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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 번째 딸로 태어났습니다-176화 (175/218)

176화. 의문

앤젤라는 멍하니 데미언을 바라보며 그가 내뱉은 말을 되짚어 보았다.

‘걱정되었다고...?’

정말? 정말 내가 걱정 되서 온 거야?

그가 전해준 한 줄의 문장을 반복해서 곱씹은 앤젤라의 얼굴이 이내 확 붉어졌다.

제 얼굴이 붉게 달아오른 것을 느낀 앤젤라는 제 얼굴을 감추려 급히 고개를 숙였고 떨리는 목소리를 애써 내리 누르며 말했다.

“고, 고마워요. 걱정해줘서...”

“.....!”

앤젤라의 순수한 반응이 데미언의 백금색 눈에 온전히 담겼다.

저절로 풀어지려는 입매를 다잡은 데미언은 두 눈을 질끈 감았다고 천천히 뜨며 말했다.

“무사하신 모습을 뵈었으니 되었습니다. 이만 가보겠습니다.”

“버, 벌써 가세요??”

돌아간다는 제 말에 깜짝 놀란 앤젤라가 다급히 그를 붙잡자 데미언은 멈칫한 모습으로 눈을 굴리디가 이내 입을 열었다.

“.... 신께 기도를 올리는 중에 온 것입니다. 돌아가서 마저 기도를 올려야 합니다.”

“아....”

짙은 아쉬움이 담긴 얼굴로 시무룩해진 앤젤라는 제 두 손을 마주 잡고 꼼지락 거렸다.

그를 도중에 붙잡아서 난처하게 하고 싶지는 않았으나 동시에 그와 이대로 헤어지기 너무도 아쉬움이 남았다.

‘응? 잠시만....’

앤젤라의 눈이 휙 올라가며 이내 데미언을 시선에 담았다.

신께 올리는 기도를 굉장히 중요시하던 그가 기도를 올리는 중에 온 것이라고?

그렇다는 말은... 자신의 소식을 듣자마자 바로 달려온 것이라는 말 아닌가...?

앤젤라는 신께 기도를 올리는 것을 중요시하는 그가 그 기도를 멈추고 제게로 달려온 것을 생각하자 기분이 급격히 좋아졌다.

적어도 그가 자신을 그만큼이나 중요하게 생각해 주는 것 같은 느낌에 앤젤라의 미소가 짙어졌다.

앤젤라는 그 누구보다 환하게 미소를 지으며 외쳤다.

“바쁘신데 와주신 것이었네요. 고마워요 데미언 오빠!”

“.... 아닙니다. 신경 쓰시지 마세요.”

“마차가 있는 곳까지 제가 안내할게요!”

“괜찮습니다. 많이 힘드셨을 텐데 들어가셔서 쉬셔야지요.”

“별로 힘들지 않은데...”

“몸은 그리 반응하지 않는 듯하군요.”

“네?”

“얼굴이 붉습니다. 열이 오르고 계시는 듯한데 의원에게 한 번 검진을 받으셔야겠습니다.”

“아, 아니 이건... 그게 아니라!”

“네??”

“그....”

쉽게 타오른 얼굴을 두 손으로 감추며 앤젤라는 결국 작은 목소리로 말했다.

“..... 아니에요. 의원에게 가볼게요.”

“좋은 생각이십니다.”

결국 아무 말도 못하고 긍정해버린 앤젤라는 부끄러움에 얼굴을 더욱 붉히며 하나로 묶여 길게 내려온 제 머리카락을 만지작거렸다.

데미언은 가만히 그 모습을 바라보다가 이내 부드러운 목소리로 말했다.

“머리.”

“네...?”

“예쁘십니다.”

“!!!”

“이만 물러나겠습니다. 어서 의원에게 가보세요.”

다정히 인사를 한 후 부드럽게 시야에서 사라진 데미언의 뒷모습을 굳은 듯 멍하니 바라보던 앤젤라는 천천히 제 두 볼을 감싸며 중얼거렸다.

“예쁘다고...?”

‘예쁘십니다.’

“....!!”

그녀의 사랑스런 얼굴이 터질듯이 붉어졌다.

심장 쪽에서 느껴지는 빠른 맥박과 욱신거리는 작은 통증에 스스로도 당황스러워 눈을 깜빡였다.

‘어떡하지...’

앤젤라의 연두색 눈동자가 질끈 감겼다.

‘더 좋아진 것 같아...’

그는 알까.

제가 품은 감정이 보다 부피를 크게 만들고 있음을.

소리도 없이 다가온 감정은 점점 앤젤라의 품 안에서 그 크기를 늘려가고 있었다.

앤젤라의 가슴을 두드리는 하루가 지나가고 있었다.

*

데미언은 대신전으로 향하는 마차 안에서 창문을 통해 대공성을 눈에 담고 있었다.

멍하니 수많은 창문들 중 그녀가 있을 창문을 찾아보던 그는 이내 제 눈을 한 손으로 쓸며 한숨을 내쉬었다.

‘멍청했어...’

왜 그런 말을 해버린 것일까.

아무리 사랑스럽다고 여겨지는 이라고 하지만 순간에 제 진심을 내뱉어버린 자신이 한심했다.

그랬으면 안 되었다.

꽁꽁 숨겨도 모자랄 판에 제 감정에 솔직해지다니.

하얀 면장갑을 쓸며 데미언의 눈이 천천히 감겼다.

걱정했다는 한 마디와 예쁘다는 그 한마디에 밝아지는 소녀의 모습이 눈에 아른거렸다.

그저 제 오빠들을 따르듯 자신을 향해 망설임 없이 손을 뻗는 그녀일진데...

‘기대해서는 안 돼.’

그리고...

‘내가 그래서는 안 돼.’

다가갈 수 없이 먼 거리에 있는 사람이었다.

그녀가 제게 손을 뻗어도 자신은 그 손을 붙잡아서는 안 되었다.

상처밖에 남지 않은 결말이 예상되자마자 데미언은 두 눈을 천천히 감고 가슴을 차게 식혔다.

‘정신 차려.’

그 누구에게도 감정을 내비치면 안 되는 거야.

애정을 여기서 더 키워봤자 소용없어.

가만히 눈으로 지켜만 보는 거야.

어렵지 않잖아?

그의 눈이 천천히 떠졌다.

백금색의 눈동자가 조금씩 노을이 져가는 아름다운 하늘을 눈에 담았다.

하늘을 바라보는 그의 뒷모습이 너무도 쓸쓸해 보였다.

이윽고 대신전에 도착한 마차에 부드럽게 내린 데미언은 망설임 없는 발걸음으로 신전 안에 들어섰다.

대신전에 자리한 사제들의 방에서 하얀 사제의 옷으로 갈아입은 그는 천천히 발을 이동시켜 여신에게 기도를 올리는 기도실로 향했다.

도착한 방에서 두 손을 곱게 모아 눈을 지그시 감은 데미언의 모습이 신전의 성스러운 빛을 받아 아름답게 비춰졌다.

환한 백금색의 머리카락이 보석처럼 빛났고 굳게 감긴 아름다운 눈매를 풍성한 속눈썹이 화사하게 만들었다.

하얀 머리카락과 피부에 대조되는 붉은 입술이 금기를 담은 아름다움을 일으켰다.

남자다운 굵은 선이 생기기 시작한 옆태가 집중으로 인해 굳어졌다.

멀리서 그의 기도를 발견한 한 신관이 우물쭈물 망설이며 말을 걸어보려 애쓰다가 이내 입술을 꾹 다물고 멀리서 그의 기도가 끝나기를 기다렸다.

‘기도를 방해했다가 무슨 소리를 들으려고...’

기도를 방해하거나 멈추게 만드는 것을 극도로 싫어하는 데미언을 알기에 신관은 얌전히 대기했다.

그 옛날, 한 번 기도 중 실수로 낸 소음에 눈을 날카롭게 뜨는 그의 모습이 아직도 기억 속에 남았던 탓이었다.

조금의 시간이 지난 후 데미언의 마디가 굵어져가는 고운 손이 풀렸다.

천천히 고개를 들어 올려 눈을 뜬 데미언은 시야에 담긴 여신의 상을 가만히 바라보다가 이내 뒤를 돌아보지도 않고 말했다.

“무슨 일이십니까.”

“아!! 기도가 끝나셨습니까.”

“네. 제게 하실 말씀이라도...”

“대신관님께서 부르셨습니다. 기도를 하시는 중이시라면 기도가 끝난 후에 먼저 찾아와 달라 하셔서...”

“아버지께서...?”

데미언의 눈에 의문이 피어올랐다.

기도를 올리자마자 오라는 것을 보니 보통 간단한 문제는 아닌 듯 했다.

“무슨 일이신지는 언급하시지 않으시던가요.”

“언급하신 말씀은 없으셨습니다. 다만 기도가 끝나시거든 바로 와주셨으면 하다고 하셨습니다.”

“...... 흠.”

데미언은 가늘어진 눈으로 허공을 바라보다가 이내 고개를 끄덕이며 신관에게 말했다.

“금방 가도록 하겠습니다. 말씀 감사합니다.”

“아닙니다. 신의 가호가 있길...”

“신의 가호가 있기를...”

신관과 빠르게 멀어진 데미언은 제 사제복을 정돈하며 제 머리를 쓸어 넘겼다.

‘무슨 일이시지? 이리 급하게 찾으신 적은 잘 없으신데...’

조금 걱정스러운 마음까지 생기자 데미언의 발걸음이 빨라졌다.

이윽고 도착한 대신관의 기도실에 데미언은 부드럽게 노크했다.

똑똑

“아버지. 데미언입니다.”

“들어 오거라.”

철컥

굳게 닫힌 문이 열리고 데미언은 환한 시야에서 자신과 똑같이 아름답게 빛나는 백금색의 머리카락을 쉽게 발견할 수 있었다.

데미언은 천천히 걸어 나가며 베르에게로 다가갔고 이네 그가 혼자가 아니라는 것에 발걸음을 멈췄다.

베르의 맞은편에 자리한 한 인영 탓이었다.

‘누구지? 아버지의 기도실에 들어올 수 있는 자는 많지 않은데...’

데미언은 떠오르기 시작한 의문을 조용히 가슴에 묻고 조심스럽게 베르를 불렀다.

“아버지. 늦게 온 것 같아 죄송합니다.”

“괜찮단다. 오느라 고생했어. 이리 와서 앉거라 데미언.”

“.... 네.”

부드럽게 걸어가는 걸음을 하며 힐끔 베르의 맞은편에 자리한 한 인영을 관찰한 데미언은 이내 의자에 앉으며 완전히 그 인영을 눈에 담을 수 있었다.

검은 색의 머리카락과 머리카락처럼 똑같이 빛나는 검은 색의 눈동자는 대공저에 있을 프레제 백작을 떠올리게 만들었다.

그러나 그의 머리색보다 탁하다는 느낌에서 벗어날 수 없었다.

그리고 검은 머리의 인영은 여인이었으니까.

아니, 소녀였으니까.

순수해 보이는 동그란 눈매를 가진 소녀는 제 검은 머리카락을 어깨 뒤로 넘기고 부드럽게 고개를 숙이며 데미언에게 인사했다.

“만나서 반갑습니다. 로라 라고 합니다. 성이 없는 평민이니 말을 놓아주셔도 괜찮습니다.”

‘평민...?’ 소녀의 말에 데미언이 마주 고개를 숙이고 말했다.

“.... 모든 이들은 신의 품에서 태어난 귀한 분이십니다. 불편하시더라도 말을 놓지 못함을 이해해 주시길 바랍니다...”

“아! 그렇군요! 그럼 저 또한 그러하겠습니다.”

나직이 인사를 나눈 데미언와 로라를 부드럽게 바라보던 베르는 이내 한 손을 데미언을 향해 뻗으며 말했다.

“제 아들이자 신을 모시는 고위사제인 데미언 하트만 입니다.”

“네, 반갑습니다.”

로라가 동그란 눈을 곱게 휘어 웃으며 긍정하자 베르는 이번엔 소녀를 향해 손을 뻗으며 데미언을 향해 말했다.

“오늘 갑작스레 찾아오신 분이시지만 굉장히 귀한 분이시란다. 이름은 로라, 나이는 13살이시며...”

“.....?”

베르가 나직이 말했다.

“앤젤라님처럼 성녀의 자격을 갖춘 분이시란다.”

“....!!!!”

“태초의 마력을 지니고 있는 것을 막 확인했던 차였단다. 그래서 널 부른 것이고.”

데미언의 눈이 크게 떠졌다.

경악스러운 입매를 단단히 붙잡으며 데미언은 침묵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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