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71화. 리사의 등
세린의 총구가 빠르게 한 방향을 향해 올려졌다.
탕!!!
거대한 소음과 함께 총구에서부터 강한 마력들이 난사되었고 그 날카로운 마력들은 일직선에 있는 그레고리를 향했다.
그레고리는 하얀 마력을 펼쳐 제 앞에 막을 세웠고 그 막은 세린의 마력과 강하게 충돌하였다.
콰과과광!!!
“.... 이 정도 실력일 줄은 몰랐군...”
그레고리의 푸른 눈동자가 가늘어졌다.
‘두 손을 밧줄이 아니라 마력차단용의 철로 묶어놨어야 했어...’
그레고리는 그 생각을 끝마치고 이내 두 손 가득히 마력을 움직였다.
더욱 커다랗게 다가오는 마력의 움직임에 세린도 총구에 마력을 실었다.
인근 주변의 모든 것들을 날려 버릴 만큼 강한 마력의 기세에 제이는 눈을 찌푸리며 빠르게 자리를 벗어났다.
본능적으로 느낀 위험신호였고 지금 세린과 마법사의 대치에 끼어든다고 해도 자신은 방해만 될 뿐이란 것을 알아차린 탓도 있었다.
빠르게 달리는 제이의 주변에 물씬 살기가 풍겼다.
제이는 푸른 눈을 날카롭게 뜨며 그 살기를 관찰했고 이내 그 살기들이 세린과 대치하는 저 마법사의 조직원들이라는 것을 어렵지않게 유추했다.
‘그렇다면 지금 내가 할 일은 이것이겠군.’
간단명료한 결정이었고 빠른 상황파악이었다.
*
아리엘은 직접적으로 마주한 그레고리의 얼굴을 바라보며 충격에 휩싸였다.
생각났어... 저 얼굴... 저 머리카락이랑 눈은 그 인간과 똑같잖아...!
페르돈 후작.
로레인의 친아버지이자 반란군이었던 이.
그 씨앗을 모두 죽였다고 생각했는데... 설마 살아있을 줄은...
오래 전, 그 시기에 자신의 실수였다.
아리엘은 그레고리와 대치하는 세린을 불안한 눈으로 바라보다가 이내 서둘러 앤젤라의 곁으로 이동했다.
앤젤라 없이는 아무것도 해줄 수 없기도 했고 레기와 앤젤라, 그 작은 아이들을 그대로 놔두기에는 불안했기 때문이었다.
‘우선 앤젤라를 데리고 와야 해. 그래야 세린을 도울 수도 있고 저 녀석을 막을 수도 있어.’
아리엘의 이동하는 속도가 빨라졌다.
앤젤라는 레기가 사라지자마자 소리 없이 외쳤다.
‘언니...!!’
무섭도록 자신을 몰아치는 두려움에 소리도 내지 못하고 아리엘을 찾고 또 찾았다.
레기가 다칠까봐 무서웠고, 그런 그를 따라서 달리지 못하는 제 자신이 한심해 죽을 것 같았다.
‘언니...!’
‘앤젤라!!’
“!!!”
자신을 부르는 다급한 음성에 앤젤라의 고개가 번쩍 들렸다.
동그란 눈동자 속에서 응어리진 눈물이 볼을 타고 흘러내렸고 앤젤라는 결국 펑펑 눈물을 흘리며 외쳤다.
“언니...!!!”
‘앤젤라, 무슨 일이야? 레기는!’
“레기오빠가.. 오빠가... 나 구해주려고 일부러 막... 흑 뛰어가고!”
‘뭐? 진정해, 진정하고 다시 말해봐.’
“레기 오빠를 도와줘...!!”
앤젤라는 아리엘의 소매를 그러쥐며 입술을 꾹 깨물었다.
당황한 아리엘이 그런 앤젤라의 손을 마주 잡아주며 입을 열었다.
‘무슨 일이야? 일부러 뛰어갔다니...’
“우리를 잡으려는 사람들이 근처로 왔어... 그 사람들한테서 날 지켜주려고 일부러 소리를 내면서 다른 방향으로 뛰어가고... 흑 왜 그런 위험한 행동을 한 거야...!”
‘..... 레기..’
분명 동생을 지키기 위한 판단이었을 것이다.
‘자리를 비우면 안 되었던 거였어... 젠장.’
아리엘은 다급히 앤젤라의 손을 잡았다.
그녀의 힘을 빌려서 레기를 수색해야 할 것 같았기 때문이었다.
‘앤젤라, 네 마력을 좀 빌릴게.’
“응?”
‘후....’
아리엘의 눈이 천천히 감겼고 앤젤라의 손에서부터 흘러나오는 마력을 제게로 가져와 주변을 둘러보기 시작했다.
주변에 느껴지는 마력, 신체반응, 소리 등을 마력을 탐지하기 시작한 아리엘의 눈이 동그랗게 변했다.
놀란 듯한 아리엘의 모습에 앤젤라가 불안에 가득 찬 모습으로 물었다.
“언니? 왜 그래? 오빠한테 무슨 일이라도 생긴 건 아니지??”
‘무슨 일은 있기는 한데...’
“무, 무슨 일...??”
‘뒤를 돌아봐.’
“응...?
아리엘의 말에 앤젤라의 고개가 천천히 돌아갔다.
그리곤 제 시야에 보이는 먼 거리의 나무 사이로 한 인영... 아니 수많은 인원들이 선명하게 담겼다.
그 수많은 이들의 무리 가운데에는 그토록 걱정했던 레기가 누군가의 품에 안겨 다가오고 있었고 그 누군가는 레기처럼 빛나는 하얀 은발을 흩날리며 걸어오고 있었다.
앤젤라의 눈이 커졌다.
“고... 고모?”
“앤젤라!!!”
“!!!!”
꿈인지 생시인지 분간이 가지 않는 시선으로 멍하니 제게로 다가오는 리사를 바라본 앤젤라는 자신을 정확히 부르는 제 고모의 목소리에 눈물이 범벅이 된 얼굴로 다급히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리곤 두 팔을 벌려 리사를 향해 달렸다.
“고모!!!!”
“앤젤라!! 무사했구나!!”
레기를 옆 기사에게 맡기며 단단하게 앤젤라를 안아 올린 리사는 사랑스런 조카의 머리카락을 쓰다듬어주며 그녀의 진정을 도왔다.
“쉬이, 앤젤라. 고모 여기 있어.”
“흑... 고모... 무서웠어요...”
“그래그래, 고모가 지켜줄 테니까 이제 울지 마.”
“으으... 허엉..!”
리사의 눈이 안쓰럽게 휘어진 것과 동시에 짙은 살기가 피어올랐다.
이 어린 것이 저런 위험한 상황 속에 노출이 되었다는 것에 분노가 서리기도 했지만 이내 천천히 표정을 숨겼다.
“앤젤라, 엄마와 아빠도 고모가 찾을 테니 넌 여기에서 기다리렴.”
“고, 고모 가지마세요!”
“2기사단들이 너와 레기를 지켜줄 거야. 에드와 플로리아도 찾아야한다며.”
“하... 하지만...”
“고모가 얼른 찾아올게. 약속해.”
“..... 고모...”
앤젤라는 리사의 옷을 꾹 쥐며 불안한 눈동자로 리사의 푸른 눈을 바라보았다.
그녀가 무척이나 강한 기사라는 것도 알고 있었고 이엔도 리사를 대련으로도 이기기 버겁다고 했던 것도 알고 있었다.
그러나 불안했다.
누군가를 잃을지도 모른다는 공포가 여전히 앤젤라의 가슴에 남아있던 탓이었다.
리사는 그런 앤젤라의 이마에 입을 맞춰주며 그녀의 진정을 도왔다.
갑자기 하늘 위에서 터지는 마력들만이 아니었다면 말이다.
쿠과과과광!!
“...!!!”
“꺅!!”
앤젤라는 머리 위, 하늘에서 터지는 마력의 충돌에 눈을 질끈 감고 리사의 품에 고개를 묻었다.
리사는 그런 앤젤라를 꼭 껴안으며 하늘 위를 바라보았고 레기 또한 놀란 눈으로 고개를 올렸다.
레기의 푸른 눈동자에 경악이 실리며 이내 다급히 외쳤다.
“어머니!!”
그의 한 마디에 앤젤라와 리사의 얼굴이 딱딱해졌다.
허공에서 마법을 쏘아내며 전투를 벌이는 것은 세린이었으니까.
그레고리의 거대한 불덩어리가 허공에 있는 세린을 향해 달려들었다.
콰과과광!
끔찍하게 느껴질 정도의 거대한 소리와 함께 불덩어리는 폭발했고 밑에서 그 모습을 목격한 리사와 앤젤라, 레기의 얼굴이 창백해졌다.
“어머니!!”
“엄마!!”
그런 아이들의 애탄 목소리 사이로 폭발에 의한 불길은 점점 거세게 세린을 감쌌다.
그러나 그 불길이 차가운 얼음덩어리로 변해가며 조각조각이 난 것은 순식간의 일이었다.
쩌적!!
쩌저저적!!
팡!!
조각조각이 난 얼음들이 터지며 땅으로 처참하게 떨어졌고 떨어지는 얼음조각 사이로 세린의 연두색 눈동자가 올곧게 그레고리를 담았다.
“불 하나로는 어림도 없어.”
“... 역시 이정도로도 안 죽는군.”
그레고리가 침음을 내뱉으며 굳게 서 있는 세린을 바라보았다.
세린은 그런 그레고리를 바라보며 천천히 입술을 꾹 깨물었다.
마력이 한계인 것은 아니었으나 아이들과 이엔, 그리고 제이의 행방이 걱정이 되어 미칠 것 같았다.
빨리 그를 막아내고 아이들을 찾아야 했다.
그러나 어떻게?
아니, 애초에 그를 죽여야 하는지, 숨이 붙은 채 붙잡아야 하는지 결정도 하지 못했다.
명확하게 직시하면 과거의 사건에서 그의 잘못이란 없었으니까.
그저 마탑의 음모에 빠져 반란을 일으켜버린 욕심 많은 아버지를 둔 죄였으니까.
‘하지만... 현실을 직시해야 해.’
지금 저 사람은 제 자식들을 죽이려고 하고 있으며 무엇보다 자신을 고통스럽게 만드는 것을 목표로 하고 있다.
망설일 시간도 사치인 시기라는 의미였다.
세린은 손에 굳게 쥔 장총을 빠르게 그레고리를 향해 조준했다.
‘그래, 만약 이 사람을 여기서 놓친다면... 우리 아이들은 또 다시 위험해져. 절대 그렇게 만들 수 없어!’
세린의 가슴이 요동쳤다.
그때, 그 시절의 아리엘의 마음으로.
자신의 아이들을 위협하는 모든 것들로부터 아이들을 반드시 지키겠다는 마음으로.
굳게 마음을 먹은 듯한 세린의 눈동자 속에서는 짙은 살기가 천천히 피어올랐다.
그레고리는 그 눈을 바라보며 혀를 낮게 찼다.
“쳇...”
‘저 표정을 보니 더 거리낄 것이 없다는 것이겠지. 위험하군.’ 한 순간에 제 위기를 눈치 챈 그레고리는 조금의 망설임과 고민도 없이 바닥을 향해 손을 뻗었다.
그의 손아래에는 아이들과 리사가 있었으니까.
그의 그러한 모습과 리사와 아이들을 발견한 세린의 얼굴이 창백해졌다.
다급히 총을 거둔 세린이 빠르게 그레고리에게서 아이들의 사이를 막으려 달려들었다.
“안 돼!!!”
“어머니!”
“엄마!!”
아이들의 외침과 동시에 그레고리의 손에서 또 다시 하얀 빛이 터졌다.
새하얀 빛의 기둥이 무서운 속도로 아이들을 향해 내리쳐졌고 레기와 앤젤라는 두 눈을 질끈 감았다.
리사는 그 마법을 두 눈으로 직시하며 다급히 아이들을 감싸 안았고 제 마력을 운용해 또 한 겹 아이들의 주변을 감쌌다.
달려오는 세린보다 마법이 자신들을 직격하는 것이 먼저일 것이었다.
아이들을 감싸는 리사의 굳은 등을 절망하며 바라보는 세린의 눈에 눈물이 고였다.
‘이대로는 늦어...!!’
그러나 마법은 그 속도를 멈추지 않았고 이내 강한 폭발을 일으키며 대지를 갈랐다.
콰과과과광!!!
“앤젤라!!! 레기!!!! 리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