퇴폐적이고 짙은 매력을 가진 아름다운 사람이었다.

백금발의 머리카락도 청록색의 눈동자도 이 신성한 대신전과 몹시도 잘 어울렸다.

평민들 사이에서 한 번도 본 적 없는 아름다움과 기품이었다.

‘뭘 그리 열심히 보는 거야?’

로라는 어딘가에 집중하는 데미언의 시선을 따라 시선을 옮겼다.

그리고 그 시선 끝에 있는 이가 앤젤라 라는 것을 어렵지 않게 알아낼 수 있었다.

베르의 손을 바라보고 있는 앤젤라의 연두색 눈동자가 아름답게 빛났다.

로라는 다시 앤젤라에게서 데미언을 바라보며 입술을 꾹 다물었다.

‘어이없어.’

자기들끼리 아주 세상의 모든 사랑 이야기를 쓰는 듯 했다.

묘한 질투심이 피어올랐다.

‘후원만 받으면...’

그래, 귀족의 지지만 받게 된다면.

그렇다면 제 세상도 바뀔 것이다.

로라는 그런 희망을 품고 자신의 손을 천천히 내려놓는 베르를 바라보았다.

베르는 그런 로라를 향해 물었다.

“실례된 질문일 수도 있겠지만... 혹시 어제 몇 명의 영혼을 신의 품으로 인도하셨습니까?”

“네?”

“수를 파악해주셔 합니다.”

“아....”

로라는 곰곰히 생각에 잠긴 듯하다가 이내 앤젤라와 시선이 마주쳤다.

자신을 이해할 수 없다는 듯 빛나는 그 순수한 눈동자를 보자 저절로 입가가 비틀어졌다.

로라는 어제부터 자신이 강제로 올려 보낸 영혼의 수를 그녀와 눈을 맞추며 한 자, 한 자 내뱉었다.

“7개정도 있던 것 같네요.”

“....!!”

앤젤라의 얼굴이 창백해졌다.

그녀는 입술을 질끈 깨물며 로라를 분노에 찬 눈으로 바라보았다.

베르는 그런 로라를 향해 나직이 타이르듯 말했다.

“개수로 표현하시면 안 됩니다. 그들도 사람이니 명이라고 표현해 주세요.”

“..... 네.”

로라의 불만스런 대답에 베르는 속으로 한숨을 내뱉었다.

성녀의 자격을 갖춘 이라고 하기에는 사상이 말도 안 될 만큼 가벼웠다.

단조로운 생각 속에서 영혼들을 잘 보내줄 수 있을 리 만무했다.

베르는 로라와 눈을 맞추며 말했다.

“제가 마력을 살펴봤습니다만... 착각인지 모르겠으나 조금 걱정이 됩니다.”

“네??”

“어제 살펴본 태초의 마력보다 그 부피가 줄어진 듯합니다.”

“!!!!”

로라의 얼굴이 살짝 창백해졌다.

“그게 무슨...”

“마력을 지닌 사람들의 특징은 다양합니다만... 로라님 같은 경우에는 매우 특이한 경우에 속하죠.”

“......??”

로라의 검은 색 눈동자를 마주한 베르가 조금은 단호하게 말했다.

“마력을 사용할수록 남아있는 마력의 양이 줄어드는 것이죠.”

“!!!!”

“결국 사용할 수 있는 마력이 정해져있다는 소리입니다.”

“그런....”

로라의 얼굴이 창백해졌고 앤젤라의 눈도 커졌다.

그러나 베르는 말을 멈추지 않았다.

“지니고 계시는 마력을 모두 소진할 시에는... 성녀가 아닌 그저 평범한 분이 되실 것입니다.”

“!!!!!”

“확실하게 대답해드릴 수 있도록 좀 더 지켜봐야 할 것 같습니다. 그러니 마력을 조심히 사용하십시오.”

“.....”

로라는 입매를 빳빳하게 굳히며 침묵했다.

앤젤라도 굳은 얼굴로 베르를 바라보다가 이내 로라를 향해 시선을 돌렸다.

베르가 저리 이야기를 할 정도라고 한다면 말로는 가정이지만 결국 진실과도 같았다.

그 결과가 어떻게 보면 많은 영혼들을 괴롭지 않게 하는 것이었지만... 동시에 그녀를 괴롭게 만드는 결과였다.

앤젤라는 그 모습에 마냥 기뻐할 수만은 없었다.

놀란 눈으로 멍하니 베르를 바라보가가 다급하게 돌아서는 로라의 뒷모습이 눈에 선했다.

앤젤라는 멍하니 그 여린 뒷모습을 바라보다가 생각에 잠겼고 데미언은 그런 앤젤라를 물끄러미 바라보다가 이내 그녀의 손에 따뜻한 우유를 쥐여 주었다.

“아... 데미언 오빠.”

“진정이 되실 겁니다. 조금이라도 마시세요.”

“고마워요...”

항상 의문인 일이었다.

자신이 슬플 때, 힘들 때, 괴로울 때, 고민이 있을 때에는 항상 그가 제 앞으로 나타났다.

앤젤라는 따뜻한 우유가 담긴 컵을 쓰다듬으며 잔잔히 웃었다.

“그럼... 그 아이는 마력을 더는 사용해서는 안 되는 건가요...?”

“..... 글쎄요.”

데미언은 앤젤라의 질문에 천천히 하늘을 올려 보다가 나직이 말을 이었다.

“사용하든 사용하지 않든... 똑같은 결과일 겁니다.”

“네?”

“태초의 마력을 사용하지 않게 된다면 성녀라는 것을 인증할 수 없을 것이고... 태초의 마력을 모두 사용하다가 마력이 다 소진되면 마찬가지로 성녀라는 것을 인증할 수 없지요.”

“아....”

“결국 어떤 선택을 하든 평범한 사람이라는 뜻입니다. 결과적으로는 말이지요.”

앤젤라는 데미언의 말에 조금 시무룩한 기색으로 고개를 숙였다.

영혼들을 보내는 방법이 잘못되어도 한참 잘못된 아이였지만... 따로 인도하는 방법을 배운 적이 없기 때문에 무지한 것이라고 생각했다.

이 정도까지의 불행을 바라지는 않아서 마음이 좋지 않았다.

데미언은 그런 앤젤라에게 나직이 말했다.

“그 일은 그분의 일입니다. 저희가 해드릴 수 있는 일은 정말 단 하나도 있지 않으니 더 이상 신경을 쓰시면 안 됩니다.”

“네??”

“동정이나 슬픈 감정을 겉으로 내비치면 더욱 기분이 상하실테니 아무렇지 않게 지내는 것이 가장 좋습니다.”

냉정하게 들리면서도 세심한 듯한 말이었다.

앤젤라는 그런 데미언을 큰 눈으로 바라보다가 이내 부드럽게 고개를 끄덕였다.

그의 말은 맞는 말이었으니까.

‘그래... 내색하지 말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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