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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 번째 딸로 태어났습니다-180화 (179/218)
  • 180화. 처음부터 비틀린

    밝은 아침 햇살이 올라오자 플로리아는 앤젤라를 깨우기 위해 작은 발걸음을 서둘렀다.

    뒤에서 함께 걸어오던 에드도 작은 동생의 움직임을 귀엽다는 듯 바라보고 있었고 말이다.

    “언니! 언니!”

    “그래, 리아가 언니를 깨워줘.”

    “웅! 리아가 언니 깨울게!”

    자신만 믿으라는 듯 근사하게 웃는 플로리아가 참 사랑스러웠다.

    에드는 키득키득 소리 없이 웃음을 흘리다가 이내 멀리서 보이는 앤젤라의 방문에 걸음을 멈추고 벽에 등을 기대었다.

    “리아, 오빠는 여기서 기다릴 테니까 언니를 데리고 얼른 와야 해?”

    “웅!! 리아만 믿어!”

    “그래그래.”

    앙증맞은 발걸음이 커다란 문 안으로 쏙 들어갔다.

    에드는 잠시 창문 위에 뜬 해를 바라보며 시간을 계산하기 시작했다.

    ‘어머니는 이엔과 함께 있으시니 금방 식당으로 오실 것 같고, 아버지랑 레기 형도 곧 대련이 끝날 시간이니까... 앤젤라만 깨우고 준비시켜 나오면 딱 맞겠다.’

    생각보다 가족과 아침식사를 하는 시간이 딱 맞을 것 같아 보이자 에드의 입가에 만족스러운 미소가 담겼다.

    그러던 그때였다.

    “으에 언니!!!”

    “???”

    갑작스런 플로리아의 소음에 에드가 놀란 눈동자로 앤젤라의 방을 바라보았다.

    “언니 얼굴!! 얼굴 막 이상해!!”

    “리아?!”

    플로리아의 심상치 않은 반응에 에드가 서둘러 앤젤라의 방문을 열었고 그대로 얼어버렸다.

    막 침대에서 일어난 앤젤라의 동그랗고 커다란 눈동자가 퉁퉁 부어있었고 하루 사이에 홀쭉해진 모습이 눈에 띈 탓이었다.

    에드가 식겁한 모습으로 달려와 앤젤라의 몸 구석구석을 살폈다.

    “앤젤라! 이게 무슨... 눈이 왜 그래?? 울었어?!”

    “에드 오빠? 좋은 아침이야.”

    “좋은 아침이기 전에 네 눈이 왜 그러냐니까?”

    “하하하...”

    퉁퉁 부어버린 눈으로 맑게 미소를 짓던 앤젤라를 바라보며 에드가 걱정스럽게 물었다.

    민망한 웃음을 지은 앤젤라는 제 볼을 긁적이다가 키득키득 웃으며 말했다.

    “별거 아니야.”

    “그렇게 울 정도가 별게 아니라고?”

    “정말이야. 이제는 아무렇지도 않고 진짜 괜찮아!”

    “......”

    “믿어줘 에드 오빠~~”

    “......”

    이야기를 해주지 않겠다는 듯 애교를 부리는 앤젤라의 모습에 눈을 살짝 가늘게 뜬 에드가 이내 한 손에 손수건을 쥔 후 마력을 불어넣어 손수건을 살짝 얼렸다.

    그리곤 앤젤라의 눈가에 차가워진 손수건을 올렸다.

    “읏 차가워!!”

    “차가워도 조금만 참아.”

    “갑자기 차가운 걸 올리니까 놀랐잖아.”

    앤젤라의 투정에 에드가 한심하다는 듯 말했다.

    “레기 형이 그 눈을 보면 뭐라고 할 것 같아?”

    “음....”

    “형은 네가 대답할 때까지 물어볼걸? 얼른 붓기부터 빼.”

    “헤헤... 고마워...”

    “정말 괜찮은 거 맞는 거야?”

    앤젤라의 연두색 눈동자가 에드의 연두색 눈동자를 담았다.

    자신을 닮은 연두색 눈동자에서부터 누군가가 떠오르자 입 안의 침이 바짝 말랐지만 이내 다정히 웃으며 말했다.

    “응... 괜찮아.”

    “바보 같기는...”

    에드는 앤젤라의 이마에 약하게 꿀밤을 내렸다.

    “아야!”

    “너 거짓말 진짜 못해.”

    “왜 때리고 그래!”

    “네가 거짓말을 하잖아.”

    에드와 앤젤라의 티격태격한 말에 옆에 서있던 플로리아가 버럭 에드를 향해 소리쳤다.

    “오빠 나빠!!”

    “응?? 리아?”

    “언니 왜 때려?! 오빠 바보!”

    “에엥?! 리아, 이건 언니가 잘 못 한 거...”

    “언니 아파! 눈이 막 이렇게 아파! 때리면 안 돼!”

    “..... 아파보이기는 하네.”

    그건 인정하겠다고 하며 에드가 고개를 끄덕였다.

    앤젤라는 플로리아를 품에 안아주며 키득키득 웃었다.

    아리엘과의 일을 한 번에 털고 일어날 수 있지는 않았지만 이렇게 천천히 멀어지다보면 괜찮아지지 않을까 싶었다.

    그래, 그래야만 했다.

    *

    세린은 아침을 먹자마자 나갈 준비를 하는 앤젤라를 부드럽게 바라보았다.

    “새로운 성녀가 생겼다는 이야기를 들었는데 괜찮은 아이니?”

    “아.....”

    괜찮은 아이일까.

    아리엘의 일로 인해서 그 아이가 싫기도 싫었지만 이런 마음을 먹으면 안 된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그저 영혼을 보내주고 싶은 마음에 그리 행동했을 수 도 있어... 내가 과민한 반응을 보였을 수 도 있고.’

    앤젤라는 곰곰이 생각에 잠기가가 이내 세린을 향해 맑게 웃으며 말했다.

    “아직은 모르겠어요. 많이 이야기를 해보지 못해서... 그래도 좋은 아이일거예요.”

    “그랬으면 좋겠네. 앤젤라 조심해서 잘 다녀와.”

    “네!”

    “무슨 일이 있으면 꼭 이야기해주고.”

    “네, 알겠어요!”

    세린은 앤젤라의 이마에 부드럽게 입을 맞췄고 이내 앤젤라는 마차에 올랐다.

    멀어지는 앤젤라의 마차를 바라보던 세린은 조금 걱정스런 얼굴로 제 어깨를 감쌌다.

    “.... 조금은 의지해도 좋으련만...”

    어제 제이를 통해 앤젤라의 고민을 알게 된 세린으로서는 조금 속상한 상황이었다.

    사랑하는 자식이 품고 있는 고민이 마음이 아팠다.

    ‘상처받지 않았으면....’

    모든 부모의 걱정이 똑같듯이 세린도 앤젤라가 걱정스러웠다.

    부디 앤젤라가 상처받지 않고 지내기를 기도했다.

    *

    대신전의 앞에 도착하자 마차에서 천천히 내린 앤젤라는 성스러운 분위기를 가득 품은 신전을 조금 씁쓸하게 바라보고 있었다.

    “후우.....”

    베르와 데미언의 앞에서 그런 모습을 보인지 하루 만에 얼굴을 다시 마주하려니 민망한 탓이었다.

    앤젤라는 애써 자신의 옷을 정리한 후 조금 뻣뻣한 모습으로 신전에 들어섰다.

    아니, 들어서려고 했다.

    앤젤라는 신전의 입구 옆 구석에서 꿈틀거리는 검은색의 머리카락에 놀라 걸음을 멈췄다.

    ‘로라...?’

    자신을 로라라고 소개했던 동갑의 성녀였다.

    로라는 무언가 한 방향을 물끄러미 바라보며 두 팔을 꼬아 팔짱을 끼고 있었다.

    무슨 일을 하고 있는지 궁금해져서 가까이 다가서기 시작한 앤젤라는 곧이어 로라에게 다가서는 한 영혼의 모습에 눈을 크게 떴다.

    “아...”

    그녀도 성녀이니 영혼들을 달래어 한을 풀어주고 신의 품으로 인도해야 하는 일을 해야 하는 것이었다.

    로라도 자신과 같은 일을 하고 있다는 것을 깨닫자 앤젤라는 묘한 동질감을 느꼈다.

    죽은 이의 이야기를 들어주고 한을 풀어주기란 어려운 일이었으니까.

    앤젤라는 로라에 대한 편견을 가진 자신을 조금 부끄럽게 생각하다가 이내 그녀에게로 한 발 다가섰다.

    그 한 걸음이 다 내딛어지기 전에 로라는 한 팔을 들어 영혼의 손을 잡았고 말이다.

    앤젤라의 걸음이 멈췄다.

    로라가 굳게 잡은 투명한 영혼의 팔이 갑작스럽게 푸른빛들에 휩싸이기 시작했다.

    앤젤라는 그 광경을 멍하니 바라보았다.

    “......”

    ‘제발...!! 제발!!’ 앤젤라의 얼굴이 천천히 창백해지기 시작했다.

    영혼은 울부짖고 있었다.

    비명을 지르며 온 몸을 휘젓는 영혼의 모습이 너무도 처참했다.

    그러나 그 영혼을 바라보는 로라의 표정에는 단 한 톨의 감정도 담겨있지 않았다.

    “지금....”

    지금 설마... 강제로 인도시키는 거야?

    “지금 무슨...”

    뭉쳐있을 한은?

    저들의 이야기는?

    그들의 의지는?

    앤젤라는 창백해진 낯으로 다급히 로라를 향해 달려갔다.

    그러나 한 발짝 더 다가서자마자 영혼은 빛들과 함께 위로 날아갔다.

    늦어버린 것이었다.

    앤젤라는 비어버린 허공을 바라보다가 이내 멍하니 로라를 바라보며 물었다.

    “무슨 짓을 한 거야...?”

    “.....?”

    앤젤라를 이제야 발견했다는 듯 로라가 동그란 눈으로 앤젤라를 바라보았다.

    그리곤 별걸 다 묻는 다는 듯한 말투로 말했다.

    “뭐긴요, 신의 품으로 보냈죠.”

    “.... 저들의 한도 풀어주지 않고 보내면 안 되는 거 몰라....?”

    “아, 뭉친 한을 들고 위로 가면 잘못된 길로 인도 된다는... 그 이야기 말씀이시죠?”

    “.......”

    “요즘 누가 그런 말을 믿어요? 앤젤라님은 참 순수하시네요.”

    “..... 너...”

    잘못된 생각이었다.

    좋은 아이? 동질감?

    성립이 될 수 없는 단어들의 행진이었다.

    앤젤라는 딱딱하게 굳은 얼굴로 물었다.

    “그들에게도 의지라는 게 있어. 보고 싶을 사람들이나 가족들이 있다고. 바라는 것이 크던 작던 이야기를 들어주고 같이 소통을 해나가면서 자연스럽게 인도될 수 있는데.... 강제로 보내다니!!”

    “앤젤라님...”

    로라의 입가가 비틀어졌다.

    “어차피 죽은 자들이에요. 오히려 인도가 늦어질수록 저 영혼들 인도가 어려워지는 거 모르세요?”

    “어렵지 않아. 난 그들의 이야기를 들어주면서 단 한 번 도 힘들게 인도한 적 없었어.”

    “하...”

    “그들을 동물인 마냥 취급하지 마!”

    앤젤라의 굳은 말에 로라의 표정이 딱딱해졌다.

    “그러니까 지금 앤젤라님 말씀은... 제가 하고 있는 이 인도가 잘 못 되었다... 라는 건가요?”

    “잘못되었어. 넌 마치 그들을 지옥에라도 끌어내리려는 듯이 인도했잖아.”

    “말씀이 지나치시네요. 지옥이라니... 그래도 성녀라는 칭호를 받았는데요.”

    “.......”

    앤젤라는 떨리는 손에 주먹을 쥐며 말했다.

    “너처럼 영혼들의 마음도 헤아려주지 못하는 성녀는 그들에게 필요하지 않아.”

    “...!!!”

    “영혼들도 사람이었던 자들이야.”

    저절로 앤젤라의 머릿속에 아리엘이 떠올랐다.

    자신을 위해 애쓰고 함께 웃고 함께 울던 그녀의 모습이 천천히 가슴에 차올랐다.

    “그들도 감정이라는 것이 있어.”

    슬퍼하는 자신에게 장난을 치며 위로해주던.

    “보고 싶은 사람들도 있어.”

    정말로 사랑했던 이가 있었다며 나직이 웃던 그 쓸쓸한 미소.

    그 슬퍼 보이는 미소가 어린 앤젤라의 가슴에 짙게 담겼었다.

    “하고자 하는 말들도... 하고 싶은 이야기도 많은 사람들이야. 그런 사람들을 지금 네가 억지로 끌어올렸잖아.”

    “.......”

    앤젤라의 눈이 조금씩 붉어져갔다.

    아무것도 느낀 것이 없는 듯한 깨끗한 검은 눈동자를 마주 바라보며 그녀는 결국 입술을 깨물고 현실을 직시했다.

    처음부터 그녀와 자신은 비틀려있었다.

    로라가 아리엘이게 손을 뻗은 그 후부터... 아니.

    처음부터 로라와 자신과의 관계는 이미 비틀려진 것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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