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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 번째 딸로 태어났습니다-161화 (160/218)
  • 161화. 리아 (2부 시작)

    하얗고 작은 두 손이 무언가를 집은 듯이 끝이 오므려졌다.

    그 작은 손 위로 분홍빛의 아름다운 머리카락이 흐트러져 있었고 작은 몸집에 알맞은 하얀 드레스가 잔디밭에 퍼졌다.

    10살을 조금 넘어 보이는 소녀는 빈 허공을 바라보며 나직이 입을 열었다.

    “괜찮아요. 아주머니는 무사했어요.”

    긴 속눈썹 밑으로 반짝이는 연두색 눈동자가 슬픈 감정과 동시에 애틋한 감정을 담았다.

    “네, 무사히 낳으셨어요. 시간이 좀 지난 것은 아세요? 그 아기가 벌써 걸어 다니던걸요.”

    소녀의 눈이 환하게 휘었다.

    “맞아요, 아저씨를 닮았어요. 눈은 갈색이었고 머리는 초록색이었어요.”

    소녀의 손에 조금씩 하얀 빛이 담겼다.

    소녀는 부드럽게 웃으며 생기가 넘치는 입술을 열어 말했다.

    “이제 가셔야해요.”

    그 말을 끝으로 무언가가 들린 듯 잠시 침묵하던 소녀가 곧이어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말씀 전해드릴게요. 걱정 말아요. 저 약속은 정말 잘 지키거든요.”

    ‘......’

    “고맙다는 인사만 몇 번째에요? 알겠으니까 이제 가보세요.”

    ‘.....’

    “저도 아저씨를 만나 다행이에요. 이제 편히 쉬시고 다음 생에는 더 오래오래 사셔야 해요?”

    소녀의 말이 끝나자 이윽고 소녀의 손에서부터 눈부신 빛이 터졌다.

    주변을 밝게 비추는 하얀 빛들이 아주 천천히 하늘 위를 향해 올라갔고 소녀는 그 맑은 빛들을 향해 고개를 올렸다.

    사라져가는 빛들을 슬프게 바라본 소녀가 이내 부드럽게 미소를 입가에 담았다.

    소녀의 이름은 앤젤라.

    세린과 제이의 셋째이자 세쌍둥이 중 유일한 딸.

    올해 12살이 된 앤젤라는 천천히 자리에서 일어나 양팔을 위로 올려 기지개를 켰다.

    분홍빛의 구불거리는 머리카락이 허리 밑으로 찰랑였고 싱그러운 연두색 눈동자가 보석처럼 밝게 빛났다.

    동그란 얼굴 속에 있는 이목구비는 세린을 닮아 사랑스러웠다.

    앤젤라는 제 머리카락을 뒤로 넘기며 그 자리를 벗어나 대공저 안으로 들어섰고 이내 제 옆에 붙은 한 영혼의 존재에 밝게 미소를 지었다.

    “언니!”

    ‘그 남자 벌써 인도했니?’

    “네. 이야기를 들어보니까 너무 슬프더라고요.”

    ‘흠?’

    “아기를 낳고 있는 아주머니를 두고 마차에 부딪쳐 영혼만 남게 되셨다고 했어요.”

    ‘.... 안타깝네.’

    “그죠? 아이랑 아주머니의 안부를 찾아드리니 좋아하셨어요. 한이 없어지신 덕분에 더 빨리 신님께 모셔드릴 수 있었어요.”

    ‘잘했어.’

    “헤헤헤”

    앤젤라의 맑은 미소를 바라보는 영혼이 다정히 미소를 지었다.

    그 영혼은 작은 앤젤라의 옆을 항상 지켜주던 아리엘이었다.

    아리엘은 나직이 말했다.

    ‘그럼 이제 나도 보내줄 때 되지 않았어?’ 아리엘의 그 물음에 앤젤라가 입술을 삐죽이며 말했다.

    “언니는 너무 어려워요. 내가 조금 더 연습해야 할 수 있을 것 같아요.”

    ‘그래? 흠... 그럼 할 수 없지 뭐.’ 아리엘은 수긍하는 기색으로 고개를 끄덕이며 이내 앤젤라를 따라 앞으로 걸었다.

    앤젤라는 시간이 지날수록 제가 품고 있는 태초의 마력을 능숙하게 다뤄갔고 대신관의 바램처럼 성녀로서의 역할도 훌륭히 해내가고 있었다.

    가지고 있는 마력의 양도 나이에 비해 매우 방대해서 그 마력들을 다루기까지 오래 걸렸지만 말이다.

    아리엘은 이제는 자신이 없어도 제게 다가오는 영혼들을 달래고 그들을 위로 보낼 수 도 있는 앤젤라가 참 기특했다.

    커갈수록 세린을 빼닮아서 그런지 더욱 사랑스러워지는 앤젤라의 모습이 귀여워서 아리엘은 부드럽게 미소를 지었다.

    언젠가 앤젤라가 더 자라게 된다면 저 작은 손으로 자신을 신의 품으로 인도할 수 있을 것이었다.

    그 날을 생각하면 조금 걱정도 되지만 이제는 그 걱정이 괜한 짓이란 것을 알고 있었다.

    아리엘이 그런 생각에 잠겼을 무렵 앤젤라를 부르는 다정한 목소리가 대공성의 복도를 울렸다.

    “앤젤라~!”

    “에드 오빠!”

    멀리서 앤젤라를 향해 달려오는 이는 바로 에드였다.

    단정히 정리된 하얀 은발을 휘날리며 앤젤라의 앞으로 도착한 에드는 앤젤라처럼 아름답게 빛나는 연두색 눈동자를 곱게 휘어 웃으며 그녀의 손을 잡아주었다.

    “혼자 산책을 갔다 온 거야?”

    “응! 정원에 장미가 피었다고 해서.”

    “오빠랑 같이 가지 그랬어?”

    “오빠들은 수업하는 시간이잖아.”

    제이를 닮은 화사하게 자리 잡은 이목구비가 슬프게 휘었다.

    “그럼 조금만 기다려주지. 나도 앤젤라랑 산책가고 싶었는데...”

    “그럼 조금 있다가 밥 먹고 가면 되지. 나 또 가고 싶었어.”

    “또 거짓말 하는 거지? 너 너무 많이 움직이고 무리하면 밤에 몸 아파서 잠을 못 자잖아.”

    “괜찮은데...”

    “내가 안 괜찮아. 오늘 말고 내일 나랑 산책가자.”

    “칫.. 알겠어.”

    앤젤라보다 한 뼘 더 키가 큰 에드는 앤젤라의 작은 손을 잡아주며 나란히 걸었다.

    동생을 바라보는 눈동자에는 꿀이 담겨있는 듯 달콤하기만 했다.

    늘 사이좋은 남매의 모습이 익숙하면서도 귀여워서 아리엘은 다정히 웃었다.

    “엄마는 어디 계시지?”

    “엄마라면 리아랑 공부하고 계셔. 아까 말씀드렸으니 곧 식당으로 내려 오실거야.”

    “아빠는??”

    “레기 형 검술연습 돕는 중. 아빠랑 형도 곧 오실 거라고 했어.”

    “할머니랑 할아버지는? 고모는? 이엔은?”

    앤젤라가 대공저에 있을 가족들의 행방을 묻자 에드는 제 손가락을 펴며 하나씩 말해나가기 시작했다.

    “할머니, 할아버지는 수도 구경 가셨고, 고모는 황성에서 아직 일하고 계실 시간이야. 이엔은 엄마랑 함께 있었어.”

    “고모 보고 싶다...”

    “고모 오늘 늦을지도 몰라.”

    “응?? 왜??”

    에드의 말이 청천벽력 같은 소식이었는지 앤젤라의 표정에 당황이 가득 서렸다.

    에드는 놀란 얼굴인 앤젤라를 향해 달래듯이 말했다.

    “내일부터 고모 토벌을 떠난다고 했어. 오늘은 토벌준비 때문에 늦는 거고.... 내일부터는 토벌로 북쪽까지 내려가면서 도적이나 산적들을 다 잡아야한다고 한 달 정도 집에 없으셔.”

    “에에.....”

    앤젤라의 눈이 바로 슬프게 휘었다.

    리사를 무척이나 잘 따르는 앤젤라에게는 너무도 슬픈 소식이었다.

    에드는 그런 그녀를 달래주기 위해 호탕하게 말했다.

    “걱정 마! 고모가 황성에서 2번째로 힘이 세서 빨리 끝내고 돌아올 수 있다고 그랬어.”

    “... 정말 그럴까?”

    “고모가 거짓말 하는 걸 봤어?”

    “아니!”

    “그럼 정말인거야. 고모가 빨리 올 테니까 너무 슬퍼하지 마.”

    “.... 응.”

    에드의 위로에 앤젤라가 나직이 웃으며 대답했다.

    “에드, 앤젤라.”

    “응??”

    복도의 끝에서 자신들을 부르는 소리에 고개를 든 쌍둥이들은 멀리서 보이는 엄마와 이엔의 모습에 눈을 빛냈다.

    “엄마!!”

    “어머니!”

    다급히 달려오는 아이들을 부드럽게 감싸 안아주며 세린이 맑게 웃음을 터트렸다.

    “뛰면 위험해. 연습들은 잘 했니?”

    세린의 질문에 에드가 먼저 대답했다.

    “당연하죠! 저 이제 불이랑 물을 동시에 만들 수 있어요!”

    “이야... 대단한데? 에드는 엄마를 닮았나보다!”

    “엄마, 엄마! 저도 마력을 이제 잘 다룰 수 있어요!”

    “앤젤라도 엄마 닮았네~하하하.”

    아이들의 귀여운 자랑에 세린의 미소가 더욱 짙어졌다.

    이엔도 그런 쌍둥이들을 부드럽게 바라보며 웃었고 이내 제 품에서 꿈틀거리는 아이에게 시선을 돌렸다.

    “리아님? 어디 불편하신건가요?”

    “리아도 언니랑 어, 오빠랑 같이같이 손잡을래...”

    “아, 내려드리겠습니다.”

    칭얼거리는 듯 앙증맞은 목소리에 이엔이 제 품에서 작은 소녀를 바닥에 내려주었다.

    부드러운 그의 손길에 바닥에 안착한 작은 소녀는 이제 막 5살이 된 제이와 세린의 막내딸 플로리아 스페라도였다.

    플로리아의 의미는 ‘만개한 꽃’그녀의 애칭은 ‘리아’올해 나이는 5살이며 제이를 닮은 화사한 은발과 이목구비, 그리고 푸른 눈동자가 선명한 사랑스런 아이였다.

    플로리아는 에드와 앤젤라에게 작고 앙증맞은 발을 놀려 두 손을 뻗었다.

    그리고 누구보다 호탕하게 외쳤다.

    “오빠랑 언니 잡아 주꼬야! 자! 쟙아!”

    그 작은 손가락의 움직임과 말투가 숨 막히게 귀여워서 세린과 이엔은 한 손으로 입가를 감췄다.

    웃음을 참는 두 사람을 등지고 손을 뻗은 플로리아의 표정은 비장했다.

    앤젤라와 에드는 그런 동생의 모습에 맑게 웃으며 각 각 한 손으로 그녀를 잡아주었다.

    “고마워 리아. 리아가 오빠 손을 잡아줘서 오빠 안 넘어지겠다.”

    “언니도 안 넘어질 수 있겠어. 고마워 리아.”

    “웅!! 리아가 꼭 잡아쥬께!”

    호탕한 말과는 다르게도 걸음의 보폭은 좁았다.

    작은 발을 아무리 놀려도 12살이 된 쌍둥이들을 따라가기 벅찼기 때문이었다.

    앤잴라와 에드는 그런 플로리아의 보폭에 맞춰 걸음을 좁혔고 이내 알맞은 속도로 동생을 잡아줄 수 있었다.

    곧이어 도착한 식당 앞에서는 두 사람이 기다리고 있었다.

    한 사람은 바로 제이였고 또 한 사람은 제이를 쏙 빼닮은 화사한 얼굴을 한 레기였다.

    레기는 제게로 달려오는 쌍둥이들을 향해 다정히 웃으며 “어서와.” 라고 인사하였고 제이는 손을 뻗어 플로리아를 부드럽게 안아 올렸다.

    “엄마 말씀은 잘 들었니, 리아.”

    “엄마는 리아 더 좋아해요 아빠!”

    제이의 미간이 슬쩍 좁아졌다.

    “만나자마자 엄마경쟁이구나. 리아에게 미안하지만 엄마는 아빠를 더 좋아한단다.”

    “아니에여! 리아를 더더더 좋아 해여!”

    “저런... 너의 꿈을 망가트리고 싶지 않지만 엄마와 아빠는 서로 너무 사랑하고 있고 그래서 결혼까지 했단다.”

    유치하게 느껴질 정도의 경쟁에 세린이 난처하게 웃으며 부녀를 말렸다.

    “제이, 리아. 그만해요.”

    “하지만....”

    “저 배고파요. 리아, 오빠랑 언니도 배고플 텐데.”

    세린의 말에 제이와 플로리아가 눈치를 보며 말했다.

    “.... 밥을 먼저 먹자꾸나 리아.”

    “우.... 맘마 주세여.”

    한 발 물러날 줄 아는 부녀였다.

    단란한 가족이 모두 모였고 가족들은 여전히 행복해 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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