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79화. 등 뒤
그날 바, 앤젤라의 방에는 짙은 어둠이 깔려 있었다.
불을 켜지 않아 보다 어두운 방에서 앤젤라는 침대의 이불을 뒤집어썼다.
한참을 눈물을 흘리며 울던 그녀의 눈은 이미 퉁퉁 부어있었다.
앤젤라는 아리엘을 붙잡지 못했던 몇 시간 전의 제 자신이 원망스러웠다.
“어, 언니!!”
‘처음부터 이렇게 했어야 했어.’
“가지 마요!! 언니 제발!”
‘갑작스러운 일이 아니야 앤젤라. 처음부터 그랬듯이...’ 자신을 바라보는 아리엘의 눈동자가 입술이 바짝 마를 정도로 서글펐다.
‘죽은 자가 살아있는 자의 곁에 계속 머물러서는 안 되었던 거야.’
아리엘이 한 걸음 물러섰다.
달리는 마차 밖으로 영혼의 반절이 빠져나온 모습에 앤젤라가 다급히 그녀에게 다가서며 울며 소리쳤다.
“언니!!”
왜 그래요!! 그러지 말아요!”
‘내가 욕심을 부렸어. 네 곁에 있는 게 너무 즐거워서.... 말도 안 되는 욕심을 부렸던 거야. 아주 잠깐이지만 죽은 사람인 내가 계속 네 곁에 머물기를 바라다니... 다시 생각해도 우스워.’
“언니 제발...”
‘늦었지만... 지금이라도 바로 잡아야 해.’
아리엘은 울음을 터트리는 작은 소녀를 고요히 빛나는 두 눈으로 천천히 가슴에 담았다.
그녀를 위해서였다.
언젠가 떠날 사람인 자신에게 저만큼... 아니 저 모습보다 더욱 의지했다가는 자신과의 이별을 받아들일 수 없을 것이었다.
몰론 자신도 마찬가지일 테고 말이다.
자신은 언제 어디서 어떻게 떠나게 될지 모르는 위치에 서 있던지라 이별을 준비해왔다지만 앤젤라는 아니었다.
자신과 함께 지낸 후부터 앤젤라에게도 이별을 준비 시켜주었어야 했다.
‘내 탓이야...’
아리엘은 슬픈 미소를 지으며 이내 망설임 없이 마차 밖으로 몸을 빼내었다.
“언니!!!”
그 애탄 부름에도 대답해줄 수 없었다.
이제 그녀는 자신 없이 살아가야 했기에.
*
퀭해진 연두색 눈동자가 어두운 밤하늘을 담았다.
갑작스럽게 이루어진 그 상황이 이해가 가지 않았다.
아니, 이해하고 싶지 않았다.
“......”
어디에 있을까.
혹시 제 곁에 자신이 안보이게끔 숨어 있는 것은 아닐까.
앤젤라는 침대 밑으로 천천히 내려와 주변을 둘러보기 시작했다.
푸른 하늘을 닮은 머리카락이 몹시도 그리웠다.
본능과도 같은 마음으로 그 머리카락을 찾으며 멍하니 걷기 시작한 앤젤라는 큰 문을 열어 어두운 복도를 걸어가기 시작했다.
‘언니...’
뒤에서 자신을 부르는 시녀의 부름도 듣지 못하고 앤젤라는 앞을 향해 걷고 또 걸었다.
그러던 중이었다.
정원의 입구에 발을 내디디려는 앤젤라의 어깨를 누군가가 부드럽게 붙잡았다.
턱!
“....!!”
놀란 앤젤라가 다급히 두 눈을 크게 뜨며 자신을 잡은 손의 주인을 직시했고 이내 푸른 머리카락이 아닌 푸른 눈동자를 마주할 수 있었다.
“아.... 빠...?”
제이 스페라도였다.
제이는 놀란 눈동자로 앤젤라를 바라보며 물었다.
“앤젤라. 이 시간에 어디를 가는 거니?”
“아....”
그의 물음에 주변을 둘러본 앤젤라는 하늘을 짙게 메운 어둠을 인식할 수 있었다.
스스로도 당황스런 마음에 두 눈을 자잘하게 흔들리던 앤젤라는 천천히 제 입술을 꾹 깨물었다.
“......”
“앤젤라?”
“아빠....”
“그래. 무슨 일이라도 있었니.”
“..... 아빠 저...”
앤젤라는 고개를 들어 올려 제이와 눈을 맞췄다.
그녀의 눈에 가득 고인 눈물이 결국 땅을 촉촉하게 적시며 떨어지기 시작했고 애달픈 통곡이 새어나오고 말았다.
“아빠아아아....! 허어엉!! 마음이 너무 아파요...!!”
“!!!!”
처음보는 앤젤라의 애탄 눈물에 제이의 얼굴이 창백해졌다.
제이는 파리해진 안색으로 다급히 앤젤라를 안아 올리며 그녀의 등을 두드려주기 시작했다.
13살이 되어 키도 커진 앤젤라지만 제이는 아무렇지 않게 그녀를 안아주며 아기를 어르듯이 달래기 시작했다.
“앤젤라, 무슨 일인지 모르겠지만 일단 눈물을 그치고 말해주렴.”
“흐으으윽...!”
“기다려줄 수 있단다. 천천히 그쳐도 괜찮아.”
“허어어엉...!!!”
제이의 얼굴이 눈에 띄게 당황을 담았으나 이내 그녀의 진정을 기다리는 그의 눈이 걱정을 담았다.
누가 이 맑은 아이를 이리도 속상하게 만들었을까.
눈물을 겨우겨우 그친 앤젤라는 제이가 건네준 따뜻한 우유를 마시며 가슴을 진정시켰다.
잔뜩 붉어진 눈가로 눈물을 그친 앤젤라를 부드럽게 바라본 제이가 그녀에게 조심스럽게 물었다.
“진정이 되었니?”
“.... 네...”
“무슨 일인지 물어보면 네가 곤란할까.”
“.......”
제이의 물음에 말을 멈춘 앤젤라는 우유가 담긴 컵을 만지작거리며 망설였다.
그리곤 이내 숙인 고개를 올리지 않은 채 나직이 이야기를 꺼냈다.
“오늘... 신전에서 저와 같은 나이대의 성녀를 소개받았어요...”
“새로운 성녀가 나타났다더니 그 아이인가 보구나.”
“네.... 그런데...”
“??”
“그런데 그 아이가....”
따뜻한 우유가 든 컵을 쥔 앤젤라의 손이 떨리기 시작했다.
제이는 그런 앤젤라를 진정시키기 위해 그녀의 손을 부드럽게 감쌌다.
“앤젤라. 네가 억지로 말을 꺼내기를 바라지 않아. 무리하지 않아도 괜찮단다.”
“.....”
제이의 위로에 앤젤라는 다시 깊이 심호흡을 한 후 말했다.
“그 아이가... 갑자기 제 옆에 있던 언니를 신의 품으로 인도시키려 했어요...”
“.....!”
언니라면 앤젤라를 지켜주고 있다던 그 영혼을 말하는 것 아닌가?
제이의 눈이 살며시 가늘어졌고 앤젤라는 마저 말을 이었다.
“도중에 막아내서... 다행히 언니는 무사했지만... 그 일을 겪고 돌아오는 길에 언니가 떠났어요...”
“......”
“항상 저랑 헤어질 준비를 했대요... 제가 자신한테 의지하면 안 된다고... 그럼 안 되는 일이라고, 이제부터라도 바로잡아야 한다고...”
나직이 내뱉는 말 위로 앤젤라는 눈물을 다시 뚝뚝 내려 보내기 시작했다.
제이는 그런 앤젤라를 제 무릎에 앉히며 그녀의 몸을 따스하게 감쌌다.
“무슨 일인지 잘 알겠구나.”
“.... 전 아직 언니가 필요해요 아빠...”
“앤젤라.”
“흑...”
제이는 앤젤라의 눈물을 닦아주며 입을 열었다.
“아빠 생각에는 그 영혼의 선택이 최선이라고 생각이 드는구나.”
“아빠...!”
“그리고 그 영혼도 우리 못지않게 널 사랑하고 있다는 것도 알게 되었고 말이다.”
“....!”
앤젤라의 눈이 커졌다.
제이는 그런 앤젤라를 부드럽게 바라보며 말했다.
“영혼이라는 건 언제 어디에서 어떻게 떠나게 될지 모르는 형태라고 들었단다. 그런 불완전한 영혼을 네가 의지하면 할수록 코앞에 들이닥친 이별에 감당을 못하게 되지.”
“.......”
“방금 전의 너처럼 말이다.”
“!!!”
아무 생각 없이 그녀를 찾기 위해 돌아다니던 제 모습을 떠올리자 앤젤라는 입술을 꾹 다물었다.
“네 곁을 떠난 것도 같은 이유겠지. 네가 너무 소중하니까, 네가 자신으로 인해 큰 상처를 받지 않기를 원해서일 것이란다.”
“하지만....”
“앤젤라.”
“......”
“그 영혼은 널 위해 큰 결심을 한 것일 수 있다는 생각을 해보렴.”
“!!!”
“아마 슬픈 것은 너 뿐만이 아닐 것이란다.”
앤젤라의 표정이 딱딱하게 굳었다.
한 번도 입장을 바꾸어 그녀의 마음을 이해하려고 하지 않았다.
제이는 그런 앤젤라의 어깨에 제 겉옷을 걸쳐주며 말을 이었다.
“그 영혼이 너를 위해서 해줄 수 있는 한 최선의 선택이었겠지. 아빠가 어떤 위로를 해주어야 할 지 모르겠지만...”
“..... 아빠.”
“가슴에서 사라지지 않으면 된단다.”
“...!!”
“보고 싶다며 펑펑 울고 그녀를 찾아내서 의존하는 것보다 그 영혼의 모습을 기억하고 함께한 추억을 되짚어보며 살아가는 것이 좋다고 생각한단다.”
“아빠.”
“항상 이별을 준비해왔다고 했다는데.... 떠나려는 사람을 네가 그리 애타게 붙잡으면 어떻게 마음 편히 뒤돌아 갈 수 있겠니.”
제이의 부드러운 말 속에 담긴 의미를 곱씹으며 앤젤라는 침묵했다.
‘내가 욕심을 부렸어. 네 곁에 있는 게 너무 즐거워서.... 말도 안 되는 욕심을 부린 거야.’
‘늦었지만... 지금이라도 바로 잡아야 해.’
“시간이 약이라는 말이 있단다 앤젤라.”
“......”
“열심히 살아가다보면 그리움이나 슬픔이 잔잔해지기 마련이지.”
“......”
“어떤 말도 너에겐 위로가 되지 않을 수도 있지만... 아빠도 엄마도, 그리고 그 영혼도 네 행복을 바라고 있다는 것을 잊지말아주렴.”
그걸 위해서 자신의 곁에 잠시 떨어져있는 것일 테지.
앤젤라의 눈이 천천히 안정을 되찾았다.
막무가내로 그녀를 찾아내려는 제 자신이 부끄러워졌다.
아리엘과 아빠의 말대로 어쩌면 잠시 떨어져서 지내는 것이 자신과 그녀를 위한 일일 것이다.
헤어짐에 슬퍼하는 것은 자신뿐만이 아닐 테니까.
*
아리엘은 이야기를 나누는 두 부녀의 모습을 뒤에서 지켜보며 나직이 한숨을 내쉬었다.
정처 없이 아무 곳이나 돌아다니던 앤젤라가 걱정된 참이었는데 그를 만나 정말 다행이었다.
‘후.....’
아직 어린 그녀에게는 받아들이기 어려운 문제였을 것이다.
아리엘은 작고 여린 소녀의 뒷모습을 바라보며 자조적으로 웃었다.
떠난다고 대범하게 말한 지가 몇 시간이 지났는데 겨우 멀리 도망친 곳이라곤 저 여린 소녀의 등 뒤였다.
‘나도 멍청하지...’
기껏 마음먹고 도망쳤는데 말이지.
잠시 침묵하던 아리엘은 이내 제 팔을 꼬아 팔짱을 끼며 생각에 잠겼다.
그러고 보니 그 꼬마... 뭔가 이상하단 말이지.
앤젤라처럼 성녀라 칭해지는 그 작은 소녀가 마음에 걸렸다.
앤젤라를 바라보는 시선도, 자신을 보내버리려는 망설임 없는 손길과 능력도.
마치 앤젤라를 집어삼킬 것만 같이 위협적인 느낌이라 걱정스러워졌다.
당분간은 네 뒤에 더 머물러야겠다.
들키지 않게 조심해야겠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