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69화. 리아의 탐험
“우웅....”
양팔을 들어 올리며 앙증맞게 기지개를 핀 플로리아는 자리를 말끔히 털고 일어나며 제 엉덩이를 두들겼다.
“잉...! 엉덩이 아야했어...!”
장시간 차가운 숲에서 누워있느라 엉덩이가 베긴 듯 했다.
플로리아는 제 엉덩이를 쓸며 주변을 둘러보기 시작했다.
“웅?”
울창한 숲길 옆으로 기묘하게 휘어진 나무들이 수를 셀 수 없을 정도로 많았고 나무에 달린 나뭇잎들로 인해 햇빛이 조금밖에 들어오지 않아 주변이 어둑했다.
제이가 자신을 안아주고 잠깐 어지러운 감각과 함께 잠이 들었던 플로리아는 제 주변에 제이와 세린이 없자 입술을 삐죽였다.
“엄마...? 엄마 리아 여깄어여!”
애타게 불렀건만 세린의 대답은 없었다.
리아는 주변에 아무도 있지 않음을 인식하고 중얼중얼 말했다.
“엄마 없뎌... 엄마 어디갔지...?”
아빠가 혹시 제 엄마를 데리고 도망간 것은 아닐지 차오르는 걱정에 플로리아는 망설이지 않고 자리를 이동했다. 빨리 엄마를 찾아 자신이 지켜내야 했다.
“아빠 미워!”
버릇처럼 내뱉는 말과 함께 열심히 걸어 나가는 걸음이 힘차기 그지없었다. 작은 발걸음이 빠르지는 않지만 부지런히 걷는 기세가 쾌활했다.
그러던 중 조그마한 발을 곧게 뻗어 걸어 나가는 플로리아의 발이 보랏빛이 도는 아름다운 버섯에 의해 멈췄다. 누가보아도 먹으면 죽을 것만 같이 아름다운 자태였다.
“우와...!”
무척이나 예쁘게 생긴 버섯의 형태에 플로리아의 입가에 침이 고였다. 꼬들꼬들한 버섯의 식감을 무척이나 좋아하는 플로리아의 음식취향으로서는 어쩔 수 없는 생리현상이었다.
‘맛있겠다...!’
반짝이는 눈으로 몸을 숙이며 버섯을 향해 고개를 기울인 플로리아의 머리 위로 두 인영이 빠르게 지나갔다.
“여기로 간 게 맞을까?”
“다른 방향은 다른 애들이 갔으니 우린 이쪽으로 가보기만 하면 된다고. 빨리 찾아!”
“알았다니까 정말...”
사내들의 멀어지는 음성에 뒤를 휙 돌아본 플로리아는 사라져가는 사내들을 고개를 갸웃하며 바라보다가 이내 버섯을 바라보았다.
그리곤 천천히 머릿속에 들어오는 테오 삼촌의 교육을 되짚어 보았다.
‘리아, 아무리 맛이 있어 보인다고 하여도 바닥에 있는 모든 것들은 먹어서는 안 된단다.’
‘힝... 하지만 리아는 배고파여어...’
‘요리가 되지 않은 음식을 먹었다가 탈이 난다면 더 맛있는 음식을 먹을 수 없어지지.’
‘그건 싫은데...’
‘그래, 그러니 먹고 싶은 것이 있거든 이 삼촌에게 말하거라.’
‘웅?’
‘어떤 음식이든 네 앞으로 모두 대령해줄테니까.’
‘꺄아! 삼촌 최고!’
그 기억을 끝으로 되짚기가 끝나자 리아는 망설임 없이 자리에서 일어났다.
“너 먹으면 삼촌이 더 맛있는 거 못 먹는다고 했더...”
그리곤 작은 손을 뻗어 버섯을 향해 손을 흔들었다.
“안녕 버섯아!”
친구든, 가족이든, 하녀든 인사를 꼭 나눠야 한다는 세린의 교육 덕분에 생긴 귀여운 모습이었다. 귀여운 모습 한 번 보여준 리아는 신나는 발걸음으로 앞을 향해 걸어 나가기 시작했다.
엄마를 찾아야한다는 목표가 1번이고 주변을 둘러보는 것이 2번이 되었던지라 걸음은 빨랐으나 주변을 살피는 눈은 바쁘게 움직였다.
조금 멀리까지 걸어온 듯한 제 모습에 플로리아가 자리에서 멈췄다. 그리곤 털썩 자리에 주저앉아 조금씩 아프기 시작한 제 다리를 주무르며 주변을 살폈다.
“힝... 힘들어... 엄마 어딨지?”
입술을 삐죽이며 힘든 티를 내기 시작한 플로리아의 귀로 커다란 소음이 들렸다.
콰과과광!!!
땅을 울리는 거대한 폭발의 소리에 플로리아의 눈이 동그랗게 떠졌다. 키가 작아 멀리서 터진 큰 폭발의 위치와 그 정도를 눈에 담지 못한 플로리아는 주변을 휘휘 둘러보며 난처하게 얼굴을 일그러트렸다.
“웅...? 레인 삼촌이 왔나...?”
평소 가끔씩, 세린과 제이의 다정한 모습이 보이거든 레인의 주변에서 이런 비슷한 종류의 소음이 들리고는 했다는 것을 기억한 플로리아는 주변에 로레인이 있는지부터 확인하기 시작했다.
그러나 당연스럽게도 주변을 아무리 열심히 둘러본다 한들 그의 모습은 보이지 않을 것이었다.
“없네?? 어딨지??”
플로리아의 입술이 저절로 삐죽여졌다. 그러던 그때였다. 갑작스런 소음들이 플로리아의 귀에 들린 것이었다.
“찾았다!!!”
“잡아!!”
“저 쪽!! 저 쪽으로 간다!!”
“웅...?”
점점 자신에게로 가까워지는 소음의 근원지들은 앉아있는 플로리아를 발견하지 못하고 빠르게 지나쳤다. 제일 먼저 그녀를 지나친 인영은 남색의 머리카락을 휘날리는 제 첫째 오빠였다.
“웅?? 레기 오빠??”
놀란 플로리아의 앞으로 두 사내들이 거대한 덩치를 움직여 레기를 쫓았다.
“야이씨!! 애가 무슨 저렇게 빨라?!”
“잔말 말고 빨리 잡기나 해!!”
소란스런 사내와 오빠의 등장과 빠른 퇴장에 플로리아는 자리에서 벌떡 일어나 멀어지는 그들을 바라보았다.
“..... 숨바꼭질?”
엄마가 없어진 때에 숨바꼭질이나 하다니... 오빠도 많이 심심했구나?
라는 아이다운 생각을 한 플로리아는 고개를 휘휘 저으며 그들이 사라진 방향으로 걸어갔다. 그래도 이 어두운 곳에서 반가운 얼굴을 마주하니 저절로 의지가 되었다.
‘오빠한테 엄마 찾으러 가자고 해야지!’
신나는 계획을 세우며 즐겁게 웃는 플로리아의 미소가 눈부셨다. 빨리 가족들을 찾고 맛있는 밥을 먹으러 가고 싶었다.
하지만 이제 막 5살이 된 작은 소녀의 걸음은 빠르게 지쳐갔다. 플로리아의 이마에 가득 맺힌 땀방울이 조금씩 땅을 적셨고 플로리아는 결국 자리에 털썩 주저앉았다.
“힘들어어어...! 엄마아... 리아 엄마 보고 싶어여...”
찾아도 찾아도 보이지 않는 엄마의 모습에 눈물이 저절로 고였다.
“아빠 미워.... 힝...”
이유도 없이 제이를 탓하기도 하면서 말이다. 그러던 중 이내 플로리아의 눈이 커지며 다급히 제 옷을 바라보았다. 가족들과 함께 여행을 떠나기 전, 로레인이 해준 말이 생각나서였다.
로레인은 제 품에 리아를 안아주며 금색의 자수가 박힌 단추 하나를 플로리아에게 보여주었다.
‘리아, 이것봐봐. 이게 뭘까?’
‘웅? 단추여!’
리아의 대답에 그의 미소가 짙어졌다. 꽃과 보석에 견줄 수 없을 만큼 아름다운 미소였다.
‘맞았어! 리아는 역시 똑똑하구나?’
‘히히히 리아 똑똑해!’
‘그래그래, 이 단추는 이제 리아꺼야.’
‘웅? 리아꺼?’
‘그래, 리아꺼.’
리아를 바라보는 로레인의 눈이 아름답게 빛났다. 그는 부드러운 손길로 플로리아의 옷이 단추를 달며 말했다.
‘이건 마법단추야. 만약 삼촌이 보고 싶거나 우리 리아가 다치거나 위험해지면 이 단추에 ’삼촌 사랑해요.‘라고 부르면 된단다.’
‘웅? 삼촌 사랑해요?’
‘맞아, 그렇게! 그게 주문이란다 리아. 그렇게 불러야지 이 단추가 마법을 부리면서 우리 리아를 지켜줄 수 있어.’
‘우와! 마법!’
‘하하하 마법을 좋아하는 건 세린 어릴 때와 똑 닮았구나.’
살포시 웃는 로레인의 미소가 플로리아의 귀로 부드럽게 스며들었다.
‘알았지 리아? 삼촌이 보고 싶거나 리아가 힘든 일이 생기면 바로 주문을 외우렴.’
‘네에!!’
‘주문이 뭐라고?’
‘삼촌 사랑해여!!’
‘착하네.’
그 말을 끝으로 로레인의 부드러운 입술이 리아의 뺨에 닿았었다.
그 기억을 떠올리자마자 갑작스럽게도 로레인이 무척이나 보고 싶었다. 자신을 안아주는 따뜻한 손길과 부드러운 말투, 아름다운 미소까지 너무도 그리워졌다.
플로리아는 제 옷의 단추를 살펴보다가 이내 로레인이 직접 달아준 마법 단추를 잡았다.
“찾았다!”
그 단추를 이리 저리 살펴보던 플로리아는 주문을 되짚어보며 잠시 생각에 빠지다가 이내 밝은 목소리로 외쳤다.
“삼촌 사랑해여!!”
정말로 사랑해서 부른 말이었고 그 말은 단추 속의 마력을 자극시켜 마법을 발동했다.
화아아악!
플로리아의 주변을 가득 메운 푸른빛들이 이내 플로리아를 부드럽게 감쌌고 그 빛들과 함께 플로리아가 자리에서 사라졌다.
워프였다. 눈이 부실 만큼 빛나는 푸른빛들에 플로리아가 제 두 눈을 감싸며 외쳤다.
“으아! 눈 아포! 이거 눈 아포!”
발을 동동 구르며 말하는 톤이 영락없는 어린 아이였다.
앙증맞은 발동작에 맞춰 플로리아가 버릇처럼 외쳤다.
“아빠 미워! 아빠 미워어!”
전혀 잘못하지 않은 제이를 탓하면서 말이다. 그러던 그때 하나의 부드러운 음성이 플로리아의 귀로 스며들었다.
“리아?”
“웅...?”
“리아... 이게 무슨!”
낯이 익은 목소리가 한 두 명이 아니라서 플로리아는 다급히 제 손을 내렸다. 그리곤 아름답게 빛나는 분홍빛 머리카락들을 발견했다.
리아가 이동된 곳은 동남북 제국의 황성이자 플로리아의 할아버지와 삼촌들이 지내는 친가의 집이었고 더 세밀히 말하자면 그들의 업무를 보는 집무실의 탁자 위였다.
탁자 위에 대범하니 앉아있는 리아를 정면에서 바라보는 사람은 제국의 황제라 칭해지는 테오 레바스찬이었고, 그런 그녀의 양 옆에 앉아 있는 사람은 트레일 레바스찬, 그리고 로레인 레바스찬이었다.
마지막으로 그녀의 뒤에 앉아 테오를 마주하고 있었던 에드윅 레바스찬이었고 말이다. 그들의 가운데서 플로리아는 두 눈을 동그랗게 떴다가 이내 누구보다 환하게 웃음을 지었다.
“삼초오온!!”
양 팔을 벌리며 테오를 향해 손을 뻗은 플로리아의 미소가 너무도 사랑스러웠기에 테오는 얼떨떨하면서도 귀엽다는 듯 그녀를 안아 올렸다.
“리아? 갑자기... 여기를 어떻게 온 거냐.”
“마법 단추를 달아줬었는데... 그걸 사용했나 봅니다. 리아, 무슨 일이라도 있었니? 어디 다친 거야?”
로레인이 부드럽게 리아의 손을 잡아주며 걱정스레 물었다. 리아는 그런 로레인을 반갑게 바라보며 환히 웃었고 이내 태평하게 말했다.
“엄마가 숲에서 막 없어졌어여!”
“....?”
“아빠도 없어졌고 이엔이랑 에드 오빠랑 앤젤라 언니도 없어여!”
“없어졌다고? 레기는?”
“레기 오빠는 막 어... 큰 아저씨들이랑 숨바꼭질 했어여!”
“...!!”
태평스럽지만은 않은 내용에 그들의 얼굴이 굳어졌다.
어쩌다보니 최고의 지원군을 부른 플로리아였고 그녀의 짧은 탐험은 금방 끝이 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