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70화. 처음 마주한
눈앞에서 세 아이들과 이엔이 탄 마차가 폭발하는 모습에 제이의 가슴이 쿵 떨어졌고 그 다음으로 그의 숨을 멈추게 만든 것은 마차의 폭발에 휘말리면서 사라져버린 세린에 의해서였다.
“큭..!!!!”
“세린!!”
마법에 의한 것인지 그 자리에서 빛과 함께 사라진 세린으로 인해 제이의 호흡이 일순 멈췄다.
폭발에 잠깐 휘말렸으니 상처도 생겼을 것이 분명했다.
‘세린...!! 레기, 에드, 앤젤라....!!’
창백해진 얼굴로 플로리아를 안고 있던 제이가 황급히 폭발의 잔해가 가득한 마차를 향해 달려갔다.
여기저기 흩어진 마차의 부속 속에서 다행스럽게도 아이들과 이엔의 모습은 보이지 않았다.
‘아이들은 무사해...’
그러나 세린은?
아이들과 이엔은 어디로 간 거지?
아니, 우선....
제이의 시선이 천천히 마법이 날아온 방향으로 시선을 돌렸다.
‘저것들을 먼저 처리해야겠어.’
제 아이들과 세린에게 이런 짓을 한 그 인간을 살려둘 마음은 추호도 없었다.
제이는 품에 지니고 있던 단검을 손에 쥔 후 플로리아를 한 팔로 안으며 그 방향을 향해 몸을 돌렸다.
“.....”
당장에라도 튀어나가 모조리 베어내고 싶었으나 제 품에 얌전히 안겨있는 막내딸이 걱정되었다.
그러나 주변을 살피는 눈은 매섭기 그지없었다.
‘몇 명이지? 지금 숨어있는 자들의 수는?’
숨어있는 인원을 천천히 파악한 제이의 눈이 일순 가늘어졌다.
‘한 명이라고? 마차를 덮칠 정도의 계획을 품은 사람이?’
한 명의 마력밖에 느껴지지 않음에 저절로 의문스러운 마음이 피어올랐다.
제이는 단검을 들어 올리며 나직이 읊조렸다.
“나와라.”
“......”
“고작 너 한 명을 내가 죽이지 못 할 거라고 생각하는 것이냐.”
“....”
제이의 말이 끝나자 풀숲이 천천히 갈라지며 한 사람이 걸어 나왔다.
부스럭
“.....!”
제이의 얼굴이 빳빳해져갔다.
“넌....”
굳어버린 아름다운 얼굴에 천천히 분노가 서렸고 이내 제이는 살벌한 기세를 흩뿌리며 입을 열었다.
로브를 깊게 눌러쓴 얼굴의 주변에 화상이 누구인지 바로 인식한 탓이었다.
“마을에서 마주친 불쾌한 놈이었군... 무슨 이유로 이런 짓을 일으킨 것이냐.”
“당신에게 볼일은 없다고 생각했지만 마음이 바뀌었다.”
“뭐라?”
“너도 그 여인도... 그리고 너희들의 아이들도 모두 불타죽을 운명이라는 뜻이다.”
“!!!”
사내의 말이 끝나자마자 붉게 타오르는 불이 제이와 플로리아를 감쌌다.
“큭....!”
제이는 얼굴이 일그러트리며 다급히 플로리아를 제 품 안에 감싸 안았다.
살을 찢을 만큼이나 날카로운 눈으로 사내를 바라본 제이는 점점 자신에게로 좁혀지는 불을 관찰했다.
마법으로 만들어진 불은 자신의 힘으로 꺼질리 만무했다.
‘그렇다면...’
본체를 노리는 수밖에 없다는 것인데...
제이는 뜨거운 열기가 확 몰아치는 기세에 플로리아를 제 옷 안으로 감싸며 생각했다.
‘이대로는 리아가 다친다. 불에서 멀어져야 해.’
플로리아를 안은 채로는 마법사를 죽이기 어렵다는 것을 인지한 제이는 입술을 꾹 다물었다.
그리곤 망설임 없는 발걸음으로 불을 뚫고 마법사의 반대편으로 달렸다.
눈에 보이기 힘들만큼 빠르게 사라져가는 제이를 바라보던 마법사는, 아니 그레고리는 낮게 혀를 차며 중얼거렸다.
“쥐새끼 같은 놈...”
그리곤 그 자리에서 워프했다.
아내가 제 수중에 있으니 두고 멀리 떠나지는 않을 것이 분명했다.
제 기지에 있을 부하들에게 사라진 아이들을 찾아오라고 명령하며 찾아도 늦지는 않을 것이었다.
*
제이는 우거진 풀숲에 조심스럽게 플로리아를 눕혔다.
그 엉망진창이 된 상황 속에서 언제 잠이 든 것인지는 모르겠으나 어쩌면 잠들은 것이 다행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세린에게서 멀어질 수 없어... 아이들과 그녀를 찾아야 해.’
하지만 어떻게?
아무리 생각해도 혼자의 힘으로는 무리였다.
세 아이들이 무사한지에서부터 함께 있는지 마저도 알 수 없으니 걱정이 되었다.
‘이엔은? 그는 어디에 있지?’
어둠술사인 이엔이라도 옆에 있었다면 보다 수월했을지도 몰랐다.
그러나 마차의 폭발에 이엔도 휩쓸린 것을 두 눈으로 보았으니... 그가 무사한지 알 수 없었다.
어쩌면 이엔이 아이들을 모두 데리고 안전하게 그림자 안으로 숨었을 지도 모른다는 가능성도 있었다.
‘하지만 예측일 뿐이다. 일단 세린을 먼저 구출해야... 아니, 아이들을 먼저...’
지끈 거리는 머리를 부여잡고 제이는 낮게 심호흡을 했다.
“후.....”
애초에 플로리아를 데리고 세린을 되찾으러가거나 아이들을 찾으러 이동하는 것 자체가 무리였다.
제이는 이 작은 아이를 상처 없이 지킬 것이라 감히 장담을 하지도 못하는 제 자신이 한심해 죽을 것 같았다.
그런 제이의 발치에 거대한 그림자가 나타나는 것은 순식간이었다.
휘리릭!
제이의 눈이 단번에 날카로워지며 그의 날카로운 단검이 한 인영의 목에 날을 세웠고 인영은 그런 그를 다급히 붙들어 세웠다.
“대공님!!”
“....!!”
제이의 눈동자에 짙은 검은 색의 머리카락이 흩날렸다.
이엔이었다.
“이엔...?”
“무사하셨습니까!”
이엔의 눈이 제이를 발견하고 짙은 안심을 담았고 이내 자고 있는 플로리아까지 눈에 들어오자 안색이 환해졌다.
“플로리아님까지 무사하시군요... 다행입니다!”
“후... 너야말로 무사했구나. 아이들은 함께 있는 것이냐.”
“....!”
제이의 물음에 이엔의 얼굴이 딱딱하게 굳었다.
그런 그의 표정을 마주하던 제이의 얼굴도 창백하게 질려갔다.
“아이들과 함께 있는 것이 아니라고?”
“에드님은 저와 함께 계십니다. 하지만... 레기님과 앤젤라님은 흩어져버려서...”
“마차에서 네가 도망을 도운 것이 아니었던 것이냐.”
“아니었습니다. 마차가 폭발하기 전에 누군가의 마력이 닿았습니다... 그 마력이 저희를 이동시켜버려서...”
“마력? 아니, 그보다 에드는 어디에 있지?”
“지금 제 그림자 속에 숨어계십니다.”
“우선은 더 급한 문제부터 해결해야겠다. 그 일은 추후에 다시 이야기해보지.”
“네.”
“세린이 아이들의 마차를 날려버린 마법사가 데려간 듯 해. 그러니 그녀를 내가 찾으러 가는 동안 너는 앤젤라와 레기를 찾아주길 바란다.”
제이의 말에 이엔의 낯이 창백해졌다.
“세린님이...!”
“바로 죽이려는 기색은 아니었어. 그래도 최대한 빨리 그녀를 찾아야하니 플로리아를 부탁한다.”
“대공님, 혼자서는 위험합니다.”
“근처에 2기사단이 있을 것이다. 지금쯤 이 곳에 들어서서 토벌을 하고 있을지도 모르지.”
“...!!!”
“아이들을 모두 찾거든, 못 찾거든 그 아이를 불러.”
제이는 그 말을 끝으로 빠르게 숲 안으로 사라졌다.
*
이엔은 그런 제이의 뒷모습을 바라보다가 이내 부드럽게 플로리아를 안으려 손을 뻗었다.
푹!!
“!!!!”
날카롭게 벼려진 화살촉이 그의 주변에 박히지만 않았다면 그녀와 닿을 수 있었을 것이었다.
이엔의 금빛 눈동자가 날카롭게 나무 위를 바라보았다.
‘기척이 없었어... 아니, 멍청하게 기척을 읽지 못했어...’
제 그림자 속에 에드를 숨겨놓고 있던 터라 신경이 그곳으로 쏠려 주변을 면밀히 못 본 제 탓이었다.
이엔은 어느새 자신을 과녁으로 삼은 수많은 화살촉을 바라보았다.
‘우선 녀석들을 모두 베어내야겠어....’
황금을 뿌려 놓은 듯 한 눈동자가 가늘어졌고 순식간에 이채를 띄었다.
팡!
화살이 쏘아지는 소리가 들리자마자 뒤로 빠르게 물러나 화살들을 모두 피한 이엔은 물러난 만큼 플로리아와 멀어져버렸다.
그 사실을 인지하고 있던 이엔은 입술을 꾹 깨물었고 이내 손이 보이지 않을 속도로 검을 꺼내어 나무 위로 날아올랐다.
여기서 더 멀어졌다가는 다시 플로리아를 잃어버릴지도 몰라 불안했다.
파앗!!
서걱!!!!
무언가를 베어낸 듯한 소리가 들린 후 나무 아래로 무언가가 후두둑 떨어졌다.
이엔은 그 소음과 함께 나무의 아래로 부드럽게 착지했고 이내 플로리아가 있던 방향으로 달렸다.
“리아님!!!”
그의 달리던 다리가 굳어 버렸다.
아름다운 얼굴로 만만치 않게 창백했고 딱딱하게 굳어져있었다.
“리아... 님?”
이엔이 바라보는 시야 속에서 플로리아의 모습은 그 어디에도 없었다.
*
제이는 아까 세린과 아이들이 있었던 그 장소를 향해 달리고 또 달렸다.
숨이 거칠어지지 않았지만 가슴에 닿아오는 온도는 뜨거웠다.
그녀가 걱정이 되어 미칠 것 같았고 어디 다친 곳이라도 있을 까봐 심장이 떨려왔다.
‘무사해야 해.’
그의 화사한 눈이 짙은 고통을 담은 그 때 그의 주변에서부터 강한 폭발이 일어났다.
콰과과과광!!!
“!!!”
제이의 눈동자가 바로 제게서 멀리 떨어져있지 않은 곳을 향해 눈을 돌렸고 강하게 빛을 내며 터지는 마력의 회오리를 발견할 수 있었다.
마력의 회오리를 만들어낸 마력의 빛이 누군가의 눈동자가 생각날 만큼 싱그러웠다.
그 사실을 알아차리자마자 제이는 창백하게 질린 얼굴로 빠르게 폭발이 일어난 곳을 향해 달렸다.
‘세린의 마력이다! 그녀에게 무슨 일이 생긴 것인가...!’
빨라지는 발이 금방 목적지에 도달할 수 있었다.
강하게 휘몰아친 마력으로 주변의 나무들이 모두 부수어져 있었고 깊게 파인 땅과 돌의 잔해가 어지러웠다.
엉망이 된 주변에 발을 디디자마자 제이의 머리 위로 하얀 마력의 덩어리와 연두색 마력의 덩어리가 서로를 향해 달려들었다.
제이는 그 마력들의 모습에 다급히 몸을 숙였고 이내 방대한 마력들이 충돌하며 강한 폭발을 일으켰다.
콰과과광!!
“큭...!”
그 매섭고 엄청난 기세에 제이가 눈을 찌푸리며 고개를 들었다.
저 마력들에 맞았다가는 신체의 일부 쪼가리도 찾지 못할 것이 분명했다.
마법사들의 전투 흔적을 질린 기색으로 바라본 제이는 제 시야 속에서 이내 한 인영을 발견할 수 있었다.
허리 아래로 찰랑이는 분홍빛 머리카락과 그토록 자신이 사랑한 아름다운 연두색 눈동자.
하얀 손에 쥐여진 기다란 장총.
그런 그녀의 주변을 단단히 감싼 연두색의 마력.
제이의 눈동자가 천천히 커졌다.
“세린...?”
제이로서는 처음 본..... 분노로 가득한 세린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