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두 번째 딸로 태어났습니다-168화 (167/218)
  • 168화. 세린과 낯설지 않은 자

    “엄마는 리아 꺼!!”

    “그만 할 때도 된 것 같구나. 엄마는 이 아빠의 것이란다.”

    “아니에여!! 리아꺼!!”

    세린은 플로리아를 안아주며 여전히 말다툼을 하는 제이를 다정히 바라보았다.

    말은 저렇게 투덜거리듯 해도 플로리아를 안아주는 손길은 부드럽기 그지없음을 아는 탓이었다.

    반짝이는 은발에서부터 푸른 하늘을 닮은 눈동자까지, 닮지 않은 구석이 없는 부녀의 모습이 무척이나 귀여웠다.

    “엄마, 리아 안아됴요...”

    “아빠가 안아주마.”

    “아니에여!! 엄마!!”

    “엄마는 쉬어야해. 그리고 리아, 넌 지금 많이 커져서 엄마가 안아주기 힘들 것이란다.”

    “익!! 살 안 쪘어여!!”

    “살 쪘다는 말이 아니었는데 왜 발끈한 것이지?”

    그 우스꽝스러운 대화에 결국 세린의 웃음이 맑은 소리를 내며 터졌다.

    “아하하하!!”

    그와 아이들을 만나고 하루도 이렇게 웃지 않은 날이 없었다.

    그 사실이 무척이나 행복했고 너무도 즐거웠다.

    세린의 웃음에 제이의 푸른 눈이 곱게 휘었다.

    언제나 저렇게 웃어주기를 바라던 그였던지라 저 맑은 웃음이 사랑스럽기만 했다.

    다그닥 다그닥

    마차의 힘찬 발걸음 소리와 함께 주변의 풍경에 울창한 나무들을 담았다.

    세린은 뒤에서 자신들의 마차를 따라 달려오는 아이들의 마차를 바라보며 다정히 웃었다.

    “이엔을 힘들게 하지는 않겠죠?”

    “아이들이 이엔의 말을 잘 듣지 않습니까. 걱정하지마세요.”

    “이엔이 너무 아이들을 예쁘다고만 해줘서 고집을 부릴까 걱정이에요.”

    “레기가 함께 있으니 그러지 않겠지요. 예의를 무척이나 중시하는 아이니까요.”

    “음... 레기가 있으니 든든하기는 하네요.”

    세린의 눈가가 곱게 휘었다.

    세쌍둥이 중 첫째 레기는 첫째답게 의젓했고 예의도 바르게 커갔다.

    스스로 하고자 하는 것에 노력과 시간을 아끼지 않았고 몇 분의 차이로 태어난 동생들을 제 몸보다 아끼는 다정한 아이였다.

    그런 첫째를 생각하자 세린의 미소가 짙어졌다.

    제이를 닮아서 그런지 의젓한 레기가 그녀의 눈에는 너무도 사랑스러운 탓이었다.

    그러던 그때.

    울창한 숲에서 고요히 피어오르는 살기에 세린과 제이의 눈이 다급히 마차 밖을 향했다.

    “..... 제이...”

    “네, 세린.”

    “이건...”

    “쉬.... 진정 하세요.”

    제이는 날카롭게 떠진 눈으로 마차 밖을 둘러보았다.

    키가 큰 나무들의 밑은 어둑했고 물씬 피어오르는 살기는 한 두 사람의 것이 아니었다.

    제이는 다급히 뒤편에서 따라오는 이엔과 아이들의 마차를 살펴보았고 이내 플로리아를 제 품에서 내려놓으며 말했다.

    “제가 나가보겠습니다.”

    “네? 하지만...!”

    세린이 다급히 제이를 말리려 자리에서 일어나려는 때에 나무들 사이로 거대한 마력이 휘몰아쳤다.

    마법의 난사보다도 그 마법이 향한 방향이 아이들의 마차라는 것이 문제였고 말이다.

    그 사실을 알아차리자마자 세린과 제이의 얼굴이 단번에 창백해졌다.

    제이는 다급히 플로리아를 품에 꼭 껴안았고 세린은 마차를 박차고 나와 아이들의 마차를 향해 달려갔다.

    ‘안 돼!!’

    세린의 발걸음이 마차에 도달해갈 무렵, 마차는 강한 폭발과 함께 산산조각이 되어 흩어졌다.

    콰과광!!!

    “레기! ! 에드!! 앤젤라!!!!”

    세린의 다급한 외침과 동시에 폭발의 잔해가 그녀를 휩쓸었다.

    “큭!!!”

    “세린!!!”

    제이의 음성을 마지막으로 세린은 몸이 붕 떠오르는 감각과 함께 정신을 잃었다.

    *

    짙은 풀 냄새와 약품이 섞인 듯한 냄새가 세린의 코를 자극했다.

    지독하다고 느껴질 법한 악취와도 같은 냄새에 세린은 천천히 눈을 떴다.

    “윽...”

    아주 천천히 눈을 뜬 세린의 시야에 커다란 등을 가진 로브를 입은 사람이 담겼다.

    낯이 익은 로브의 형태와 언뜻 보이는 밝은 금발에 세린의 눈이 커졌다.

    “깨어났나?”

    목소리마저 낯이 익었다.

    “당신은....”

    “내가 누군지 기억은 나는 건가? 아, 하긴... 며칠이 지났다고 기억을 못하겠어.”

    “......”

    “일단 안심해도 좋아. 아이들이 타고 있던 마차에 죽은 사람은 한 명도 나오지 않았으니까.”

    “!!”

    그의 말에 세린의 눈에 안도가 차올랐고 동시에 사내가 말했다.

    “찾으면 네 눈앞에서 죽일 거지만...”

    “...!!!”

    “벌써부터 겁먹으면 곤란해.”

    사내의 웃음소리가 나직이 들리다가 이내 부드럽게 로브를 벗었다.

    밝은 금발과 함께 짙은 하늘색의 눈동자가 아름답게 빛났고 그의 볼에서부터 턱까지 자리한 깊은 화상 자국이 나타났다.

    세린은 입술을 꾹 깨물고 침을 삼켰고 곧이어 날카로운 눈으로 입을 열었다.

    “당신 누구야... 왜 우리한테 이런 짓을 하는 거지?”

    “내가 누구냐고....”

    사내는 제 머리카락을 매만지며 피식 웃음을 지었다.

    “그 질문을 들었을 때, 내가 하고자 했던 대답들은 엄청 많았지.”

    “.....?”

    “막상 그 상황에 부딪히니 어떤 말을 어디서부터 꺼내야 할지 모르겠군.”

    “무슨 소리를 하는 거야?”

    “이거 미안하게 됐어. 네가 알 수 없는 말들만 내뱉어 버렸네.”

    사내의 시선이 천천히 세린을 향했다.

    그는 느긋한 모습으로 자리에서 일어나 세린에게 다가섰고 이내 밧줄에 양 팔을 묶인 그녀의 작은 손을 거칠게 붙잡았다.

    “꺅!!!”

    탱그랑!

    그리곤 망설임 없이 세린의 손가락에 끼워져 있던 반지를 바닥에 던져버렸다.

    이윽고 밝은 빛과 함께 세린의 머리카락이 분홍빛으로 바뀌었고 새싹처럼 빛나는 싱그러운 연두 빛 눈동자가 나타났다.

    사내의 푸른 눈이 살기를 내비치며 섬뜩하게 휘었다.

    그의 손이 거칠게 세린의 턱을 쥐었고 그녀의 고개를 제 시선에 맞췄다.

    “윽...!!”

    “그래, 이 얼굴이야. 그리고 이 눈...!”

    “으윽...! 이거 놔!”

    “놔 달라고? 웃기지마! 절대 안 될 말이지. 내가 널 찾기 위해서 얼마나 많은 시간을 보냈다고 생각해?”

    “... 뭐?”

    사내의 손아귀에 힘이 실리자 세린의 눈이 고통으로 일그러졌다.

    “으윽!”

    얼굴부근 뿐만이 아니라 상체가 쓰라린 것이 아까 전, 마차의 폭발 잔해로 상처가 난 듯 했다.

    그러나 사내의 손길에 자비는 없었다.

    사내는 지독히도 분노한 목소리로 입을 열어 한 자 한 자 힘을 실어 말했다.

    “내가 누구냐고 했지, 왜 너에게 이런 짓을 하냐고도 물었고.”

    “크윽....!”

    “넌 당연히 날 모르겠지. 하지만 네 아빠라는 새끼나 오빠라는 놈들은 과연 모른다고 할 수 있을까?”

    “.... 뭐??”

    “내 이름은 그레고리다.”

    “.....??”

    사내의 푸른 눈이 번뜩였다.

    “잃어버린 성을 붙이면 내 진짜 이름은 그레고리 페르돈이라고 하지.”

    “...!!!!!”

    세린의 눈에 경악이 서렸고 사내의 눈에는 이채가 서렸다.

    “아는 이름인가 보지?”

    “.... 설마..”

    “설마가 사람을 잡는다지. 네 가족들이 그 이야기를 해줬나보군.”

    그레고리는 피식 웃으며 세린의 턱에서 손을 떼어냈다.

    그리곤 긴 의자에 앉으며 두 손에 깍지를 꼈고 이내 날카롭게 말했다.

    “네 어미가 내 가족들을 마법으로 몰살시켰다는 것을 말해주지 않아도 알겠어.”

    “... 그건 페르돈 후작이 반란을 준비해서 그런 거였어! 죄 없는 내 가족들을 죽이려고 해서 그런 거였다고....!”

    “반란이 왜 일어났다고 생각하지? 그건 다 네 그 잘난 아버지의 통치가 제국을 망쳐가기에 어쩔 수 없이 하신 선택이셨을 것이다.”

    “웃기지마! 그게 어디가 어쩔 수 없는 선택이야? 황제가 되기 위해서 욕심을 낸 것뿐이잖아!”

    “웃기는 생각을 가진 건 내가 아니라 너 같구나.”

    “제대로 그 일에 대해 알고 있기는 한 거야?! 제대로 알고 있다면 절대 그런 말 못해!”

    세린의 말에 그레고리가 자리에서 일어났다.

    “반란이 죄라고 백번을 양보해서 그렇다고 쳐도 내 어머니와 아버지를 잔혹하게 죽인 것에는 아무 변함이 없지.”

    “무슨....!”

    “내 가족들을 몰살시킨 그 황후라는 인간은 이미 죽었으니 어찌할 방법은 없어서 다른 방법을 생각했었다.”

    그레고리의 손이 천천히 세린의 목에 닿았다.

    “그 사람이 자기가 죽더라도 지키려한 그 인간을 죽이는 것.”

    “!!!!”

    “그래야 내 분노가 풀릴 것 같아. 아니, 꼭 그래야만 풀리는 것이다.”

    “.....!!”

    “너도, 네 아이들도 모두 죽이고 말거다.”

    그레고리는 떨리는 세린의 눈동자를 섬뜩하게 바라보다가 말했다.

    지독히도 괴롭고 고통스러운 음성이었다.

    “살을 불태우며 타오르는 불길에서부터 어머니의 손길에 이기지 못해 후작 성을 겨우겨우 탈출했을 때, 네가 과연 그 기분을 알까.”

    “.....”

    “내 눈앞에서 불에 타 죽어가는 어머니를 보았을 때의 그 감각과 기분을 네가 아느냔 말이다.”

    그의 눈이 경멸과 함께 분노에 타들어갔다.

    “한 순간에 그 여자의 마법 하나로 가족과 집, 이름을 잃었다. 그리고 ‘복수’ 그 하나만을 위해서 구르고 엎어지고 죽기직전까지 싸우기를 반복했어. 우습게도... 그 경멸스러운 마법에 재능이 있어 먹고 살기는 수월했지...”

    “.....!!!”

    세린의 눈에 경악이 서렸다.

    ‘그럼 아까 그 마법은...’

    그레고리는 놀라는 세린을 그럴 줄 알았다는 듯이 바라보며 말했다.

    “그 복수가 마침내 다가왔고 말이다.”

    “.....!!!”

    “내 분노를 이해하지 못해도 좋다. 그래도 난 내 기분과 내 복수를 위해서 너와 네 가족들을 전부 죽일 거거든. 그러기 위해 버텨온 것이니까.”

    그레고리가 잔혹하게 웃음을 지은 것과 세린의 눈이 딱딱하게 굳은 것은 동시의 일이었다.

    세린은 입술을 짓씹으며 말했다.

    “그럼 넌 뭘 알아...”

    “.....?”

    “내가 네 아빠로 인해서 저주를 받아 온 몸이 썩어 죽을 뻔 했던 것을 알아?”

    “......”

    “네가 몸이 썩어가는 그 감각을 아냐고.”

    “.....”

    “그런 날 살리기 위해서 내 저주를 가져가 대신 죽어버린 엄마를 마주한 기분을 네가 알아?”

    “......”

    “백번 양보해서 네 분노 이해한다고 쳐.”

    세린의 눈이 분노에 타들어갔다.

    세린은 꽉 묶여있는 제 양 손에 주먹을 꾹 말아 쥐며 감정을 씹어 내뱉듯 말했다.

    “그런데 내 아이들을 왜 건드려.”

    “....!”

    거대한 연두색의 마력이 세린의 주변에 휘몰아쳤다.

    “아이들을 내가 보는 앞에서 죽이겠다고? 웃기지마!”

    “역시 마법사가 맞았군...”

    “내 아이들한테 손대지마!!”

    그레고리가 다급히 손을 움직여 제 몸 주변에 하얀 빛의 막을 세웠고 동시에 세린의 마력이 강하게 폭발을 일으켰다.

    콰과과광!!!!

    온 대지가 흔들리고 주변의 모든 것들을 갈라버릴 만큼 매서운 기세였다.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